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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그리고 며칠 뒤 음식을 배달하는 사람이 아줌마로 바뀌었고 손하준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강이진이 왔다.

나는 이진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하씨 가문의 양녀로 알고 있는 그녀는 하준 마음속의 여신이기도 했다.

이목구비가 정교한 이진의 초롱초롱한 큰 눈은 내가 봐도 불쌍해 보였다.

이진은 여주인의 자세로 하이힐을 신고 내 앞으로 다가왔는데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어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3년 동안 밖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바보가 되고 벙어리가 되었다면서? 하준이가 그렇게 너를 미워하는 데 여기 있으면 생활이 편치 않을 거야. 네가 떠나고 싶다면 내가 도울 수 있어.”

나는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들어 이진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비아냥거림을 마주 보았다.

이진의 입가에 웃음기가 어리고 눈빛이 점점 부드러워졌다.

너무 떠나고 싶었던 나는 하나뿐인 지푸라기를 잡지 못할까 봐 이진에게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진은 나와 옷을 바꿔입고 선글라스를 쓰라고 했다.

“이렇게 해야만 문 앞의 경호원을 피할 수 있어. 문을 나서면 내 기사가 예진 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나는 긴장한 나머지 계속 마른 침을 삼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은 감옥을 벗어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술자리에 끌려가 있었다.

그곳에서 곧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았다.

“어머, 이분은 임씨 가문의 아가씨 아니에요? 어찌하여 여기에 오셨어요?”

“임씨 가문 아가씨는 무슨. 인터넷 안 봤어요? 그냥 구린내 나는 거지예요.”

“항상 눈이 높았던 임예진이 어떻게 이런 작은 술자리에 왔나 했더니 알고 보니 쓰레기 주우러 왔군요.”

“하하...”

나는 예전에 거만한 태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무기 삼아 처세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데 이로 인해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다.

이제 나의 초라함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치맛자락을 움켜쥔 채 끊임없이 출구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때 흐릿한 모습이 나의 시선 속에 나타났다.

이진이 이마가 벌겋게 된 채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곰곰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다가가서 이진의 팔을 붙잡고 나를 여기서 데리고 나가 달라고 애원했다.

이진의 시선이 내 뒤로 떨어지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예진 씨, 예진 씨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알아. 나를 기절시켜 내 옷을 훔치더라도 상관없지만 일단 돌아가 주면 안 될까? 하준이를 난처하게 하지 말고. 응?”

“임예진!”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누군가가 나를 힘껏 잡아당기는 바람에 나는 몇 걸음 비틀거리다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

술잔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심하게 넘어지며 유리 파편이 내 손바닥에 깊이 박혔다.

나는 심한 고통을 참으며 고개를 들다가 분노로 가득 찬 두 눈과 마주치고 당황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방안의 경멸과 무시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준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준은 이진을 감싸 안으며 또박또박 나에게 말했다.

“더는 내 한계에 도전하지 마.”

그랬다. 하준의 한계는 늘 강이진이였다.

나는 별장으로 다시 끌려가 절망적으로 하준의 다음 복수를 기다렸다.

몇 시간 뒤 하준이 돌아왔는데 건드리지 않은 음식을 보고 호흡이 점점 무거워졌다. 자신의 분노를 애써 참는 것 같았는데 나는 무서워서 울고 싶었지만 감히 울지 못했다.

예전에 임씨 가문 아가씨였던 나는 제멋대로였고 성질을 잘 부렸는데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하준은 늘 나를 옆으로 밀어냈다.

“임예진, 네 눈물은 정말 나를 역겹게 해.”

그래서 하준의 비위가 상하지 않도록 나는 눈물을 거두었다.

하준은 자세를 낮추고 내 앞에 반쯤 주저앉았는데 옅은 담배 냄새가 내 코끝을 맴돌았다.

하준은 나의 턱을 잡고 내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도록 했다. 잘생긴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하준은 차갑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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