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떨어뜨렸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지훈은 그녀에게 먼저 메시지를보내지 않았고, 그녀에게 어떠한 것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허, 다시는 반지훈의 우스갯소리를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명함을 꺼냈다. "지윤 씨, 저 대신 남호연에게 연락해주세요" 점심, 성연은 지윤을 데리고 남가에 왔다. 하녀가 차를 따라 대접하였고, 곧 남호연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남호연은 웃으며 다가와 소파에 앉았다. “저는 앨리스 아가씨가 저를 찾아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성연은 표정변화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제 사계 레스토랑에 가셨는데, 혹시 파파라치를 데리고 오신 건 아니겠죠?" "앨리스 양, 우리가 만난 걸 제가 공개했다고 의심하는 건가요?" 남호연은 긴 다리를 꼬고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건 정말 나를 오해한 거예요. 어쨌든 언론은 앨리스 양의 진짜 모습을 궁금해하고 있고, 일부 기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캐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성연의 눈빛은 흔들렸다. 그녀는 남호연의 말을 단 한마디도 믿을 수 있었고, 설령 그가 아니어도 그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럼 어제 남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제가 알고 싶은 비밀이란 건 무엇이죠?" 남호연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무릎 위에 올려놓고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궁금하지 않나요? 반지훈의 병이 무엇인지?” 성연의 입꼬리가 떨려왔다. “앨리스 양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성연 씨라고 불러야 할까요?" 남호연의 눈은 약간 차갑게 변했다. 마치 치타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 같았지만, 사냥감을 죽이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노는 것 같았다. 지윤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무의식적으로 위층에 검은 옷의 경호원 몇 명이 대기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모두 대기 상태 였다. 이미 간파된 것을 알아차린 성연은 냉담하게 웃었다. "남 선생님의 기억력은 대단하군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도 저를 알아보셨나 봐요?"
남호연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요, 그를 공격한 사람은 저희 사람이 아닙니다. 저희 쪽 사람은 손도 안 댔어요” 성연은 어리둥절 했다. 설마 3년 전 놀이공원에서의 주범이 따로 있는 것인가? 그녀의 시선은 위층에 서 있는 몇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들의 손등에는 모두 똑같은 문신이 있었다. 그래, 그때 그 패거리의 손등에는 문신이 없었는데, 남호연의 손등에는 문신이 있다! 그러니까 두 패거리 라는거다! 남호연의 패거리는 손을 대지 않았다. “프린스의 사람?” “성연 씨 똑똑하시네요” 남호연은 그녀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3년 전 그 일을 서영유 그 멍청한 여자 혼자 설계했겠어요?” 서영유를 언급하자 성연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이 움츠러들었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보니 남호연 씨 곁에서 서영유의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남호연은 손끝으로 찻잔을 매만졌다. "그 멍청한 여자가 나를 배신했는데, 제가 그녀를 곁에 둘 수 있을 것 같나요?" 서영유가 배신했다고? 성연은 약간의 의문을 품었다. 그는 측은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그 미련한 여자 덕을 보긴 했죠. 그러지 않고서야 반지훈이 어떻게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겠어요?” 성연은 그 자리에서 굳었고 손끝은 점차 하얗게 변했다. 반지훈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그럴 리가! 리비어 삼촌이 그가 병에 걸렸다고 말하긴 했지만, 다시 지훈을 만났을 때 그는 병이 심각해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그가 꾀병을 부리는 줄 알았다. 3년 전 이혼을 강요했던 일을 생각하니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도 그가 바이러스에 감염됐기 때문인가? "그 사람이…어쩌다 감염된거죠?" 성연의 숨결이 점차 희미해져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았다. 남호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총격. 총알에 바이러스가 묻어 있었어요. 듣자하니 오래 살지는 못 할 것 같아요. 외출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고 하니, 곧 죽을 것 같아요” "남호연 씨, 그 일 당신
마찬가지로 큰 어르신도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강성연? 네가 왜?" 큰 어르신은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당시 시체조차 찾지 못했으니, 살아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그녀가 S국에 있을 줄은 몰랐다. 성연은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걸어갔다. "지훈 씨는요?" 희승이 뭐라고 말하려 하자 큰 어르신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지훈이는 3년전 이미 너와이혼했다. 그 애를 찾아서 뭐하려고?” “제가 오지도 않고 어떻게 그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걸 알았을까요?” 성연의 말에 희승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녀가 알고 있었단 말인가? 큰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그 애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건 너 때문이 아니냐?" 이 말에 성연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심장까지 저려오게 했다. “강성연, 너는 왜 지훈이가 너랑 이혼하려 했다고 생각하냐?” 큰 어르신은 심호흡을 하고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자신은 목숨을 걸고, 결국은 너를 위해서였다. 그 애는 유언까지 이혼 계약서에 작성했어. TG 주식의 절반을 주겠다고. 그 애가 죽으면 TG는 너의 손에 들어갈 거야” 성연은 그 자리에 굳어졌고, 얼굴은 점점 핏기가 사라지고 어두워졌으며, 창백함만 남았다. 구천광이 예전에 TG의 전체 지분의 절반은 최대 주주의 것이라고 했는데, 그가 왜 아무 이유 없이 TG를 자신에게 주려고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진 않았다. 그녀는 그냥 단지 그가... “네가 정말 그를 위한다면 올 한 해를 마음 편히 보내게 해줘라” 큰 어르신은 말을 마치고 떠났다. 희승은 큰 어르신을 배웅한 뒤 성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죄송해요 성연 씨, 일단 돌아가시는게…” "한 번만 볼게요" 성연은 침착하게 그의 말을 끊었다. 희승은 멈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성연을 방으로 안내했다. 지훈은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는데, 준수한 얼굴은 약간 창백하고 쇄약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성연은 침대 곁으로 걸음을 옮기며 눈살을 찌푸렸
“대표님이 감염된 바이러스는 신종 바이러스 입니다” 희승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없어 30년 전 바이러스보다 후기에 발병할 확률이 높고 전이도 훨씬 빨라요” 성연은 입술을 오므린 채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 돌봐주세요”그녀는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차 앞에 이르자 성연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창문을 바라보았다.차 안으로 들어가 말했다. “돌아가죠” 지윤은 백미러로 그녀를 보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차 안에 앉아 있던 남자는 성연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차갑게 웃었다. "드디어 찾았네" 며칠 후. 성연은 식당에서 남호연을 만났다. 남호연은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성연 씨가 며칠을 고민하셨는데, 어떻게 결정하셨는지요?” 성연은 무심하게 고개를 들고 휴대전화를 한쪽으로 거둬들였다. “제가 외할아버지의 부정권을 당신에게 드리면, 당신은 지훈 씨를 살릴 수 있는건가요?” 남호연이 자리에 앉자 종업원이 다가와 그에게 술을 한 잔 따랐다. 종업원이 물러난 후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를 구해주길 바라나요?" "그가 바이러스에 걸린 건 당신 덕이 크죠. 당신들이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혹시 예상치 못한 감염을 피할 수 있는 백신도 있지 않을까요?" 성연은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남호연은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성연 씨, 정말 귀엽네요. 만약 우리가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진작 성공했겠죠. 다른 사람에게 시험해 볼 필요가 없었겠죠?” "하하" 성연은 눈을 내리깔고 손끝을 살며시 술잔에 대고 맑은 소리를 냈다. "외할아버지 손에 있는 부정권 한 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더니, 이제와서 살리지도 못한다고 하시니, 제가 이 거래를 할 것 같나요?" "사실 당신이 이 거래를 하든 안 하든 저는 상관없어요. 제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니거든요” 남호연은 책상 위에
남호연은 두 손을 들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승낙한다면, 제가 지금 전화해서 사람들을 철수시킬게요, 약속드리죠” “당신은 나를 한번 속였어요” 성연은 핸드폰을 집어 가방에 넣고 천천히 일어섰다. “제가 다시 당신을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됩니다" 남호연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단지 부정권 한 표를 얻고 싶을 뿐이고,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당신의 체면을 봐서 그를 한 번 봐줄 수 있어요" 성연이 웃었다. “좋아요, 승낙하죠” 남호연은 그녀가 승낙하자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철수 해” 그런 후 그녀를 바라보았다. "만족하시나요?" 성연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남 선생님, 저는 손해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번에 저를 이용하셨으니, 이 일은 제가 똑똑히 기억 할 것입니다” 그녀는 그를 향해 빙긋 웃으며 어두운 얼굴을 하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지윤은 차 앞에 서서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다가 그녀에게 물었다. "연혁 선생님의 부정권을 정말 그에게 주실 겁니까?" 성연은 웃었다. “완병지계라고, 제가 한 수 쉬어 갈 타이밍이에요” 그녀는 차 안에 탔다. 지윤이 차에 올라 운전하였고, 성연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에 저장된 파일을 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사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백신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라, 바이러스가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의 입을 통해서 들어야 했을 뿐이었다. 진작에 남호연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남호연을 믿지 않았다. 이런 사람을 상대할 때는 음모가 필요하다. 그저 그가 먼저 자신을 이용할 줄은 몰랐을 뿐이었다. 남호연은 일부러 사람을 써서 장도 별장 근처에 매복시켜 놓고 손을 쓰지 않았는데, 정말 순수히 그녀의 외할아버지의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들어 희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 지훈은 침대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희승이 들어왔다. "대표님, 남호연이 저희의 거처를 알고
지훈은 멍하니 있다가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왔어?” 희승은 가볍게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럼 저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그는 방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성연은 지훈에게 다가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지훈 씨, 죽을 때까지 나한테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을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죠?" 지훈은 그녀를 올려다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성연은 몸을 굽혀 그를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당신이 죽고 싶은 거라면, 미안하지만죽기 전에 이혼 합의서부터 서명해주세요. 과부가 되어 재혼하는 것은 원치 않아요" 평소 재혼 이야기가 나오면 질투심이 하늘을 찌르던 지훈은 이번엔 그저 웃기만 하며 그녀의눈을 은은히 바라보았다. "적합한 사람을 찾았어?" 성연은 일어서서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이요, 적임자를 찾으라고 하면, 구천광이 괜찮겠죠. 게다가 그 사람은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니까요. 그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한, 제가 서울로 돌아가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지훈은 눈썹을 가볍게 찡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웃으며 물었다. “아쉬워요?” “그가 당신을 받아준다고 해도, 구가에서 당신을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어” 지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금 저의 신분이 구가에 못 미친다고요? 어쨌든 반정도는 황실의 피가 흐르는 셈이니, 그 어떤 명문가 아가씨 신분보다 더 빵빵한 거 아니겠어요?" 성연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걱정 마요, 구가네와 반가네는 가까워요. 앞으로 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면, 천광 씨와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갈 수 있죠. 겸사겸사 당신 앞에서 우리 부부의 신혼 생활을 보여줄 수도 있고요" 점점 어두워지는 그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더욱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이러면 당신도 안심하고 갈 수 있겠죠?” 지훈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화병에 걸려 죽을 것 같았다. "왜 그래요?" 성연은 일부러 그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데이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어쩐지 가면을 쓰고 계시더라고요” 헨리는 외신에서 앨리스가 친딸이라고 주장했지만 앨리스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로, 혼혈의 느낌이 전혀 없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럼 두 분은 전부터 알던 사이인가요?” 성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지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차를 반쯤 마신 후 데이브는 소파에 앉았고, 희승은 그를 위해 차 한 잔을 따랐다. 지훈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데이브, 무슨 급한 일 있어요?" 데이브는 차를 마실 틈도 없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굴다가 간신히 침착한 후 대답했다. “사실 정말 급한 일이 있습니다. 저희 쪽 사람이 레겔 왕작이 이번 후보 선출 일을 앞당겼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부 정계에 있는 사람들은 저희 아버지와 아버지 동료 몇 명을 제외하고 모두 왕작에게 매수당했어요” 지훈의 얼굴은 굳어졌고 목소리는 유난히 가늘었다. “그들이 그렇게 빨리 행동했다고요?”선거는 적어도 월말까지는 있어야 할 텐데, 레겔이 z사건에 개입해 선거를 앞당길 줄은 몰랐다. 그가 이렇게 대놓고 행동하는 것은 여왕과 밀러 가문의 사람들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저도 레겔이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어쩌면 뒤에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데이브는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그가 뽑은 사람이 차기 정계 인사가 된다면, S국 국민들도 아마 편치 않을 겁니다” 레겔은 왕작일 뿐이고, 이미 귀족과 양심 없는 상인들이 공민들을 착취하는 것을 도왔다. 세금이 인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농업 자산도 모두 나누어 가졌다. 농민들이 힘들게 농작한 땅조차 그들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니, 그들을 누가 원하겠는가? 그들은 귀족과 황족의 개가 되어 욕먹는 거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연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민중들의 의사표시는 어떤가요?" 데이브는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수는 항의했지만 절
“지훈 씨, 제가 남아서 당신이랑 함께 있는 건 동의 할 수 있어도, 아직 당신을 용서하지는 않았어요” 성연은 말을 마치고 그를 살며시 밀어낸 후 일어나 그를 바라보았다. “제 일은 나중에 따로 해결할 거예요. 잘못을 만회하고 싶으면 일단 계속 살아요”지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 ** 요 몇일 간 성연은 장도 별장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는 지윤에게 문자를 보내 놓아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해두었다. 요즘 그녀와 지훈은 각방에서 잠을 잤다. 어떤 남자가 한밤중에도 그녀의 방에 와서 그녀의 침대를 차지했지만,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지훈이 그녀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녀가 감염되지 않더라도 다시 임신했을 때 바이러스를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었다. 유아는 성인보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녀의 모친은 그녀를 임신했을 때 스스로 항체를 주사했기 때문에 그녀의 아버지 강진은 감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항체는 모친에겐 쓸모없었고, 그녀 역시 바이러스 유전자를 물려받게 되었다. 마침 그 항체 약제가 바이러스와 함께 포화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성연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남호연이었다. 한 손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자 성연은 휴대전화를 거두고 얼굴을 찡그렸다. “안 쉬고 뭐해요?”지훈은 그녀의 보송보송한 정수리에 턱을 괴고 벙긋 웃었다. "내가 정말 병들어 누워 있을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성연아, 난 요 며칠 너와 함께 있는 것이 꿈만 같고 현실이 아닌 것 같아”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안았다. 만약 꿈이라면, 꿈에서 깨어 나 그녀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성연은 멍해졌다. 이 남자의 넓은 어깨와 따뜻한 품은 예전처럼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왜 지훈을 사랑했을까, 어쩌면 그의 곁에 있으면 편안해 지고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래, 누가 그 차가운 남자가 태양보다 뜨거워 빙하를 녹일 정도라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