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남이 골드 카드를 꺼내 원아에게 내밀었다. “퇴근 후에 주소은과 함께 쇼핑몰에 가서 드레스 몇벌 사도록 해, 자! 이 카드 가지고 가.”원아는 고개를 저었다. 소남의 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어쩐지 미안한 일이었다.“괜찮아요. 전에 줬던 블랙카드도 몇 번 사용하지 않았는걸요? 가방에 들어있어요. 만약 옷을 사야 한다면, 그걸 사용할게요. 암튼, 일단 저는 사무실로 들어가 볼게요.” 원아는 일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있었다. 소남의 카드를 쓰는 것은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원아가 끝까지 사양하자 소남이 원아의 코를 가볍게 톡
“맞아요. 이건 정품 아녜요. 제가 산 짝퉁이죠.” 원아가 몇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낯선 사람과 이런 일로 실갱이하고 싶지 않았다.원아는 자신의 목도리가 명품이란 걸 미처 생각 못 했다. 원아가 추위 타는 것을 걱정한 소남이 양모 목도리를 선물해왔다. 그것은 가벼우면서도 보온성이 뛰어났다. 또한, 피부와 비슷한 소재로 만들어져 거부감이 없었다. 더이상 찬바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선물을 사양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고가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절대 받지 않았을 선물이었다.정안의 사촌 여동생은 입꼬리를 올리며 경멸
정안과 원아, 두 사람은 여전히 주차장에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나 먼저 갈게요.” 원아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정안은 원아의 가녀린 몸이 멀어져 가는 것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다 몸을 돌렸을 때 눈 앞에 있는 미경을 발견했다. “오빠, 저 여자 이미 떠났어. 왜 그렇게 눈을 못 떼고 보고 있는 거야? 내 생각엔 오빠가 여자 보는 눈이 없는 것 같아. 난 오빠의 여자는 정말 화려하고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겨우 이 정도였어?
“어머! 임영은이잖아? 세상에, 여기서 그녀를 만나다니!” 소은이 낮지만 흥분된 목소리로 원아의 귀에 속삭였다. 소은은 TV를 즐겨봤다. 시간이 많을 때는 스타들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때문에 단번에 영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영은은 화장한 얼굴에, 높이 솟은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고급 브랜드의 캐쥬얼 의상은 몸매를 완벽하게 드러내 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정작 원아는 임영은이 유명인이라는 것 외에는 잘 알지 못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은은 순수한 이미지였다. 실제로 가
원아는 남을 자기 밑에 두고 보는 그런 무례한 태도를 참을 수 없었다. “임영은씨, 지금 그런 행동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쯤은 알고 계시겠지요?” 원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영은이 경멸이 가득 담긴 눈으로 원아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원아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이런 여자가 정말 소남씨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참을성도, 침착함도 갖추지 못한 이런 여자를?’영은은 자신이 원아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고 믿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여자가 소남씨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 소은이 영은에게 시선을 고정
임영은이 원아를 더 자극하려던 그때, 소은이 보라색 드레스를 집어들어 원아에게 건넸다.“우리가 집중할 건 이거라는 거 잊지마. 이런 미친 여자가 아니라구. 아휴, 시간 아까워라. 자! 그럼, 하던 일 마저 할까?”소은은 원아를 피팅룸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잡지 하나를 꺼내어 들고 소파에 앉았다.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명품 매장답게 인테리어가 훌륭했다. 향이며 맛이 좋은 다양한 음료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은은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다소 깔보는 태도의 매장직원과 우월감으로 가득 찬 영은
‘원이 네 인간관계가 이렇게 나쁜줄은 몰랐는걸? 사방에 죄다 적뿐이잖아? 그나저나 갑자기 튀어나온 이 여자는 대체 누구야?’‘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게 누구든 원아를 괴롭게 하는 쪽이 자신의 편이나 다름없었다.’원아가 지갑에서 블랙카드를 꺼내들었다.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미경은 무시한 채였다. “계산해 주세요.”“잠깐! 이거 내가 살게요.”미경이 원아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미경이 계산대 위에 놓인 드레스를 가리켰다. 꽤나 거만한 태도였다.“고객님, 죄송하지만 이 드레스는 여기 계신 분이 이미 구매하기로 결정한 제품입니다.
소은이 원아가 드레스를 더 고르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더니 말했다.“이제 가는 게 어때? 살 거 샀잖아. 난 이제 더는 못 참겠어. 빈대 몇 마리가 날뛰며 여길 더럽히는 꼴 말이야.”소은이 공중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로 더러운 공기가 주변을 맴돌고 있는 듯했다.영은과 미경의 안색이 변했다.‘뭐라는 거야? 혹시 그 빈대가 우리라는 거야?’미경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뭐, 빈대? 누굴보고 빈대라는 거야, 지금?”원아가 소은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더니 냉소적인 말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