주희진은 여전히 망설였다. 원아가 지금까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사실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황이 오히려 반대로 되어버려서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주희진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원아가 말했다.“이모, 이건 그냥 제 작은 정성이에요. 다른 뜻은 없고, 설이 다가오니까 작은 마음이라도 전하고 싶어서요.”이연도 거들었다.“맞아요, 이모. 부담스러우시면 설날에 원아한테 세뱃돈 많이 주시면 되잖아요.”주희진은 원아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초설아, 고마워.”
“내가 할게, 조심해, 뜨거우니까.”“시원한 반찬도 좀 내올게요.”주희진은 요즘 매일같이 야근하는 임문정이 안쓰러웠다.임문정은 국수를 들고 나와 식탁에 놓고 앉았다.주희진은 젓가락을 건네며 차가운 반찬도 곁에 내려두며 조용히 말했다.“드세요.”“고마워.”임문정은 면을 한 입 먹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오늘 쇼핑몰에 다녀왔어?”“네, 거실 테이블 위에 있는 쇼핑백 봤죠?”주희진이 물었다. 그 쇼핑백들은 모두 ‘초설’이 준 것이었다.주희진이 산 것들은 이미 정리해두었다.“봤어, 물건이 꽤 많던데, 설 준비하려고
임문정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희진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집에서 초설이 바로 원아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 내가 하는 말을 우리 집사람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럼 설날 때 초설이한테 세뱃돈을 많이 주면 되겠어.” 임문정이 말했다. ‘어쨌든 초설이는 우리 친딸인데,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설에 세뱃돈을 주는 것은 흔한 일이잖아. 세뱃돈은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최고의 축복이지.’ “그래도 그건 너무 평범하지 않을까요?” 주희진은 망설이며 말했다. ‘물론 어른이 젊은 사람에게 세뱃
주희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말 초설이 없었더라면, 내가 우리 남편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야...’ 지금은 주희진은 건강이 많이 회복된 덕분에 이렇게 임문정의 곁에서 남편이 원하는 일을 안심하고 도울 수 있었다. 그래서 주희진은 ‘초설’이 자신들에게 준 은혜는 간단한 감사 인사나 사과로 갚을 수 없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임문정이 왜 그렇게 ‘초설’에게 신경을 쓰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주희진은 자신이 아직 충분히 초설에게 보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임문정은 주희진의 잔소리를 들으며 옷을 들어 자신의 몸에 대보았다. “이 옷은 사이즈만 딱 맞는 게 아니라, 색깔이랑 디자인도 완벽하네. 설날 연휴 첫날에 이 옷을 입어야겠어.” 주희진은 남편의 기뻐 보이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영은이 임문정에게 여러 번 옷을 사준 적이 있었지만, 그때 임문정의 표정은 오늘만큼 밝지는 않았다. 주희진이 보기에 ‘초설’이 고른 옷은 영은보다 더 신중하게 고른 것이었고 사이즈, 디자인, 색깔까지 임문정의 나이와 신분에 딱 맞았다. 그리고 임문정은 마치 딸이 정성껏 고른 선물을 받은
주희진은 임문정의 말대로 조금 더 냉정하게 대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영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은의 이름이 언급되자 임문정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초설’ 덕분에 기분이 좋아졌던 그의 기분은 영은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완전히 표정이 어두워졌다. “됐어요, 너무 화내지 마요. 영은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미 그 정도면 벌도 다 받은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이제 그만 화내고, 건강 상하지 않도록 해요.” 주희진은 임문정의 기분이 나빠진 걸 알아채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
“알겠어요. 당신 말대로 이제부터는 영은이가 퇴원할 때까지 일반 병실에서 치료받게 하도록 해요.” 주희진은 결심했다. 주희진도 영은이가 병원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더 이상 그 요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병원 방문 횟수도 줄일 생각이었다. “퇴원 후에는 영은에게 집을 따로 마련해줄 생각이야.” 임문정이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그는 크게 화가 나 있었고 곧바로 모든 계획을 세워 둔 참이었다. “여보, 왜 그런 결정을 한 거예요?” 주희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영은
주희진은 자신의 걱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 사람이 감히 그렇게 하지는 못할 거야.” 임문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임문정과 주희진은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영은을 입양했기 때문에 소창민은 임씨 가문에 대해 비난할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소창민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계속해서 영은의 불효를 비난하는 것뿐일 것이다. “이제 그만, 이런 일로 더 이상 고민하지 마. 이런 문제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내 아내로서 편안히 지내기만 하면 돼. 미자 아주머니가 말하길, 오늘 당신 심장이 안 좋았다고 하던데, 빨리 올라가서
소남의 앞에서 원아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었다.“출근하기 싫은 거예요?”소남은 그녀의 말을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는 속으로 원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전날부터 출근 준비를 했던 그녀가, 단순히 출근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을 리 없었다.‘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것 같아. 하지만 아침부터 무슨 일이 생긴 거지?’소남은 속으로 궁금해하면서도 원아를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원아는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굳이 진실을 캐
“이건 장기적인 투자예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고, 게다가 당신이 진행 중인 연구도 이제 상용화될 때가 됐어요.” 소남은 원아의 귀에 대고 속삭이며, 살짝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원아가 진행한 연구는 몇 차례의 임상 실험을 통해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그 후 회사의 마케팅팀이 시장 조사를 했고, 적절한 가격 조건만 맞으면 대부분의 의료 기관이 그 약품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시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원아는 소남의 가까운 존재감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며 나지막이
소남은 설계 도면을 디스크에 저장한 후, 모든 자료를 서류 봉투에 넣었다. 모든 작업을 마친 그는 원아도 샤워를 끝냈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그는 문을 열고 들어갔고, 원아는 이미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서 꼼꼼하게 스킨케어를 하고 있었다.원아가 고개를 돌려 소남을 보며 말했다. “다 출력했어요?”“다 출력했어요.” 소남이 대답하며 다가 갔고 원아가 일어서자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아까 에런한테서 전화가 왔어요.”“무슨 일이죠...” 원아는 갑작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다. 이런 시간에 에런이 전화를
원아는 설계도를 꼼꼼히 살펴보았다.ML그룹의 입찰 이후, 소남이 이렇게 공들여 건축 설계도를 완성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설계도의 세부 사항 하나하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대표님, 이 설계도 정말 멋져요!” 원아는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원아는 생물제약 분야에서 일하고 있지만, 지금은 소남의 건축 설계도에 감탄하고 있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소남 씨가 방금 내가 한 말을 듣고, 내가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말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텐데. 안 그러면
눈이 녹으면서 날씨는 평소보다 더 쌀쌀해졌지만, 이연의 마음은 따뜻했다.예전에는 이연이 감히 송씨 가문 사람들을 마주할 용기도 없었고, 이런 일들을 처리할 결심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욱의 사랑이 이연의 결심을 굳건하게 해주었다. 즉,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현욱 씨...” 이연이 나지막이 말했다.“난 항상 여기 있어.” 현욱은 그녀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혹시 내가 도울 일이 생기면 꼭 말해줘요.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똑똑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도울 거예요.” 이연은 결심하
현욱이 그런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그래서 원아는 그가 무언가 중요한 일에 직면해 있음을 직감했다.“그렇겠죠.” 비비안도 원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2층.현욱은 소남을 찾아가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소남은 현욱의 계획을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알겠어. 앞으로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이번에는 형님의 도움이 정말 필요해요. 저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을 거예요. 형님은 제 편에 단단히 서주기만 하면 돼요.” 현욱은 말했다.소남의 지지가 있다면, SJ그룹은 쉽게 무너지지 않
막 앉았을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는 윤수정에게서 온 것이었다. 재훈은 전화를 받지 않고, 대신 윤수정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형이 확실히 모든 개인 서류들을 전부 다시 발급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는데, 그때는 우리가 이연을 경계하지 않았을 때였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가 이 문제를 잘 처리하실 거예요.]메시지를 보내고 나서 재훈은 핸드폰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소파에 몸을 던졌다.‘송현욱과 이연... 너희 둘이 결혼을 했다고 해도, 내가 너희들을 행복하게 내버려 둘 것 같아!’‘
“할아버지, 지금 금고에 있는 형의 모든 개인 서류를 가지고 한 번 확인해 보세요. 아마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서류들뿐일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정략결혼을 추진하실 때, 형은 이미 그때 모든 개인 서류를 다시 재발급 신청을 해서 새롭게 발급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재훈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차분하게 송상철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송상철의 얼굴은 화가 난 나머지 핏발이 부풀어 올랐고, 유 집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욱이 이 녀석 당장 데려와.”“예, 어르신.” 유 집사는 이번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재훈이 지난번 T그룹의 입찰사업계획서를 훔치려다 실패한 일이 있었고, 그는 그 책임을 부하에게 돌렸지만, 송상철은 여전히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재훈은 지금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네 엄마는 깨어나긴 한 거야?” 송상철이 다시 물었다.“예, 깨어나셨어요.” 재훈은 거실에서 최대한 인내심을 갖고 서 있었다. 송상철이 모든 질문을 끝내야만 재훈이 서재로 가서 금고를 열 수 있기 때문이었다.송재훈은 송상철의 모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