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디아 대표는 만만찮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서 변호사를 찾았는지 soul주얼리를 비방으로 고소하겠다고 경고장을 날렸다.그로 인해 주얼리 업계 사람들이 전부 그 일을 알게 되었다.네티즌들은 두 회사가 공개적으로 서로를 물고 뜯고 싸우는 걸 구경했다. 누군가는 soul주얼리가 지금 대세라고 안하무인이 되었다고 비난했고 누군가는 나디아 대표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했다.강성연이 사무실에 앉아 태블릿으로 데이터를 보고 있는데 한 직원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강 대표님, 나디아 주얼리가 저희에게 경고장을 날렸습니다. 저희를 비방으로 고소한다는데요.”강성연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그러라고 해요.”바로 그때, 지윤이 한 남자를 잡고 안으로 들어왔고 그를 걷어차서 무릎을 꿇게 했다.그 직원은 움찔했다.“이건 누구죠?”“반크 아저씨를 다치게 한 사람이에요.”태블릿을 내려놓은 강성연은 지윤에게 손쉽게 잡힌 청년을 보았다.“나디아 대표가 날 비방으로 고소한다고 하다니 우습네요. 나도 아직 내가 죽었다고 날 비방한 일로 그를 고소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게다가 몰래 사람을 매수해서 우리 soul주얼리 직원을 건드리다니, 내가 나디아에 한 번 갔다 와야겠어요.”나디아 주얼리.강성연은 선글라스를 벗고 차에서 내렸다. 지윤은 청년을 붙잡고 강성연의 뒤를 따랐다. 나디아 주얼리에 들어서자 직원들은 깜짝 놀랐다.강성연은 예약하지 않고 쳐들어갔고 지윤은 문을 박차고 들어간 뒤 그 청년을 앞으로 밀었다.청년은 사무실 안에 내동댕이쳐졌고 사무실 안에 있던 중년 남자가 벌떡 일어나 흐려진 안색으로 말했다.“당신들 누굽니까? 감히 나디아 주얼리에서 행패를 부려요?”강성연은 태연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갔다.“노 대표님, 건망증이 심하시네요. 노 대표님이 저희 soul주얼리 임원을 건드렸는데 제가 나디아로 찾아오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노 대표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겨우 여자 둘이라는 생각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겨우 여자 둘이 감히 s
노 대표는 허둥지둥 바닥에서 일어나 창백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감... 감히 소란을 피운다면 내가...”“경찰 부르시게요?”강성연은 냉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경찰 부르세요. 노 대표님께 그럴 용기가 있다면요.”“그... 그게 무슨 뜻이죠?”강성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똑같이 겁을 먹은 청년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의 멱살을 잡은 채로 책상 앞으로 끌고 가 노 대표를 향해 던졌다.노 대표는 겁을 먹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강성연은 그의 머리채를 쥐어 고개를 들어 올리게 한 뒤 노 대표에게 보여줬다.“이 사람 알죠?”노 대표는 대답하지 않았다.강성연은 청년을 보며 말했다.“말해봐요. 이 사람이 반크 씨 팔을 얼마에 샀죠?”청년은 덜덜 떨며 말했다.“2, 2천만 원이요.”“그러면 내가 2억 줄게요. 이 사람 다리 부러뜨려요.”강성연의 입꼬리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노 대표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말했다.“미... 미친 거예요?”“노 대표님도 사람을 사서 우리 soul주얼리 사람 건드렸잖아요. 심지어 그의 팔을 부러뜨렸죠. 그런데 왜 난 당신 다리를 부러뜨릴 수 없죠?”자리에서 일어난 강성연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경호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이 사람 다리 부러뜨리는 사람한테 2억을 줄게요.”그 말에 경호원들은 전부 흔들렸다.쉽게 2억을 벌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할까?경호원들의 모습에 노 대표는 진심으로 두려워졌다.“당... 당신 누구예요? 뭐 하려는 거예요?”강성연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은 뒤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노 대표님, 저 기억 안 나세요? 기억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알려드리죠. 전 당신이 죽었다고 떠벌리고 다니던 zora예요. 앨리스이기도 하죠. 그리고 한국 이름은 강성연이에요.”노 대표는 앨리스는 몰라도 강성연은 알고 있었다. zora가 바로 강성연이고 반지훈의 죽은 아내였다.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 그럴 리가. 당신은 이미...”“제가 죽었다고 누가
강성연은 차 안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지윤에게 말했다.“가요, 경찰서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경찰에게 넘겨요.”강성연이 줄곧 증거를 꺼내지 않은 건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변변찮은 경호원들이 없었다면 지윤에게 시켰을 것이다. 반크가 당한 일을 아주 제대로 돌려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노 대표가 모든 죄를 그녀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한다고 해도 이 자료들이 있다면 누가 끝장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반지훈의 차는 경찰서 밖에 멈춰 서 있었다. 강성연과 지윤이 안에서 나오자 반지훈이 차창을 내렸다.“일 크게 번졌어?”강성연은 허리를 숙이고 차창에 기댄 채로 눈을 깜빡였다.“네, 일이 커졌죠. 사람 시켜서 아주 단단히 혼쭐내줬거든요.”반지훈은 그녀의 콧등을 톡 두드리며 말했다.“그는 맞아야 하긴 해.”“그 사람이 나한테 복수하려 한다면요?”강성연은 일부러 무서운 척했다.반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지막하게 웃었다.“내가 그런 기회를 줄 리가 없잖아.”병원.노 대표는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전화를 여러 통 걸어 도움을 청했지만 반지훈 전처의 일이라는 말에 사람들은 바로 전화를 끊거나 도와줄 수 없다고 했다.그는 경상도 쪽 윗사람과 인연이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친구는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노 대표,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다.”노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다리가 아파 이를 악물었다.“어쩔 수가 없다니? 여자 하나 상대 못 한다는 거야?”“노 대표, 내가 도와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위에서 나한테 엮이지 말라고 했어. 지금 노 대표도 제 코가 석 자일 텐데 그들도 노 대표 때문에 이 일에 연루되는 걸 원하지 않아.”노 대표의 안색이 살짝 달라졌다. 그는 흥분하며 말했다.“그게 무슨 뜻이야? 내 코가 석 자라니?”“노 대표가 한 일들, 이미 누군가 경찰에게 증거를 넘겼어. 지금 위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난리야. 김씨 집안에서 이 일을 처리하는 데 진씨
반크는 시선을 내리뜨렸다.“제대로 혼쭐났겠네.”다리뼈가 부러져서 병원에 누워있는 건 둘째 치고 소송에 차압, 압류까지 되었으니 참으로 비참했다.무언가 떠올린 강성연이 물었다.“참, 그날 밤 아저씨를 구했던 여자는 주소랑 이름 남기지 않았어요? 아저씨 생명의 은인인데 제가 아저씨 대신 감사 인사를 해야죠.”반크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웃었다.“남기지 않았어. 인연이 닿으면 나도 답례해야겠지.”강성연은 반크와 잠깐 있다가 병실을 떠났다. 그녀는 지윤과 함께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한성연이었다.한성연은 강성연을 알지 못했다. 그저 강성연 옆에 있는 여자가 눈에 익어서 몇 번 더 시선을 준 것뿐이었다.한성연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지윤의 팔뚝을 덥석 잡았다.“당신 반 대표님 곁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왜 병원에 있지?”지윤은 대답하지 않았다.강성연은 한성연의 손을 치웠다.“내 비서랑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한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강성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보다 예쁘고 분위기 있는 여자를 보자 위협을 느낀 건지 미간을 구겼다.“당신 비서라고?”“그런데?”강성연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한성연은 그녀를 훑어보았다. 강성연의 몸매를 보니 그날 사무실에 있었던 여자랑 아주 비슷한 듯했다. 그리고 반지훈의 곁에 그녀의 비서가 있었다면 역시...“당신이 반 대표님이 새로 만나는 여자인가 보네?”한성연이 질투하듯 말했다. 강성연이 먼저 반지훈을 가로챘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빴다.“수단이 대단하네.”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그래? 칭찬 고맙네.”강성연은 손목시계를 보고 말했다.“난 아직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강성연이 말을 마치고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한성연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반 대표님한테 전처가 있다던데, 반 대표님 기억이 되돌아와서 그녀를 잊지 못할까 두렵지 않나 봐?”엘리베이터에 탄 강성연은 선글라스를 끼면서 입꼬리
큰일이었다. 다른 여자들이 몰래 그녀를 비웃을 게 뻔했다.사실 구천광이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성연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한성연이 신경 쓰는 건 사람들의 눈길이다. 게다가 그녀가 원하는 건 반지훈처럼 아내를 아낄 줄 아는 남자였다.구천광은 외모도 출중하고 다재다능하지만 연예인이다 보니 다른 여자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해야 했다.하지만 반지훈은 달렸다. 그녀가 조사한 데 근거하면 반지훈은 여성과의 접촉이 아주 적었다. 지금까지 여자라고는 그의 전처뿐이었다. 순정파인 남자야말로 가장 매혹적이었다.soul주얼리.강성연은 희승의 연락을 받고서야 노 대표의 일을 처리한 게 김씨 집안, 즉 김아린의 아버지라는 걸 알았다. 강성연은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카톡으로 송아영을 살짝 떠보았지만 송아영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송아영이 김아린에게 도와달라고 한 건 아니었다.김아린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도운 건지, 아니면 그녀처럼 노 대표에게 불만을 품고 있어서 윗사람과 노 대표의 연줄을 완전히 끊어버리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송아영이 메시지를 보냈다.“성연아, 주말에 김아린이랑 같이 원석 보러 가기로 했는데 너 부르라고 하더라. 네가 원석 잘 볼 거라면서. 갈래?”강성연은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다.“그래.”김아린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든 노 대표 일에 있어서 빚을 진 건 맞으니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저녁이 되고 강성연은 샤워한 뒤 화장대 앞에 앉아서 화장품을 바르고 있었는데 반지훈이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는 강성연의 어깨에 코를 박았다.“성연아, 너 향기 좋다.”강성연은 간지러워서 목을 움츠리고 웃었다.“방금 샤워해서 그래요.”“넌 평소에도 향기로워.”반지훈은 그녀의 귓가에 붙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성연은 로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나 주말에 친구랑 놀러 가요. 저녁에 돌아오지 않으면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밥 먹어요
...주말.송아영과 강성연은 먼저 골동품 거리로 향했다. 골동품 거리는 서울시에서 가장 큰 골동품 거래 시장으로 도자기나 옥기 말고도 서화 수집, 보석 장사도 있다.그 구역은 복고풍 건축물이 서로 어우러진 예스러운 마을로 각종 아름다운 골동품과 특산품을 파는 노점상이 즐비했다.송아영과 강성연은 원석 경매 건물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김아린이 두 경호원과 함께 느긋하게 걸어오는 걸 보았다.“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죠.”김아린은 두 사람의 앞으로 걸어와 미안한 듯 웃어 보였다.“주말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차로 들어올 수가 없더라고요. 주차할 곳 찾느라 한참 걸렸어요.”강성연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요. 나랑 아영이도 이제 막 도착했어요.”김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이네요. 자리는 이미 예약해뒀어요. 맨 앞줄이에요. 그러면 이제 원석 고르러 가요.”그들은 경매장에 들어섰다. 맨 처음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로비였다. 안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대다수는 범상치 않은 옷차림에 무도회 가면을 쓰고 있었다.이런 경매장에 오는 사람들은 골동품 업계에 종사하는 상인이거나 돈이 넘쳐 나서 운을 시험하러 온 사람들이었다.그들을 맞이하러 온 직원도 가면을 쓰고 있었고 그들에게도 가면을 건네주었다.강성연은 무도회 가면을 썼고 송아영이 물었다.“왜 다들 가면을 쓰고 있는 거지?”강성연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이런 장소에서는 긴장감이 중요하거든. 비밀스레 굴수록 좋아. 가면을 쓰면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니까 편하기도 하고.”강성연은 반만 말했고 송아영은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고개를 돌린 김아린은 미소 띤 얼굴로 보충했다.“강성연 씨 말은 가면을 쓰면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서로 신분을 모르는 상황에서 승부는 양쪽의 수중에 있는 저력과 재력에 달렸죠. 간단히 말하자면 이득을 보게 되든 그냥 돈을 날리게 되든 얼굴을 모르면 앞으로 아무도 트집을 잡지 않을 거라는 거죠.”경매장에서는 난동을
김아린은 그녀와 친하지 않았고 송아영이 그날 소개해준 덕에 조금 알게 된 것뿐이었다.만약 빈번히 연락하고 아주 친한 관계였다면 그녀가 자신을 도운 것에 무척 감격했을 것이다.하지만 김아린이 그녀를 도운 건 송아영의 뜻도 아니었으니 조금 의심되는 건 사실이었다.송아영이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나디아 대표 일 말하는 거야?”송아영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말했다.“김아린이 너 도왔어?”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송아영은 강성연을 툭툭 치며 말했다.“의리 있네.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널 도운 걸 보니 말이야.”강성연은 허탈한 듯 웃었다.“아무 이유 없이 날 도왔다고? 정말 그럴 거로 생각해?”“강성연 씨.”김아린이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불렀다. 김아린은 고개를 돌려 그녀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곳으로 걸어가 보니 김아린이 6번과 2번 원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두 개 다 보석이 나올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아요.”강성연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대신 하나를 선택해달라는 뜻이었다. 김아린이 이런 장소에 왔다는 건 원석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는 뜻이었는데 강성연에게 선택해달라고 했다.강성연의 시선이 두 원석으로 옮겨졌다. 그녀는 손전등으로 원석을 비춰봤다. 원석을 볼 때는 에메랄드 원석의 겉면을 봐야 했다. 에메랄드 원석의 겉면은 보통 사포 같거나 거칠거나 매끄러운 질감 세 가지로 나뉜다.겉면이 매끄러울수록 더 좋았고, 입자가 곱고 물이 있다면 에메랄드일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강성연은 허리를 숙이고 2번과 6번 겉면을 보았다. 2번의 겉면이 6번보다 더 매끄러웠는데 물이 보이지 않았다. 표면에 청색 알갱이도 보이지 않았다.김아린이 그녀를 보고 말했다.“2번이 낫지 않아?”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긴 해. 그런데 청색 알갱이가 보이지 않아. 반드시 에메랄드가 나올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어.”어떤 이들은 겉면만 보기에 속기 쉬웠다. 원석은 원래 도박이라 망설이는 사람들은 확신이 없어 도박
고개를 돌리니 송아영이 보이지 않았다.송아영은 화장실에서 세수했다. 그녀는 놀란 얼굴이었다. 비록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다. 조금 전 그 중년 남성은 분명 사촌오빠의 삼촌이었다.그리고 사촌오빠 삼촌의 곁에 있는 건 절대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사촌오빠 삼촌이 바람을 피우는 걸까?다시 한번 확인해볼 셈이었다.송아영은 부랴부랴 가면을 챙겨 화장실에서 나왔다. 막 가면을 썼는데 복도 어귀에서 누군가와 부딪혔다.송아영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 하자 상대방이 제때 그녀를 붙잡았다. 상대방이 누군지 보지도 못했는데 머리 위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송아영?”송아영은 가면을 쥐고 고개를 번쩍 들었다. 눈앞의 키 큰 남성은 비록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윤곽과 목소리가 너무 익숙했다.“어떻게 날 알아본 거예요?”송아영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머리 위에서 육예찬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이 몸매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죠.”송아영은 흠칫하다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육예찬 씨, 내 몸매 폄하하지 않으면 죽는 병 걸렸어요?”육예찬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왜 여기 있는 거예요? 누구랑 왔어요?”“무슨 상관이에요.”송아영이 화를 내며 떠나려 하자 육예찬이 그녀의 팔을 잡아 돌려세웠다. 그는 그녀의 앞길을 막으며 말했다.“아빠가 부자라고 이런 곳에 와서 돈 막 쓰는 거예요?”송아영은 그의 멱살을 잡더니 발꿈치를 들고 이를 악물었다.“난 돈 안 써요. 친구랑 같이 와준 거라고요. 알아요?”발꿈치를 든 송아영은 겨우 육예찬의 어깨에 닿을 정도였다. 기세 또한 상대방의 키에 꺾였다.고개를 숙인 육예찬은 발꿈치를 들어도 작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조그마한 고양이가 그의 얼굴을 할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육예찬은 갑자기 몸을 숙였고 발꿈치를 들고 있던 송아영은 그가 허리를 숙이자 발꿈치가 바닥에 닿았고 등이 벽에 닿았다.육예찬은 그녀의 당황한 표정을 보니 갑자기 놀리고 싶어졌다.“발을 들어도 모자라니 내가 좀 봐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