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찬은 겉옷 단추를 잠그며 몸을 일으켰다."밥은 내가 살게. 그리고 우리 오래전에 끝났어. 네가 무슨 이유로 soul 주얼리 앰배서더가 됐든 상관없어. 그 어떤 일도 내게 영향을 주진 못해."육예찬은 음식이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카운터로 가서 계산한 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레스토랑을 떠났다.명승희는 홀로 자리에 앉아있었다. 잔을 잡은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 어떤 일도 그에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그녀는 믿지 않았다.다음 날.커플템 주얼리 광고 촬영은 오늘이었다. 기획된 컨셉트는 결혼식이었고 촬영팀은 촬영 장소를 교회와 바닷가로 잡았다.커플템 광고다 보니 명승희는 남자 연예인 남시후와 함께 촬영해야 했다.연출팀은 스튜디오에서 남시후와 대본을 맞췄다. 남시후는 투자자가 소개한 사람이었는데 엄청 유명한 연예인은 아니고 최근 각 멜로 드라마에서 남자 조연으로 활동하는 자였다. 그는 뛰어난 연기와 훈훈한 외모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남시후는 배우로 활동한 경험이 있었기에 대본을 외우는 데 익숙했고 광고 대본을 숙지하는 것 정도는 껌이었다.감독은 명승희가 나타나지 않자 주위를 둘러보았다."명승희 씨는?"누군가 대답했다."명승희 씨는 아직 메이크업 받고 계세요."감독은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 메이크업도 안 끝났어?"명승희는 국제적인 톱모델이었고 연예계에서는 톱스타급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엘리엇 엔터테인먼트 디렉터라 그녀를 홀대할 수 없었다.하지만 감독은 더는 기다리기 힘들었다."얼른 가서 재촉해. 날씨도 햇볕도 좋으니까 얼른 찍고 끝내자고."직원이 가서 재촉했고 곧이어 명승희의 매니저와 스태프가 다가왔다. 그들은 전혀 조급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당당했다."조금 기다리시면 어디 덧나요? 명승희 씨 아직 준비 안 끝났어요. 온종일 촬영할 건데 왜 벌써 재촉하세요?"옆에서 바삐 움직이던 직원들은 그 말에 침묵했다. 그들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감독의 표정 또한 굳어졌다.
"반 대표님 부인이 여기 계셔서 그런가 봐. 반 대표님 부인이랑 주얼리 앰배서더 계약했잖아. 보스가 이 자리에 있는데 어떻게 보스 눈치를 안 보겠어?"강성연은 조용히 물을 마셨다. 그녀가 현장에 온 건 정확한 선택이었다. 직접 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명승희가 이런 수작을 부리는 걸 몰랐을 거다.강성연은 명승희와 soul 주얼리 앰배서더 계약을 했다. 광고 촬영을 책임진 잡지사는 soul 주얼리의 협력 파트너였고 연출팀도 잡지사에서 빌려온 것이었다.soul 주얼리가 돈을 쓴 것과 협력 업체에서 표지를 그들에게 내준 건 명승희의 영향력을 높게 산다는 걸 의미했다. 명승희가 오늘 제대로 촬영에 임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출팀은 그녀를 나무라지 못할 거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앞으로 soul 주얼리 광고 촬영 의뢰를 받지 않으려 할 거다.명승희가 이렇게 하는 건 먼저 강성연을 난처하게 만든 다음 자신의 자원을 이용해 그 점을 보상하는 것과 같았다.눈치가 별로 없는 주얼리 회사라면 명승희의 함정에 걸려들었을 터였다.촬영이 끝나고 감독은 결과물을 확인했고 줄곧 굳어 있던 그의 얼굴에 미소가 드리워졌다.명승희는 매니저가 건네준 커피를 들고 강성연에게 다가가 그녀에게 커피를 건넸다."오늘 정말 수고하셨어요. 직접 찾아오기까지 하셨으니 말이에요."강성연은 싱긋 웃으며 그녀가 건네준 커피를 받았다.커피는 순식간에 바닥에 쏟아졌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명승희의 매니저는 걱정 어린 얼굴로 그녀의 손을 살폈다."명승희 씨, 화상 입은 건 아니죠?"명승희는 웃었다."괜찮아요."명승희의 매니저는 고개를 돌려 무표정한 얼굴로 강성연을 보았다."강 대표님, 명승희 씨는 soul 주얼리 앰배서더가 되고 싶어 귀국하자마자 먼저 귀사와 컨택했어요. 강 대표님은 세 번 거절했죠. 강 대표님이 명승희 씨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커피를 건네줬을 뿐인데 어떻게 사람들 다 있는 곳에서 명승희 씨를 난처하게 만드실 수 있죠?""진수 씨,
명승희는 멍한 얼굴로 그곳에 서 있었고 김진수는 불만스럽게 말했다."무슨 뜻이죠? 명승희 씨가 다쳤으면 좋겠다는 말인...""진수 씨, 그만 해요."명승희가 그를 말렸다. 그녀는 분위기가 너무 험악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녀는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소홀했어요. 제 매니저가 너무 충동적으로 굴었어요. 강 대표님을 겨냥하려는 의도는 없었어요.""명승희 씨 매니저는 내가 명승희 씨를 불만스럽게 생각해서 세 번이나 거절했다고 하는데 내가 왜 명승희 씨를 거절했는지 그 이유는 명승희 씨가 가장 잘 알고 있겠죠."명승희는 강성연이 대놓고 자신을 세 번이나 거절한 사실을 인정할 줄은 몰랐다. 김진수가 이 얘기를 거론하면 사람들의 추측을 불러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강성연이 당당히 인정했으니 오히려 문제가 있는 쪽은 그녀가 되었다.강성연은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았고 명승희도 마찬가지였다."매니저는 제가 잘 타이를게요. 앞으로 절대 헛소리하지 않게 할게요."한차례 소동이 끝나고 지윤은 강성연과 함께 차를 타고 soul 주얼리로 향했다.지윤은 백미러를 보며 강성연을 힐끗거렸다."그 여자 왜 사람들 몰래 수작질하는 거죠?"지윤은 그녀가 수작을 부린다는 걸 눈치챘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지 못했다.강성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붉게 부어오른 손등에 약을 발랐다."더는 기다리기 어려운가 봐요."명승희가 soul 주얼리와 계약한 건 목적이 있어서다. 그녀는 일부러 촬영 시간을 끌어 광고주 측에서 이번 협력에 불만을 품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다음에는 쉽게 승낙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는 더 많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된다.일부러 커피를 엎은 것도 soul 주얼리가 그녀를 세 번이나 거절한 이유가 강성연이 그녀에게 불만을 품어서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어 soul 주얼리가 톱스타인 그녀를 얕본다는 루머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명승희는 자신의 손에 송아영의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고 겨우 그 소문 하나만으로 강성연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그녀는 강
하지만 자신의 손에 아영의 ‘약점’이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곧 냉정해졌다. 성연이 정말 친구를 신경 쓴다면, 이 일에서 그녀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성연은 사무실에 앉아 실시간 검색어를 보며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돈을 쓴 보람이 있게, 그녀의 검색어는 벌써 1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그녀는 명승희가 업데이트한 새로운 소식을 보았다. 그 글은 사실무근이라는 제목으로 네티즌들에게 믿지 말아 달라고 해명했다. 이 글은 명승희가 아직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증거다. 여직원이 황급히 들어섰다. “대표님, 저희 Soul이 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어요!” 성연은 고개를 들었다. “저도 알고 있어요. 회사 사람들에게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세요. 제가 처리할게요” 여직원이 자리를 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렸고, 성연은 이를 보고 흠칫 놀랐다.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가 얼른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 내가 보고 싶어요?” 원래 침울해 있던 지훈은 그녀가 자신을 “여보”라고 부르는 어수룩한 목소리에 싸늘함이 사라졌다. 그는 아닌 척하며 기침을 했다. “실시간 검색어 봤어” 성연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분명 그녀가 일을 그르치면 그가 손을 쓸 것이라고 일러 둘 것이다. 그녀는 담담하게 답했다. “여보, 사실 실시간 검색어는 내가 한 거예요.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일부러 당신 회사를 모함한거라고?”성연은 턱을 괴고 웃었다. “안심해요 여보. 난 손해 볼 사람 아니예요” 그녀가 한참 동안 지훈을 달래고 나서야 지훈은 나서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녀는 빨갛게 부어오른 손등을 바라보았다. 만약 지훈이 그녀가 커피에 데였다는 것을 알았다면 정말 폭주했을 것이다. 명승희는 성연을 찾아왔다. 성연은 그녀가 왜 왔는지 알고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혼자였고, 그녀의 매니저를 데려오지 않았다. “성연 씨, 오늘 아침 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해요.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
밝은 불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고, 마치 필터를 입힌 것 같이 따뜻하면서도 관능적이었다.성연은 부엌으로 들어와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샤워했어요?”그의 몸에서 나는 향기는 상쾌하고 좋았다. 목욕 후 나는 냄새로, 매우 편안했다.그는 그녀를 곁눈질했다. “여기는 기름 냄새가 심하니 얌전히 나가서 기다려. 곧 끝나” 그녀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몸 위를 휘저었다. “우리 지훈 씨에게 이런 자상한 면이 있을 줄 몰랐네요” 지훈은 불을 줄이고 돌아서서 그녀를 품에 안고 깨끗한 테이블에 앉혔다. “이 꼬맹이가, 내가 저녁을 해준다고 해도 나를 유혹하면서 방해하네”그가 다가가자 성연은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에피타이저 먼저 줄게요” 지훈은 눈썹을 움직였다. 따스한 입술이 그녀의 뺨에 닿을 듯했다. “그럼 나 먼저 배불리 먹어야 겠네” ......성연이 목욕을 마치고 위층에서 내려오자 지훈은 따끈따끈한 음식을 상에 올렸다.그는 그녀를 위해 의자를 당겨 앉힌 후, 몸을 숙이고 어깨 너머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턱을 대고 냄새를 맡았다. “음, 음식보다 더 맛있는 냄새가 나네” 성연은 그를 떼어냈다. “아이구, 소란 피우지 말고 얼른 먹어요” 꽁냥거릴 힘이 있겠나, 그녀는 지금 배고파 죽을 것 같았다. 지훈은 소리 없이 웃으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그녀가 첫 술을 뜨자 물었다. “어때?” “음, 맛있어요!” 성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몇 입 더 먹었다. 지훈은 손을 뻗어 그녀의 입가에 묻은 음식을 닦았다. 눈빛에는 사랑이 가득했다. “그럼 나중에 또 해줄게” 그녀는 피식 웃었다. “서류에 사인 하는 두 손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은 너무 낭비 아니에요?” 지훈은 소매를 내리고 웃음을 머금었다. “아내에게 요리해 주는 게 무슨 낭비야?” 성연은 말이 없었다. 이 남자는 기억을 상실해도 이렇게 로맨틱하게 말하며 사람을 유혹한다. “손등은 왜 그래?” 지훈은 그녀의 손등이 빨갛게 부어오른
이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날아왔다: “명승희 씨, Soul 주얼리와 손잡을 의향이 있나요?” 명승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문자도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누구시죠?” 상대가 답장했다. “알고 싶으면 12시에 상호카페로 나오시죠” 12시, 엘리엇 미디어에서 떠난 명승희는 상호카페를 향해 차를 몰았다. 미스터리의 상대방은 명승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그가 누구인지, Soul 주얼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궁금했다. 카페에 도착해 문을 밀고 들어서자 2층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명승희는 위층으로 올라가 기다리던 자리 앞에 다가와 선글라스를 벗었다. “당신이 메시지를 보냈나요?”한성연이 손을 들었다. “명승희 씨, 앉으세요.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한성연이라고 합니다” 명승희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두 눈으로 그녀를 훑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이 Soul 주얼리와 어떤 갈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내신 문자는 무슨 뜻이죠?” “승희 씨, 오해하지 마세요” 한성연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당신을 부른 것은 진심으로 승희 씨와 손을 잡고 싶기 때문이예요” 명승희가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고민하였고, 한성연은 커피를 마셨다. “저는 Soul 주얼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강성연과 관계가 있어요. 뉴스를 봤는데 Soul 주얼리가 세 번이나 승희 씨를 거절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신과 강성연 씨의 사적인 문제에 나를 끌어들이는건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명승희는 한성연을 믿지 않았고, 이를 한성연도 알아챘다. “승희 씨는 강성연에 대한 원한이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송아영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죠, 어쨌든 육예찬이 당신의 전 애인 이니까요” 명승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성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강성연이라는 가식적인 여자를 좋아하지 않고, 그녀 옆에 있는 송아영도 좋아하지 않아요. 강성연은 그저 반지훈에게 시집간 걸로 안하무인에 건방지게 구는 거고
명승희는 사진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한성연은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였다. “이젠 제 말을 믿으시겠죠? 보세요, Soul 주얼리 파문이 실검에 올라온 지 이틀이 지났는데 내려오지 않고 있어요. 반 대표의 능력으로 실검 하나 빼는 건 식은 죽 먹기 일 텐데 말이죠” 그 시각, 다른 곳. 성연은 실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영의 '누명'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김아린은 그녀들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고, 몇 가지 단서를 찾았다고 말했다.기다리는 동안 아영은 휴대전화를 들고 네이버를 보다가 고개를 들어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성연을 응시했다.“성연아, 너 진짜 대단하다. 직접 자기 회사를 이렇게 실검에 올려놓고, 욕먹는 게 무섭지도 않아?”성연은 손수건을 들고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무서울게 뭐가 있어, 내가 욕 하루이틀 먹어봤니, 너도 알다시피 나 욕하던 사람들 다 결국엔 배로 갚았잖아” 아영이 피식 웃었다. 틀린 말도 아니였다!“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 김아린은 서류를 들고 룸 안으로 들어왔고, 아영의 옆에 앉았다. 아영이 다가갔다. “뭘 들고 온거예요?” “물론 수사에 필요한 단서죠” 김아린은 서류 봉투를 열고 두 장의 자료를 꺼내 성연에게 건넸다. 이어 덧붙였다 “직접 B대에 들러서 민악동아리의 송 선생을 만났어요”송아영은 깜짝 놀랐다. "송 선생님까지 만났어요?" 송 선생은 줄곧 B대에서 일하였고, 이전에 아영을 가르쳤다. 김아린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럼요, 내가 누군데요. 비밀 스파이잖아요” 성연은 자료를 본 뒤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당시 복도에는 CCTV가 없었어요. 게다가 오랜 세월이 흘러서 이미 리셋 되었을 테고, 언제 찾을지 알 수 없어요” 적어도 안예지가 어떻게 복도에 나타났는지 알아야했다. 복도 CCTV에 아영이 찍혔다고 해서, 안예지와 범인이 위층이나 아래층에서 아영이 있는 통로로 내려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김아린이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아래층에서 올라간 것 같
그가 말을 마치자, 경비는 아영을 쳐다보았다. 키가 작고 화장을 하지 않은 예쁘고 청순한 동안 외모라 그런지, 아무리 봐도 17~8살 소녀 같아 보였다. 경비가 물었다. “조카 따님이신가요…?” 육예찬은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송아영은 그 자리에서 허리를 굽혀 박장대소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저씨, 보는 눈 있으시네요!” 육예찬은 정색을 하고 그녀의 팔을 잡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의 보폭은 컸고, 아영은 그에게 끌려 따라갔다. “천천히 걸을 수 없을까요?" 육예찬은 걸음을 늦추었다. “당신이 숏다리인걸 누굴 탓하죠?” 이 말을 들은 아영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네, 저 숏다리예요. 당신의 롱다리 여친이 귀국하지 않았나요?” 육예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고 되물었다. “음악 학원엔 누굴 찾으러 온 거죠?” “어쨌든 당신 찾아 온건 아니예요” 아영은 팔짱을 낀 채 학원의 내부 환경을 살펴보았다. 로얄 음악 학원은 매우 넓었다. 동서남북 문이 있었고, 웬만한 구 절반 정도의 부지였다. 학원 전체를 구경하려면 내부 셔틀버스를 몇번이고 타야했다. 육예찬은 웃었다. “성예주를 찾아 온건가요?” 아영은 당황한 채 약간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육예찬은 그녀를 민악과 강의동으로 데려갔다. 성예주는 육예찬 옆에 있는 송아영을 보고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래도 그녀는 웃는 얼굴로 반기며 놀란 척하였다. “아영이? 정말 너야?” 예주는 격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오랜만이네,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아영과 예주 모두 B대 민악 동아리 부원이었다. 그리고 그 해의 승자는 지금 음악 학원에 있는 성예주였다. 아영도 사실 그녀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반응이 없자 예주는 민망해하였다. “아영아, 어쩐 일이야?” 아영은 정신을 차리고 웃었다. “별일 아니야, 근데 난 네가 날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어” 예주는 육예찬을 힐끔 보았다. “어떻게 너를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겠어, 그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