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찬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송아영은 곧장 강성연에게 달려갔다. 강성연은 물었다. “어땠어? 실수 안했지?” 그녀는 민망해하며 웃었다. “나도 몰라, 연락을 기다리라고 하던데.” 강성연이 무슨 말을 하려 할 찰나, 구의범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그녀는 딴 곳으로 가서 받았다. 송아영과 육예찬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둘의 분위기는 묘하게 이상했다.그녀는 고개를 들다가 무심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눈을 돌렸다. “왜 나를 그렇게 봐요?” 매우 민망했다. 육예찬은 팔짱을 끼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이렇게 차려입으면 그럴듯하네요.”원래 긴장되던 분위기에서 그가 이 말을 하자 송아영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다. “참내, 무슨 말이 그래요? 나 예전에 본적 없어요?”그는 그녀를 주시했다. “그렇지도 않죠.” 송아영이 허리를 세우고 입을 열자, 강성연이 다가왔다. “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겠다. 오빠, 번거로우시겠지만 아영이 좀 데려다 주세요.” 육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아영은 멍한 표정으로 강성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연아, 너가 어떻게…”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송아영은 건물 밖으로 나왔고 육예찬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뒤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그렇게 짧은데 걸음걸이가 참 빠르네요.” 송아영은 멈춰 서서 반박할려고 몸을 돌렸고, 커다란 형체가 갑자기 다가와 순식간에 트렌치코트로 그녀를 감쌌다. 그의 체온이 남아있었고, 그 위로 은은하게 세제의 라벤더 향이 풍겨졌다.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던 송아영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안 추워요.” 육예찬, “......” “육 선생님.”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육예찬은 고개를 들었다. 다가오던 몇몇 학생이 그가 가르치는 음악생이었다. 송아영은 육예찬 앞에 뻣뻣하게 굳어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는
구의범이 끼어들었다. “엄마, 제가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 드릴게요. 제가 자주 올 수도 없고, 혼자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손유린은 그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누가 시중들어주는 거 싫어해. 내가 하는 게 편해.” 강성연은 고개를 숙였다. 손유린은 한때 구씨 집안의 둘째 부인으로 큰 별장에서 시중을 받는 삶을 살았지만, 이를 버리고 나서 새 생활에 익숙해졌다. 어떤 부잣집 부인이어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져 잘못되면 손유린처럼 새 생활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손유린이 강성연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하는 것도 지난번 룸에서의 식사 자리를 대신한 셈이다. “정말 죄송해요. 그때 식사도 저 때문에 소란스러웠죠.” 강성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저랑 반크 아저씨는 전혀 개의치 않아요.” 손유린은 반크가 언급되자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제가 하마터면 그분을 연루시킬 뻔했잖아요. 의범이가 천광이랑 제때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마터면 다른 사람을 해칠 뻔 하였다. 구의범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엄마, 걱정 마세요. 다시는 아빠가 와서 엄마 괴롭히지 않게 할게요.” 손유린은 소리 없이 웃었다. 점심을 먹은 후, 손유린은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고, 강성연은 그릇과 젓가락을 치워 부엌으로 가져갔다. 구의범은 들어와 그녀 옆에 멈춰 서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이쁜아, 결혼한 여자들은 다 너처럼 착해?”강성연은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착하다고 생각해요?”구의범은 팔짱을 낀 채 주방 벽에 기대었다. “내 생각엔…”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내가 너를 일찍 만났더라면 지금쯤 내 아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강성연은 그의 얼굴에 물을 튀겼다. “뭔 생각하는 거예요?” 구의범은 껄껄 웃다가 다시 정색을 했다. “너 나한테 빚진 두 끼는 도대체 언제 갚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봐서요.” “그 식사자리에 다른 여성분도 오시나?” 강성연은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웃기 시작했
꿈속에서 반지훈은 깨어났다.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편안해졌고, 그 손에 비비며 그가 있는 꿈에 계속 빠져들었다. 하늘이 하얀 빛으로 뒤덮혔고, 밝은 빛이 강성연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눈 앞에 놓인 빈 병상에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지훈 씨?”그녀가 소리를 질렀지만 병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강성연은 복도를 뛰쳐나가 지나가는 간호사를 가로막았다. “이 병실 환자 보신 분 없어요?” 간호사는 당황했다. “그 환자 분은…” 간호사는 고개를 돌려 병실로 들어가더니 깜짝 놀랐다. “환자 분이 어딨지?” 간호사는 급히 간호사실로 달려가 보고했다. 강성연은 텅 빈 병실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가을은 깊어져 아침 바람은 차가웠고, 낙엽은 잔디와 돌길 위를 덮고 있었다. 강성연은 주위에 지나가는 환자를 두리번거리며 낯익은 모습을 애타게 찾았다. 그녀는 그가 깨어났고, 아직 병원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벤치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강력한 직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고, 발을 내딛어 곧장 달려갔다. “지훈 씨!”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몸이 약간 움찔거렸다. 강성연이 발걸음을 늦추자 비로소 반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급히 달려간 탓에 그녀는 약간 숨을 헐떡거렸다. 창백하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카락 몇 가닥은 바람에 날려 단추에 감겨 있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든 것은 그녀의 눈물 때문이었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지훈을 마주보았고, 그의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눈빛은 한바탕 격동을 일으킨 후 차분해졌다. 그는 소리 없이 일어서서 그녀 앞에 멈추었다. 강성연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반지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눈썹을 매만졌다. 손의 온도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친숙했다. “성연아, 오래 기다렸어.” 이 한마디에 강성연은 울면서 그의 품에
병실 안. 강성연은 벽에 기대어 두 아이를 데리고 책을 읽어주는 반지훈을 바라보았다. 강유이는 며칠 전 구천광이 그를 찾아왔다는 얘기를 꺼냈고, 반지훈은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 강유이가 구천광 얘기를 꺼낼 때까지, 그의 모습은 예전과 같았고, 강성연은 반지훈이 기억을 되찾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아이는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어르신이 돌아와 둘을 데리고 갔고, 반지훈에게 푹 쉬라고 당부했다. 두 아이는 아빠와 작별인사를 한 후 어르신을 따라 떠났다. 강성연도 막 나가려는데, 반지훈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문 뒤에 멈춰 섰다. 등뒤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채고도 돌아서지 않았고, 문고리에 놓인 손만 거둬들였다. 반지훈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 “아직도 화가 나?”강성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의 따뜻한 입술이 키스하듯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다신 널 속이지 않을게.” 반지훈은 그녀의 몸을 돌려 자신을 마주보게 했고,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목덜미를 매만졌다. “더 이상 너를 걱정시키지 않을게.” 강성연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말 지킬 거예요?”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킬게.”강성연은 고개를 돌렸다. “그럼 한 번 믿어볼 테니 푹 쉬세요.” 반지훈은 웃었다. “나랑 안 있어줄 거야?” 그녀는 투정 부렸다. “참 기운도 넘치네요. 당신이랑 같이 있어서 뭐 하게요, 같이 안 있을래요.” 그는 목소리를 낮추었고, 얼굴엔 가벼운 웃음을 머금었다. “우리 성연이는 화를 내도 이렇게 아기 같네.” 강성연이 황당해했다.기억상실 후 반지훈과 오래 지내다 보니 그녀 자신도 유치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의 두 발은 땅에 떨어져 있었고, 이미 몸은 옆으로 안겨 있었다. 반지훈은 그녀를 침대에 눕힌 후, 옆에 누워 그녀를 껴안았다. “다 기억해.” 강성연은 그의 품에 안겼고, 그의 호흡과 체온이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오므렸다. “뭘요?” 그는 말했다.
그녀가 차에서 내려 정원에 멈춰 섰다. 정원 밖의 화단에 잡초가 자라있었다. 출입문 암호인 지문으로 잠금장치를 푼 뒤, 거실로 들어섰다. 모든 가구가 천으로 덮여 있었고, 벽면과 샹들리에가 새것으로 바뀌어있었다. 이때 반지훈의 전화가 걸려왔고, 그녀는 귓가에 휴대폰을 대고 물었다. "지훈 씨 그렇게 한가해요?" “어디야?” 강성연은 발코니 창을 열었다. “맞혀봐요.” 반지훈은 웃으며 걸음을 옮겨 마당에 들어섰다. “진짜 내가 맞추길 바라?” 강성연은 뒤뜰에 서서 먼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지훈 씨는 똑똑하니 짐작이 갈 거예요.” 그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강성연은 핸드폰 안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는 점점 또렷해졌다. 그녀는 당황했다. 한 줄기 그림자가 소리 없이 그녀의 머리 위로 드리웠고, 유리창에는 훤칠한 남자의 모습이 비쳐졌다.이후 익숙한 그의 향기가 풍겨왔다. 부드러우면서 깔끔했다. “맞추면 상 주나?” 강성연이 휙 고개를 돌렸다. 반지훈은 휴대전화를 받아 그녀의 뒤에 서서 고개를 숙여 바라보며 눈가에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3초간 멍하니 있었다. “절 미행한 거예요?” 반지훈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을 가르켰다. “이런걸 소울메이트라고 하는거야.” 그녀는 그를 제지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난 그런 거 안 믿어요.” 몸을 돌려 걸어갔다.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던 반지훈은 방으로 들어가 그녀가 천을 걷어내는 것을 바라보았다. "3년 전 누군가가 이 별장을 사려고 했어.” 강성연은 멈칫 하였다. 그저 그의 입술만 바라보았다. “나는 팔기가 아까웠어.” 그녀가 웃었다. “왜요?” 반지훈은 그녀 앞에 멈춰 섰다. 그의 표정은 냉담하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았고, 정색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 별장에서 우리의 냄새가 났으니까.” 강성연은 미간을 가볍게 찡그렸다. 왜 듣기에 좀 이상할까? 반지훈은 몸을 숙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깊은 호박색 눈동자는 은은하게 뜨거운 열기를 불러일으
수연이 함께 웃었다. 구세호에게서 떠난 후, 그녀의 생활에도 천지개벽의 변화가 있었다. 격차는 그녀 자신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하지만 그녀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구세호 앞에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야 했고, 지금은 골드 룸살롱만이 그녀를 받아주었다.구세호의 본처가 그와 이혼한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지만, 그의 본처가 자신과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설마 이혼 후 구세호가 그 여자와 재산을 나누지 않았고, 그 여자는 홀몸으로 집을 나갔단 말인가? 괘씸하다. 만약 그녀가 구세호와의 “스캔들”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구세호는 그녀의 핸드폰에 있는 비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지금 생계를 위해 골드 룸살롱에서 늙은 남자들에게 매달리며 살라야 했을까? 그 사진들이 그녀를 망하게 하였다. 그것이 구세호로부터 미움을 사게 하였다. 김지원 그 천한 것은 도대체 어떻게 그녀의 핸드폰에 있는 비밀들을 알게 되었을까? 그녀의 휴대전화는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이 만진 적이 없었다. 수연은 중간에 화장실을 핑계로 룸을 떠나 복도 끝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 그녀는 말했다. “김지원 그 년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못 알아냈어?” 김지원은 김 가네에 없었다. 그녀는 전화를 걸어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으나 상대방은 그녀를 차단했고, 매우 매몰찼다. 그녀는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 늙은 남자들이 준 돈으로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고 그녀를 대신해 일을 처리해 달라고 하였다. 그녀는 김지원을 찾을 수 없었고, 순순히 그만 둘 수 없었다. 여기서 포기해? 말도 안 돼지! 영상 협박이 없더라도 김지원이 다시 패가망신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김 가네가 그녀에게 진 빚. 하나도 빠트릴 수 없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수연의 얼굴은 어두워졌고, 입술을 깨물며 눈빛은 독해졌다. “좋아, 내가 돈을 더 줄게. 하지만 며칠밖에 시간이 없어.”그녀는 전화를 끊
잠깐. 만약 그렇다면.그때 soul 주얼리에서 그녀는 미리 예약했었는데, 사실 그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가 찾아와 배달해 주고, 그녀의 여자 조수가 중간에 화장실을 떠난 일을 생각하니, 정말 수상쩍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녀는 마침내 그녀들이 한 패라는 것을 깨달았다! * 블루 오션 별장.회사에 가려고 하는 반지훈은 한 손으로 소매 단추를 채운 채 현관에 멈춰 서서 강성연에게 넥타이를 매달라고 했다. 강성연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또 일부러 내가 옷을 찢어버리게 하려는 거죠? 정말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게 하려는 건가.” 반지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고 자신의 셔츠를 입은 그녀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귀밑머리를 쓰다 듬었다. “아직 내 옷 입고 있네.” 강성연은 다가온 그의 몸을 뿌리쳤다. “진지하게, 저 오늘 한 번 더 다녀와야겠어요.” 그녀가 다급해하자 그는 약간 정색을 하고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지윤 씨 시켜서 옷을 갖다 주라고 할게.” “사람을 잘 부리시네요.” “너가 내 것이니, 네 사람도 내 말을 듣지 않겠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고, 강성연은 손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대었다. “어서 회사로 가요, 이러다 늦어요.” 반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너를 내 주머니에 넣고 항상 곁에 두고 싶어.”강성연은 피식 웃었다. “됐어요, 매일 당신 곁에 붙어있으면 편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소리내어 웃었다.양복 외투를 가져다가 팔에 걸고 돌아서서 문을 나섰다. 지윤이 정오에 그녀에게 옷 몇 벌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후 지윤과 함께 외출했다. 어제 남여진 노부인과 함께 대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기로 약속했는데, 그녀도 매번 사람을 바람맞힐 수 없었다. 대극장은 서울의 행정구역인 강남구에 있는데, 극장이라지만 1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국가 문화재였다. 특히 명문가 출신으로
또 무슨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몸짓이 컸고, 여자는 남자를 밀어내고 뺨을 때렸다. 남자가 그녀의 손을 잡고 뭐라고 말하자, 그 여자는 손을 떼고 고개를 돌리며 다시 눈물을 닦는 것 같았다. 여자가 몸을 돌려 출구를 향하자 강성연은 순간 그 여자의 얼굴을 보고 찻잔을 든 손을 떨었다. 저 여자는 구천광의 어머니 아닌가? 강성연은 순간 호흡을 멈추었다. 그녀가 본 일을 믿을 수 없었다. 구천광의 어머니와 남편이 아닌 남자. 그 남자는 누구일까? 두 사람은 밀회처럼 보이진 않지만, 남자가 방금 그녀를 안았고, 구 부인은 분명히 울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결코 간단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남여진 부인은 그녀가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강성연은 얼른 시선을 거두며 웃었다. “괜찮아요, 이 연극을 보니 지훈 씨 생각나서요.” “너랑 반지훈 그 녀석은 사이가 참 좋구나.” 남여진 부인이 부러워하자 강성연은 민망해했다. 그녀가 다시 맞은편을 바라보니 구 부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구 부인 라민희는 어쨌든 구천광의 생모이자 송아영의 친고모이다. 이런 일을 다른 사람이 목격하면 구씨 가문의 스캔들이 하나 더 생길 것 같았다. 물론 그 남자가 구씨 부인의 친척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런 포옹은 남매나 친척 사이에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성연은 화장실에 갔다가 화장실 앞 복도에서 구 부인을 마주쳤다. 구 부인은 화장을 고친 지 얼마 안 된 듯 눈 밑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분명 울고 있었다. 강성연을 보고 구 부인은 당황했고, 그녀를 어디서 본 적이 있는지 다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강성연은 예의상 먼저 인사했다. “구 부인.”“당신은…” 구 부인은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다.강성연은 미소지었다. “제 이름은 강성연이고 아영이의 친구입니다.” “강성연.” 구 부인이 그녀의 이름을 읊으며 그제서야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안색이 좋지 앟게 변했다. “당신이 반지훈의 아내였군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