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린은 한태군의 말을 전혀 마음에 담아주지 않았다."한태군 그 자식 미친 거 아니야? 한씨 가문 출신인 주제에 어디서 감히 나한테... 그러고 보니 진찬 너 방금 한태군 편을 들었지? 너 파혼당하고 싶어?"진찬은 크게 심호흡하고 주먹을 풀었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레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우리의 혼사가 아니야."레이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같은 시각, 차 안.강유이는 한태군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몸은 고통으로 인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한태군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물었다."얼굴 아프지 않아? 그 여자가 또 어디를 건드렸어?""구석구석 다 건드렸어. 아파 죽을 것 같아."비록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하지만, 강유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한태군은 전유준에게 차 속도를 올리라고 했다. 그러자 곧바로 몸이 뒤로 쏠리는 감이 들었다.강유이는 작은 목소리로 한태군에게 물었다."나 얼굴에 흉터 남는 거 아니야?""걱정하지 마."한태군은 강유이의 이마에 힘껏 뽀뽀하며 말했다."상처가 깊지 않아 흉터는 안 남을 거야.""근데 나 곧 죽을 것 같아.""그게 무슨 소리야, 바보야. 병원이 코 앞에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줘."강유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고통으로 인해 약간 헐떡이며 말했다."구해주러 와서 고마워, 태군 오빠..."한태군은 몸을 흠칫 떨며 머리를 숙였다."뭐라고?"강유이는 잠들었는지 그의 품에 기댄 채 눈을 꼭 감고 있었다...."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그 여자 그냥 한태군의 여자친구일 뿐이야.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살짝 손 본 게 뭐 어때서?! 게다가 그 여자 내 목에 상처까지 냈다고, 안 보여?!"레이린은 거실에서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쳤다. 진찬은 말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인내심이 한계를 돌파하자 오히려 덤덤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찬은 레이린의 집안으로 힘을 얻기 위해 그녀의 더러운
강유이는 입을 삐죽였다.이때 병실 문이 예고 없이 열리고 반재신이 무서운 기세로 들어섰다. 그는 무작정 한태군의 멱살을 잡고는 언성을 높였다."야, 애를 제대로 못 돌볼 거면 데리고 나가질 말던가! 이건 어쩌자는 거야!"한태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유이는 통증을 참으며 힘겹게 말렸다."오빠, 내가 줄리안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고 졸라서 그렇게 된 거야."반재신은 마지못해 손을 놓기는 했지만 언성은 여전히 내려가지 않았다."줄리안나는 왜 만나려는 건데? 리사한테 당하고 싶어서 환장했어? 넌 어쩌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냐!"강유이가 납치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재신은 무슨 정신으로 이곳까지 왔는지 모른다. 걱정도 되고, 화도 나는 것이 이 복잡한 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줄곧 마음에 안 들었던 한태군과 나갔다가 봉변을 당했으니 말이다.강유이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주변 사람들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걸 어떡해. 내가 예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전전긍긍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그럴 바에는 그냥 집 안에만 있고 말지.""너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그런 게 아니라 나도 일이 이렇게 돼서 속상하다는 거지."통증을 참고 말을 길게 했더니 강유이의 안색은 점점 더 창백해졌다. 반재신이 또다시 무언가 말하려고 할 때, 한태군이 큰 소리로 말을 가로챘다."지금은 둘이 말다툼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한태군, 넌 닥치고 있어."한태군은 어두운 눈빛으로 반재신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나 닥쳐."병실 안의 분위기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 나온다면 곧바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의아에 앉아 있던 한태군은 몸을 일으켜 반재신과 시선을 맞췄다."유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건 내 탓이야. 네가 유이를 걱정한다는 것도 잘 알아. 하지만 이번 일은 유이를 나무랄 게 아니라, 유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을 나무라야 하
어쩐지 요즘 사업도 잘 안되고, 정계의 친구들도 연락이 안 된다고 했더니, 보이지 않는 힘이 정씨 집안을 억누르고 있었다. 만약 조사를 해보지 않았더라면 평생 모를 뻔했다.한 세력만 건드린 것이라면 어떻게 버텨 볼만 하겠지만 세 세력이 동시에 공격하자 정씨 집안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넘겨버렸다. 더구나 여씨 집안까지 합세해서 정 회장과 가까이 지내려는 정계 임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여씨 집안은 Y국보다도 부유한 세력이었으니 말이다.정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재계만 신경 쓰기에도 이미 늦었다. 한씨 집안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상 모든 뒷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반씨 집안의 상황은 더욱 골치 아팠다. S국의 정계에 인맥이 있는 데다가 M국의 메트로폴리탄도 있어서 해외 사업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레이린은 흐느끼면서 말했다."저... 저는 몰랐어요."이때 비서가 집안으로 달려들어가며 말했다."회장님, 여준우 씨가 회사에서 만나자고 하십니다."정 회장은 무서운 표정으로 레이린을 노려보며 말했다."경고하는데 지금부터는 아무 짓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나도 너를 구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정 회장은 부랴부랴 회사로 돌아갔다.정 회장이 회사에 도착했을 때, 여준우는 이미 귀빈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난생 처음 비굴한 모습으로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제 딸이 저지른 일에 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제가 이미 단단히 혼냈으니 반 대표님한테 잘 얘기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꼭 책임지고 끝까지 사과시키겠습니다."여준우는 무심한 듯 잡지를 펼쳐보다가 머리를 들며 말했다."저도 도와드리고 싶기는 하지만... 반 대표님의 성격 잘 알고 계시잖아요. 반 대표님이 결정한 일이라면 누구도 막지 못해요."정 회장은 약간 굳은 표정으로 이를 악물며 말했다."반 대표님이 무엇을 원하든 다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얘기라도 꺼내주세요."여준우는 잡지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났다."이번 일은 한 사람의
강성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엄마랑 말하기 난감한 얘기야?"강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우리 유이도 다 컸으니, 누구를 만난다고 해서 반대하지는 않을 거야. 재신이랑 태군이가 함께 있어서 엄마랑 아빠는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몰라."강성연은 잠깐 침묵하다가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윤 언니한테서 힘들게 배운 호신술을 헛수고로 만들면 안 되잖아."이때 강유이가 머리를 들며 물었다."엄마, 진짜 반대 안 해요?""뭘?"강성연은 강유이의 말뜻을 다 알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그러자 강유이는 다시 머리를 숙였다. 얼굴은 어느샌가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제가 태군이랑 만나는 거요...""네가 좋다는데, 엄마가 반대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강성연은 자기 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반대할 마음이 없었다.하필이면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한태군이 꽃다발을 들고 병실 문을 열었다. 그가 찾아올 줄 몰랐던 강유이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강성연은 덤덤하게 머리를 돌리더니 한태군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태군이 왔어?""네, 아주머니."한태군은 침대 머리에 있는 꽃병에 생화를 꽂아 넣었다. 그리고 강유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이제 좀 괜찮아?"강유이는 머리를 더 푹 숙였다. 귀는 마치 불에 타오를 것처럼 빨개졌다."응."'엄마가 곁에 있는데 왜 이러는 거야...'강성연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둘이 얘기하고 있어. 나는 네 아빠를 만나러 가야겠다."강성연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때마침 걸어오는 반지훈을 발견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며 손짓했다. 그러자 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병실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았다.한태군이 침대 자락에 앉자마자, 강유이가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는 약간 멈칫하며 머리를 숙였다."왜 그래?""엄마가 우리 만나는 거 반대 안 하신대."강유이는 원래 자신이 한태군과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죽어
"참, 그리고 줄리안나가 학교로 돌아왔어."강유이는 우뚝 멈춰서서 진예은을 바라보며 물었다."줄리안나가?""응, 어제부터 다시 등교하는 모양이야. 리사한테 배신당한 충격이 큰지 어디에서나 머리를 숙이고 다니더라고."비록 줄리안나가 암시장에서 험한 일을 당했다는 소문이 가짜라고 판명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수군거리는 사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Y국의 암시장은 아주 유명했다. 암시장의 여자는 전부 국가적 블랙 리스트 혹은 불법 체류자였다. 또 나라에서 크게 관여하지 않는 관계로 돈 있는 남자가 자주 드나드는 것쯤은 드문 일도 아니었다.진예은은 강유이와 함께 점심시간을 보내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대문에는 한 남자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편한 대로 풀어헤친 정장 재킷은 정중함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여기는 어떻게 왔어?"진예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진찬이 담뱃재를 툭툭 털며 머리를 들었다."연서는 잘 지내?""오빠한테 딸이 있다는 걸 그래도 잊지는 않은 모양이네. 한참 언급 안 해서 당연히 잊은 줄 알았어."진찬은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 발로 밟더니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나는 너랑 싸우러 온 게 아니야.""정씨 집안 상황이 좋지 않아 유이한테 대신 사정해 달라고 찾아온 거지? 정씨 집안을 아직도 포기 못 했어?""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진찬은 자신의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주말에 집으로 돌아와."차는 빠르게 멀어져 갔다.진예은은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집으로 돌아오라는 것은 분명 부모님의 뜻일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진씨 집안과의 혼사를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황실의 사생아인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을 진찬이 누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씨 집안이 망해버린 이상 가장 실망했을 사람은 어쩌면 그녀의 어머니였다.반재신은 강유이가 퇴원하는 날 직접 데리러 갔다. 그녀가 입원하는 날에 감정을 조절 못 하고 화낸 게 마음에 걸렸는지 사과의 선물까지 들고 갔다.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는 1.2m
강유이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돈을 언제 그렇게 많이 모았어?""전부 내가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이니까 걱정하지 마."반재신과 강유이가 탄 차는 신턴 웨스트 빌라 앞에 멈춰 섰다. 신턴 웨스트 빌라는 빅토리아대학교와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있어서 등교하기가 아주 편했다.강유이는 선물 상자를 소중히 안고 차에서 내리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여기는 왜 왔어?"반재신은 커다란 선물 상자를 대신 들어주며 말했다."아빠가 기숙사에서 지내는 게 불편할 거라고 이제는 여기서 지내래.""여기서 지내는 게 더 불편하거든? 혹시 내가 걱정되어서..."강유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보디가드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했다."안녕하십니까!"강유이는 놀란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이건 너무 하지 않아?"'설마 앞으로 보디가드를 달고 등교해야 하는 거야?'강유이는 반재신을 따라 빌라 안으로 들어섰다. 북유럽 스타일로 인테리어 한 빌라 내부는 아주 예뻤고 햇빛도 잘 들어왔다. 독립적인 베란다와 정원은 물론이고, 강유이가 사용하기에 적합한 피아노 방과 발레 방도 있었다. 반지훈이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서 고른 티가 났다.반재신은 선물 상자를 소파에 내려놓으며 말했다."도우미는 오후에 올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도우미한테 말해.""오빠, 솔직하게 말해줘."강유이는 머리를 돌려 반재신을 바라보며 물었다."갑자기 기숙사에서 나오라고 하는 데는 따로 이유가 있지?""..."반재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유라면 당연히 있었다. 첫째는 한태군과 떨어뜨리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진예은과 떨어뜨리기 위해서였다.반재신은 진예은을 조사해 본 적 있었다. 한태군의 어머니는 황실의 공주인 반면, 진예은의 어머니는 황실의 사생아였다. 두 사람은 같은 아버지를 둔 자매였지만 친하게 지내는 듯한 흔적은 없었다.진예은의 오빠는 레이린의 약혼자로 정씨 집안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게다가 그는 Y국에서 사람을 가리지
"다른 뜻은 없어요, 오빠가 어디에서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궁금해서요. 저는 반 씨 집안 아가씨랑 친구라고 말하고 다닌 적이 없거든요."부정하는 그녀의 말을 들은 진찬이 웃음을 터뜨렸다."친구도 아닌데 그 아가씨가 너를 그렇게 싸고돈다고?"진찬은 진예은이 저번에 강유이를 찾아간 일을 말하고 있는 듯했지만 진예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진예은의 어머니가 그녀를 비꼬며 말했다."예은아, 너는 내 딸이기도 하지만 네 오빠 친동생이기도 하잖니. 가족 일에는 그렇게 무관심하면서 한 씨 집안 일에는 관심이 많아 보이네, 네가 한태군이랑 연락하고 다니는 거 다 알아, 하지만 그 사람은 결국 한 씨 집안사람이잖니. 그 사람이 너를 도와줬다고 해서 가족을 잊어서야 되겠어?"그 말을 들은 진예은이 입술을 물고 있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그럼 이모는 어머니 가족이 아닌가요?""이게 어디서 버릇없이!"진예은의 말을 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테이블 위에 있던 찻잔을 집어던지자 찻잔이 힘없이 진예은의 발치에서 산산조각났다."어디 버릇없이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해!"진예은의 어머니가 날이 선 얼굴로 말했다."어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예은이랑 얘기해 볼게요."진찬이 슈트를 정리하며 일어섰다.그 말을 들은 진예은의 어머니가 관자놀이를 짚더니 눈을 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진찬이 진예은에게 위층으로 올라가라는 듯 눈짓을 했다."두 사람을 위해서 사정하라고 집으로 불러들인 거였어? 정씨 집안을 타락하게 만든 건 오빠 약혼녀야."두 사람은 서재로 올라왔고 진예은도 더 이상 말을 돌려 하지 않았다.진예은의 말을 들은 진찬이 테이블을 지나쳐 가죽 소파 위에 앉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그 집안이 어떻든 나는 이제 관심 없어.""그게 무슨 말이야?""네가 들은 그대로야, 정씨 집안이 타락하는 걸 막을 수 없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진예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찬을 바라봤다. 그녀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했다."오빠가 일
"정말 그런 거야? 네가 걔랑 친구를 안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진찬이 진예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한태군이 너를 걔 옆에 둔 거 자기 대신 강유이를 지켜봐달라고 한 거잖아, 내가 모를 거라는 생각하지 마. 그날 네가 한태군한테 레스토랑으로 오라고 한 거잖아."진예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진찬은 그런 진예은을 보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다시 말했다."두 가지 선택을 줄게, 반 씨 집안이랑 엮이든지 아니면 내가 너 결혼시켜 주는 거. 렌지 집안 대표님도 재혼할 시기가 된 걸로 아는데."진찬은 놀란 얼굴의 진예은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렌지 집안이 정 씨 집안보다 못하지만 적어도 할아버지가 남작이잖아, 잘 생각해 봐."진찬은 말을 마치자마자 분노한 표정을 한 진예은을 두고 서재를 나섰다.진예은은 이 집이 낯설게만 느껴져 무서웠다. 그래서 늘 도망치려 애썼다.-신턴 웨스트 빌라아침, 아주머니께서는 일찍이 아침을 준비해 뒀다.강유이는 아침을 먹으며 아주머니와 얘기도 나눴다. 화교인 아주머니는 근처에서 살고 계시고 남편은 영국 사람이며 집안일만 도맡아 했었다고 한다. 아이의 등하교를 함께 하는 것 외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우연의 기회로 잠깐 일을 하게 됐다.강유이가 아침을 다 먹자 아주머니께서는 주방을 정리하곤 집으로 돌아갔다.강유이도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고 두 명의 경호원은 이미 차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머지않아 차는 빅토리아 대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강유이는 나른한 얼굴로 차창에 기대어 물었다."저녁에도 두 분이 저를 데리러 오시는 건가요?"강유이의 말을 들은 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긍정의 답을 얻은 강유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곧 차는 학교 앞에 도착했고 강유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나가던 학생들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수군거렸다.정 씨 집안이 강유이 때문에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는 소문이 퍼져 강유이는 덕분에 학교의 ‘인싸’가 되어버렸다. 귀족 하나를 타락하게 할 수 있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