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출근해야 하지 않아?”“휴가 신청하면 되지. 까짓거 며칠 돈 못 버는 것뿐이잖아.”송아영은 손을 휘적이며 대답했다.강성연이 컵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그녀는 곧바로 컵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달려갔다.“성연아?”송아영도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성연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변기 뚜껑을 열자마자 엎드려 토했다.“성연아, 괜찮아?”송아영이 밖에 서 있었다. 그녀는 강성연이 토하는 모습을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성연아, 너 설마...”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강성연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요즘 속이 좋지 않고 입맛도 없는 데다가 생리도 늦어졌다.설마?강성연은 변기 물을 내린 뒤 평평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나왔다. 얼굴이 많이 창백해져 있었다.송아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나랑 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볼래?”강성연은 거절하지 않았다.진짜 임신이라면?어떻게 해야 하지?반지훈은 그녀와 이혼하려 한다. 아이를 낳게 된다면 아이는 뭐가 될까?송아영은 강성연을 병원에 데려다준 뒤 그녀와 함께 진찰받으러 갔다. 그리고 곧 그들이 예상했던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강성연은 임신했다.의사는 검사 결과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는 컴퓨터에 무언가를 입력했다.“임신하신 지 5주 되셨네요. 요즘 어디 부딪히는 거 조심해야 하고 잘 쉬셔야 해요. 마음가짐도 편히 하셔야 해요. 과도한 긴장과 불안 때문에 유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성생활도 삼가셔야 해요.”배 위에 올려둔 손이 살짝 떨렸다. 강성연은 검사 결과를 들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송아영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송아영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반지훈 씨 너랑 이혼할 생각인데 갑자기 임신이라니,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강성연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러게.”하필 이혼하려고 할 때 임신이라니.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반지훈은 단호히 이혼하려고 할까?송아영과 병원 홀에 도착했는데 벽에
“반지훈 씨가 뜬금없이 저랑 이혼하려고 할 리 없어요!”강성연은 살짝 흥분한 기색을 띠며 눈시울을 붉혔다.“어르신, 제발 부탁드릴게요. 반지훈 씨 만나게 해주세요.”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이를 악물었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걔는 이미 너랑 이혼하려고 마음먹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끈질기게 구는 거냐? 강성연, 너 때문에 지훈이 많이 다쳤어. 그걸로 부족하니? 우리 반씨 집안은 너랑 아이 양육권도 다투지 않을 생각이야. 심지어 지훈이는 주식까지 너한테 양도했어. 그걸로도 부족해?”강성연의 차갑게 식은 손가락이 희게 질렸다.그것들이 그녀가 바라는 것인가?아니었다!강성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전 제대로 설명해주길 바라는 것뿐이에요.”뒷짐을 지고 있던 어르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자가 겪은 일을 떠올리자 그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제대로 된 설명을 바란다고? 처음부터 난 너희 둘을 반대했다. 내가 지훈이한테 이혼하라고 협박했다. 넌 걔랑 어울리지 않아.”반지훈이 아주 모질게 굴지 못한 듯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든 나쁜 사람은 내가 되어야지.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이를 악물었다.“강성연, 네가 정말 지훈이를 생각한다면 이혼해. 우리 집안은 네 체면을 충분히 봐줬다. 진짜 법원까지 가게 되면 법에 따라 강제적으로 너희들의 혼인 관계를 끊을 거다. 그렇게 되면 너만 난처하게 될 거야. 그리고 지훈이도 동의했다. 앞으로 절대 너랑 엮이지 않겠다고. 미워할 거면 날 미워해라. 난 내 손자가 다치는 꼴 절대 못 본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집안은 네가 아이를 계속 키울 수 있게 할 거다. 하지만 너랑 지훈이는 절대 잘 될 수 없다. 지훈이도 포기했는데 넌 왜 포기 못 하는 거냐?”포기했다고?강성연은 쓴웃음을 지었다.심장 한쪽이 도려진 것처럼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또 아렸다.“어르신, 적어도 한 번 만나게 해주세요...”“걔는 널 보지 않을 거다. 돌아가거라.”반지훈의 할아버지는 손을 휘저은 뒤 그녀를 보지 않고 몸을 돌
익숙한 병원 소독수 냄새에 강성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맨 처음 시야에 들어온 건 흰색 천장이었다.“성연아, 깨어났어?”송아영은 강성연이 정신을 차리자 웃으며 물었다.병실 안에는 강진과 희영도 있었다. 강진은 희영에게서 강성연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강진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성연아, 의사 선생님이 너보고 푹 쉬라고 했어. 너... 임신했다더라. 이번에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다고 했어.”강성연은 넋을 놓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배를 어루만졌다. 사실 조금 미안했다. 하마터면 아이를 죽일 뻔했기 때문이다.강성연은 무기력하게 입을 열었다.“누가 절 병원에 데려다준 거죠...”정신을 잃기 전 누군가를 보았던 것 같았다.강성연이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대충 눈치챈 송아영은 입을 비죽였다.“우리 오빠야. 조금 전에 매니저가 불러서 갔어.”강성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희영은 강성연이 몸을 일으키며 앉으려 하자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만약 희승이 얘기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강성연이 임신한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한참 뒤에야 강성연은 무감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다들 나가 있어요. 잠깐 혼자 있고 싶어요.”희영은 잠깐 주저했고 송아영은 강성연을 위로했다.“그래. 우린 먼저 나가 있을게. 푹 쉬어.”강진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병실에서 나간 뒤 강성연은 침대 헤드에 기대어 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봤다.그녀의 눈빛은 고인 물처럼 파문이라고는 전혀 없었다.반씨 저택.“뭐라고? 강성연 씨가 임신했다고?”희영의 전화를 받은 희승은 강성연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하필 이때 임신이라니.그러면 반 대표님은...그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에 일단은 반지훈이 깨어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반지훈의 할아버지가 다가왔다.“무슨 일이냐?”희승은 살짝 당황했다. 그는 이 사실을 어르신
지난 3일 동안 지훈은 단 한 통의 메시지나 전화도, 심지어 나타나지 않았다. 희영은 도시락을 테이블에 놓으며 대답했다. “의사가 지금 너무 쇠약한 상태래요. 태기도불안정하고… 몸 관리 잘하셔야 퇴원할 수 있어요” 성연은 말을 하지 않았다. 희영은 성연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침대로 데리고 가 앉혔다. "언니, 어서 뭐라도 좀 드세요. 식으면 맛없어요" 그녀는 요 며칠 입맛이 없어서 뭐를 먹기만 하면 토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보고 마음이 아파 그녀에게 영양식을 만들어주었다. 안에는 기본적인 좁쌀죽이 들어있었다. 입맛이 없더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녀는 억지로라도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희영을 바라보았다. "요 며칠 동안 고마웠어요. 간호도 해주고 아빠 음식 배달도 해주고" “에이, 별일 아니에요. 저한테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희영은 사소한 일에 생색내지 않았다, 성연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상사라 생각하지 말고 언니처럼 대해줘요" 희영은 그녀를 상사로 대하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언니라고 생각하라 하니 약간 어색했다. 이리저리 생각하며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럼 앞으로 친 언니라고 생각할게요” 성연은 웃었다. “희영 씨 편하실 대로 해요” 정오가 되고 희영이 돌아간 후, 그녀는 혼자 아래층 정원에서 멍하니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었다. 정원에 있던 사람들 대다수는 모두 입원 중인 노인들로 그녀 같은 젊은이는 드물었다. 그림자 하나가 그녀에게 내리쬐는 햇빛을 가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고, 약간 당황하였다. “구천광 씨?” 구천광은 웃었다. “얼굴이 많이 좋아진 것 같네요” 그녀는 멍하니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렇죠, 병원에서 요양 중이니 안색도 많이 좋아지겠죠” 따스한 햇살 아래, 정원에 있는 젊은 두 남녀는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남자는 잘생기고 겸손하여 기품이 범상치 않았고, 여자는 우아하고 온화하였다. 그 둘은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였다. 같은 환자복을
할머니는 무척 기뻐하며 휴대폰을 꺼냈다. “그럴까? 나야 그러면 총각한테 고맙지” 구천광은 셀카 한 장을 찍어준 뒤 할머니에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건넸고, 검은색 안경테를 꺼내 썼다. "하마터면 알아볼 뻔했네요" 성연은 웃었다. “천광 씨는 그렇게 유명하고 인기도 많으면서 이렇게 대놓고 병원에 오시고, 누가 알아볼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요” 어르신들이 젊은이들 만큼 연예계에 관심을 갖지 않아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그도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주목을 끌면 아마 위층 사람들 모두 내려와 그에게 싸인을 받으려 할 것이다. 구천광은 그저 웃었다. 그도 얼마 있지 않아 그녀와 함께 병실로 돌아갔다. 그는 그제야 말했다. "전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푹 쉬세요" “네” 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구천광은 밖으로 나가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말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송아영에게 전화하세요." 그 말인즉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송아영에게 말하고, 송아영은 그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상 승낙했다. 비록 구천광은 자신을 돕기를 원하지만, 성연은 정말 일이 생긴다 해도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우선 구천광은 연예계의 인기인이고, 그녀는 구천광에게 또 다른 스캔들이 생기게 할 수 없었다. 구천광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희승이 나타났다. 희승을 보자 성연의 얼굴은 약간 어두워졌다. 그녀는 희승이 가져온 그 서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이혼합의서에 서명하라는 거예요?" 희승은 잠시 멈칫 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혼 합의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성연 씨, 서명해 주세요. 서명해 주시는 게 성연 씨와 대표님 모두에게 좋습니다" 그는 사실 성연이 지훈을 매우 깊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훈은 어찌 아니겠나, 하지만 그 일을 성연이 알게 된다면 그녀는 더더욱 떠나지 않을 것이다. 지훈은 단지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지훈은 비록 시간이 몇 년 밖에 없어도,
성연은 당황하였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눈빛이 차갑고 악의적이어서 그녀가 누군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서영유! 그녀는 s국에 있지 않나? 그녀가 돌아왔다! “성연아?” 차 안, 강진은 성연이 차에 오르지 않고 계속 다른 곳을 응시하는 걸 보고 불렀다. 성연은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제가 방금 본거 같아요…” 하지만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려 보았을 때, 그녀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강진은 다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 봤어?" 성연은 입을 벙긋거리다가 그저 “아니에요” 4글자만 뱉어냈다. 그녀가 잘못 본 거겠지? 서영유는 s국에 있고, 그녀가 한 일을 지훈이 다 알고 있는데, 그녀가 감히 돌아올 수 있겠는가? 아마 그럴 것 같지 않다. 성연이 차에 오르자 희영은 그제서야 차에 시동을 걸고 천천히 떠났다 그러나 차 안에서 성연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왔다. 마치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납작한 배에 손을 얹었고, 시선은 그녀가 아직 끼고 있는 백옥 반지로 떨어졌다.그녀는 아직 이 반지를 빼지 못했다. 그녀는 차가운 백옥 반지를 엄지손가락에서 빼어냈고, 창밖에서 들어온 빛은 투명한 백옥 반지 위에 내리쬐었다. 그녀는 반지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큰 소리가 귓가에 빙빙 맴돌았다. 땅과 하늘이 뒤집힐 때, 온몸에 뼈가 부스러지는 듯한 아픔이 번져 왔다. 그녀는 귀에서 윙윙 소리가 들렸고 아랫배에서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뭔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아빠…" 성연은 희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지만,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을 때 강진은 약간의 움직임 없이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성연의 호흡은 희미해졌다. 그때 차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누군가가 차 문을 열고 그녀를 뒤집힌 차 안에서 끌고 나갔다. “안돼...” 성연은 고통을 참으며 아버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특히 지훈이 깨어나 있는 것을 보고 당황했다. “대...대표님” 큰 어르신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그 경호원은 희승을 흘깃 보다 다시 지훈을 보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희영 양과 성연님, 그리고 그녀의 아버님이...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저희가 급히 갔을 땐 이미 차에 불이 붙어 있었습니다" 희승은 감정이 격해진 채 앞으로 나와 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저희도…저희도 방금 소식을 접했는데, 한 시간 전에 희영 양과 그분 들이… 모두 차 안에 있었습니다" 희승은 그 자리에 굳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훈아!” 큰 어르신은 정신을 차렸고, 지훈이 갑자기 침대에서 내려와 박차고 나가려는 것을 발견했다. 사고 현장,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쳐놓아 인파를 차단하고 길목을 봉쇄해 차량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소방관과 의료진이 도착한 뒤 곧바로 진화작업을 벌였고, 불에 탄 차량은 뼈대만 남아 있었다. 지훈은 군중 속에서 뛰쳐나왔고, 경찰이 그를 막았다. “선생님, 사고 현장에 들어오시면...” “꺼져!” 통제력을 잃은 지훈은 그들을 밀어냈고, 경찰이 강제적인 수단을 쓰려 하자 한 경찰관이 그를 알아보고 재빨리 막았다. "잠깐" “반 대표님? 당신이 여기 왜...” 지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타는 차 앞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옮겨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경찰관들은 모두 당황했다. “성연아, 성연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돌아와, 나를 떠나지 마. 성연아…우리 이혼하지 않아도 돼, 나를 혼자 두지 마….” 지훈은 통곡을 하며 무너졌다. 늘 차갑고 거만하던 남자가 사람들 앞에서 불타는 차 앞에 무릎을 꿇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애워싸고 구경하던 군중들 모두 그를 알아보았다. “저거 반 대표 아냐?” “얼마 전에 대표가 아내와 이혼했다고 발표했잖아, 근데 왜….” “혹시 그의 아내가 이 차에 있었던 건가…”
성연은 어리둥절해하며 아래에서 위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서양인 외모에 빙하처럼 푸른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리비어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고 분위기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짙은 회색 줄무늬 양복에 피코크 블루색 넥타이를 매고 황금 핀을 꽂아뒀는데, 뱀 무늬 심벌이 박혀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우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내 웃으며 말했다. "역시 너가 그녀의 딸이구나. 정말 똑같아” "누구세요?" 성연은 멍하니 있었다. "리비어가 말 안 했나?" 남자는 그녀를 침대에 부축하고 앉아 한참 동안 그녀를 쳐다보다가 덤덤하게 말했다. “보아하니 말 안 한 것 같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고 꼬은 다리에 놓인 두 손을 마주잡았다. "지금 나의 신분은 헨리야. 리비어는 나와 같은 메트로폴리탄의 사람이자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지. 나는 그와 함께 너의 어머니를 모셨고, 너의 어머니 곁에서 그녀를 지켰지"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지키고 있는 뱀무늬 반지로 떨어졌고, 그것을 가르키며 물었다. "이거, 리비어가 준 거지? 호신술을 가르쳐 주었나 보네" 성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있는 뱀무늬 반지를 만졌다.리비어 아저씨는 이 남자의 편이다. 리비어 아저씨한테 엄마를 보호하라고 시켰지. 설마 그가... “당신이 X?” 성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바로 수십 년 간 의학계에서 자취를 감춘 바로 그 “X”가 아닌가? 그는 사실 사라진 게 아니고 신분을 바꾼 것이었다. 심지어 메트로폴리탄의 우두머리가 되다니? 그는 부인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지만, 성연은 이미 그가 X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X라는 것을 알고 성연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시집간 후에도 X를 잊지 않았다 했는데, 그는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분명 서로를 매우 사랑했을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분명 매우 잘생겼을 것이다.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그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