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몸은 비에 젖어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고, 옷에서는 은은한 구찌 향기를 풍겼다. 연초에서 나는 민트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찔렀다. “걱정하게 했네” 성연은 그의 품을 살며시 밀쳤다. "다들 괜찮아요? 왜 병원에 왔어요?" 희승은 코끝을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우리는 괜찮아요. 안 괜찮은 사람은 따로 있죠" 성연은 머리를 들어 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훈 씨!” 성연은 소리를 듣고 병원을 급히 찾은 큰 어르신과 서영유를 보았다. 특히 서영유는 지훈이 무사한 것을 보고 묘한 의아함을 느꼈지만 그 감정도 이내 잔물결처럼 사라졌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지훈, 괜찮아? 할아버지께서 너가 사고가 날 뻔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급히 오셨어" 지훈은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큰 어르신을 바라보았다. “난 괜찮아” 큰 어르신은 원래 불안한 마음으로 왔으나 지훈이 무사히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마음이 놓였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 희승이 대답했다. "큰 어르신, 저와 대표님이 돌아가는 길에 두 대의 차가 쫓아왔습니다. 그 차가 저희를 덮치려했고, 그들을 따돌리려 할 때 사고가 날 뻔했지만, 그들이 먼저 사고를 다할줄은 몰랐습니다. 이후 저와 대표님이 사람들을 병원으로 데려왔습니다" 서영유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끝이 하얗게 질렸다. 큰 어르신은 황당해하며 물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추적을 당하다니,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낸 것이냐?"희승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저와 대표님이 병원에 있을 생각인데 깨어나면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누가 반지훈을 건드렸을까? 손바닥에서 온기가 느껴지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훈이 그녀의 손을 움켜쥔 것이었다. 지훈이 움켜쥔 그녀의 손끝은 부드러운 손바닥 속에서 무언가를 손짓했다. 그녀는 잠시 진정제를 먹은 것 같았다. 그때 의사가 다가왔다. "대표님, 환자가 깨어났습니다" "알겠습니다" 지훈
그는 허약한 모습으로 대답했다. “나는 당신을 모함하지 않았어. 분명 당신이 명령한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그런 적 없어!" 서영유의 과도하게 흥분하고 격분한 모습에 큰 어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과연 표정에서 깊이 자리 잡은 의심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서영유는 노인의 팔을 잡고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누명을 쓴 거예요. 제가 얼마나 지훈이를 좋아하는데, 제가 어떻게 지훈이를 해치는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지훈의 말은 싸늘했다. “네가 아니면 누구인데?”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고 눈시울을 붉히며 해명했다. "지훈아,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내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있다 해도 너는 해칠 수 없어, 너를 해치려고 했다면 틀림없이 연가의 사람일 거야!" 그녀는 침대 곁으로 달려들어 다그쳤다.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야, 왜 나를 모함해!" 희승이 급히 그녀를 떼어놓았다. 서영유는 지금 매우 불안한 상태라 과도하게 흥분하였으나, 여전히 자신이 누명을 쓰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성연의 눈빛은 싸늘해졌다. 방금 지훈이 그녀의 손에 쓴 '계획'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었다면 이 일이 연가와 관련이 있다고 믿을 뻔했다. 지훈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연씨 집안 식구들이 그런 거였구나" "지훈아, 나를 믿어. 이것은 틀림없이 연가의 계략이야….""연가의 사람이 한 일이라면 왜 그가 너를 지목했을까?" 지훈의 표정은 아무런 온기도 없이 싸늘했다. "연가 사람과 아는 사이야?" 서영유의 약간 열린 입술은 순간적으로 떨려왔다. "아니, 난 몰라"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나도 그들이 왜 나를 모함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그만해라!” 큰 어르신은 엄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안색이 어두웠다. "정말 연가의 사람이었다면 지금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은 바로 지훈이다. 내가 비록 늙었지만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서영유, 더 이상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게야.
그가 말한 계획이 큰 어르신 앞에서 서영유를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을 찾아 이런 연극을 하는 거였단 말인가? 희승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모님, 우리의 자작극이 아닙니다. 저와 대표님은 돌아오는 길에 다른 사람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비가 와서 길이 미끄러웠고, 제가 만약 운전 기술이 없었다면 사고가 난 것은 우리 쪽이었을 것 입니다. 그 졸개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고, 이미 경찰서로 이송되었습니다. 대표님과 제가 사람을 시켜 연기를 한 것은 그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여 공격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 거였어요?" 성연은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정말 서영유의 사람들인가요?" 서영유는 지훈을 좋아하지 않나? 그런 그녀가 왜 이렇게 했을까? 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경찰서 안에서 몇 사람이 이미 자백했어. 누군가가 그들에게 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라고 한 거야"성연은 서영유가 방금 입만 열면 연가와 관계가 있다고 한 것을 떠올렸다. 알고 보니 그녀가 연가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큰 어르신의 의심을 증폭시키려는 것이었다. 희승이 말했다. "맞아요, 저와 대표님이 이렇게 한 것도 서영유 씨 뒤에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였어요. 오늘 밤 일이 있은 후 큰 어르신은 서영유 씨에 대해 100%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서영유 씨도 그녀의 사람들이 그녀를 배신했다고 생각할 것이에요" 서영유는 큰 어르신의 신뢰에 의존했다. 게다가 그녀는 훈련소에 다녀왔고, 꼼꼼하게 일을 했으며, 이러한 모든 단계별 계획에는 그녀가 빠져나갈 뒷길이 있었다. 다만 그녀가 너무 조급했던 것이 안타깝다. 너무 조급한 나머지 큰 어르신에게 이런 일이 그녀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여 큰 어르신의 의심을 피하려 하였다. 만약 오늘 밤 그들에게 정말 일이 생겼다면 큰 어르신은 분명 연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 일은 그녀가 그녀의 사람이 그녀를 배신했다고 생각하게 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기다리다가 그녀가 또 무슨
뱃속 뜨거운 열기에 그녀의 뺨은 약간 뜨거워졌다. "머리가 아직 마르지 않았어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좀 있으면 마를 거야” 성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얇은 가운이 흘러내려 그녀의 몸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그의 목을 감아 뒤로 푹 쓰러졌고, 온정과 혼란에 빠졌다. 창밖의 빗소리가 점차 잦아들었고, 유리창에는 물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른 아침, 커튼 사이로 희미한 빛이 들어와 침대 위로 부드럽게 쏟아졌다. 성연은 전화소리에 깼다. 그녀는 손을 뻗어 휘적이며 휴대전화를 더듬었고 잠이 덜 깬 듯 나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예요” 이 목소리는.... 성연은 몸을 일으키고 앉아 무의식적으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주소록에 저장된 번호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예찬 씨, 무슨 일 있어요?" "외할아버지가 당신을 만나려고 해요. 여덟 시에 남양 식당에서 봬요" 육예찬은 정확한 약속 시간을 남겼다. 성연은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 승낙했다. 그녀는 세수를 마치고 위층에서 내려왔다. 식탁에는 잘 차려진 아침 식사가 보였고, 지훈은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우아하고 고귀해 마치 어젯밤 짐승처럼 흉악하고 거친 남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일어났어?" 지훈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 "네" 성연은 볼이 뜨거워져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지훈은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일찍 안 일어나면 어떻게 아침을 만들어 주겠어" 성연은 입을 삐죽거리다 생각이 나서 말했다. "이따가 육예찬을 만나러 가야해요" 지훈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윽한 눈빛 아래에는 한 줄기 웃음이 배어 있다.그녀가 자진해서 그에게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하는 것은 그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적어도,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잡지를 내려놓
성연은 눈을 내리 깔았다. “지훈 씨의 증조할아버지가 아버지 손에 죽을 뻔했다고 해도, 지훈 씨의 어머니는 당신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나요? 이미 계산 끝난 건데 왜 미워하겠어요?” 원한을 언제 갚을 생각인지, 두 집안의 원한을 왜 후대가 감당해야 하나? 연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계산이 끝나?” 그의 표정은 엄해졌으나 침착하게 말했다. "나와 반가는 계산이 끝날 수 없다. 하물며 반가가 그 해에 연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너는 알고 있느냐?" 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다리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때 갑자기 몸을 돌린 연혁은 바짓단을 올렸다. 건강한 다리가 아닌 기계식 의족이 눈에 들어왔다. 성연은 의아해했다."봤냐, 이것이 그 해 반영운의 작품이다. 아버지를 강제로 조정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서 내 한쪽 다리를 잘라버렸지"연혁은 독설을 퍼부었다. "나는 7~8살이었고, 아직 어린 아이였지. 다리가 부러지는 고통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이었다. 이 악몽이 반지훈의 증조부가 내게 준 것이다!" 성연의 안색이 약간 창백했다. 겨우 일곱여덟 살밖에 안 된 아이의 다리가 잘려졌다고? 연혁은 배를 움켜쥐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콧방귀를 뀌었다. "반영운은 처음에 아버지가 조정에서 물러나기만 하면 나를 무사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결국 약속을 어겼지. 하긴, 빈민가에서 올라온 벼룩, 들개, 불량배들이 어떻게 약속을 지킬 수 있겠어? 아버지는 나에 대한 복수를 하러 반영운을 찾아갔는데, 반영운은 아버지의 손에 죽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열여섯 살 되던 해에 연가를 인수한 이후 아버지는 의문스럽게 돌아가셨다” 성연은 그의 눈에서 증오를 보았는데, 그 증오는 살면서 본적 없던 증오의 눈빛이었다. "나중에 아버지의 사인을 조사해 보니 반영운과 제니가 낳은 그 잡종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혁은 시큰둥하게 웃었다. 그가 말하는 그 '잡종'은 누구인가, 성연은 훈련소에서 이미 지훈에게 들은
그의 말이 협박이든 경고이든 성연에게는 결코 두려워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전 세계가 지훈 씨의 적이라 해도 적어도 저는 아닐 것입니다" 성연은 식사할 뜻을 남기지 않고 룸에서 두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고 식당을 나섰고, 서영유와 큰 어르신과 마주쳤다. 서영유는 어젯밤 일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성연의 눈을 마주보며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공교롭게도 여기서 성연 씨와 마주치다니, 성연 씨도 식사 약속이 있는 건가요?" 성연은 입술을 오므리고 미소를 지었다. “네, 식사는 이미 했어요. 그럼 전 이만”큰 어르신이 여기 계시다가 육예찬과 연혁이 나타난다면, 서영유는 옆에서 부추길 것이다. 그녀의 입은 종잡을 수 없었다.그녀는 큰 어르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떠나려 했지만, 서영유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왜 그렇게 급하게 가려해요, 할아버지랑 와서 밥 먹으려 했는데, 할아버지의 손자며느리로서 함께 밥을 먹자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죠? 그리고 저도 전에 제가 한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 드리고 싶은데, 제 체면을 세워주시겠어요?” 성연의 표정이 복잡했다. 서영유가 일부러 못 가게 한 게 분명한데, 설마 그녀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 아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그녀가 거절한다면, 그것은 큰 어르신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큰 어르신은 기다리기 싫다는 듯 서영유에게 말했다. "먹었으면 강요할 필요 없이 그냥 가면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은 필요 없어" 보아하니 큰 어르신은 여전히 그녀를 남으로 여기는 것 같다. 성연이 입을 열려고 하자 이때 육예찬과 연혁이 룸에서 나왔다. 서영유는 눈에 은근한 우쭐함을 보였다. 큰 어르신이 연혁을 보았을 때 안색이 변했고 눈빛은 어두워졌다. 연혁은 지팡이 짚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거침없이 말했다. "내가 Z국에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네 가식적인 얼굴을 볼 줄이야, 반서준" 큰 어르신은 더욱 연혁에게 지지 않았다. "그래, 그럼
"됐다" 큰 어르신은 손을 들어 성연의 말을 끊으며 어두운 눈빛을 보냈다. "네가 한 말을 기억하면 돼" 큰 어르신은 돌아서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서영유는 성연의 눈빛 속 암담함과 불쾌함을 보고는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성연 씨, 할아버지는 결국 나를 편애하니 헛수고하지 마세요" 성연은 그녀를 보며 냉소했다. "그래요, 영유 씨는 이간질하는 능력으로 큰 어르신의 환심을 샀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반가에 남으려고 하니, 이름을 반영유로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지훈 씨와 남매가 되어야 명분이 서지 않겠어요?" 서영유는 얼굴을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 “성연 씨, 잘난 척 하지마요” 그녀의 어깨를 밀고 빠른 걸음으로 큰 어르신을 따라갔다. 성연은 남양빌딩에서 나오자마자 희영이 차 안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차에 올라탔고 큰 소리로 차 문을 닫았다. 희영은 그녀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는 것을 보고 물었다. "형수님, 괜찮으세요?" 성연은 이를 악 물고 웃었다. "괜찮아요, 밥 먹는데 파리가 꼬여서 속이 좀 안좋아요" "남양 식당 위생이 그렇게 안 좋다고요? 파리까지?" 희영은 그녀의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고소해야겠네요!" 성연은 애써 웃었다. "자, 회사로 돌아가요” 희영은 성연을 위너 주얼리까지 데려다주었다. 위너가 정식으로 영업을 하기 전이라 홀이 조용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지훈의 전화를 받았다. "밥 먹었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화가 풀린 성연은 웃어보였다. "밥은 안 먹고 얘기만 좀 했어요" 그는 잠시 멈췄다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곁에 없으니 입맛이 없어?" 성연은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았다. "남양 식당에서 서영유랑 큰 어르신과 마주쳤어요. 큰 어르신은 내가 연혁과 만나고 있는 줄 알고 계셨고 나에 대한 오해는 깊어졌을 거예요" "걱정할 것 없어. 내가 설명 할게” 휴대전화를 사이에 두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위
그녀는 이대로 가다가는 그의 눈에서 불꽃이 타오를 것을 알았다. 비록 지금 회사에 아무도 없지만, 그녀는 반크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을거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무슨 말이예요. 근데 그 남자가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냈어요?" 그는 고개를 들어 짙은 눈빛을 거두고 답했다. "훈련소 사람이야" "훈련소 사람, 설마….” "알고 있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목에 키스하고 키스마크를 남겼다. 성연은 그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자신도 모르게 손끝을 움츠렸다. “희승 씨네 랑 같은 계급인 건가...음” "응?" 지훈은 일부러 동작을 멈추었다. 슬퍼하는 그녀의 얼굴을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 성연은 입술을 깨물고 어색하게 눈을 떼며 소리쳤다. “좀 제대로 대답해요!”그는 웃었다. "그럼 아무렇게나 소리 내지 마, 위험해." 성연은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다. 그러자 지훈은 더 이상 그녀를 놀리지 않고 대답했다. "최 교관이야" "그 사람이라니?"성연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정말 최교관이 바로 그 '스파이'이고, 현지의 일에 가담했다고요?” 최교관과는 당연히 아는 사이지만, 그 일이 최교관과 관련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날 사격 시험장에서 최교관은 계속 감독하고 있었다. 하정윤이 독사에게 공격을 당해 그녀가 손을 뻗어 그녀를 귀하다가 물렸을 때도, 최교관과 희호는 가장 먼저 그녀에게 달려왔다. 만약 최교관이 누군가 뱀을 놓아 그녀를 해칠 것을 미리 알았다면…. 하지만 당시 하정윤이 뱀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심사원들이 뱀을 놀라게 했을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물렸을 텐데, 그가 설마 이 문제를 걱정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날 최교관은 뱀이 나타날 일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최교관은 왜 그랬을까?" 성연은 의심했다. "그 남자가 최교관을 보호한다면 절대로 위험을 무릅쓰게 하지 않을 것인데" 지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잖아. 그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