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결과 줄리안나가 암시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가 암시장에 몸 담근 적 있다는 소식이 퍼지는 순간 명성이 나락으로 치닫는 건 시간문제였다.줄리안나의 아버지가 마침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을 때, 비서가 USB 메모리를 들고 들어왔다."조금 전 어떤 남자가 와서 이걸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줄리안나의 아버지는 USB 메모리를 받아 들고 비서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USB 메모리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USB 메모리 속에 담긴 것은 CCTV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줄리안나가 암시장에 납치된 모든 과정이 담겨 있었다. 그의 표정은 무섭게 싸늘해졌다.같은 시각, 한태군의 차가 줄리안나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태군은 창문을 내리고 커다란 저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에 다시 올라탄 전유준은 백미러를 통해 한태군을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 USB 메모리는 말씀대로 전해드렸습니다."한태군은 시선을 거두며 창문을 올렸다."줄리안나가 암시장에 있다는 소식은 걔가 퍼뜨린 거예요?"한태군이 말한 '걔'는 리사였다.전유준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리사는 그날 암시장에서 도망 나간 후 모텔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10만 원을 꺼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최근 꾸준히 돈을 이체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고요."한태군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역시 지금껏 연락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군요."전유준은 조사하는 과정에 수차례나 자기 눈을 의심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가 저지른 짓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리사는 한재욱의 목숨을 구해준 척 한씨 집안의 양녀가 되기까지 했다. 만약 한태군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진작에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른다.암시장에서 도망 나간 리사는 곧바로 줄리안나의 소식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줄리안나의 명성에 먹칠하면 그녀의 아버지가 조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그 기회를 노려 다시 착한 사람 흉내를 내려고 했을 것이다.다행히 한태군이 리사의 꼼수를 예상
강유이는 한태군을 바라보며 물었다."그걸 어떻게 알았어?"한태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을 전부 설명하고 나면 강유이가 자신을 두려워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잔인한 면을 강유이에게 보여준 적 없었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강유이의 맑고 깨끗한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태군은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 자신의 본모습이 비칠까 봐 두려웠다.한태군은 손을 들어 강유이의 눈을 막았다."나를 그렇게 보지 마.""왜?"강유이가 손을 밀어내며 묻자, 한태군은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왜긴, 뽀뽀하고 싶어져서 그러지."역시 이 방법이 먹혔는지 강유이는 귀가 빨개진 채로 시선을 피했다.한태군은 강유이를 기숙사 아래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몸을 돌리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한태군은 그 사람을 향해 걸어가며 물었다."오래 기다렸어?"반재신은 팔짱을 끼더니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리사는 왜 또 풀어준 거야? 묶어두려면 좀 제대로 묶어두라고."반재신은 당연히 강유이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유이와 줄리안나의 사건을 담은 문장이 리사의 계정으로 업로드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한태군은 시곗줄을 약간 느슨하게 풀며 말했다."리사는 진작에 우리 집안에서 나갔어."반재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한태군이 이어서 말했다."리사 일은 내가 해결할게. 근데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한태군은 반재신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더니 무언가 말했다. 반재신은 약간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가 너를 도와준다고 착각하지 마.""알아, 이게 다 유이를 위해서라는 걸."...이튿날.학교에는 문장의 열기를 덮을 만한 엄청난 영상이 돌기 시작했다. 영상 속의 여자는 줄리안나가 아닌 다른 여자였다. 흔히 알려진 얼굴이라 알아보기 어렵지는 않았다."이 사람 한씨 집안의 수양딸 아니야?""우웩,
강유이가 리사의 말을 믿지 않고 암시장으로 직접 행차해서 조사할 수 있었다. 때가 되면 리사는 줄리안나와 똑같은 방법으로 소문을 냈을 것이다. 소문이란 한 사람을 파괴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진예은은 소문의 영향력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강유이는 리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순진한 줄리안나가 대신 빠지기는 했지만, 이것 또한 바보 같은 선택에 대한 대가가 아닌가 싶다.리사의 영상은 수위가 너무 높은 관계로 금방 삭제되었다. 하지만 영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한씨 집안의 양녀라는 사실에 다들 더욱 흥미를 느꼈다.반면 리사는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팔목을 그어 한재욱을 병원으로 이끌었다. 의사와 얘기를 나누고 난 한재욱은 병실 안으로 들어가 창백한 모습의 리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이게 무슨 일이야?"리사는 엄청난 서러움이라도 당한 것처럼 눈물을 주르륵 흘리기 시작했다."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집안에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아요."한재욱은 침대 곁으로 다가가며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 태군이가 네가 살 곳을 마련해 준다고 하지 않았나?""태군 오빠는... 저를 암시장에 팔아버렸어요. 이번에는 겨우 탈출해서 밖으로 나온 거예요."한재욱이 약간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리사는 조심스럽게 옷 소매를 걷었다. 팔에는 멍든 자국으로 가득했다."암시장에서 매일 맞기만 했어요. Y국에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서 저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어요. 태군 오빠가 저를 싫어하는 건 알았지만, 제가 한씨 집안을 떠났는데도 이런 일을 할 줄은 몰랐네요."리사는 손을 뻗어 한재욱의 옷깃을 잡으며 애원했다."아버지,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안 그러면 진짜 죽고 싶을 것 같아요."한재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리사가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리사야, 내가 너한테 물어볼 일이 있어."처음 보는 한재욱의 진지한
"급할 것 없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잖아."한태군은 메뉴판을 직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러자 강유이는 잠깐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리사한테 따로 지낼 곳을 마련해 줬다고 하지 않았어?""그건 그냥 핑곗거리지."한태군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주스를 강유이의 앞으로 건네줬다. 강유이가 멈칫하는 걸 보고서는 미소를 지으며 이어서 말했다."한씨 집안을 떠나게 할 핑곗거리 말이야."한태군이 리사에게 지낼 곳을 마련해주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자, 강유이는 왠지 모르게 시름이 놓였다. 한태군이 리사에게 너무 잘해줘도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차라리 영원히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이때 강유이는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리사가 암시장에 가게 된 일 말이야, 너랑은 상관없지?"한태군은 흠칫 동작을 멈추더니 머리를 들어 강유이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봤다."... 나랑 상관없었으면 좋겠어?""비록 나도 리사를 미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일부러 해치려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만약 리사가 먼저 너를 해치려고 했다면?"강유이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태군은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지난번 리사가 네 술에 약을 탔어. 비록 네가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 건 아니지.""뭐?"'리사가 내 술에 약을 탔다고...?'한태군은 손을 뻗어 강유이의 볼을 꼬집었다."넌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너를 지켜 줄게."한태군은 이미 자기 손을 더럽혀서라도 강유이를 지켜줘야겠다고 다짐했다.이때 한재욱이 보낸 문자 메시지가 한태군의 휴대폰을 울렸다."나 작은아버지랑 전화하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한태군은 휴대폰을 들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갔다.강유이는 말없이 한태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그가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리사가 암사장에 가게 된 일이 한태군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한태군은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한재욱
강유이는 한태군이 직원을 통해 자신에게 쪽지를 전달 한 줄 알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한참 두리번거렸지만, 한태군은 보이지 않았다.강유이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려고 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녀의 뒤로 가서 매캐한 냄새가 나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리고 빠르게 한 차량을 향해 끌고 갔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휴대폰 화면은 통화 중이었다.한태군은 휴대폰을 들고 레스토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하지만 원래 강유이가 앉아 있어야 하는 자리는 텅 비어있었고,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낯선 쪽지뿐이었다.쪽지 내용을 확인하고 난 한태군은 무서울 정도로 어두워진 안색으로 지나가는 직원을 붙잡았다."지금 당장 CCTV를 보여줘요, 당장!"도로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차 안에서 한태군은 이미 강유이를 납치한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상대는 다름 아닌 레이린의 기사였다.한태군은 전유준에게 전화를 걸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진찬을 위치추적 해줘요."...강유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두 손은 이미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녀가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갑자기 문이 열리고 몇 명의 남자와 여자, 즉 레이린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강유이는 잠깐 멈칫하며 물었다."레이린 씨?"레이린은 의자를 끌어와 그녀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겁도 없이 내 경고를 무시하더니, 꼴 좋네."강유이는 밧줄을 풀어보려고 했지만 너무 꽉 묶은 탓에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다."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레이린은 강유이의 턱을 잡고 그녀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바라봤다."너 한씨 집안 도련님의 여자친구라며? 그래서 나를 얕본 모양인데, 한씨 집안으로는 전혀 나한테 위협이 안 되거든?"강유이는 눈초리를 파르르 떨며 얼굴을 돌렸다."저를 건드린다면 분명히 후회하게 될 거예요."강유이가 자신을 협박하는 것을 듣고 레이린은 홧김에 그녀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무식한 계집애야, 네가 감히 Y국 땅에서 나를 협박해? 너 내가 누군
레이린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런 협박을 듣고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몸을 숙여 강유이의 머리채를 잡았다."왜, 내가 못 할 것 같아?"강유이는 약간 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레이린 씨, 제 손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저한테 무슨 짓을 해도 탓하지 않을게요."레이린은 머리를 돌려 남자들을 바라봤다. 눈빛 신호를 받은 한 남자는 작은 칼을 꺼내 강유이의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을 끊어냈다.밧줄이 흘러내리는 순간 강유이는 남자의 손목을 잡고 칼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레이린의 뒤로 잽싸게 이동해 그녀의 목에 칼을 댔다."가까이 오지 마요!"남자들은 주춤거리며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목에 닿는 서늘한 칼날에 레이린도 완전히 굳어버렸다."이... 이게 어디서 감히...! 만약 내가 죽는다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제기랄, 내가 방심했어. 아무런 반항도 못 하는 토끼 년인 줄 알았더니 감히 나를 인질로 삼아?!'"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강유이는 칼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했다. 칼날이 살결을 파고들자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레이린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했다."지, 진정해! 지금 나를 풀어주기만 한다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강유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제가 바보인 줄 알아요? 지금 레이린 씨를 풀어주면 저는 분명히 죽은 목숨이 될 것 같은데요?"레이린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칼이 목에 닿아 있어서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강유이는 레이린을 데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남자들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고서는 칼에 힘을 주며 말했다."사람 죽는 꼴 보고 싶어요?"겁을 먹은 레이린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들을 향해 말했다."가까이 오지 말라면 가까이 오지 마!"레이린의 머릿속에는 목숨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복수는 칼이 없을 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이때 문밖에서 한태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포위해요.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게."강유이는 멈칫하며 문
레이린은 한태군의 말을 전혀 마음에 담아주지 않았다."한태군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 한씨 가문 출신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나한테... 그러고 보니 진찬 너 방금 한태군 편을 들었지? 너 파혼당하고 싶어?"진찬은 크게 심호흡하고 주먹을 풀었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우리의 혼사가 아니야."레이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같은 시각, 차 안.강유이는 한태군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몸은 고통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태군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물었다."얼굴 아프지 않아? 그 여자가 또 어디를 건드렸어?""구석구석 다 건드렸어. 아파 죽을 것 같아."비록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강유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한태군은 전유준에게 차 속도를 올리라고 했다. 그러자 곧바로 몸이 뒤로 쏠리는 감이 들었다.강유이는 작은 목소리로 한태군에게 물었다."나 얼굴에 흉터 남는 거 아니야?""걱정하지 마."한태군은 강유이의 이마에 힘껏 뽀뽀하며 말했다."상처가 깊지 않아 흉터는 안 남을 거야.""근데 나 곧 죽을 것 같아.""그게 무슨 소리야, 바보야. 병원이 코 앞에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줘."강유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고통으로 인해 약간 헐떡이며 말했다."구해주러 와서 고마워, 태군 오빠..."한태군은 몸을 흠칫 떨며 머리를 숙였다."뭐라고?"강유이는 잠들었는지 그의 품에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 여자 그냥 한태군의 여자친구일 뿐이야.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살짝 손 본 게 뭐 어때서?! 게다가 그 여자 내 목에 상처까지 냈다고, 안 보여?!"레이린은 거실에서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쳤다. 진찬은 말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인내심이 한계를 돌파하자 오히려 덤덤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찬은 레이린의 집안으로 힘을 얻기 위해 그녀의 더러운
강유이는 입을 삐죽였다.이때 병실 문이 예고 없이 열리고 반재신이 무서운 기세로 들어섰다. 그는 무작정 한태군의 멱살을 잡고는 언성을 높였다."야, 애를 제대로 못 돌볼 거면 데리고 나가질 말던가! 이건 어쩌자는 거야!"한태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유이는 통증을 참으며 힘겹게 말렸다."오빠, 내가 줄리안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졸라서 그렇게 된 거야."반재신은 마지못해 손을 놓기는 했지만 언성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았다."줄리안나는 왜 만나려는 건데? 리사한테 당하고 싶어서 환장했어? 넌 어쩌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강유이가 납치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재신은 무슨 정신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모른다. 걱정도 되고, 화도 나는 것이 이 복잡한 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줄곧 마음에 안 들었던 한태군과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으니 말이다.강유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걸 어떡해. 내가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집 안에만 있고 말지.""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그런 게 아니라 나도 일이 이렇게 돼서 속상하다는 거지."통증을 참고 말을 길게 했더니 강유이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반재신이 또다시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한태군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챘다."지금은 둘이 말다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한태군, 넌 닥치고 있어."한태군은 어두운 눈빛으로 반재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나 닥쳐."병실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나온다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의아에 앉아 있던 한태군은 몸을 일으켜 반재신과 시선을 맞췄다."유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 내 탓이야. 네가 유이를 걱정한다는 것도 잘 알아. 하지만 이번 일은 유이를 나무랄 게 아니라, 유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나무라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