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영도 여기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가방을 들려고 고개를 돌려 보니 소파 위에 강성연이 놓고 간 휴대폰이 보였다.“어, 왜 휴드폰을...”휴대폰을 드는 순간 화면이 밝혀지면서 읽지 않은 메시지가 보였다. 그런데 송아영은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건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육예찬은 송아영을 보며 말했다.“강성연 휴대폰인가요?”송아영은 대답하지 않고 가방을 들고 따라 나갔다.“예찬아, 저 사람들...”심혁수가 물었다. 남은 두 명도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육예찬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을 일으켰다.“다들 먼저 마셔. 난 나가 볼게.”바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송아영은 육예찬에게 붙잡혔다. 육예찬은 느긋하게 말했다.“구천광에게 어디 있냐고 전화해서 물어봐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송아영은 넋이 반쯤 나간 얼굴이었다.육예찬은 그녀가 자기 말을 듣지 못했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 입을 열려고 했는데 송아영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반지훈 씨가 성연이랑 이혼할 거래요.”강성연은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았다. 구천광이 도착했을 때 공원에는 그녀 혼자 외로이 있었다.구천광은 그녀에게 다가갔다.“늦은 시각에 여자 혼자 이런 곳에 있으면 반지훈이 걱정 안 해요?”“그 사람이 절 걱정할까요?”강성연은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미소에서 약간의 냉담함이 보였다.“그거 모르죠? 반지훈 씨는 저랑 이혼할 거래요. 이미 마음먹은 것 같아요.”“이혼할 생각이라고요?”구천광의 눈동자에 잠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강성연이 말했다.“이혼 합의서도 이미 준비됐는데 제가 뭘 어쩌겠어요?”강성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조했다.“저한테 양육권과 TG그룹 지분의 반을 준대요. 절 아주 살뜰히 챙기던데요.”그는 그녀와 다투고 빼앗을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그녀에게 주식까지 줄 생각이었다. 이혼하게 되면 강성연은 많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그게 뭐 어쨌다고?강성연은 그가 왜 꼭 이혼하려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네. 그를 아껴주는 부모가 있다는 게 부러웠어요. 자유로운 모습도 부러웠고요.”구천광은 웃었다.그의 눈동자에서 외로움을 읽어낸 강성연은 그가 진심으로 반지훈을 부러워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구천광은 또 덤덤히 말했다.“예전에 누군가 저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사람이 꿈이 없고 자신을 위해 살 줄 몰라서 그저 틀에 박힌 채로 매일을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비참한 거라고요.”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말했다.“저한테 이 얘기를 해준 사람은 반지훈의 어머니인 미영 이모였어요.”강성연은 입을 뻐끔거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구천광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저희 집안 어르신들은 아주 엄격한 분들이었어요. 전 어릴 때 예절과 규칙을 배우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책을 읽어 학식을 배워야 했어요. 사립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배워야 할 게 더 많아졌죠. 쉴 수 있는 틈이 거의 없었고 심지어 친구를 사귈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명문가에서 태어난다면 지위가 높고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그만큼 규칙이 엄격하다는 걸 강성연은 알고 있었다.“그럼 반지훈 씨랑은 어떻게 알게 됐어요?”강성연은 갑자기 반지훈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구천광이 말했다.“제가 잘못을 저질러 집에서 무릎 꿇고 있다가 너무 억울해서 집에서 뛰쳐나왔어요. 그러다가 길에서 반지훈과 그의 어머니를 만났었죠.”당시 그는 어린아이였고 반지훈은 그보다 한 살 위였다. 미영은 무력하게 구석에서 울고 있는 구천광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 물은 뒤 그를 반씨 저택으로 데려왔다.그때부터 구천광은 반지훈과 알게 되었다. 그는 반씨 집안에서 걱정 없이 즐거웠고 그곳에서 집의 따뜻함을 느꼈다.미영은 그를 잘 대해주었다. 구천광은 틈날 때마다 반씨 저택에 놀러 갔고 미영은 매번 그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줬다. 그녀는 구천광을 아들처럼 아꼈고 반지훈은 당시 어머니가 구천광을 좋아하는 걸 보고는 속 좁게 질투했다. 그래서 항상 그에게 말대꾸하다가 말싸움도, 그냥 싸움도 이기지 못해 결국 떼를
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희영에게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구세준이 집안 때문에 미영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반지훈은 없었을 것이고 구천광도 지금의 구천광이 아닐 수 있었다.모든 건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그들이 변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강성연은 반지훈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6년 전의 황당함과 슬픔, 임신, 그리고 6년 뒤 운명의 톱니바퀴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만남은 결국 강성연의 선택이었다. 당시 위너 주얼리를 되찾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다면, s국에 남아서 영광과 명예를 누렸다면 그녀는 아마 평생 아이의 아빠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구천광은 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늦었으니 데려다줄게요.”긴 이야기를 들은 강성연은 그렇게 심란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고마워요.”“저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 정도면 친구죠.”구천광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강성연과 구천광이 공원에서 나오는데 반지훈이 차 앞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강성연은 며칠째 반지훈을 보지 못했다. 다시 만나니 그사이 꽤 수척해진 듯했다. 하지만 강성연은 그가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그녀는 걸음을 옮겨 그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반지훈이 돌연 구천광에게 덤덤히 말했다.“강성연을 좋아한다면 우리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 이혼하면 너한테 양보할게.”그 말에 강성연의 걸음이 뚝 멈췄다.구천광은 눈을 가늘게 떴다.“아깝지 않아요?”반지훈은 코웃음을 쳤다.“겨우 여자일 뿐인데 뭐가 아깝겠어.”설렜던 강성연의 마음에 칼이 꽂히는 듯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기쁨과 기대가 얼굴에서 사라졌다.구천광은 강성연을 힐끔 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이혼하고 난 뒤 강성연 씨한테 TG그룹 지분 절반을 나눠준다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TG 지분을 이렇게 많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줄 것 같지 않은데요?”반지훈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그는 깊이 감춰둔 감정을 티 내지
“반지훈 씨, 당신...”육예찬은 정말로 덤벼들어 그를 세게 때리려 했지만 송아영이 계속 그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충동적으로 굴면 송아영이 다칠 수도 있었다.육예찬은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고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때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반지훈은 너무했다.“그만 해요.”강성연의 표정이 점차 평온해졌다. 심지어 적막했는데 안색이 흐려져 아무런 감정도 보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는데 손이 차갑고 살짝 떨렸다.고개를 들어 반지훈을 본 강성연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하지만 반지훈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볼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었다.“반지훈 씨, 제가 이혼하지 않겠다면 어쩔 거예요?”강성연은 이 정도로 비굴해졌다. 그녀는 만회할 수 있길 바랐고 양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반지훈이 그녀를 내쫓는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s국에서 목숨 걸고 그녀를 지켰던 반지훈이다. 그런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자신에게 질렸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저 사람이 한 말 들었잖아요. 저런 남자랑 이혼하면 더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예요.”강성연이 자신을 오빠라고 부를 때부터 그는 강성연을 여동생으로 생각했다.처음에 강성연이 반지훈과 만난다는 걸 알았을 때, 비록 연혁이 외할아버지이긴 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반지훈을 헐뜯은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에게 헤어지라고 할 생각도 없었다.하지만 직접 듣고, 직접 봤으니 말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반지훈이 강성연을 아끼지 않는다고 해도 육씨 가문과 그의 외할아버지가 그녀를 아껴줄 수 있었다.송아영도 이번에는 육예찬의 편이었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성연아, 정신 차려. 저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떠나자. 이 세상에 남자가 저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다들 반지훈의 태도를 보았다. 질렸다고? 이혼한 뒤에 강성연을 다른 남자에게 준다고? 어떻게 그런
시간이 많지 않았다.차 문이 쾅 닫힌 뒤 검은색 차는 점차 멀어져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강성연은 그 자리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개를 숙이자 시야가 흐릿했고 뜨거운 눈물이 활짝 핀 꽃처럼 그녀의 신발 위로 툭 떨어졌다.송아영은 강성연의 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성연아,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저렇게까지 하는데...”“다른 사람은 몰라.”강성연은 덤덤한 어조로 그녀의 말허리를 잘랐다. 등불 때문에 강성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그녀의 쓸쓸한 뒷모습이 드리워졌다. 강성연은 한참 뒤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 강씨 저택에 데려다줘.”강성연은 끝내 머리를 들지 못했다.구천광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말했다.“제가 차 가져올게요.”돌아가는 길 내내 강성연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강씨 저택으로 돌아온 강성연은 휴대폰을 건네받은 뒤 구천광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구천광은 그녀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간 뒤 구천광은 미간을 구기며 사색에 잠겼다. 잠시 뒤 그는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같은 시각, 반씨 저택.반지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왈칵 피를 토했다. 그는 계단 난간에 기대어 몇 번 기침했다. 계단 팔걸이를 얼마나 힘주어 잡고 있는지 손등에 핏줄이 뚜렷하게 나타났다.성연아, 미안해.반시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너져 내릴 듯한 감정에 그는 또다시 격렬히 기침했다.등을 켜고 아래층으로 내려온 김 집사는 깜짝 놀랐다.희승은 개인 의사를 데리고 다급히 반씨 저택으로 향했다. 의사가 방 안으로 들어갔고 희승과 김 집사는 문 앞에 서 있었다.“대표님께서 외출하셨어?”희승은 반지훈의 상태를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 반지훈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아직 외부에 들킬 수 없었다. 사람들이 패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 의사는 반지훈이 잠복기가 지난 상태라 며칠간 계속 미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해
“너 출근해야 하지 않아?”“휴가 신청하면 되지. 까짓거 며칠 돈 못 버는 것뿐이잖아.”송아영은 손을 휘적이며 대답했다.강성연이 컵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그녀는 곧바로 컵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성연아?”송아영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성연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엎드려 토했다.“성연아, 괜찮아?”송아영이 밖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강성연이 토하는 모습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성연아, 너 설마...”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강성연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요즘 속이 좋지 않고 입맛도 없는 데다가 생리도 늦어졌다.설마?강성연은 변기 물을 내린 뒤 평평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나왔다. 얼굴이 많이 창백해져 있었다.송아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랑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볼래?”강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진짜 임신이라면?어떻게 해야 하지?반지훈은 그녀와 이혼하려 한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는 뭐가 될까?송아영은 강성연을 병원에 데려다준 뒤 그녀와 함께 진찰받으러 갔다. 그리고 곧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강성연은 임신했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했다.“임신하신 지 5주 되셨네요. 요즘 어디 부딪히는 거 조심해야 하고 잘 쉬셔야 해요. 마음가짐도 편히 하셔야 해요. 과도한 긴장과 불안 때문에 유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성생활도 삼가셔야 해요.”배 위에 올려둔 손이 살짝 떨렸다. 강성연은 검사 결과를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송아영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송아영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반지훈 씨 너랑 이혼할 생각인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강성연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러게.”하필 이혼하려고 할 때 임신이라니.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지훈은 단호히 이혼하려고 할까?송아영과 병원 홀에 도착했는데 벽에
“반지훈 씨가 뜬금없이 저랑 이혼하려고 할 리 없어요!”강성연은 살짝 흥분한 기색을 띠며 눈시울을 붉혔다.“어르신, 제발 부탁드릴게요. 반지훈 씨 만나게 해주세요.”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이를 악물었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걔는 이미 너랑 이혼하려고 마음먹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거냐? 강성연, 너 때문에 지훈이 많이 다쳤어. 그걸로 부족하니? 우리 반씨 집안은 너랑 아이 양육권도 다투지 않을 생각이야. 심지어 지훈이는 주식까지 너한테 양도했어. 그걸로도 부족해?”강성연의 차갑게 식은 손가락이 희게 질렸다.그것들이 그녀가 바라는 것인가?아니었다!강성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전 제대로 설명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에요.”뒷짐을 지고 있던 어르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자가 겪은 일을 떠올리자 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제대로 된 설명을 바란다고? 처음부터 난 너희 둘을 반대했다. 내가 지훈이한테 이혼하라고 협박했다. 넌 걔랑 어울리지 않아.”반지훈이 아주 모질게 굴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든 나쁜 사람은 내가 되어야지.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이를 악물었다.“강성연, 네가 정말 지훈이를 생각한다면 이혼해. 우리 집안은 네 체면을 충분히 봐줬다. 진짜 법원까지 가게 되면 법에 따라 강제적으로 너희들의 혼인 관계를 끊을 거다. 그렇게 되면 너만 난처하게 될 거야. 그리고 지훈이도 동의했다. 앞으로 절대 너랑 엮이지 않겠다고. 미워할 거면 날 미워해라. 난 내 손자가 다치는 꼴 절대 못 본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집안은 네가 아이를 계속 키울 수 있게 할 거다. 하지만 너랑 지훈이는 절대 잘 될 수 없다. 지훈이도 포기했는데 넌 왜 포기 못 하는 거냐?”포기했다고?강성연은 쓴웃음을 지었다.심장 한쪽이 도려진 것처럼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또 아렸다.“어르신, 적어도 한 번 만나게 해주세요...”“걔는 널 보지 않을 거다. 돌아가거라.”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손을 휘저은 뒤 그녀를 보지 않고 몸을 돌
익숙한 병원 소독수 냄새에 강성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온 건 흰색 천장이었다.“성연아, 깨어났어?”송아영은 강성연이 정신을 차리자 웃으며 물었다.병실 안에는 강진과 희영도 있었다. 강진은 희영에게서 강성연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강진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성연아, 의사 선생님이 너보고 푹 쉬라고 했어. 너... 임신했다더라. 이번에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다고 했어.”강성연은 넋을 놓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배를 어루만졌다. 사실 조금 미안했다. 하마터면 아이를 죽일 뻔했기 때문이다.강성연은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다.“누가 절 병원에 데려다준 거죠...”정신을 잃기 전 누군가를 보았던 것 같았다.강성연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대충 눈치챈 송아영은 입을 비죽였다.“우리 오빠야. 조금 전에 매니저가 불러서 갔어.”강성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희영은 강성연이 몸을 일으키며 앉으려 하자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만약 희승이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강성연이 임신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한참 뒤에야 강성연은 무감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다들 나가 있어요. 잠깐 혼자 있고 싶어요.”희영은 잠깐 주저했고 송아영은 강성연을 위로했다.“그래. 우린 먼저 나가 있을게. 푹 쉬어.”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병실에서 나간 뒤 강성연은 침대 헤드에 기대어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그녀의 눈빛은 고인 물처럼 파문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반씨 저택.“뭐라고? 강성연 씨가 임신했다고?”희영의 전화를 받은 희승은 강성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하필 이때 임신이라니.그러면 반 대표님은...그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에 일단은 반지훈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반지훈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무슨 일이냐?”희승은 살짝 당황했다. 그는 이 사실을 어르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