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욱은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어머니가 히스테리를 부리며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같은 시각, Y국 언론은 한재욱의 어머니가 총격을 당해 정신적으로 자극을 받아 요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요양원인지 아닌지 기자는 따지지 않았다.서울시, 사립학교.3일 뒤면 겨울방학이라 반 친구들은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심지어 네다섯 명은 겨울방학에 뭐 하면서 놀지 의논하고 있었다.고개를 돌린 리사는 강유이가 시무룩하게 책상에 엎드려 있는 걸 보고 다가갔다.“유이야, 몸이 안 좋아?”강유이는 고개를 들어 리사를 힐끗 보더니 다시 책상에 엎드렸다.“아니. 그냥 움직이기 싫어서.”리사는 웃음을 터뜨렸다.강해신이 농구공을 들고 교실 문 앞에 나타났다.“유이야.”강유이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왜?”“가자. 오빠랑 같이 농구하러 가자. 너 앞으로 나랑 한판 붙어 보겠다며. 안 배울 거야?”강해신은 농구공을 손가락 위에 올려놓고 몇 바퀴 돌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살짝 거만한 듯 보이지만 멋있었다.반 친구들은 그의 그런 특기를 부러워했고 몇몇 여학생들은 넋을 놓고 보았다.강해신은 부반장이고 성적도 좋은 데다가 체육생이었다. 한태군이 떠난 뒤로 강해신은 마침내 1등의 자리로 복귀했다.강유이는 꼼짝하지 않았다.리사가 설득하려 했지만 강해신은 리사보다 본인의 동생을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농구공을 들고 말했다.“강유이, 설마 배울 용기가 없는 건 아니지? 나한테 질 것 같아서 그래? 형도 이제 곧 돌아올 텐데 형 돌아오면 형 앞에서 네가 겁쟁이라고 할 거야.”강유이는 책상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나 겁쟁이 아니야. 겨우 농구 아냐? 하면 되지!”강해신은 씩 웃었다. 그는 강유이의 관심을 돌리는데 성공했다....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겨울방학이 되었다. 이제 십여 일만 더 지나면 섣달그믐날이었다.그리고 강시언도 드디어 귀국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두 아이를 데리고 강시언을 마중하러 공항
강해신은 살짝 상처받았다.“아빠, 전 안 멋있어요?”희호는 호탕하게 웃으며 강해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멋있죠. 그런데 시언 도련님보다는 살짝 덜 멋있어요. 하하하.”온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공항을 떠났다.반씨 저택은 다시 북적거릴 때로 돌아갔다. 거실에서 반지훈의 아버지는 희호가 얘기해주는 해외에 있었던 재밌는 에피소드를 들으며 활짝 웃었다.반지훈의 아버지는 손짓해서 강시언을 불렀다. 어린 나이지만 생기가 넘치고 준수한 모습의 강시언을 정면에서 바라보니 무척이나 흡족했다.“역시 우리 반씨 집안 아이답네. 그동안 해외에서 고생 많았다, 시언아.”강시언은 싱긋 웃었다.“안 힘들었어요, 할아버지.”반지훈의 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히며 강시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증조할아버지께서 네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 조금 거친 면이 있는 분이라 옆에 있으면서 고생 많이 했을 거야. 정말 쉽지 않았을 거다.”반지훈과 강성연이 거실로 들어왔고 반지훈의 아버지가 물었다.“해신이랑 유이는?”“마당에 있어요.”강성연이 대답했다.반지훈의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세 아이 오랜만에 모이는 걸 텐데, 겨울방학이니까 아이들 데리고 푹 쉬어. 그리고 지훈아.”그는 반지훈을 바라봤다.“너랑 성연이 결혼식도 설 지나서 봄 되면 해. 성연이도 우리 반씨 집안에 시집온 지 3년이야. 햇수로 치면 4년인데 결혼식은 해야지 않겠니?”반지훈은 강성연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는 강성연의 손을 잡으며 웃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결혼식은 당연히 할 거예요. 성연이를 푸대접할 생각은 없어요. 그리고 저희 이미 계획이 있어요.”“계획이 있으면 됐다.”반지훈의 아버지가 감개하며 말했다.“우리 집에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니 하려면 성대하게 해야 해.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게 말이야.”강성연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반지훈과 반지훈의 아버지는 역시나 부자가 맞았다. 두 사람은 하는 생각도 똑같았다.겨울 저녁, 날이 아주 빨리 저물었고, 들판과 노란 수풀은
“오빠, 저거 뭐야?”강유이가 다리 아래 연등을 파는 곳을 가리켰다. 연등은 색상이 알록달록하고 동물 모양, 꽃이나 풀 모양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다 정교하고 아름다웠다.강성연이 다가갔다.“저건 연등이야.”“엄마, 저도 연등 강에 띄우고 싶어요.”강유이는 눈을 깜빡였다. 강유이는 새로운 것에 항상 호기심이 넘쳤다.최근 강유이가 다시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아 아이의 흥을 깨기 싫었던 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조심해. 물가에서 놀지 말고.”강유이는 강시언과 강해신을 데리고 돌다리 아래로 달려갔다.강성연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쟤들 정말 에너지가 넘치네요.”반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았다.“너도 가고 싶어?”강성연은 싫다고 했다.그런데 반지훈이 그녀를 끌고 다리 아래로 향했다. 다리 아래에는 아이와 학부모들이 많았다. 그들은 연등 위에 자신의 염원을 적었다. 비록 실현할 수는 없어도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는 있었다.반지훈은 토끼 모양의 연등을 골라 강성연에게 건넸다. 강성연은 그것을 건네받은 뒤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토끼를 주는 거예요?”“너 닮아서.”반지훈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급하면 사람을 깨물잖아.”강성연은 그를 밀어냈고 연등을 파는 아주머니가 웃었다.“두 사람 부부인가 보네요. 정말 잘 어울려요.”반지훈은 싱긋 미소 지었다.“안목이 높으시네요.”강성연은 검은색 펜을 들어 연등에 무언가를 썼다. 반지훈이 가까이 다가가 보려는데 강성연이 그를 막았다.“보면 안 돼요.”반지훈은 조용히 웃었다.“왜 이렇게 쪼잔해?”강성연은 입을 비죽였다.“남에게 보여주면 영험하지 않다고 들었어요.”반지훈의 웃음기가 짙어졌다.다 쓰고 난 뒤 강성연은 연등을 들고 강가로 향했다. 수십 개의 연등이 상류에서 떠내려왔다. 마치 물속으로 떨어진 반짝이는 은하수 같았다.그녀는 연등을 떠내려 보낸 뒤 연등이 물살에 따라 움직이는 걸 지켜봤다. 마음속에 꽃이 핀 듯, 강성연은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반지
구천광은 김아린을 힐끗 보더니 그녀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그렇게 오랫동안 숨기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도 연예계에서 은퇴하면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걸 밝혔을 거예요.”구천광의 할아버지가 뭐라 말하려는데 구세준이 앞서 입을 열었다.“돌아왔으니 저녁에 같이 밥이나 먹자. 천광아, 시간 있으면 아린이 데리고 사람들 얼굴 좀 익혀.”구천광은 고개를 끄덕였다.구천광은 김아린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다. 김아린은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았다. 대부분은 그를 찍은 것이었고 책장에는 수많은 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동안 영화계에서 받은 상들과 그가 실린 잡지, 인터뷰, 신문 등이 있었다.김아린은 그중 아무거나 하나 집어서 봤다. 그것은 18살 유명해졌을 때의 구천광이었다. 김아린은 웃음이 터졌다.“너 같지 않아.”구천광은 김아린의 등 뒤로 걸어가 그녀가 들고 있던 잡지를 건네받았다.“어디가 다른데?”김아린은 몸을 돌렸다.“나 열다섯 살 때 네가 찍었던 드라마 본 적 있어.”구천광은 잡지를 덮은 뒤 웃음을 터뜨렸다.“그래.”김아린은 그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액자를 들었다.“정말 신기해.”그녀는 액자를 구천광에게 보여주며 말했다.“내가 국민 남친을 손에 넣었잖아.”구천광은 갑자기 그녀를 책상 위에 앉혔고 두 팔을 그녀의 몸 양옆으로 내려놓았다.“기뻐?”김아린은 액자를 내려놓고 말했다. “기쁘지.”김아린은 구천광의 목에 팔을 둘렀다.“내가 수억 명 소녀의 공공의 적이 된 셈이잖아?”구천광은 김아린에게 입을 맞췄다.“대신 넌 날 가졌잖아.”김아린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그를 살짝 밀어냈다. 그녀의 손가락이 구천광의 눈썹, 코, 입술을 지나쳤다.“난 예전에 내가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않을 줄 알았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해서 그랬나 봐.”구천광은 그녀의 손을 자기 가슴 위에 댔다.“그러면 지금은?”김아린은 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지금은 모르지. 어쩌면 진짜 결혼하
강유이는 어이가 없었다.둘째 오빠는 이상했다.벨 소리가 울리자 강시언이 몸을 돌려 문을 열러 갔다. 송아영과 김아린 두 사람이 먹을 걸 사서 왔다. 김아린은 강시언을 본 적이 없어 강시언을 강해신이라고 여겼는데 차이가 너무 컸다.“해신이 왜 피부가 까맣게 탔어?”송아영이 웃음을 터뜨렸다.“해신이 아니라 해신이 형이야. 해신이는 저기 있잖아.”김아린은 강해신과 강유이가 안에 있는 걸 보았다. 그녀의 탓은 아니고 두 형제가 너무 닮은 탓이었다.“아영 이모, 아린 이모, 오셨어요.”강해신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만두를 다 빚은 뒤 그들은 저녁에 먹을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김아린과 강유이는 옆에서 아기와 놀고 있었고 강해신과 강시언은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다.소고기를 자르고 있던 송아영은 강시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시언아, 3년 동안 훈련받은 거야?”강시언은 그녀를 힐끗 보았다.“비슷해요.”송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다.“남자는 피부색이 좀 어두워야 좋아. 해신이를 봐. 너무 하얘서 여자아이 같잖아. 말랑말랑해 보여서 볼 때마다 꼬집고 싶다니까.”“이모, 제 험담하는 거예요?”어느샌가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강해신을 본 송아영은 화들짝 놀랐다.“어머, 미안, 미안. 다음번엔 이모가 몰래 얘기할게. 너한테 안 들킬게.”강해신은 말문이 막혔다.“어머!”강유이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곳으로 집중되었다.강유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미소를 소파 위에 내려놓았다. 강유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화를 내며 말했다.“미소 똥 쌌어요!”반크는 하고 있던 일을 멈추고 그곳으로 다가갔다.“어머, 내가 기저귀 갈아주는 걸 깜빡했네.”반크는 미소를 안아 들고 기저귀를 갈아주러 갔다.송아영은 강성연의 곁에 서서 말했다.“반크 아저씨 혼자서 아이를 키우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지금 완전 애 아빠가 다 됐잖아. 아빠 역할도 하고 엄마 역할도 하고. 내가 보기에 반크 아저씨도 이젠 짝을 찾아야 해
강성연은 의아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반크를 불렀다.반크는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몸을 일으켜 문가로 걸어갔다. 손유린이 잠깐 얘기 나눌 수 있냐며 물었고 반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마당 밖으로 향하자 강성연은 호기심이 생겼다. 곧이어 송아영과 김아린이 강성연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특히 송아영은 무척이나 놀란 눈치였다.“어떻게 둘째 큰어머니지?”강성연은 웃었다.“유린 아줌마면 안 돼?”강성연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그것보다 반크 아저씨랑 유린 아줌마 싸웠나?”손유린은 미소를 아주 좋아했고 시간 날 때면 이곳으로 찾아와 미소를 돌봤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는 찾아오지 않았다.게다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어도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김아린은 강성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어른들 일에 괜히 참견하지 말고 우리는 밥이나 먹자.”송아영도 동의했다. 때마침 배가 고팠던 그녀는 맛있게 식사하고 싶었다.두 사람이 돌아가는 걸 바라보며 강성연은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마당 밖에서는 찬 바람이 불고 있었다.손유린은 코트를 입고 있었지만 찬 바람에 얼굴이 빨갛게 얼었다. 그들은 잠깐 침묵했고 손유린이 먼저 침묵을 깨부쉈다.“사실 난 당신 생각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잘못 이해했나 봐요.”반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참는 듯한 눈치였다. 손유린은 두 손을 호주머니 안에 넣은 채로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서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졌다.“앞으로는 연락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당신이 나한테 잘해주는 것에 마음 안 흔들릴 자신이 없거든요. 당신은 좋은 남자예요. 그리고 난 이혼한 적 있는 여자고요. 우리 여자들 참 이상한 것 같죠. 누군가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감동받아요. 어쨌든 내가 잘못 이해해서 우리가 이렇게 된 거니까 앞으로는 연락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손유린이 몸을 돌려 떠났다.반크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유린이
돌아온 반크는 마당에서 강성연과 마주쳐 살짝 당황했다.“성연아, 너 왜 나와 있어?”강성연은 그에게 다가갔다.“반크 아저씨, 아저씨 유린 아줌마를 어떻게 생각해요?”강성연은 조금 전 그들이 밖에서 나눈 대화를 들었다. 반크와 손유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일부러 ‘혐의를 피하려’ 한 것이다.반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강성연은 한숨을 쉬었다.“유린 아줌마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면 일찍 얘기하셨어야죠. 그런데 만약 아저씨가 유린 아줌마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면 아저씨는 조금 더 용감하게 굴 필요가 있어요.”반크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난 내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난 평생 일에 치여 살았고 단 한 번도 결혼을 고려해 본 적이 없어. 내가 진짜 일과 가정을 동시에 잘 돌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어. 손유린 씨는 현명하고 좋은 여자가 맞아. 그치만 그녀는 실패한 혼인을 겪었었고 난 아직 결혼해 본 적이 없어…”“난 내가 그녀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서. 그녀가 또 실망하지 않을 거란 확신도 없고. 유린 씨가 또 한번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강성연은 웃었다.“시험해 보지도 않았는데 성공할지 실패할지 어떻게 알아요?”반크는 뜸을 들였다.강성연은 또 웃었다.“사실 결혼 초반에는 다들 자신의 결혼이 어떻게 될지, 어떤 상황에 직면할지 몰라요. 좋을지 나쁠지 시험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유린 아줌마는 결혼에 실패한 적 있지만 여전히 행복을 기대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반크 아저씨도 그럴 자격이 있고요.”반크는 멍해졌다. 자신이 더 오래 살았지만 도리어 자기보다 어린 젊은이에게 위로받았다는 생각에 반크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나한테 너무 각박했나 보다.”“각박한 것도 좋은 점이 있어요. 적어도 전 반크 아저씨가 진지하게 가정을 잘 꾸려나갈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강성연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반크는 그녀를 따라 웃었다...
반지훈이 설명하려는데 강유이가 위층에서 달려서 내려왔다.“외증조할아버지!”강유이가 진철을 외증조할아버지라고 부르자 반지훈의 아버지는 당황했다.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반지훈을 바라봤고 반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아버지. 진씨 어르신은 어머니 아버지세요.”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봤다. 문득 반지훈이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어쩌면 앞으로 친척이 될지도 모른다는 게 이런 뜻이었다니.진철은 한미영의 아버지였고 한미영의 진짜 신분은 진씨 집안 자식이었다.진철은 반지훈의 아버지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그 일에 관해 얘기했고 반지훈의 아버지는 그제야 한미영의 어머니가 한재욱 어머니의 여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미영은 고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당한 것이었다.한재욱 어머니가 한미영을 데려다가 입양했으니 그녀는 분명 한미영의 신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한씨 노부인은 한수철을 사랑했지만 강요에 의해 한수철의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녀는 한미영을 밖에서 데려와 입양하고 한미영과 연의 관계를 속였으며 일부러 한미영의 행방을 안다는 걸로 진철을 이용해 그를 복수의 디딤돌로 삼았다.진철은 한숨을 쉬었다.“만약 내가 내 딸이 한씨 집안에 있다는 걸 알았다면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딸을 데려왔을 거다. 걔가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놔두지 않았을 거야.”반지훈의 아버지는 진씨 어르신이 자신의 장인어른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는 당시 한미영을 도와 그녀의 가족을 찾겠다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한미영은 싱긋 웃었다.“날 찾을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찾았겠죠.”찾을 생각이 없는 게 아니라 파묻힌 진실 때문에 놓친 것이었다. 강성연이 마당으로 나왔고 진여훈이 그녀를 불렀다. 강성연은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진여훈... 아니,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하지?”강성연은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도련님?”진여훈은 도련님이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이를 악물었다.“우리 동갑이라고 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