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준은 한 입 먹다가 지성이와 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추우니깐 텐트로 들어가.""아빠, 우리는 하나도 안 추워요. 누나가 여기에 있는 거 맞겠죠?" 박지성은 머나먼 설산 중간에 구조 대원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래. 여기 있을 거야." 진지한이 대신해서 대답했다. "박지성, 동생을 데리고 텐트로 돌아가."지성이는 형의 말을 듣고 순순히 동생의 손을 잡고 텐트로 돌아가려 했다."오빠, 아빠... 저는 하나도 안 추워요." 현이는 구조되는 것을 보고 싶었다.현이가 이렇게까지 말했지만 지성이는 현이의 손을 끌고 텐트로 돌아갔다."현이야, 아빠 흰머리 봤어?" 지성이는 방금 아빠 옆에 있을 때 똑똑히 보았다. "흰머리가 없으셨는데... 누나가 사고를 당한 뒤로 갑자기 흰머리가 생기셨어."현이는 아빠의 흰머리를 발견하지 못했다."갑자기 많이 늙어지신 것 같아요." 현이는 그 말을 한 뒤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전에는 엄마랑 아빠는 절대 늙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정말 충격이야..." 박지성 역시 큰 충격을 먹은 얼굴이었다.하지만 박시준과 진아연에게는 두 번째 큰 충격이었다.첫 번째 충격은 현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현이를 찾을 수 없었던 것.현이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삶을 이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로를 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번 라엘이의 사고는...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라엘이가 여기 있다... 그것도 어딘가에 묻혀서."... 찾았습니다!"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박지성과 현이는 바로 텐트에서 나왔다."휴대폰을 찾았습니다!" 이어서 소리가 들려왔다.라엘이의 휴대폰을 찾은 것이다.라엘이의 휴대폰은 눈 속 깊이 파묻혀 있었다.구조대원들은 다행히도 어두운 환경에서도 라엘이의 휴대폰을 찾아냈다."사람은 없습니까?!" 진지한이 큰 소리로 물었다."휴대폰 근처에는 없습니다!" 구조대가 확성기를 이용하여 대답했다. "계속 찾겠습니다! 분명 근처에 있을 겁니다!"진지한: "조심
진아연의 손에 들린 도시락이 '쾅'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진아연이 절규했다. "라엘이는요?! 분명 라엘이도 있을 거예요!"구조대원들이 조심스럽게 김세연의 몸을 다른 곳에 눕혔고 그 밑에 라엘이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했다."찾았습니다! 진 대표님! 찾았습니다!" 구조대원은 기쁜 표정으로 손을 뻗어 라엘이의 숨결을 확인했다.이미 산의 기온은 매우 낮았다.라엘이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따뜻한 숨결이 느껴졌다.구조대원들의 떨리는 손 끝에 라엘이의 숨결이 닿았다...라엘이가 아직 숨을 쉬고 있었지만 숨결이 매우 약했다."진 대표님... 호흡이 많이 약합니다!""당장 데리고 내려와요!" 진지한은 이 말을 하면서 자신이 바로 뛰어가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그는 야외와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는 비서에게 망원경을 건네 받아 위의 상황을 살폈다.몇 초 동안 망원경을 보았고 박시준 역시 망원경을 가져와 본 다음 진아연에게 넘겼다."살아 있을 거야... 아니. 아연아, 살아 있어..." 박시준의 목소리는 매우 절박했다.진아연 역시 그의 기분만큼이나 슬펐다.구조대는 김세연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김세연이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그녀는 딸이 세상을 떠난 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김세연 역시... 이렇게 갈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함께 설산을 올랐는데 왜 둘 다 살아남지 못한 것이지?진아연은 김세연의 부모님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할 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가 김세연의 목숨을 구한 뒤,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에게 김세연은 은혜를 갚기 위해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의 도움은 이미 그 은혜의 빚을 넘어섰다.김세연은 사실 진작부터 그녀의 빚을 다 갚았었다.하지만... 이렇게 김세연을 죽게 만들다니...헬리콥터는 김세연과 라엘이를 구출해 병원으로 바로 이송했다.헬리콥터가 설산 위를 지나가자 진지한 역시 가족들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현이의 말에 진아연의 눈빛에는 일말의 희망이 비치기 시작했다.만약 의사가 사망했다고 판단한다면 고인에 대한 별도의 수술이 들어가지 않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예를 들어 정말로 고인이 숨을 쉬지 않고 동공에 반응이 없을 경우 구조 수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그때 진지한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사진 몇 장이 들어왔고 발신자는 마이크였다.마이크는 구조대와 함께 라엘이를 찾으러 올라갔었다.그리고 김세연과 라엘이를 발견한 뒤, 몇 장의 사진을 찍었던 것이다.그리고 마이크는 지금 산을 내려가는 중이었다.그리고 빨리 그들에게 사진을 보내려고 신호를 찾았고 보내는 것에 성공했다.진지한은 사진을 확대해 자세히 살펴 보았다.사진 속 김세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었고 얇은 스웨터만 걸치고 있었다.이 얇은 스웨터만을 입고 설산에 오를 수는 없었다...진지한은 바로 두 번째 사진을 탭하여 확인했다.두 번째 사진에는 라엘이가 있었다.라엘이의 안색은 김세연보다 괜찮아 보였다.마치 깊은 잠에 든 사람의 표정처럼 보였다.그녀는 두꺼운 패딩으로 감싸져 있었다... 아마도 김세연의 것으로 보였다.진지한은 그 모습을 보고 눈사태가 발생했을 때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세연 삼촌이 라엘이를 살렸어요." 진지한은 자신의 휴대폰을 진아연에게 건넸다.진아연은 휴대폰을 받은 뒤, 사진을 보았다.두 장의 사진을 본 뒤, 진아연은 휴대폰을 붙잡고 박시준의 어깨에 기대어 울기 시작했다.박시준은 그녀를 안으며 그녀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가져갔다.사진 속 김세연의 얼굴을 보며 박시준은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다.그는 라엘이를 지키기 위해 그녀에게 패딩을 입힌 뒤, 목숨 걸고 라엘이를 안은 채로 그녀를 지켰다.박지성과 현이 역시 형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이 궁금해 아빠에게 다가가 사진을 바라보았다.몇 초 뒤, 지성이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보통 이렇게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만 생각하는데... 세연 삼촌은
"아버지, 제가 여기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을게요!" 현이가 병실 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그리고 현이는 어머니의 눈가에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을 보았다.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마음 속 깊이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라엘이와 김세연을 허락해 주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이다.만약 그때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면 결혼식 준비를 바로 하느라 출장은 고사하고 설산에 이렇게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박시준은 진아연의 잡은 손을 놓으며 말했다. "엄마가 깨어나면 알려주렴.""네." 현이는 대답했다. "언니가... 수술실에서 나오면 제게도 말해주세요.""그래."마치 1초가 1시간처럼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현이는 티슈로 어머니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 뒤, 병원 침대 끄트머리에 멍하게 앉아있었다.그리고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정확히 어떤 생각들이었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리고 생각의 끝에는 김세연과 언니가 무사히 깨어나길 바랄 뿐이었다.언니가 깨어났는데 김세연이 자신을 구하다가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된다면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다.그리고 그 충격은 평생의 그녀에게 짐이 될 것이다.조용한 병실이었지만 현이의 마음은 평온해지기 어려웠다.그녀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지금 가족들은 모두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였다.그녀는 이런 말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을 살피다 서은준의 이름이 보였다.이건 T국의 서은준의 번호였다.서은준은 E국을 갈 때, 번호를 변경했다.그리고 서은준은 그녀에게 새로운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서은준의 현재 전화번호를 알지 못했다.사실 그녀는 서은준이 보고 싶었고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아버지와 마이크 삼촌이라면 바로 서은준을 찾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몰랐다.그녀는 그저 그의 예전에 사용하던 전화번호로 메시지를 보내 자
현이는 잠시 눈을 붙이다 일어났고 자신이 병원 침대에서 자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둘째 오빠." 현이는 병실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둘째 오빠를 보고 말했다. "오빠, 엄마는요? 지금 몇 시에요?"박지성이 말했다. "9시야. 밤새 어머니 곁을 지키다 피곤했는지 잠이 들어 있길래.""좀 쉬라고 다른 병실로 옮겼어.""엄마는요?" 현이가 앉으며 말했다.그래도 한숨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어머니의 상태를 물은 뒤, 그녀는 다시 언니와 김세연의 상태가 떠올랐다."언니랑 세연 삼촌은요...? 괜찮은 건가요?"박지성: "누나는 괜찮아. 아직 정신을 못 차렸을 뿐. 세연 삼촌은... 다행히도 목숨을 구했지만 상태가 매우 나쁘데. 여기 시설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형이 바로 전세기를 불러서 B국으로 갔어. 세연 삼촌이 누나의 목숨을 구해줬으니... 세연 삼촌은 반드시 돌아올 거야..."현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너무나도 다행이었다!일말의 희망이 보였다."엄마는 아침 7시에 일어났어. 일어나서 바로 세연 삼촌 검사 결과서를 보더니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아." 박지성이 말했다. "아, 근데 현이야 배는 안 고파? 밥 먹어야지.""오빠, 전 괜찮아요. 별로 배고프지 않아요." 현이는 언니를 바로 보러 가고 싶었다. "언니가 보고 싶은데 가도 될까요?""밥 먹고 데려다 줄게! 너라도 잘 먹어야지 언니를 간호하지." 박지성은 가방을 맨 뒤 말했다. "언니가 의식을 차릴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어. 그리고 일어나면 바로 연락주기로 하셨고.""아... 그럼 언니가 일어나면 보러가요.""그래.""근데 아빠랑 엄마는 어디에 계세요?" 현이가 물었다."언니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 엄마도 B국에 가고 싶어 하셨어. 세연 삼촌 때문에." 박지성이 이어서 말했다. "아마 누나가 깨어나면 엄마도 B국으로 가실 것 같아.""네. 아, 근데 둘째 오빠는 한숨 잤어요?" 현이가 걱정스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녀는 어떠한 말보다 눈물부터 흘러 내렸다."아연아, 울지마렴... 세연 씨, 아직 살아있어..." 진아연은 떨리는 손으로 딸의 손을 잡았다. "알아...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지. 근데 이제... 다 지나갔단다."라엘이 역시 어머니의 손을 꼭 움켜쥐며 울기 시작했다.박시준은 병원 침대로 걸어가 티슈로 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라엘아, 울지마렴... 김세연 씨 치료를 위해 우린 최선을 다할 거야. 네 탓이 아니야... 라엘아." 박시준은 딸의 눈물을 계속 닦았지만 그칠 줄 몰랐다."다... 저 때문이에요... 김세연 씨를 그렇게 만든 건..." 라엘이는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가 부르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박시준과 진아연은 멍하니 병원 침대 옆에 서서 고통스러워 하는 딸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들이 지금 아무리 위로를 해도 라엘이는 모두 그녀의 잘못이라 생각할 것이다.그녀는 딸이 어떠한 심정일지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애써 부정하고자 하였다.이미 일은 일어났고 다시 되돌릴 수 없다.그리고 김세연이 만약 세상을 떠나도 살 사람은 살아나가야만 했다.라엘이는 울다 지쳐 다시 잠이 들었다.의사가 와서 라엘이의 상태를 다시 검사했다."박 대표님, 진 사모님. 두 분 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심리적으로 아직 불안정하기 때문에 옆에서 잘 지켜봐주시고 정신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진아연: "감사합니다."정신과 의사는 집으로 돌아간 뒤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지금은 라엘이의 몸 상태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린 뒤, 돌아갈 예정이다.현이와 지성이도 아침을 먹은 뒤, 라엘이를 보러 왔다.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병실 밖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그들에게 다가가자 박시준과 진아연은 말을 멈추고 그들을 쳐다보았다."어머니, 아버지. 언니는요?" 현이가 물었다."일어났는데 울다가 다시 잠들었어." 진아연은 현이에게 다가가 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현
"아빠, 들어가서 언니랑 있어도 돼요?"현이는 언니가 깨어났다는 건 알았지만 밖에서는 언제 일어날 지 알 수 없었다.박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이야, 엄마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단다. 만약 처음부터 김세연과 관계를 허락했다면 라엘이가 여기에 올 일도... 이런 일도...""아버지, 아무에게도 잘못은 없어요." 현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만약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았다면... 그게 바로 재앙이죠."현이의 단호한 대답이 박시준의 슬픈 마음을 어루어만져주었다."아빠,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항상 옆에서 말씀해 주셨어요. 물론 부모의 책임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문제에요.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희에게 아빠는 정말 좋은 아빠에요..."박시준은 딸을 품에 안으며 말했다. "현이야, 고맙다... 이런 말을 해줘서...""아빠, 언니는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현이는 아버지를 껴안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예전에 언니가 말했어요. 누구보다 아빠와 엄마를 사랑한다고요.""그래. 고맙구나... 자, 이제 라엘이 보러 들어가보렴." 박시준은 딸을 놓아주며 말했다. "언니가 만약 일어난다면 잘 이야기 해봐.""네." 현이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그녀는 병실 침대로 걸어가 창백한 얼굴의 라엘이를 바라보았다.다행히 언니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동상의 증상이 있었다.그녀는 손등에 꽂힌 주사 바늘을 바라보았다.그리고 현이는 손을 뻗어 언니의 손을 만졌다.손이 아직 많이 차가웠다.그녀는 다시 언니의 손을 부드럽게 잡으며 따뜻해 지기를 바랐다.30분 정도 흘렀을까. 라엘이 다시 정신을 차렸다.그녀의 몸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마음과 정신은 아직도 사고 현장 그 속에 있었다."언니." 현이는 언니가 눈을 뜨는 것을 보고 불렀다. "언니... 저예요. 현이."라엘이는 여동생을 멍하게 바라보았다.방금 엄마와 아빠가 병실에 있지 않았나?"둘째 오빠랑 엄마는 공항에
라엘이는 그 말을 하고는 목이 메어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현이는 바로 티슈를 가져와 눈물을 닦아주었다."언니... 울지마요. 언니랑 세연 삼촌 괜찮을 거예요... 정말루! 언니가 괜찮아 진다면 세연 삼촌도 괜찮아 질 거예요." 현이가 말했다. "세연 삼촌이 회복되면... 그때 결혼한다고 해도 엄마랑 아빠가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현이야, 정말로 그의 상태가 괜찮은 거 맞을까...?" 라엘이는 당시 김세연과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사람이기에 그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게 패딩까지 주고 얇게 입고 있었어. 구조대가 빨리 오지 못할 걸 알고... 그랬던 거야..."라엘이의 계속되는 당시 상황 설명에 현이는 끝끝내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언니... 원래부터 세연 삼촌이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았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좋은 사람. 아니 그 이상인 사람인 거 같아요. 정말로 깨어나게 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라엘이는 그가 일어난다는 생각에 다시 호흡이 가빠져왔다.눈사태와 김세연에 대해 그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모든 고통과 사랑... 모든 것이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힐 것이다.김세연이 살아 돌아온다면 그녀는 직접 그에게 말할 것이다.만약 김세연이 살아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녀 역시 죽은 후, 그에게 말할 것이다.잠시 뒤, 간호사가 드레싱을 위해 라엘이의 병실에 찾아왔다."진 아가씨, 정말 운이 좋으세요. 이번 눈사태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세연 씨와 진 아가씨 두 분이 유일한 생존자세요. 그러니깐 다른 걱정말구 하루빨리 회복하는 데 신경 쓰세요." 간호사의 말이 라엘이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다.그녀에게 김세연이 살아있다는 통보를 한 거나 다름 없었다."진 아가씨, 오늘은 가볍게 드시고 식사 후에 만약 속이 불편하지 않다면 내일부터 자유식하시면 되실 것 같아요. 다만 너무 기름진 것만 피하세요. 과일 많이 드시구요." 간호사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라엘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3년 후.A국, 공항.현이는 둘째 오빠와 함께 공항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3년이야 3년! 남자친구라는 사람 드디어 너 찾으러 오는 거야!" 박지성은 현이를 놀리며 얘기했다. "설마 너랑 헤어지러 오는 건 아니겠지? 어쨌든 3년 동안 못 만났는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현이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째 오빠, 저 지금 저주하시는 거예요? 비록 3년 동안 못 만났지만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서 서로 얼굴 봤거든요!"박지성은 툴툴거리며 말했다. "사이버 연애하는 거랑 뭐가 다르냐?"현이: "어쨌든 이번에 A국에 와서 정착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부터 다시는 떨어져 지내는 일 없을 거예요."박지성: "네 남자친구도 자존심이 너무 강해. 이따 아버지 만나고 얘기 얼마 나누지도 않고 다시 티켓 사고 도망치는 거 아니야?"현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아!"현이는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바라보았다——서은준이 캐리어를 끌며 출구에서 나오고 있었다.현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은준을 향해 달려가 서은준의 품에 안겼다.이때 박지성은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진아연이 물었다. "아직 못 만났어? 설마 안 오는 건 아니지?"박지성: "엄마, 제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금방 나왔어요, 지금 현이랑 껴안고 있어요! 우리 이제 곧 집에 갈 거니까 엄마랑 아빠도 마음의 준비 잘 하고 계세요."박 씨 저택.진아연은 통화를 마친 후 박시준에게 전달했다.박시준은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자신의 용모를 검사했다.진아연은 화장실 문 앞에서 지켜보며 소리내어 웃었다. "거울 그만 비춰요, 충분히 멋있어요!"박시준: "여보, 좀이따 은준이한테 좀 엄격해야 할까?"진아연: "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은준이도 현이 위해서 A국에 있겠다고 한데다 엄격하게 해서 뭐하려구요? 굳이 두 아이의 기분을 망쳐야겠어요? 은준이도 지금 어엿한
서 어르신은 진지한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꺼낼 줄 예상치 못했기에 차마 어찌할 바를 몰랐다.왜냐하면 진지한에게 돈을 달라고 할 계획이긴 했지만 얼마나 달라고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어쨌든 진지한은 엄청난 부자였고, 적게 달라고 하니 왠지 손해를 보는 기분이였고 많이 달라고 하자니 거절 당할까 봐 걱정되었다.서 어르신은 한동안 망설인 후 진지한에게 말했다. "진 대표님 집이 A국에서 엄청난 부자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가 적당한지는 대표님께서 정하시죠! 저와 우리 아들에게 푸대접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진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배유정은 그것을 보고 바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금액을 정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얼마가 적당할지 가늠이 안 가네요. 굳이 저희더러 정하라면 돌아가서 저희 시아버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네요."서 어르신: "혹시 박시준 씨 말하는 겁니까?"배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저희 시아버님 저희 남편보다 더 까다로울 겁니다. 입장 바꿔서 아버님이라도 따님을 평범한 남자한테 시집 보내진 않을 거잖아요?"서 어르신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긴 해요. 그럼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죠!"배유정: "지금부터 고민해 보셔도 괜찮아요. 저희 요 이틀 동안은 여기 있을 거거든요."서 어르신: "알겠어요! 그럼 우선 연락처 먼저 교환하죠! 나중에 일이 있을 때도 서로 연락하기 편하잖아요."배유정은 진지한을 흘끗 보았고 그제서야 진지한은 휴대폰을 꺼내들고 서 어르신과 연락처를 교환했다.병원.현이는 서은준의 곁에서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했다.서은준은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시신을 옮겨달라고 했다.현이가 서은준에게 물었다. "장례식 간단하게 치를 생각이에요?"서은준: "엄마 켠에도 친척들이 별로 없어."현이: "네. 그럼 어머니 계실 묘지부터 골라야죠?"서은준: "엄마가 전에 유골을 엄마 고향 연못에 뿌려달라고 했어."현이: "..."서은준: "엄마는 내
진지한: "그래요 그럼! 근처에 가까운 카페라도 갈까요."서 어르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좋아요! 사실 우리 집이 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데 한 번 가보실래요? 현이도 우리 집에서 꽤 오랫동안 지냈었고 우리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랑 사이가 아주 좋았거든요."진지한은 배유정을 보며 말했다. "그럼 한 번 가볼래?"배유정: "좋아요!"서 어르신은 즉시 진지한과 배유정을 자신의 차로 안내하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서 어르신의 집에 도착한 후 서 어르신은 즉시 하인들을 분부하여 과일과 디저트를 올리라고 했다.서 어르신은 집사를 가리키며 진지한에게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우리 집 집사입니다. 예전에 현이 할머니도 집사가 뽑고 집에 들였죠."진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서 어르신은 집사에게 말했다. "이 분은 수수 친 오빠야, 유명한 대기업의 대표 진지한 씨."집사: "진 대표님, 안녕하세요! 수수 정말 괜찮은 아이였어요, 그때 우리 모두 수수를 많이 좋아했답니다. 전에 수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듣고 많이 속상했는데 사실이 아니라니 참 다행이에요! 수수는 정말 철도 들고 씩씩한 아이였어요, 제가 봤던 아이들 중 가장 씩씩한 아이에요. 수수가 잘 지내고 있다니 정말 기쁘네요."진지한: "전에 우리 동생 잘 챙겨줘서 고마웠어요."집사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대표님, 별 말씀을요! 수수는 정말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어요. 매번 적극적으로 맡아서 일도 잘하고 정말 괜찮은 아이에요. 우리는 그때부터 수수가 나중에 대학 졸업하고나면 꼭 잘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진지한은 집사의 말을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서 어르신이 집사에게 말했다. "귀한 손님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내려가."집사는 즉시 물러났다.서 어르신은 진지한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 현이가 우리 은준이랑 사이가 좋았다는 거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제가 현이를 은준이 곁에 안배했거든요, 그때 두 아이 나이가 비슷했기도 했고 서로 얘기도 잘 통할 거
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은준 씨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저 요 며칠 동안 언니 오빠랑 놀러다닐 수 없을 것 같아요."진지한: "괜찮아. 은준이 집에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리도 놀 기분 아니야. 은준이 어머님 장례식 참석하고 돌아갈게."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지?" 진지한을 물었다.서은준은 현이의 남자친구자 현이 또래기도 하니 현이의 오빠로서 왠지 모르게 서은준을 도와 어머니의 뒷일을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현이: "국내랑 비슷해요. 돈 많은 사람들은 거창하게 치르고 보통 사람들은 그냥 간단하게 치르곤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장례식은 따로 안 치르고 직접 무덤에 묻기도 하구요."진지한: "좀 거하게 치르려면 어떻게 해야 해?"현이: "오빠, 은준 씨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거 도와줄려고요? 은준 씨 친척들도 별로 없으니까 그렇게 거하게 안 치러도 돼요."진지한: "그래. 그럼 은준이랑 어떻게 할 건지 상의해 봐.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줄게."현이: "고마워요, 오빠. 근데 안 도와줘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장례식 치르는데 돈 많이 들진 않을 거예요. 은준 씨도 저희가 자기 어머님 장례식 도와주겠다고 하면 받지 않을 거예요."진지한: "그래 그럼! 가서 은준이 옆에 있어줘!"현이: "오빠, 그럼 오빠랑 새언니는...""우리 걱정은 안해도 되. 나 너희 새언니랑 밖에 나가서 좀 걸을게,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알았어요, 오빠."현이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병동을 나섰다.서 어르신은 병원 건물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지한과 배유정이 나오는 것을 보고 바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진 대표님, 저희 아들이 저한테 깊은 오해가 있어 현이까지 절 싫어하나 보네요. 사실 저 예전에 현이한테 정말 잘해줬어요." 서 어르신은 솔직하게 얘기했다. "사실 현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저희 집에서 일했었거든요. 그때는 현이를 키우던 할머니와 같이 우리 집 주방에
전화를 끊은 후 서은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현이는 서은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은준 씨, 왜 그래요?"서은준: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대. 미안하지만 당신 혼자 형님이랑 시간 보내야 될 것 같아! 난 병원으로 가야 될 것 같아."현이: "같이 가요! 어머님 방금까지 멀쩡하셨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두 사람은 진지한과 배유정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차를 잡으러 길가로 향했다.진지한과 배유정은 두 사람이 급하게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당황스러웠다.배유정: "여보, 우리도 병원에 가봐요! 은준 씨 어머님이 돌아가셨나봐요."진지한: "그래."두 사람은 택시 한 대를 세우고 서은준이 탄 차를 쫓았다.병원.빠른 속도로 병원에 도착한 서은준은 함께 서있는 의사 선생님과 서 어르신을 보았다.서 어르신은 아첨하는 말투로 말했다. "은준아, 원래는 너희 엄마 보러 병원에 온 건데 내가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 너무 안타깝구나!"서은준: "당신이 오기 전에 사망한 거 확실해요? 저도 오늘 왔었어요, 제가 왔을 땐 분명 아주 멀쩡했다고요!"서 어르신: "물론 다 사실이지! 못 믿겠으면 의사한테 물어봐!""의사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서은준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간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머니, 우리 엄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신 거예요? 저 사람 오기 전에 돌아가신 거예요, 아니면 오고 나서 돌아가신 거예요?"겁에 질려 있는 간호인들 부들부들 떨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서 어르신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간호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아들이 묻고 있잖아요. 말해 보세요! 제가 여기 왔을 때 당신 어디 있는지 그림자도 못 봤는데 혹시 밖에서 놀고 있던 거 아니에요?"간호인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오셨을 때 물 받으러 잠깐 병실에 없었어요. 아버님께서 언제 오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말 미안해요! 이번 달 비용은 받지 않을게요!"간호인은 말
서 어르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그게 지금 무슨 소리야? 당신 나 지금 무시하는 거야? 우리 서씨 집안이 지금 좀 상황이 안 좋긴 해도 T국에서 여전히 명망있는 가족 기업이라고! 은준이가 철이 없다고 당신까지 이렇게 무식해서 어떡하려고 그래? 은준이 뒤에 내가 없었다면 박씨 집안에서 우리 은준이 거들떠 보기나 할 것 같아?"서은준의 어머니: "그 입 다무세요! 박씨 집안에는 당신처럼 속좁은 사람 없어요! 현이 가족들은 우리 은준이를 무시하지 않는다고요! 그니까 괜히 쓸데없이 그분들 귀찮게 하지 마세요! 당신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괜한 짓 하지 말라고요!"서 어르신: "정말이야? 박씨 집안에서 정말 은준이를 반대 안 해? 어떻게 반대 안 할 수가 있지? 설마 은준이더러 A국에 가서 데릴사위라도 하라는 건가?"서은준의 어머니: "그러든 말든 당신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당신 여태껏 은준이 돌본 적 없잖아요. 이젠 은준이도 독립했으니 당신 도움 더 필요 없어요! 만약에 은준이 여자친구가 현이가 아니었다면, 현이가 박씨 집안 딸이 아니었다면 당신 이렇게 부지런히 저 찾아오지 않았을 거잖아요... 당신이 어떤 마음 품고 있는지 제가 모를 것 같아서 그래요?"서 어르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거야? 은준이 18살 때 당신이 내 곁으로 보냈잖아? 당신은 못 키우겠다고 나더러 키우라고 했잖아? 내 도움이 없었다면 은준이 저렇게 유학 다녀올 수 있었을 것 같아? 만약에 유학 떠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능력있을 것 같아? 지금 저렇게 사업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덕분이라고!"서은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올라 안색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은준이더러 대학 등록금 다 갚아주라고 할게요!"서 어르신: "이건 대학 등록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은준이 내 아들이야, 엄연한 내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아들이라고! 이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은준이가 나중에 잘 지내던 못 지내던, 이 애비 떨쳐낼 생각은 꿈도 꾸지
현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저 지금은 안 가요. 저 신경쓰지 말고 당신 할 거 하면 되요."서은준: "여기 있어봤자 너한테 시간낭비일 뿐이야."현이: "저 그동안 진짜 열심히 공부하고 회사생활도 열심히 했다고요, 잠깐 쉬겠다는데 뭐가 어때서요."잠시 후 진지한과 배유정은 호텔로 돌아왔고 네 사람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서은준의 어머니는 현이의 오빠와 새언니가 오는 것을 몰랐기에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서은준의 어머니는 몸을 일으켜 앉으려 했으나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었다.현이는 전동으로 서은준 어머니의 병실 침대머리를 올려 주었다. "어머님, 저희 오빠랑 새언니 신혼여행 겸 여기 놀러 왔다 어머님이랑 은준 씨 보러 여기 들른 거예요."서은준의 어머니: "아이고, 여기까지 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현이를 알게 된 건 정말 우리 아들의 행운이에요..."배유정: "어머님,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은준 씨도 얼마나 훌륭한데요. 그렇지 않으면 현이도 은준이를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서은준의 어머니: "듣기론 현이 집이 엄청난 부자라던데... 혹시 우리 은준이 반대하는 건 아니죠?"배유정: "어머님, 저희도 사람 됨됨이와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은준이랑 현이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두 아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거라면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을 거예요."서은준은 어머니: "네... 정말 고마워요! 유일하게 걱정되고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게 바로 제 아들이에요. 현이네 집에서 우리 아들 너무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우리 아들이 자존심이 강하거든요..."진지한은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서은준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를 포함한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어머님 아들 무시하는 일 없을 겁니다."현이는 오빠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깊은 감동을 받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서은준의 손을 꼭 잡았다.진지한은 병실에서 잠시 머물다 나갔다.현
현이는 긴장감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서은준과 큰 오빠의 대화는 기본적으로 중요한 얘기들을 다 꺼냈고 생각보다 훨씬 순조로웠다.큰 오빠도 화를 내지 않았고 서은준 역시 화나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사실상 이미 그녀의 걱정과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였다.하지만 현이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은준 씨, 좀이따 저희 남편이랑 병원에 가서 어머님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식사를 마친 후 배유정이 서은준에게 물었다.서은준: "좋아요."현이: "어머님께 미리 말씀 드릴까요?"서은준: "괜찮아. 이따 가서 직접 소개해 드리면 돼."서은준 어머니의 상태는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고 휴대폰을 안쓴지 이미 오래 되었다.보통 간호인이 매일매일 서은준에게 어머니의 상태에 대해 보고하곤 하였다.배유정: "사업도 하느라 어머님도 챙기느라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텐데."서은준: "현이의 예전 생활은 저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어요. 현이도 무너지지 않고 씩씩하게 잘 버텼는데 저도 잘 이겨낼 겁니다."배유정: "하하! 둘 다 씩씩한 사람이라 좋네요. 지금이든 나중이든 어떠한 곤난도 두 사람을 무너뜨리지 못할 거예요."현이: "언니 정말 너무 좋아요! 언니는 정말 제가 봤던 사람들 중 저희 엄마 제외한 가장 부드러운 사람이에요."배유정은 현이의 칭찬에 얼굴이 빨개졌다.진지한: "너희 언니가 이 말 들으면 서운했을 거야."현이: "언니는 당연히 다르죠! 제 마음속 언니는 부드러운 성격이 아닌 용감하고 씩씩한 슈퍼 히어로같은 존재니까요."배유정: "라엘이 성격에 슈퍼 히어로가 되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현이: "아무튼 언니는 절대 저와 이런 걸로 다투지 않을 거예요."배유정: "당연하지. 다들 배 부르게 먹었어? 다 먹었으면 오빠한테 계산하라고 할게."이 말을 들은 진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때 서은준도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계산할게요."현이는 애원하듯
현이가 말을 마친 후 서은준도 입을 열었다. "우선 열심히 일하고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이 될 때 다시 책임지고 싶습니다."진지한은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 "사업이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럼 사업이 실패하면 어떡하려고? 혹은 계속 미지근하게 아무런 진전도 없으면?"서은준: "형님이 말하신 것처럼 사업에 실패하거나 아무런 성과도 이뤄내지 못한다면 현이 고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진지한: "자기 분수는 잘 알고있네."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큰 오빠, 은준 씨 사업이 실패하거나 아무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다고 해도 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적어도 돈 때문에 은준 씨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배유정은 다시 한 번 진지한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의 말이 심했다고 일깨워 주었다.다른 사람에게 차갑고 날카롭게 공격적일 순 있어도 현이에게 이렇게 공격적이진 못했다.현이 역시 자신의 말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느꼈는지 말투를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큰 오빠, 전 그냥 돈이 한 사람을 판단하는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뿐이에요. 그리고 저희 집 이미 충분히 돈 많잖아요. 아무리 돈 많은 상대를 찾는다고 해도 저희 집보다 돈이 많은 사람은 찾기 어려울 거예요. 어차피 우리 집보다 돈이 많은 게 아니라면 돈이 많은 사람을 찾든 좀 적은 사람을 찾든 다 똑같잖아요."배유정: "현이 말이 맞아요. 가장 중요한 건 사람 됨됨이고 두 사람의 감정이에요. 만약에 상대방이 서은준 씨보다 돈이 더 많지만 현이한테 잘하지 않는다면 그런 남자에게 현이를 억지로 시집 보내는 건 아무 의미 없잖아요."진지한: "우리 집 조건만 봐도 현이한테 잘해주지 않을 남자는 없어."배유정은 할 말을 잃었다.진지한이 말한 것 역시 사실이였기 때문이다.현이가 누구에게 시집을 가든 함부로 현이를 건들지 못 할 것이다.이것이 바로 친정이 재력가인 힘이었다.현이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얘기했다. "다른 사람들이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저희 집안 때문이라면 서은준 씨는 달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