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린과 수연 간의 원한은 그녀와 송아영과 관련이 없었다. 그러니 김아린은 그녀와 송아영에게 수연의 이 일을 알려주려고 데려간 게 아닐 것이다.아니, 그녀는 송아영을 데려가는 게 아닌, 송아영을 통해 그녀를 데려가려는 게 목적이었다. 왜냐하면 송아영은 그녀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날 송아영이 떠난 뒤에야 김아린은 그 비밀을 털어놨었기에, 송아영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게 분명했다.김아린은 강성연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당신은 정말 총명하네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전 확실히 구 씨 큰 부인의 손을 빌려 수연을 탄압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고의적으로 큰 부인에게 소식을 흘리고 원석 경매 현장에 갔었던 거예요. 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강성연은 눈을 깜빡거렸다.“당신은 그때 노 대표의 일을 도와주었고, 고의적으로 당신과 수연의 일을 저에게 알려줬잖아요. 사실 처음부터 제가 이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죠? 저의 도움이 필요한 거네요.”김아린은 어두운 표정으로 창가에 기댔다.“그날 밤 당신의 신분을 알게 된 뒤로 그런 생각을 품게 되었어요. 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송아영과 소담이는 이 일을 모르고 있어요.”강성연은 멍해졌다.“왜 저인 거예요?”김아린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수연은 소담이를 알고 있어요. 만약 소담이가 나선다면 저의 계획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을 거예요. 송아영은 솔직한 성격이라 수연이의 상대가 아니에요. 그리고 전 움직일 수 없어요.”소담은 수연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원석 경매를 보러 갈 때 김아린은 고의적으로 소담을 부르지 않았다. 수연은 송아영과 그녀를 모르고 있었다.김아린은 이름을 바꾸고 귀국했기 때문에 수연은 아마 “김아린”의 신분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김아린은 자신의 신분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서지 못하는 거다.왜 김아린은 자신의 신분을 이 정도로 감추려 하는 건가, 아마......강성
연희승이 갑자기 그녀에게 전화 와서 반지훈이 병원에 가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의아했다.“오늘 반지훈 대표님을 보지 못했어요. 전 이미 퇴원했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연희승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대표님은 오늘 갑자기 3년 전의 일을 조사하시더니 홀로 나갔어요. 지금도 회사에 돌아오지 않았어요.”강성연은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반지훈씨가 3년 전의 일을 조사했다고요?”“네, 바로 그 교통 사고요. 반지훈 대표님께서 기억이 떠올라 3년 전의 그 사건을 조사하셨을 수도 있어요. 오후 내내 TG 그룹으로 돌아오지 않아 강성연 아가씨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요.”강성연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강성연이 반지훈에게 전화를 몇 통 걸었지만 계속 받지 않았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반지훈은 돌아오지 않았다.연희승도 반지훈이 평소 다니는 곳에 사람을 보냈지만 그림자도 찾지 못했다.강성연은 차에 앉아 휴대폰을 꽉 쥐었다. 그녀는 저녁노을이 물든 거리에서 오가는 행인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반지훈은 아직도 기억이 회복되지 않아 그녀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로 갔을까?그녀는 누군가가 떠올라 송아영에게 문자를 보냈다. 강성연은 곧 구천광의 전화번호를 받았다.구천광은 마침 촬영이 끝나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스태프가 그의 가발을 벗겨주고 있었다.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인 것을 본 매니저가 휴대폰을 그에게 건네주었다.“구천광 형, 전화가 왔어요.”지인들만 구천광의 개인번호를 알고 있었다. 감독이거나 업무 상의 파트너들은 모두 매니저의 번호만 알고 있었다.그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았고,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아차렸다.“강성연 아가씨가 저에게 전화를 할 줄은 몰랐어요.”강성연은 빙긋 웃었다.“급한 일 없이 구천광씨의 일을 방해할 수 없지요. 예전 저에게 반지훈씨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었죠?”구천광은 자리에서 일어선 후 다른 손으로 휴
축축한 바닷바람을 맞은 그에게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피부에서 서늘한 기운마저 느껴졌다.반지훈은 두 팔로 그녀를 품에 그러안더니 어깨에 턱을 괸다.“성연아, 날 사랑해?”강성연은 멈칫하다가 손으로 차가운 그의 볼을 감쌌다.“왜 갑자기 그렇게 묻는 거예요?”그는 강성연의 손을 잡고 지긋이 바라보았다.“당신의 대답을 듣고 싶어.”강성연은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더니 그의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다.“이 대답이 마음에 들어요?”반지훈은 그녀의 턱을 잡았고, 곧 뜨거운 기운이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그의 애틋한 키스에 강성연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반지훈은 그녀를 놓아주었다. 욕망에 젖은 그녀의 몽롱한 눈빛은 매우 매혹적이었다.반지훈은 그녀를 안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집으로 돌아가자.”“반지훈씨, 다리에 쥐가 났다고 했잖아요?”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투덜거렸다.“거짓말쟁이.”반지훈은 강성연의 이마에 키스했다.“뽀뽀를 하니까 괜찮아졌어.”차에 돌아온 강성연은 반지훈의 싸늘한 손을 감싸면서 투덜거렸다.“왜 갑자기 해변가에 와서 바람을 쐬는 거예요? 무슨 나쁜 생각이라도 하는 줄 알았잖아요.”반지훈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웃었다.“내가 어떻게 아내와 자식들을 버리고 먼저 떠날 수 있겠어?”강성연은 그저 묵묵히 그의 손을 감쌌다. 반지훈은 그녀를 품에 안더니 이렇게 말했다.“성연아, 미안해.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교통사고의 일은 나 때문인 것 같아. 난 기억을 되돌리고 싶지만, 과거를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그는 멈칫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널 해친 것이라면, 난 어떻게 보상해야 될까? 성연아, 난 어떻게 해야 해?”강성연은 멍해졌고 그녀를 안고 있는 반지훈의 손이 떨리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당신에게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이야기 속의 쓰레기는 사실 반지훈이 생각한 만큼 “쓰레기”가 아니었다. 비록 자주 질투하고 제멋대
연희승은 어르신 곁에서 뭐라 말하고 있었다. 어두운 표정이었던 연희승은 반지훈을 본 순간 표정이 조금 풀렸다.“반지훈 대표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어르신은 콧방귀를 뀌었다.“어린아이도 아니고, 뭐 실종이라도 하겠어?”강성연은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으면서 걸어갔다.“아버님, 지훈씨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어르신은 반지훈을 노려보더니 연희승에게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3년 전 저 자식이 한 짓을 알려줄 생각이니?”강성연은 빙긋 웃었다.“이미 알려줬어요.”어르신은 멈칫했고 반지훈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지훈은 강성연 곁에 서서 말했다.“아버지, 3년 전에 저와 성연에게 무슨 일이 발생했었든, 성연이와 함께 맞설 겁니다.” 어르신은 잠시 침묵하다가 몸을 일으켰다.“네가 결정을 내렸으니 나도 네가 그 일에 시달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공개하고 싶으면 공개해.”비록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반지훈이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문제가 아니었다.......그날 밤, 반지훈은 더 이상 예전의 일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주동적으로 방송사에 3년 전 강성연과 이혼한 이유를 밝혔다.그는 트위터에 #당신에게 결혼식을 빚졌어@강성연#이라는 글을 올렸다.강성연은 그의 글에 답장했다. #한 번으로 부족해요, 열 번은 해야죠@반지훈#이에 네티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3년 전 반지훈 부인이 교통사고로 별세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망자가 갑자기 돌아와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거다!soul 주얼리 공식 계정은 강성연이 반지훈에게 답장한 글에 좋아요를 누른 후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 #해명할 것이 있습니다. 앨리스는 zora의 새로운 이름이에요.#그 글은 전에 인터넷에서 돌고 있던 #앨리스 카피 zora# 사건에 대한 해명이었다.카피는 무슨? zora가 새로운 신분으로 신인인 척하다가 일어난 어이없는 일인 거잖아?장난기 많은 네티즌들은 자조하기 시작했다.“난처하게 됐네요.”“부끄러워요.”“
강성연은 웃으면서 그녀가 다가오는 걸 지켜보았다.“수연 아가씨, 안녕하세요. 전 soul 디자이너 앨리스입니다.”강성연은 이렇게 말하면서 노트를 펼쳤다. “수연 아가씨는 커플링을 예약하셨네요. 저도 마침 커플링을 디자인하고 싶었기에 예약을 앞당긴 거예요. 괜찮나요?”수연은 그녀를 훑어보았다.“괜찮아요, 마침 시간이 있었어요.” “그럼 다행이네요.”강성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저를 따라오세요.”VIP 대기실에 도착한 강성연은 수연에게 먼저 앉으라고 한 후 커플링 모델 사진을 찾으며 무심하게 물었다.“수연 아가씨, 좋아하는 디자인이 있나요? 결혼반지인가요, 아니면 커플 반지인가요?”수연은 가방을 곁에 놓으면서 대답했다.“결혼반지예요.”“네.”강성연은 눈을 깜박거린 후 모델 사진을 뽑아 그녀의 앞에 놓았다.“이건 모두 결혼 반지의 광고문이에요. 광고문마다 독특한 의미가 있어요. 당신은 어떤 걸 좋아하나요? 모두 만들어줄 수 있어요.”수연은 모델 사진을 한참 동안 훑어보았지만 만족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내려놓았다.“제가 원하는 건 모두 만들어줄 수 있어요?”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요.”“그럼 좋아요.”수연은 갑자기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이 반지와 똑같은 걸 만들어 줘요.”강성연은 멍한 얼굴로 사진의 반지를 바라보았다. 그건 꽤 오래전의 다이아반지였는데 시장 가격이 20억 원 정도였다. 물론 주얼리 디자이너라면 모두 할 수 있겠지만 강성연은 그녀의 요구에 조금 의아했다.“수연 아가씨, 절 난처하게 만드네요.”수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설마 하지 못하는 건가요?”강성연은 완곡하게 설명했다.“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 다이아반지는 다른 디자이너의 오래전 작품이에요. 골동품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당신에게 똑같은 걸 만들어 준다 하여도 고급 모조품일 뿐이에요. 아무런 가치도 없어요.”수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강성연은 사진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수연 아가씨, 전 개인 맞춤 제작만 합니
수연은 주소를 남긴 후 soul 회사를 떠났다. 강성연은 그녀가 적은 주소를 잘 챙겼다. 그녀는 수연과 접근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상대가 먼저 찾아온 거다.수연의 손에는 김아린을 협박할 수 있는 동영상이 있었다. 강성연은 김아린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수연의 컴퓨터를 확인해야 했다.반지가 완성될 때가 가장 좋은 타이밍일 거다.수연은 집으로 돌아갔다. 가정부는 구세호에게 전화만 왔다고 했다. 며칠 뒤에 그들을 폭로한 범인을 잡을 테니 조용히 있으라고 전한 거다.이 말을 들은 수연은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들의 불륜 사건이 폭로된 후 구세호는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떻게 안심하고 있을 수 있겠는가?이런 생각이 미친 수연은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그녀는 구 씨 가문의 둘째 사모님이 되려고 구세호의 상간녀로 5년 동안 살았다. 그녀는 절대 이 상황에 무슨 일이 발생하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강성연은 오후 내내 적합한 재료를 고르고 있었다. 고급 모조품을 만들려면 많은 정력과 시간이 필요했다.누군가가 점차 다가오더니 뒤에서 강성연을 안았다. 강성연은 먼저 깜짝 놀랐다가 익숙한 향기에 안심했다.“지훈씨!”“응?”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어떻게 나인 걸 안 거야?”강성연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당신 외에 누가 이토록 대담하게 저의 사무실에 들어오겠어요?”반지훈은 웃으면서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더니 향기를 맡았다.“결혼식을 10번이나 하려고?”강성연이 고개를 돌리자 반지훈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를 보고 있었다.“그것 때문에 절 찾아온 거예요?” “1년마다 결혼식을 한 번 하는 거야. 10년 동안, 어때?”반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우리도 커플 반지가 필요하지 않아?”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고정되었다.“반지를 만들고 있어?”“네, 고객이 고급 모조품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요.”강성연은 몸을 돌려 반지훈의 기대 어린 표정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희 커플 반지인 줄 알
하지만 구천광은 이미 문 앞에 도착했다. 반지훈이 있는 걸 본 구천광은 너무 놀라지 않았다.“우연이네요?”반지훈은 팔짱을 끼면서 그를 바라보았다.“한 씨 가문의 일을 해결해 줬잖아. 왜 아직도 내 아내를 탐내는 거야?”한 씨 가문의 일?강성연은 그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반지훈은 구천광 때문에 한 씨 가문을 파산시켰던 것인가?구천광은 반지훈 앞에 섰고 두 남자는 키가 비등했다. 서울에서 반지훈과 외모, 신분, 기품을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구천광 밖에 없을 거다.그는 낮게 웃었다.“강성연 아가씨를 찾아오든, 말든 제 마음이에요. 당신과 상관없어요.”반지훈은 깊은숨을 들이쉬더니 좀 굳은 얼굴로 말했다.“어이 구 씨, 너 정말......”“반지훈씨.”강성연은 반지훈을 뒤로 잡아당긴 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하지 마요.”“......”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구천광을 바라보았다.“구천광씨, 무슨 일 때문에 온 거예요?”구천광은 반지훈을 흘깃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원석 경매를 할 때 당신과 아영이도 있었어요?”강성연은 부인하지 않았다.“네.”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을 이었다.“당신의 삼촌 일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구천광은 고개를 끄덕였다.“당신과 아영이가 범인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불륜 사건이 폭로되어 숙모는 삼촌과 이혼하려고 해요. 지금 삼촌은 몰래 범인을 찾고 있기에 당신에게 조심하라고 귀띔하러 온 거예요.”강성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반지훈은 그녀의 어깨를 그러안으면서 말했다.“뭐? 구 씨 가문이 내 아내를 건드리려고 해?”구천광은 미간을 찌푸렸다.“구 씨 가문이 건드리지 않아도, 다른 사람도 건드리지 않을 거라 보장할 수 있어요?”반지훈은 픽 웃었다.“상대가 누구든 성연이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야.”구천광이 비아냥거렸다.“기억부터 찾은 후 그런 큰소리를 쳐요.”두 남자는 적의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강성연은 구천광 말속의 다른 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사실 구세호도 손유린에게 옛정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진실은 그들 본인만 알고 있을 거다.상간녀가 폭로된 후 손유린은 이혼을 제기했고 구세호는 더 이상 수연을 고려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구세호는 수연과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김아린의 신분이 폭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만약 범인이 그녀임을 알게 된다면 수연에게 약점을 잡힌 김아린은 위험하게 될 거다.구천광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니 당신은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네요?”“죄송해요, 전 말할 수 없어요.”강성연은 눈을 내리깔았다. 비록 좀 어려운 일이지만 그녀는 김아린을 배신할 생각이 없었다.“전 다른 사람에게 빚지는 걸 싫어해요. 그리고 그 사람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구천광은 잠시 침묵하다가 입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누군지 알겠어요.”강성연은 멍한 표정으로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구천광은 선글라스를 쓴 후 반지훈을 보면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17살의 반지훈 대표가 당신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언제든지 절 찾아와요.”반지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구천광은 그의 표정을 보고 아주 기뻐했다. 강성연은 이마를 주물렀다. 구천광은 고의적으로 반지훈을 놀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만약 반지훈이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얕은 수작에 넘어가겠는가?구천광이 떠난 후 강성연은 반지훈이 뒤에서 음침한 기운을 뿜어내는 걸 느꼈다.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반지훈의 준수한 얼굴은 질투로 일그러져 있었다.강성연은 까치발을 들고 그에게 뽀뽀를 한 후 그의 눈을 가렸다.“또 화난 거예요?”반지훈은 고개를 돌렸다.“응.”그는 멈칫하다가 해명했다.“나에게 화난 거야.”강성연은 멍해졌다.반지훈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빛의 그림자가 그의 준수한 얼굴에 드리워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기억을 잃은 내가 예전처럼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걸 알아. 하지만 절대 누구도 당신을 건드리게 하지 않을 거야.”강성연은 그가 신경 쓰고 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