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유이는 아직 어린데 어떻게 매운 걸 먹을 수 있어?”“절 닮은 것 같아요.”강성연은 국물 몇 모금을 마셨다.“전 다섯 살 때부터 매운 걸 먹었거든요.”반지훈이 고개를 숙이고 순댓국을 먹자 강성연의 눈에 웃음기가 어렸다.“맛있어요?”“괜찮네.”반지훈은 또 몇 모금 먹어보았고 맛이 괜찮다고 생각했다.순댓국을 먹은 후 반 씨 저택에 돌아가니 이미 저녁 9시가 되었다. 김 집사는 두 아이가 막 샤워를 마친 후 방에서 TV를 보고 있다고 했다.강성연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유이와 해신이는 커다란 TV 앞에서 간식을 먹으며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엄마, 돌아왔어요?”유이는 간식을 해신에게 건네주고는 강성연에게 달려왔다.강성연은 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이는 갓 샤워하고 머리를 말렸는지라 머리카락이 아주 부드러웠다.“오늘은 숙제가 없는 거야?”“저와 오빠는 학교에서 다 했어요. 전혀 난이도가 없는 숙제예요.”강유이가 의기양양해 하면서 말했다.강해신은 과자를 우적우적 먹으며 말했다.“모두 이 총명한 오빠 덕분이잖아?”강유이는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마지막 수학 문제를 틀려놓고 총명하다고 하는 거야?!” “일부러 틀린 거라고.”강해신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매번 1등을 하면 너무 재미없잖아.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준 거야.” “매번 1등을 하긴, 오늘 새로 전학 온 애가 1등을 했잖아.”강해신이 어깨를 으쓱거렸다.“내가 양보한 거라니까?”“흥, 오빠는 나르시시즘에 빠졌어.”강유이는 허리에 손을 차면서 말했다.“다음번에 그 아이가 또 1등할 수도 있어.”강성연은 두 아이가 갑자기 말다툼을 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별안간 S국에 있는 시언이가 그리워졌다. 시언이가 있어야 두 아이가 얌전해진다.다음날.반지훈은 신문을 보면서 거실에서 두 아이와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신문에서 두 아이에게로 향했다.비록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아주 빨리 아버지라는 역할에
반지훈은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서울에서 가장 좋은 웨딩 촬영 스튜디오를 예약해.”연희승은 멍해졌다.“웨딩 촬영 스튜디오요?”반지훈이 진지한 얼굴로 설명했다.“집의 벽이 너무 비어있는 것 같아.” “......”그냥 웨딩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시지.*soul 주얼리 회사로 가는 길에 강성연은 지윤더러 강 씨 저택으로 차를 돌리라고 했다. 강 씨 저택은 여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3년 동안 손질하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했다.대문도 굳게 닫혀있었다.지윤이 차를 세우자 강성연은 문을 열고 잠긴 대문을 바라보았다. 이 별장은 황폐된 것이 분명했다.강성연은 침울한 눈빛으로 문 앞에 한참 동안 서있었다.아파트 경비원이 다가와 그녀에게 귀띔했다.“죄송해요, 이곳에 있으시면 안돼요.”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경비원을 바라보았다.“왜 이곳에 있으면 안되죠?”경비원은 그녀를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어느 분이 이 별장을 샀어요. 주인이 누구도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라고 했거든요.”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어떤 분이 산 건가요?”경비원이 인내심 있게 대답했다.“어느 재벌 집 사모님 같아 보였어요.”“그 분의 연락처가 있나요?”“당신은......”경비원은 다시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았다.강성연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이 별장은 저의 아버지 강진의 거예요. 저는 딸이고요.”그녀는 이렇게 말한 후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줬다.경비원은 그녀의 주민등록증에 이 별장 주소가 찍혀있는 걸 보고 연락처를 주었다.새 주인의 연락처를 본 강성연은 조금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 연락처에서 그 번호를 찾은 강성연은 이 별장을 산 새 주인이 이모인 연미영인 걸 발견했다.강성연은 그녀에게 전화를 했고,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연미영은 이미 레스토랑 룸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강 씨 저택은 내가 너 대신 사놓은 거야, 전에 주려고 했는데 이야기를 하다가 깜빡 했어.”강성연
“성연아, 뭐라 해도 난 너의 이모야. 이 세상에 나라는 가족이 있다는 걸 잊지마.”강성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soul 주얼리 회사에 돌아온 강성연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연희승이 소파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성연은 멈칫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연희승씨가 왜 이곳에 있죠? 반지훈씨는요?”연희승이 있으면 반지훈도 있겠지?연희승이 볼을 긁으면서 말했다.“반지훈 대표님께서 아가씨를 데려오라고 하셨어요.”“네?”“네,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고 하면서 아가씨를 데려오라고 하셨어요.”연희승의 의심스러운 표정을 본 강성연은 팔짱을 꼈다.“무슨 서프라이즈인데요?” “미리 알려드리면 서프라이즈가 아니지요.”연희승은 이쪽으로 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강성연 아가씨, 가시죠.”강성연은 픽 웃었다. 반지훈은 출근을 하지 않고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니, 어떤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지 봐야겠어.반지훈은 매우 신비롭게 준비했는데 가는 길 내내 그녀의 눈을 가렸을 뿐만 아니라 목적지에 도착한 뒤에도 연희승이 그녀를 부축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강성연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심조심 앞으로 걸으면서 물었다.“도대체 뭐예요?” “거의 도착했어요.”연희승은 그녀의 손을 두 여직원에게 건네주었다. 두 여직원은 강성연의 손을 부축하면서 말했다.“강성연 아가씨, 앞으로 50미터만 더 걸으세요.”그녀는 앞으로 걷다가 스톱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발걸음을 멈추었다.곧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이 풀렸고 갑자기 눈에 비친 강한 빛에 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눈앞의 희미하던 정경은 점차 또렷해졌다. 복고풍 샹들리에 아래, 매우 아름답고 우아한 웨딩드레스가 보였다. 수공으로 제작된 웨딩드레스의 치마에는 진주와 작은 다이아가 줄줄이 박혀있었다.강성연은 황홀한 눈빛을 보였다.벽에 걸린 커다란 거울에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비쳤다. 그 사람은 멍해진 강성연의 허리를 안으면서 얼굴을 비볐다.“마음에 들어?”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보
반지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넥타이를 풀어 바닥에 던지더니 곧장 밖으로 나갔다.연희승은 멍해졌다.“반지훈 대표님......”강성연도 우울한 얼굴로 나오자 연희승은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반지훈 대표님이 왜 저러세요? 웨딩 촬영을 하지 않으셨어요?”강성연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웨딩 촬영이요?”연희승은 그제서야 설명했다.“네, 반지훈 대표님은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아가씨와 웨딩 촬영을 하지 않은 일이 마음에 걸린 것 같아요. 참, 그리고 결혼 반지도 보셨어요. 반지훈 대표님은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가씨를 정말 마음에 두고 있어요.”강성연은 멍해졌으며 두 주먹을 꼭 쥐었다.반지훈은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예전에 자신이 부족했던 부분을 보상하려고 하고 있었다.웨딩 촬영, 결혼 반지, 그리고 그가 약속했던 결혼식을.그러니 반지훈은 자신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하여 그녀가 실망한 일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강성연이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유치한 사람......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그녀는 연희승의 어깨를 두드렸다.“먼저 저 대신 달래줘요.”연희승은 눈이 휘둥그래졌다.“제가 대신 달래라고요?”강성연 아가씨가 가야 더 효과가 있지 않나?강성연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었다.“반지훈씨는 지금 질풍노도의 17살 소년이잖아요. 아마 저의 말도 듣지 않을 것 같아요, 그냥 며칠 내버려둬요.”연희승은 입가에 경련이 일었고 강성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망했어, 기억을 잃은 반지훈 대표님을 어떻게 달래?웨딩 촬영 스튜디오에 간 당일, 강성연은 반지훈을 달래지 않았다. 이에 화가 치민 반지훈은 그녀의 연락처를 차단한 후 각방을 썼으며 해신이와 같은 침대에서 잤다. 그리고 반 씨 저택에서도 그녀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강해신과 강유이는 그저 이상하게 생각했다. 예전 엄마와 아빠가 다툴 때 유치하게 행동하는 건 항상 엄마였는데 지금은 아빠가 엄마보다 더 유치한 거다.soul 주얼리 회사.강성연이 진지한 얼굴로 주얼
강성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를 끊기 바쁘게 연희승이 그녀에게 사진 한 장을 보냈다.사진 속 반지훈과 한성연은 송아영의 말처럼 같이 밥을 먹고 있었다. 각도를 보니 아주 고의적으로 두 사람이 거리가 가까운 것처럼 보이게 찍었다.강성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고의적으로 연희승더러 나에게 보내라고 한 건가?날 질투하게 하려고?한참 동안 기다린 연희승은 강성연이 답장이 없자 막막해졌다. 강성연 아가씨는 정말 반지훈 대표님을 신경쓰지 않을 생각인 건가?전에 사무실에 있을 때만 하여도 한성연이 반지훈 대표님 가까이에 가는 걸 싫어하셨는데.그는 재빨리 반지훈에게 걸어가 귓속말을 했다. 잔을 들고 있던 반지훈은 손에 힘을 주더니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맞은편에서 스테이크를 먹던 한성연은 와인 한 모금을 마셨고 배시시 웃으면서 잔을 내려놓았다.“지훈 오빠, 무슨 일이야?”반지훈은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티슈로 입가를 닦았다.“볼 일이 생겼어.”그가 일어서서 떠나려고 하자 한성연도 같이 일어섰다.“지훈 오빠, 나와 함께 밥을 먹어주기로 약속했잖아.” “입맛 없어.”반지훈은 그녀를 싸늘하게 바라본 후 성큼성큼 떠났다.한성연은 제자리에 멍하니 서있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겨우 반지훈 대표와 밥을 먹게 되었는데 중도에 날 버리고 떠나다니?한성연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만만했다. 상류층 재벌 2세들은 모두 그녀처럼 청순한 얼굴을 좋아했다.예전에는 반지훈 대표 곁에 이미 여자가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던 거다. 그 여자를 위해서 반지훈 대표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하지만 그 여자는 이미 죽었고 두 사람은 전부터 이혼했으며 반지훈 대표는 기억까지 잃었다. 이렇게 좋은 타이밍에 그녀가 나타났는데...... 반지훈은 왜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는 건가?전에 나타난 여자의 신분을 아직도 조사해내지 못한 한성연은 마음이 조급해졌다.안돼, 절대 이대로 포기할 수 없어. 상류층 사람들은 모두 반지훈이 아내를 예뻐한다는 걸 알고
그는 강성연을 더 세게 그러안았다.강성연은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안았고, 얼굴을 그의 쿵쿵 뛰고 있는 가슴에 대면서 말했다.“화 풀렸어요?”강성연은 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반지훈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그녀를 정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강성연은 그의 넥타이의 주름을 펴면서 말했다.“한성연과 밥 먹으니 기분이 좋아요?”반지훈은 멈칫하더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내가 왜 그 여자와 밥을 먹었는지 당신도 알잖아.”“제가 질투하게 하려고요.”강성연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정말 화난 게 아니라 제가 주동적으로 당신을 달래주길 바란다는 걸 알아요.”“날 달래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반지훈은 처음으로 강성연에게서 좌절감을 느꼈다. 아마 처음이 아닐 수도 있었다.강성연이 그의 목젖을 깨물자 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의 허리를 꽉 안으면서 말했다.“성연아, 장난치지마.”하지만 강성연은 그의 위에 올라앉았고 손가락 끝으로 그의 눈코입을 그리면서 말했다.“당신은 확실히 달래기 쉬워요.”그녀는 반지훈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처음이 있으면 두 번이 있을 거예요. 제가 번마다 당신을 달래줄 수는 없잖아요.”반지훈은 욕망으로 넘실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강성연은 고개를 숙여 그에게 키스했다.“저희 관계의 기초는 믿음이에요. 당신이 기억을 잃어도 전 늘 당신을 믿어요.”반지훈은 나지막한 신음소리를 냈다.“성연아, 넌 고의적으로......”“당신이 예전에 저에게 가르쳐준 거잖아요.” “당신이 한성연과 밥을 먹어서 기분이 좋지 않네요. 반만 달래줄 테니 나머지는 당신이 알아서 해결해요.”그녀는 작업실에 들어간 후 문을 잠갔다.반지훈은 일어나 앉은 후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그의 욕망에 젖은 얼굴에는 무기력함이 어렸다.이틀 후.soul 브랜드는 트위터 공식 계정에 새로운 커플 상품 “동반자”를 출시했고, 3년 동안 잠잠했던 soul 주얼리가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강성연이 고개를 들었다.“누가 소란을 피웠죠?”“하정화.”반크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지난 3년간 여러 차례 찾아와서 난리를 피웠어. 위너 주얼리가 soul주얼리의 타이틀을 달았어도 강씨 집안 가업이라고. 그들은 네가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했고 강진의 재산은 자기 손자가 상속받아야 한다고 했어.”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펜을 놀렸다.“몇 년이나 지났는데 진성 강씨 집안 사람들은 정말 하나도 안 변했네요.”반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오히려 더 심해졌지. 몇 번이나 와서 소란을 피워서 경찰서까지 갔어. 경찰들은 자꾸 찾아오니까 신경도 쓰고 싶지 않나 봐. 강진의 재산을 상속받을 상속자 성명란에 네 이름이 적혀있었으니까 그들도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그는 강성연을 보며 말했다.“가서 처리할 거야?”강성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몰래 숨어서 구경해야겠어요. 그 집안사람들이 어떻게 난리를 피우는지 말이에요.”하정화는 손자 강현과 친척 몇을 데리고 로비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라 로비 직원들은 태연했다.몇 마디 하면 욕설을 퍼붓고 떠나려고도 하지 않아 경찰을 불렀다. 그들은 억지를 부리면서 갖가지 수단을 전부 동원했다.하정화는 반크가 나오자 같잖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은 우리 강씨 집안 산업을 몇 년 동안 강점했어. 그런데 아직도 우리한테 돌려줄 생각이 없는 거야?”반크는 안색 하나 달라지지 않고 대답했다.“soul도, 예전의 위너도 모두 성연이 거지 당신들 진성 강씨 집안 소유가 아닙니다.”하정화는 울컥해서 말했다.“그 망할 것은 이미 죽었어. 상속자는 무슨, 걔가 중간에서 수작을 부리지만 않았어도 내 손자 강현이 이 회사를 상속받았을 거야!”강성연은 지윤과 함께 몰래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있다가 하정화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반크는 성연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하정화의 말에 전혀 화가 나지
“앨리스 씨께서 다들 몸이 근질근질한 것 같다고 하셔서 제가 도와드릴 생각이에요. 어르신 손자도 감옥에 간 적 있으니까 안에서 맷집이 좀 세졌겠죠? 제 샌드백 하기 딱 좋을 것 같네요.”강현은 깜짝 놀라 하정화의 등 뒤로 숨었다.“할머니, 이 여자... 이 여자가 절 때리려고 해요.”“가자, 가자. 이 야만인들과 싸울 필요 없어!”하정화는 지윤이 만만찮은 상대라는 걸 알아챘다. 지윤의 배후가 강현이 감옥에 갔던 일도 알고 있는 걸 보면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강성연은 사무실로 돌아온 뒤 반크에게 3년 동안 진성 강씨 집안에 있은 일을 물었다. 반크가 말하길 진성 강씨 집안은 장사도 잘되지 않고 온천 여행 사업도 망해서 2억에 팔아넘겼다고 한다.2억은 그 집안에는 거액이었지만 그간 강역이 도박에 중독되어 몇천만 원의 사채를 써서 집에도 돌아가지도 못한다고 했다.사채업자들이 그들을 찾아가 빚을 갚으라고 하자 하정화는 자신의 목숨으로 그들을 위협했고 그들은 성가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하정화를 찾아가지 않았다.강성연은 의아했다.“강현은 5년 형을 받지 않았어요?”반크가 고개를 저었다.“하정화 씨가 여행 사업을 팔아버린 돈 중 절반을 손자 소송하는 데 썼어. 강현은 자의가 아니라 협박받아서라고 진술했고 형을 적게 받으려고 공범들도 여럿 말해서 최종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올해 6월에 석방됐어.”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당시 강현이 마약을 판매한 사실은 강성연이 신고한 것이었다. 그녀는 강현이 18살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댔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협박받아서라기보다는 자의라고 하는 게 맞았다.안에서 몇 년 있으면서 개과천선해 감옥에서 나온 뒤 착실하게 살길 바랐는데 나와서도 여전히 저 꼴일 줄은 몰랐다.강현이 저 모양 저 꼴이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하정화가 너무 애지중지 키워서였다.“성연아, 저들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 다음에 또 와서 난리를 피울 것 같아.”반크가 걱정스레 말했다.“손자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포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