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예은은 희망이를 품에 안았다.“왜? 불만 있어? 아니지, 네가 감히 의견이나 있겠어?”반재신은 어이없어하며 웃고는 희망이에게 양말을 신겼다.“너희 짜고 그런 거지? 나만 괴롭히네.”진예은은 희망이한테 말했다.“빨리 아빠한테 뽀뽀해. 아니면 아빠 삐진다!”그녀는 희망이 보고 다가가라 했다. 희망이는 온 입에 침이 가득한 상태로 아빠 볼에 뽀뽀했다. 반재신은 하편으로는 싫은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모녀한테 다가가서 뽀뽀했다.…연서가 쓴 작문 ‘나의 아빠는 한 개의 별이다.’는 1학년 신입생 중의 일등을 차지했다.그녀는 교탁 위에서 이 작문을 읽었을 때, 밑에 있는 담임마저 이 아빠를 보지 못했던 아이를 가여워했다.진예은과 반재신이 연서의 입학식을 참가해 교실 밖에서 연서가 작문 읽는 소리를 들었다.그녀는 입술을 오므렸고 연서는 창호를 통해 그녀를 봤다.진예은은 웃으면서 연서를 향해 손을 저으면서 그녀를 위해 응원했다.“연서 보러 오셨나요?”진예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담임이 말했다.“연서 학생의 입학 숙제는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이 어린 나이에 아빠가 없다니 참 마음이 아프네요.”반재신은 진예은의 어깨를 감싸며 담임에게 말했다.“이후에도 선생님께서 우리 연서를 많이 보살펴 주시길 바랍니다.”담임은 미소 지었다.“당연히 그래야죠. 연서는 아주 말 잘 듣는 아이예요. 나도 그 아이를 좋아합니다.”진예은과 반재신이 눈을 마주치더니 서로를 보면서 웃었다.교실 내에서는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연서의 낭독도 끝이 났다. 그녀는 허리 숙여 감사를 표시했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더 이상 옛날의 간이 작고 열등감 넘치는 여자애가 아니었다.지금은 활발하고 햇볕처럼 따스한 여자애가 되었다.진예은과 반재신이 학교를 떠나자, 반재신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연서가 지금처럼 이렇게 훌륭해지니 너도 이제는 마음이 놓이지?”진예은은 웃으며 말했다.“맞아. 이것도 너 이 고모부한테 감사해야지, 안 그래?”“감사는 구희나랑 형수님한테 해. 그녀들이
“너!”“아가씨, 재언 도련님 말씀이 맞아요! 아가씨는 정말 가만히 있지 못해요.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나요.”남우는 할 말이 없었다.모두가 자기를 아이 취급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반재언은 그녀를 안고 정원에 돌아왔다. 남강훈과 서진은 장기를 두고 있었다. 서진이 머리를 들어 이 모습을 보자 놀렸다.“남우는 또 어디로 달아나서 놀다 이렇게 잡혀 온 거야?”남강훈은 콧방귀를 꼈다.“임신한 사람이 자기가 아직 철없는 애인 줄 알고 싸돌아 다니네. 걱정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가 없어.”남우는 심호흡하며 반재언을 봤다.“빨리 내려줘.”그가 남우를 내려놓자, 남우는 정자 안으로 들어갔다.“장기를 두시네요. 아버지, 이 장기 수평으로 무슨 장기를 둔다고요?”서진은 피식하며 소리 내고 웃었다.남강훈은 머리를 들었다.“왜? 내가 뭐라고 했다고 기분 나빠져서 이 아비 엿먹이러 왔냐?”“아버지, 이 장기판을 봐요. 상대방이 아버지의 병마를 먹었는데 혼자서도 못 노시면서 남이 뭐라 하지도 못하게 하고!”남강훈은 말문이 막혔다.“너!”그러자 서진은 웃었다.“남우야. 너 혼자 알았으면 되지, 왜 입 밖으로 말하고 그러니.”반재언은 정자에 들어가 장기판의 국면을 보더니 허점을 보고는 말했다.“장인어른, 여기로 가요. 그럼, 상대방 장수를 먹을 수 있어요.”남강훈은 자세히 보더니 기뻐했다.“역시 내 사위야.”서진은 웃음기를 거두었다.남우는 반재언을 째려봤다.“나 너랑 결투할 거야!”남우는 반재언과 장기를 두었다. 남강훈과 서진 두 어르신은 자리를 비켜주고는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시월과 하인들도 구경하러 왔다.남우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장기 판에서 앞뒤로 공격한 적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서진은 남강훈 옆으로 다가갔다.“당신 딸의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요.”남강훈은 두 팔을 껴안았다.“상대가 우리가 아닌데 늘었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그는 안정적으로 발휘하는 반재언을 보면 볼 수록 마음에
집사가 웃으면서 말했다.“지금, 이 시대에 장기를 둘 줄 아는 젊은이들이 점점 적어졌는데 재언 도련님이랑 종언 도련님은 역시나 훌륭한 젊은이인 것 같습니다.”남강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종언은 확실히 훌륭기에 진작에 그가 우수한 것을 알고 그를 제자로 삼았다. 그의 실력도 남우보다 못하지 않았고 만약에 반재언이 나타나지만 않았다면 종언은 무조건 그의 사윗감 후보 중 한 사람일 것이였다.한 명은 그의 사위이고 한 명은 그의 제자다. 두 명의 우수한 남자가 모두 자기하고 관계있으니 남강훈은 이 시각 무척 득의양양해졌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장기판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서진이 가까이 다가가 보며 훈수를 두었다. “아이고, 이 국면을 딱 보니 각자 모두 우세가 있어서 높고 낮음을 가리기 힘들구먼.”종언은 반재언을 바라봤다.“반 씨 큰 도련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저라고 어디에다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네요.”반재언은 담담하게 웃었다.“종 사장님, 과찬이십니다. 어쨌든 장기판에서 내가 이기지 못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남우는 두 팔을 껴안았다. 그녀도 승인한다. 자기는 너무 실력이 없다.시월은 그녀의 옆에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가씨, 난 왜 못 알아보겠죠? 도대체 누가 이긴 거예요?”남우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 실력도 고만고만해서 잘 모르겠어.”반재언은 머리를 들고 그녀를 봤다.“남우야. 이리 와.”그녀는 자기를 가리켰다.“나?”시월은 살짝 그녀를 밀쳤다.반재언이 일어섰다.“지금부터 네가 둬.”“뭐라고?”반재언은 그녀보고 앉으라 하고 그녀 옆에서 몸을 숙였다.“날 믿어.”남우는 장기판을 보고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모를 때 반재언이 말했다.“오른 쪽에 있는 포를 세 발자국 앞으로 전진하여 상대방의 차를 막아.”남우는 그의 말을 따라 포를 움직여 경계선에 놓았다.종언이 웃었다.“재밌군요.”그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남우는 두 보스 간의 대진 중에서 벌벌 떨었다. 반재언이 다시 말했다.“포를 한 발 뒤로
남강훈도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난 남우를 딸로 20년이나 키웠어. 얘가 성격이 제멋대로 하는 게 습관이 됐길래 사관학교에 보내서 연마하고 나니 성격이 더 강해졌어.”종언은 아무말도 말하지 않았다.한참 지나 남강훈은 그를 쳐다봤다.“종언아. 너는 내 제자이지만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너를 아들로 생각했어. 내 마누라가 일찍 돌아가고 남우도 시집 보냈으니, 반평생을 나도 보람 있게 지낸 것 같아.”종언이 눈동자를 굴렸다.“사부님은 신체도 건강하니 살날이 아직 많이 남으셨어요.”남강훈은 웃었다.“멀긴 하지, 그래봤자 2, 30년뿐일텐데 언제든 오겠지 않느냐.”종언은 묵묵히 차를 마셨다.“넌 언제 장가가는데?”남강훈이 이렇게 묻자, 종언은 잠시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아직 안 급해요. 인연을 한 번 찾아봐야죠.”남강훈은 천천히 차를 마셨다.“인연이란 게 올 때 되면 오겠지.”…4개월 후.영예 금상 영화제가 의성에서 막을 열었다. 무대 아래 많은 배우가 있고 스타들이 총출동한 것이 보인다.주계진과 윤수아 그리고 심훈이 함께 앉아 있고. 기타 배우 스타들도 자리가 배치되어 있었고, 우영은 그들의 옆자리에 앉았다.그때. MC가 무대에서 호명했다.“명예 금상 영화제 후보 대표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쌍교’, ‘다시 1980’, ‘네가 있는 사계절 모두 봄이다’, ‘흑해전쟁’...”MC가 모든 대표작을 읽고는 몇초간 머무르더니,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그리고 올해의 다크호스 ‘안개’까지. 우선 모든 상을 받은 작품들을 축하합니다.”무대 아래 박수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윤수아는 주계진의 옆에 다가갔다.“네가 출연한 이번 작품 만약에 상을 받지 못하면 진짜로 임 매니저와 유이 씨의 재배에 먹칠한 겁니다.”주계진은 쯧쯧 소리를 냈다.“당신이 이걸 왜 상관하는데요?”그녀는 콧방귀를 꼈다.“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상관쓴다고 뭐라 하라니.”뒤이어 감독상을 발표했다. 역시나 방 감독님이 ‘안개’로 최고의 감독영예상을 받았다. 방 감독
모든 배우의 시선이 주계진에게 쏠렸고, 주계진도 멍해졌다.“우리 주최 측에서 그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이분을 마지막 엔딩에 남겨두었어요. 자! 우리 주계진 배우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첫 영화 ‘안개’로 베스트 남우주연상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주계진은 모든 사람의 박수 소리에 믿기지 않는다는듯이 일어섰고, 윤수아는 그를 밀쳤다.“멍하니 뭐하고 있어. 빨리 올라가!”주계진은 머리가 하얗게 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상을 받고 수상 발언을 할 때 그는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마음속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나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무대 아래에서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MC도 웃으며 말했다.“주계진 씨, 당신은 지금부터 진정한 배우입니다. 수상했다는 것은 시청자들이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꿈 아닙니다.”“저, 저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주계진은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다.“저는 해가 서쪽에서 뜬 거 같아요. 지금도 제가 수상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저도 제 연기가 별로인 거 알아요. 매니저 형님도 내가 처음엔 초짜라 놀렸지만 관객분들과 제작진분들이 끝까지 저를 포기하지 않아줘서 정말 감사합니다.”말하고 나서 또 한참 침묵하다 계속 말 했다.“감사할 사람을 말하라고 하면 당연히 매니저 형한테 감사드려요. 비록 그의 성격은 개떡 같지만 사람은 진짜 좋아요. 하하. 그리고 유이 씨한테도 감사해요. 제가 유이 씨 덕을 봐서 수상한 거 같아요. 제가 돌아가서 유이 씨를 조상 모시듯 하겠습니다. 진짜입니다. 다들 웃지 마시고요.”무대 뒤에 있는 임석진은 이마를 짚었다. 이 새끼가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지.진짜 창피해 죽겠다!아니나 다를까, 주계진의 이상한 수상 발언은 이튿날 바로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갔다. 열기도 아주 높았다. 팬들도 자기 우상을 대놓고 깠다.그가 무대 위에 수상하러 가는 것이 형벌을 받는 것처럼 괴롭다는 말도 있었고 그가 수상 발언을 하는 것은 마치 MC가 칼을 그의 목에 댄 것처럼 급해서 막무
강유이는 분만실 안에 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상황을 모른다. 강성연과 반지훈도 걱정한다. 진예은과 반재신도 좌불안석이다.한태군은 계속 갔다 왔다 하면서 아예 가만히 있지 못한다.그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한 번 죽다 살아나는 건지 알고 있다. 비록 지금 의료기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고생은 한다.두 시간 뒤.의사가 분만실에서 나오더니 모든 사람이 달려갔다.“어떻게 됐어요?”의사는 놀랐다.“모두 임산부 가족입니까?”모든 사람이 대답했다.“네!”한태군은 빨리 물었다.“제 와이프 지금 어떤가요?”“아이가 너무 커서 순산 못 해서 제왕절개해야 해요. 빨리 가족분 누가 사인 해주세요.”한태군은 갑자기 의사의 옷깃을 잡아당기더니 이마에 핏줄이 섰다.“내가 들어가서 같이 있어 줄게요.”의사가 결정을 못 하자 반지훈이 명령했다.“그는 내 딸의 남편입니다. 들어가게 해줘요. 내가 사인할게요.”그는 동의서에 빨리 사인했다.“더 이상 지연하지 마세요. 제 딸이 가장 중요합니다. 빨리 수술해요.”한태군은 방역복을 입고 의사를 따라 들어갔다. 그는 분만실에 들어가 유이의 창백한 얼굴 그리고 힘이 빠져 울고 소리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쪼였다.그는 다가가서 강유이 손을 잡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곁에 있어.”강유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무기력하게 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도 잠겼다.“나 지금 못생겼지…?”그녀가 아프다고 하지 않고 생김새를 걱정하는 것을 보고는 한태군은 손바닥으로 그녀 얼굴에 있는 땀을 닦아내고 다정하게 웃었다. “아니, 엄청나게 이뻐.”의사는 그녀의 몸에 마취를 했고 강유이는 빨리 잠에 들었다.수술 과정에서 한태군은 옆방에서 기다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주먹을 꼭 쥐었다.의사가 분만실에서 걸어 나와 그들에게 웃으며 말했다.“축하드립니다. 세쌍둥이고, 모두 남자애입니다.”강성연은 반지훈과 서로 마주 봤다.“방금전에는 쌍둥이라 하지 않았어요?”의사가 말했다.“우리
“이 자식들이 널 이렇게 애 먹이다니. 나중에 얘네들이 너 화나게 하면 내가 때려줄게.”그의 말에 강유이가 환하게 웃었다. “그들이 오빠랑 같이 잘생기고 총명할 건데. 난 마음 아파서 못 때려.”일주일 뒤, 강유이가 세쌍둥이를 낳았다는 뉴스가 서울에 뒤덮었다. 팬들은 격동할 나머지 축복을 안겨줬다. 남우와 반재언도 급히 서울로 돌아와 보러 갔다.병실 안, 남우가 배내옷을 입고 카트에 누워 있는 세 아이를 보고 참지 못하고 손으로 그들의 볼을 찔러봤다.“세 아이라니. 유이야 완전 대박이야!”침대 머리맡에 기대고 있는 강유이가 쓴웃음을 지었다.“엄마처럼 딸이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그렇게 많은 치마와 인형을 샀는데 완전 다 버리게 생겼어.”말에는 딸이 없다고 투덜댔지만, 그녀가 세 아이를 볼 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반재언은 손을 내밀어 예전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만졌다.“됐어. 아들딸 다 좋아. 중요한 건 모자가 모두 안전하다는 거야.”그녀도 웃었다.“큰오빠, 정말 고마워.”한태군과 반재신이 사 온 가지각색의 영양품과 과일이 쌓여 병실 안에 꽉 찼다.반재언과 남우도 있는 것을 보고 반재신은 멍했졌다. “형, 돌아왔어?”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유이가 세쌍둥이를 낳았는데 나랑 남우도 당연히 와야지.”“유이씨, 저 왔어요!”주계진이 선물을 들고 떠들썩거리면서 병실 안으로 들어와 보니 VIP 병실에 사람이 너무 많아 발 들일 자리도 없어 멈춰 섰다. 모든 사람이 그를 쳐다봤다.강유이가 방금 주계진이 한 말을 듣고 눈빛에 원한이 가득했다.“주계진, 너의 입으로 점치러 가지 않은 게 참 아까워!”주계진은 강유이와 한태군부부가 자기를 죽일듯한 눈빛을 보고 침을 삼켰다.“아니. 내 입이 어때서요? 난 그저 수상 발언할 때 유이 씨를 조상으로 모시겠다고 했지 왜 또 점치는 거랑 관계있어요?”남우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반재언과 옆에서 구경했다. 반재신도 구경에 꼈다.강유이는 콧방귀를
여왕 자리는 정연이 며느리를 이뻐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인 것 같았다. 옆에 앉아 있는 한희운은 어쩔 수 없이 웃으면서 책을 덮었다.“됐어. 그렇게 보고 싶으면 태군이한테 영상통화 하면 되잖아?”정연은 갑자기 일어섰다.“빨리 안 하고 뭐 해.”한편, 진원.보모한테 아이 기저귀 가는 것을 배우고 있는 한태군은 갑자기 엄마한테 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한쪽에 가서 전화했다.“어머니?”“나쁜 아들, 빨리 내 며느리하고 손자나 보여줘!”정연은 화가 나서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한태군은 귀가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멀리 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알았어요.”옆방에 있는 강유이가 정연의 목소리를 듣고 걸어 나왔다.“어머님이셔?”영상에서 강유이를 보자 정연은 급해서 일어섰다.“유이야. 왜 침대에서 내려왔어? 제왕절개 했으니 충분히 쉬어야 해. 살이 너무 많이 빠진 것 같아서 내가 다 마음이 아프다.”강유이는 입을 실룩거렸다.그녀는 아이를 낳고 체중이 많이 빠졌다. 그래도 전에보다 4킬로나 쪘다. 역시나 모든 엄마 눈에 보이는 ‘살 빠졌다’는 말은 다 똑같다.“어머님, 괜찮아요. 오늘 칼 자리가 많이 아프지 않아서 내려왔어요.”“그래도 안 되지. 한국에서는 아이 낳고 모두 몸을 풀어야 한다면서? 너 봐봐 얼마나 약한지? 몸 다 풀 때까지 푹 쉬어야 해.”정연은 말하고 나서 또 화난 얼굴을 했다.“아들!”한태군은 어쩔 수 없이 화면을 자기한테로 옮겼다.“여기 있어요.”“내 며느리 잘 보살펴야 한다. 아니면 돌아올 생각 하지 마. 됐고. 빨리 내 손자들 보여 줘!”한태군은 말문이 막혔다.강유이는 참을 수 없어 웃었다.아이 방. 영상에서 세 아이 모습이 드러났고 정연은 화면을 만지작거렸다.“아이고, 내 세 손자가 진짜 귀엽다. 할머니가 얼른 안고 싶다.”한희운도 다가와서 봤다.“어디 나도 좀 보자.”두 사람은 화면에 얼굴을 박을 기세였다. 한태군은 핸드폰을 들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