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후.Y국 빅토리아대학교.강유이는 한 차례의 교내 연극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백스테이지로 돌아갔다. 테이블 위에는 낯선 꽃다발과 파란색 선물 상자가 있었다.강유이는 천천히 걸어가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 카드에는 '생일 축하해.'라고 적혀 있어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거울 속에 비친 한 사람을 바라봤다."오늘이 내 생일인 건 어떻게 알았어?"한태군은 여유로운 자태로 문턱에 기대어 있었다. 4년 사이에 그의 이목구비는 훨씬 뚜렷해졌고 분위기도 훨씬 어른스러워졌다. 따지고 보면 한창 의기양양할 나이이기도 했다.강유이는 약속대로 빅토리아대학교의 연극영화과에 입학해서 반재신, 한태군의 후배가 되었다. 반재언은 빅토리아대학교가 아닌 S국 최고 대학교를 선택해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생일을 알아내는 것쯤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한태군은 강유이를 향해 걸어가더니 머리 장식을 풀어줬다. 비단과 같은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떨어져 내렸다. 백옥 같은 피부와 완벽한 몸매 역시 눈에 띄었다. 괜히 연극영화과에서 '동방의 아프로디테'라고 불리는 게 아닌 듯했다.한태군은 부드럽게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빨간 립스틱이 묻어났다. 강유이는 가만히 그의 동작을 지켜볼 뿐이었다.이때 휴게실 문이 요란하게 열리고, 한태군과 강유이는 동시에 문을 바라봤다. 반재신은 역시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어두운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야, 한태군! 너 나한테 뒤지고 싶어?!"'어디서 감히 더러운 앞발을 내 동생 몸에 대는 거야!'한태군은 눈썹을 치켜떴다. 꽤 도발적인 표정이었다.강유이는 어이없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동안 함께 지내온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둘 사이의 관계는 아무런 변함없었다."오빠, 왜 왔어?""어쭈, 내가 방해했다 이거야?"반재신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소중한 동생이 외간 남자의 편을 들어주려고 하니 말이다. 강유이는 미소를 지으며 총총 걸어가 반재신과 팔짱을 꼈다."그런 뜻 아니야. 그나저나 오늘
"그냥 생일 선물을 준 거라고? 굳이 그렇게 가까이 서서?"반재신은 약하게 꿀밤을 때리며 말했다."네 눈은 장식품이냐?"반재신은 줄곧 한태군을 도둑놈 취급해 왔다. 강유이가 18살 성인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심해지기만 할 법하다.강유이는 이마를 만지작대며 피식 웃었다."잔소리 좀 그만해. 나 이제 어린애 아니거든.""됐어. 아빠랑 엄마 Y국에 도착하셨대. 오늘 생일 파티 제대로 꾸미고 가자. 오늘만큼은 네가 파티장에서 가장 예뻐야 하니까."강유이가 Y국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도 반지훈과 강성연은 매해 직접 생일을 챙겨주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 예전에는 소규모의 생일파티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생일파티 겸 성인식이었으니 말이다.강유이는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그 정도는 충분히 자신 있으니까."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날 저녁. 서양식 건축이 밀집된 번화가에 어둠이 내려앉고,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꿈과 같은 그림을 연출해 냈다.원래도 눈부셨던 연회장은 고급스러운 장식 덕에 더욱 화려해졌다. 전체적인 배치는 강유이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꽃을 위주로 했고, 풍선, 생화, 인형 등으로 만든 궁전으로 소녀적인 감성도 놓치지 않았다.반씨 집안의 막내딸이 Y국의 대학에 다닌다는 소식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강유이는 여준우의 조카이자, M국 메트로폴리탄의 X마저 해마다 생일파티에 참석해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더구나 최근 떠오르기 시작한 한씨 가문도 있었으니, 대부분 사람이 그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려고 했다.이는 생일파티라고 하기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스케일이었다. 화려한 착장의 거물들이 연이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여준우는 어린 딸 여설희를 품에 안고 명승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최근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덕분에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되기도 했다. 반대로 반지훈과 강성연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이게 누구야?"강성연은 여준우 등이 온 것을
반지훈은 몸을 돌려 강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구 딸인데, 당연히 예뻐야지."강유이는 팔을 뻗어 반지훈과 강성연을 동시에 끌어안았다."올해도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어서 너무 행복해요.""일생에 한 번뿐인 성인식을 우리가 놓칠 리 있겠어?"강성연은 강유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생일 파티를 시작할 때가 되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아한 자태로 술과 음식을 즐기며 얘기를 나눴다. 반지훈과 강성연도 그 속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했다.강유이는 주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중에는 빅토리아대학교의 선후배도 있었다. 이때 선배로 보이는 여자가 물었다."오늘 한태군은 안 왔어?"강유이는 잠깐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올 거예요. 조금 늦나 봐요.""학교에서 보니 두 사람 꽤 친해 보이던데, 한태군이 너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강유이는 샴페인을 마시다 말고 사레 걸려버렸다. 그녀는 입을 막고 기침하기 시작했고 귀는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말도 안 돼요.""말이 안 되긴. 다들 한태군이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던데?"'한태군이... 나를...?'강유이는 머리를 숙였다.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빅토리아대학교에서 한태군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강유이는 그의 모든 도움을 친구로서의 호의로 여겼다. 좋아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이때 지각한 한씨 집안사람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 같으면 한태군과 그의 부모님, 혹은 한태군과 한재욱만 참석했겠지만, 올해는 불청객도 함께 있었다. 그 불청객은 다름 아닌 리사였다."저 아이는 누구예요?""한씨 집안의 수양딸이래요. 하지만 그다지 중시를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에요. 집안의 성씨도 물려 받지 못했잖아요."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말이 좋아 '수양딸'이지 집안과 일절 관계없는 남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집안의
리사는 힘들게 한재욱을 설득해서 강유이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수많은 거물이 지켜보는 곳에서는 아무리 반씨 가문이라고 해도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4년 전, 한씨 집안의 수양딸로 들어간 리사는 앞으로 Y국에서 행복해질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한태군의 부모님은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재욱이 그들을 설득해 줄 줄 알았지만 '우리 집안일은 태군이가 결정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리사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한 어린애가 집안 어른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게 상상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한재욱마저도 한태군의 말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한태군이 싫다는 일은 그의 부모님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는 또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와 회사 경영을 동시에 도맡았고, 한씨 집안의 도우미들은 그를 공손하게 '작은 회장님'이라고 불렀다.리사는 한때 한재욱의 마음을 얻어 그의 수양딸이 되기만 한다면 한태군을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게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지는 한씨 집안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한태군이 집안의 실세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한재욱에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리사는 아직도 한태군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인 강유이가 하필이면 빅토리아대학교에 입학했다. 강유이가 근처에 있는 한 한태군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으로 강유이가 영영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연회장의 분위기가 북적북적 달아오르고 있을 때, 강유이가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오늘 저의 생일 파티이자 성인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강유이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높은 환호성으로 응답했다.얼마 후, 잔잔한 음악 소리와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 되었다.성인이 된 강유이의 퍼스트 댄스는 당연히 반재신과 함께였다. 두 사람은
한태군과 강유이는 마치 한 쌍의 커플처럼 다정하게 춤을 췄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예쁘기만 한 춤사위지만, 이는 전부 한태군의 발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그림이었다.또 한 번 한태군의 발을 밟은 강유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미안."반재신과 함께 할 때는 괜찮았는데, 왜 이제 와서 자꾸 실수하는지 모르겠다. 한태군은 무언가를 보아낸 듯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왜, 나랑 춤추는 거 긴장돼?""아, 아니거든..."강유이가 말을 얼버무렸다. 긴장한 게 맞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조금 전 학교 선배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한태군의 눈을 직시하기도 어려웠다.한태군은 강유이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확 좁혀졌고, 한태군의 잔잔한 목소리는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내가 네 성인식에서 왈츠 추려고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 알아?"강유이는 잠깐 멈칫하며 머리를 들어 물었다."왜 그렇게까지...?""당연히 네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지."한태군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강유이는 미소를 지었다."결국에는 내가 실수했네.""아니야, 너도 잘하고 있어."한태군은 몸을 돌리는 틈을 타서 그녀를 품으로 당겨 거리를 좁혔다."너 오늘 진짜 예뻐."강유이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한태군은 음악이 끝난 다음에야 그녀를 풀어줬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던지고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 한재욱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어쩐지 네가 갑자기 춤바람이 났다 했더니 오늘을 위해서구나."한태군은 몇 달 전만 해도 왈츠 무식자였다. 연회에 참석한 적 별로 없는 데다가, 배울 여유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몇 달이나 준비했으니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한태군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정도면 집안에 먹칠하지 않았겠죠?""그럼, 물론이지."한재욱
리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유이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우리 예전에는...""예전 얘기 좀 그만해."강유이는 우아하게 팔을 뻗어 테이블 위의 샴페인을 들어 올렸다."혹시 내가 아직도 예전의 그 순진한 바보로 보이나?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너한테 아무 짓도 못 할 줄 알았어?"강유이는 술잔 한가득 담긴 샴페인을 자기 몸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곧이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반재신이 첫 번째로 뛰쳐나갔다. 강유이의 얼룩진 드레스를 보고서는 리사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리사, 너 이게 또 무슨 짓이야?"리사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저 아니에요. 조금 전 유이가...""리사야, 나는 이러라고 너를 파티에 데려온 게 아니야.""아버지, 저 진짜 아니에요. 유이가 스스로 샴페인을 붓고 저를 모함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도 다 봤을 거란 말이에요!"한재욱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오자, 리사는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을 안다고 해도 반씨 집안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며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강유이는 치마를 툭툭 털며 반재신을 말렸다."오빠, 됐어. 그냥 드레스가 더러워진 것뿐인데, 뭘. 너무 화내지 마.""너 진짜 바보야? 그러게 왜 쟤랑 단둘이 있었어? 4년 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반재신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4년이나 지났는데도 바보같이 행동하는 강유이가 답답하기만 했다.강유이는 반재신의 손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오빠가 화내는 건 싫단 말이야."강유이는 창백한 안색의 리사를 힐끗 바라봤다. 4년 전 당했던 일을 드디어 되돌려준 셈이었다. 그녀는 리사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냥 어리게만 보던 강유이도 드디어 다 큰 듯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허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제 딸이 저를 닮은 게 뭐 어때서요?"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다행이라는 뜻이야.""흥, 그런 일을 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게 더 문제거든요."강성연은 강유이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게다가 먼저 흑심을 품고 접근한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리사였다. 그녀는 이익과 허영심을 위해 강유이를 배신하는 순간부터 예전의 그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다.강유이는 치맛자락을 들고 드레스 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리사를 모함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리사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강성연도 말했듯이 착한 성품으로 타인에게 약점 잡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강유이가 드레스 룸에서 옷을 벗어 내리고 있을 때, 거울 속의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감쌌다."야, 한태군!"한태군은 팔짱을 낀 채로 문틀에 기대 미소를 지었다."옷 갈아입을 때는 문을 잠가야지.""어... 얼른 나가지 못해?! 나가!"강유이는 빨개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한태군은 밖으로 걸어 나가며 문을 닫았다.강유이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 룸에서 나오자 한태군은 말대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유이는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이제 성인이거든? 우리는 서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어."강유이는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남녀 사이에 이토록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를 쓱 훑어보며 물었다."어디가 성인이야?"강유이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막으며 말했다."어딜 보는 거야!"어쩐지 한태군이 날이 가면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듯한 강유이였다.한태군은 피식 웃으며 가까이 걸어가더니 옷을 갈아입다 헝클어진 강유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
'잠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태군이... 방금 고백한 건가?'강유이는 일단 의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도 안 돼."한태군의 입술이 돌연 강유이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만 같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한태군은 그녀와 이마를 맞댄 채로 나지막하게 물었다."이제 믿겠어?"강유이는 서서히 시선을 올려 한태군과 눈을 마주쳤다."그게..."끼익.이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강유이는 한태군을 밀쳐냈다. 반지훈과 강성연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옷 다 갈아입었으면서 왜..."한태군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반지훈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강유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했다."아빠, 엄마."강성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말했다."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옷 다 갈아입었으면 빨리 나와.""네, 지금 가요."강유이는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부끄럼을 탄 토끼처럼 말이다.한태군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인사를 건넸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누굴 더러 아저씨라고 하는 거야."한태군은 반지훈의 어두운 눈빛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강성연은 피식 웃더니 자신의 표정을 가리고자 손을 올렸다. 한태군이 이 정도로 대담할 줄은 몰랐다.반지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마에는 실핏줄이 튀어 올랐다."선을 넘지 마라.""제가 선을 넘었나요?"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위험한 분위기에 강성연이 반지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됐어요, 지훈 씨. 지금 어린애랑 뭐 하는 거예요?""그게 아니라 저 자식이..."강성연은 반지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저는 태군이 마음에 드는데요. 적어도 당신보다는 똑똑하고 보는 눈도 있잖아요."강미현 때문에 자신을 오해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반지훈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너 이제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