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선 차는 떠나지 않았다. 구천광은 복잡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번에는 그가 소홀한 것이 맞았다.구의범이 그를 보며 물었다.“형, 우리 안 가요?”구천광은 시선을 거두어들인 뒤 미간을 주물렀다.“돌아가자.”*일주일 뒤, soul주얼리.“반크 아저씨, 왜 더 쉬지 않으셨어요?”강성연은 반크가 이미 회사에 있자 그의 상처를 걱정했다.반크는 팔을 들어 올리며 웃어 보였다.“다 나았어. 영향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강성연과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왔다. 반크는 그녀와 반지훈이 제주도에서 겪었던 일을 물었다.엄청난 사건이었기에 언론은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일을 보도했다. 하지만 구천광과 반지훈이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구씨 집안과 반씨 집안이 그 일을 공개하지 않고 비밀로 묻어두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공개한다면 괜히 성가신 일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었다.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그냥 제주도 가서 며칠 놀았어요. 투자 건은 그냥 구천광 씨를 도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기 위해서예요.”반크는 고개를 끄덕였다.“제주도 쪽은 좀 혼란스럽긴 해. 괜한 일에 휘말리지 않아서 다행이다.”강성연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점심쯤 송아영이 강성연을 찾아와 함께 정장을 사러 가자고 했다.강성연은 당황했다.“너 출근해?”송아영은 턱을 괴며 웃었다.“기회가 생겨서. 나 로열 음악 학원 면접 봐.”강성연은 말하면서 두 볼을 부여잡았다.“사실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잘 못할까 봐 걱정돼.”강성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몸을 일으켜 송아영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송아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자. 옷 사는 거 내가 같이 가줄게. 우리 아영이가 로열 음악 학원에 간다니, 정말 잘 됐다.”송아영은 강성연의 어깨에 기댔다.“우리 성연이가 최고야!”두 사람은 백화점에 도착해 3, 4층을 둘러보았다. 송아영은 정장을 사본 적이 없었기에 어떤 걸 골라야 할지
강성연은 소파에 앉아 한복 매거진을 보고 있었다.송아영은 한복을 입고 나왔다. 색상이 조금 나이 들어 보여서 강성연은 고개를 저었다.또 다른 것으로 바꾸어 입었는데 색이 너무 화려해서 어울리지 않았다.그렇게 여러 벌 바꾸었고 강성연은 전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직원에게 조금 전 그녀가 봤던 한복 몇 벌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한 뒤 송아영에게 입어보라고 했다.입어보니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나았다.또 몇 벌을 입고 난 뒤 송아영은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벽에 기대어 있었다.“성연아, 나 더 입어보면 죽을 것 같아.”강성연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다가 갑자기 직원이 들고 있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저거 입어 봐.”“또?”송아영의 표정은 가관이었고 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송아영은 어쩔 수 없이 입으러 갔다. 그녀가 나오자 강성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송아영이 입은 한복은 연청색이었다. 흰색 실로 치자꽃이 수놓아져 있었고 네크라인은 벨벳 레이스로 되어 있었다.송아영에게 잘 어울리는 산뜻한 컬러에 봄을 맞아 눈이 녹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송아영은 화려한 스타일이 잘 어울리지 않았다. 화려한 걸 입으면 오히려 속물처럼 보이게 했고 반대로 청아한 색상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직원을 바라보았다.“치수 좀 재주시겠어요? 지금 입은 스타일로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참, 네크라인은 레이스 대신 진주로 하는 게 좋겠어요.”맞춤 한복은 고객의 취향에 맞게 수정할 수 있었다. 직원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아영은 치수를 잰 뒤 카운터로 가서 선금을 지급했다. 주문 제작은 먼저 선금을 지급해야 했고 선금은 40만 원이었다.주문을 마친 뒤 100만 원을 지급하면 되고 총 140만 원이었다.송아영은 지갑을 만지며 말했다.“내 지갑 또 얇아졌어.”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다가가 어깨를 토닥였다.“괜찮아. 우리 사촌 오빠가 너 먹여 살릴 거야.”말을 마친 뒤 강성연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나랑
송아영과 강성연은 헤어샵에서 나왔다. 강성연은 송아영이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져 있자 그녀의 등을 툭 두드렸다.“고개 들고 허리 펴. 자신감이 있어야지.”송아영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면접 보는 것뿐인데 그럴 필요 있어?”강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연하지. 생각해 봐. 음악 학원 선생님들은 다들 젊고 예쁘고 자태도 중요시하잖아. 면접 보는데 그렇게 축 늘어져 있을 거야?”송아영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네. 그러면 나 머리 들고 허리 펴?”송아영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강성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허리를 찔렀다.“자연스럽게 해.”송아영은 본능적으로 피하면서 허리를 감싸더니 복수하려고 강성연에게도 간지럼을 태웠다.그들은 주위 행인들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크게 웃었다.병원.구천광은 반지훈의 병실로 들어간 뒤 들고 있던 꽃을 꽃병에 꽂았다.반지훈의 할아버지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왔고 구천광을 본 순간 잠시 뜸을 들였다.“천광이 왔니?”구천광은 고개를 돌려 그에게 인사했다.“죄송해요.”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손을 저었다.“괜찮다. 사과할 필요 없어. 난 널 탓한 적 없다.”그는 반지훈을 보았다.“지훈이가 선택한 일이잖니. 난 지훈이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널 어떻게 탓하겠니?”구천광은 주먹을 쥐었다.반지훈의 할아버지는 그의 곁으로 걸어가 감개하며 말했다.“예전에 너희 둘 어릴 때 자주 같이 놀았었지. 이놈이 자꾸 널 데리고 같이 사고를 쳐서 너희 할아버지를 화나게 했지. 나랑 지훈이 어머니도 지훈이가 널 망칠까 봐 걱정했다.”구천광은 주먹을 풀면서 시선을 내려뜨리며 웃었다.“전 나쁘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오히려 저희가 같이 사고를 쳤던 날들이 꽤 그리워요.”구씨 집안에 있을 때는 책을 읽거나 공부해야 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아주 엄격했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바빠서 그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구천광이 유일하게 재밌다고
그리고 세 번째는 그가 먼저 소울 주얼리를 찾아가 주얼리 대여 계약을 했다는 이유였다. 반지훈이 조급해하는 것을 보았으니, 그는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이후 그의 사촌동생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강성연이라는 여자가 독사에 물렸다고 노구교수에게 데려가라고 했다.그는 훈련소에 도착해 다급해하고 긴장하고 있는 반지훈의 태도를 보았고, 그가 그녀에게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그러나 훗날 반지훈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사람들을 속이고 강성연과 이혼하려 하였다. 그도 반지훈이 변심한 것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반지훈은 모든 일을 끝장내고 싶어했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포기할 줄 알았다. 그 만의 사정이 있다하여도 말이다. 강성연의 사고 후, 반지훈은 후회하고 가슴 아파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3년 동안 반지훈은 남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죽은 듯 지냈고, 몰래 사람을 보내 강성연의 행방을 찾아다녔다. 강성연이 m국에 있다는 사실을 안 송아영은 은근슬쩍 반지훈의 사람들에게 정보를 흘려 그들이 아는 모든 정보가 송아영에게서 나온 것처럼 만들었다. 하지만 반지훈은 m국에 사람을 보낼 순 있어도, 그녀를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병든 상태였다. 바이러스가 자신을 괴롭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주위 사람은 물론, 스스로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예 m국의 한궁 내부 사람을 매수해 '앨리스'의 사진 한 장을 요구했다. 그가 신분을 드러내 일을 부탁하고 정말 '앨리스'가 강성연이라면, 그녀는 반지훈의 사람이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다시 재결합할 수 있을까. 그는 단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구천광은 병원에서 나와 연희승이 강유이와 강해신을 병문안하러 온 것을 보았다.강유이는 웃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천광 삼촌, 아빠 보러 오셨어요?” 구천광은 그녀의 정수리를 문지르며 가볍게 웃었다. “그래.”강유이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럼 저희
아무도 정장을 입고 있지 않았고, 모두 힘껏 치장해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송아영은 맞춤 제작한 연청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흰색 꽃무늬 자수가 치맛자락에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고, 옷깃에는 진주 장식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땋아 올려 청순한 얼굴을 드러냈고, 옅은 화장으로 눈썹을 강조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고전적이며, 우아하고 부드러웠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잇달아 송아영을 쳐다보는 바람에 그녀는 다소 어색해졌다. “성연아, 나 그렇게 이상해?” 강성연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 자신을 믿어.”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던 송아영은 앞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서 면접을 보자 더욱 긴장했다. 강성연은 그녀의 움켜쥔 두 손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창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아영아, 네가 예전에 무대 위에 있을 때 무대 밑에 있는 사람들을 무랑 배추라고 생각하면 긴장이 안 된다고 했잖아, 나 사셀 면접 때 네가 말한 방법을 썼어.” 송아영이 멈칫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래된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강성연은 웃었다. “송아영 너, 혼자서 무대 아래 수천 명의 관객을 상대했잖아. 나는 그에 비해 몇 명이나 마주했을까?” 송아영은 아무 말도 안 했다. 강성연은 그녀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송아영이 나설 때가 왔다.” 이것은 마치 송아영을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게 한 것처럼 만들었다. 그들은 무대에 오를 때마다 이 제스처로 상대방을 격려하곤 했다. 송아영은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파이팅!” 시험관이 나와서 송아영의 이름을 불렀고, 송아영은 심호흡을 하고 일어서서 시험관을 따라 들어갔다. 넓은 실내, 면접관은 다섯 명뿐이었다. 송아영이 센터로 걸어들어오자, 다섯 명의 면접관이 그녀의 옷차림을 보고 모두 환한 표정으로 찬사를 보냈다. 송아영은 그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여러분. 저는 송아영이라고 합니다. 올해 스물일곱 살입니다. 민속 음악 지도교사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육예찬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송아영은 곧장 강성연에게 달려갔다. 강성연은 물었다. “어땠어? 실수 안했지?” 그녀는 민망해하며 웃었다. “나도 몰라, 연락을 기다리라고 하던데.” 강성연이 무슨 말을 하려 할 찰나, 구의범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그녀는 딴 곳으로 가서 받았다. 송아영과 육예찬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둘의 분위기는 묘하게 이상했다.그녀는 고개를 들다가 무심코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황급히 눈을 돌렸다. “왜 나를 그렇게 봐요?” 매우 민망했다. 육예찬은 팔짱을 끼고 그녀를 훑어보았다. “이렇게 차려입으면 그럴듯하네요.”원래 긴장되던 분위기에서 그가 이 말을 하자 송아영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렸다. “참내, 무슨 말이 그래요? 나 예전에 본적 없어요?”그는 그녀를 주시했다. “그렇지도 않죠.” 송아영이 허리를 세우고 입을 열자, 강성연이 다가왔다. “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겠다. 오빠, 번거로우시겠지만 아영이 좀 데려다 주세요.” 육예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송아영은 멍한 표정으로 강성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성연아, 너가 어떻게…”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송아영은 건물 밖으로 나왔고 육예찬이 자신의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도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뒤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그렇게 짧은데 걸음걸이가 참 빠르네요.” 송아영은 멈춰 서서 반박할려고 몸을 돌렸고, 커다란 형체가 갑자기 다가와 순식간에 트렌치코트로 그녀를 감쌌다. 그의 체온이 남아있었고, 그 위로 은은하게 세제의 라벤더 향이 풍겨졌다.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던 송아영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 안 추워요.” 육예찬, “......” “육 선생님.”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에 육예찬은 고개를 들었다. 다가오던 몇몇 학생이 그가 가르치는 음악생이었다. 송아영은 육예찬 앞에 뻣뻣하게 굳어 감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는
구의범이 끼어들었다. “엄마, 제가 가사 도우미를 고용해 드릴게요. 제가 자주 올 수도 없고, 혼자 있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손유린은 그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누가 시중들어주는 거 싫어해. 내가 하는 게 편해.” 강성연은 고개를 숙였다. 손유린은 한때 구씨 집안의 둘째 부인으로 큰 별장에서 시중을 받는 삶을 살았지만, 이를 버리고 나서 새 생활에 익숙해졌다. 어떤 부잣집 부인이어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져 잘못되면 손유린처럼 새 생활을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손유린이 강성연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하는 것도 지난번 룸에서의 식사 자리를 대신한 셈이다. “정말 죄송해요. 그때 식사도 저 때문에 소란스러웠죠.” 강성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저랑 반크 아저씨는 전혀 개의치 않아요.” 손유린은 반크가 언급되자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제가 하마터면 그분을 연루시킬 뻔했잖아요. 의범이가 천광이랑 제때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하마터면 다른 사람을 해칠 뻔 하였다. 구의범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엄마, 걱정 마세요. 다시는 아빠가 와서 엄마 괴롭히지 않게 할게요.” 손유린은 소리 없이 웃었다. 점심을 먹은 후, 손유린은 베란다로 나가 전화를 받았고, 강성연은 그릇과 젓가락을 치워 부엌으로 가져갔다. 구의범은 들어와 그녀 옆에 멈춰 서서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이쁜아, 결혼한 여자들은 다 너처럼 착해?”강성연은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착하다고 생각해요?”구의범은 팔짱을 낀 채 주방 벽에 기대었다. “내 생각엔…”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내가 너를 일찍 만났더라면 지금쯤 내 아내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강성연은 그의 얼굴에 물을 튀겼다. “뭔 생각하는 거예요?” 구의범은 껄껄 웃다가 다시 정색을 했다. “너 나한테 빚진 두 끼는 도대체 언제 갚을 거야?” 그녀는 생각했다. “봐서요.” “그 식사자리에 다른 여성분도 오시나?” 강성연은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웃기 시작했
꿈속에서 반지훈은 깨어났다.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편안해졌고, 그 손에 비비며 그가 있는 꿈에 계속 빠져들었다. 하늘이 하얀 빛으로 뒤덮혔고, 밝은 빛이 강성연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눈 앞에 놓인 빈 병상에 그녀는 벌떡 일어섰다. “지훈 씨?”그녀가 소리를 질렀지만 병실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강성연은 복도를 뛰쳐나가 지나가는 간호사를 가로막았다. “이 병실 환자 보신 분 없어요?” 간호사는 당황했다. “그 환자 분은…” 간호사는 고개를 돌려 병실로 들어가더니 깜짝 놀랐다. “환자 분이 어딨지?” 간호사는 급히 간호사실로 달려가 보고했다. 강성연은 텅 빈 병실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이다가 무슨 생각이 난 듯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갔다. 가을은 깊어져 아침 바람은 차가웠고, 낙엽은 잔디와 돌길 위를 덮고 있었다. 강성연은 주위에 지나가는 환자를 두리번거리며 낯익은 모습을 애타게 찾았다. 그녀는 그가 깨어났고, 아직 병원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벤치의자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에 시선이 꽂혔다. 강력한 직감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고, 발을 내딛어 곧장 달려갔다. “지훈 씨!” 벤치에 앉아 있던 사람의 몸이 약간 움찔거렸다. 강성연이 발걸음을 늦추자 비로소 반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급히 달려간 탓에 그녀는 약간 숨을 헐떡거렸다. 창백하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머리카락 몇 가닥은 바람에 날려 단추에 감겨 있었다. 눈시울이 붉게 물든 것은 그녀의 눈물 때문이었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내쉬며 지훈을 마주보았고, 그의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그의 얼굴은 차가웠고, 눈빛은 한바탕 격동을 일으킨 후 차분해졌다. 그는 소리 없이 일어서서 그녀 앞에 멈추었다. 강성연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반지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눈썹을 매만졌다. 손의 온도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고 친숙했다. “성연아, 오래 기다렸어.” 이 한마디에 강성연은 울면서 그의 품에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