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일 선물을 준 거라고? 굳이 그렇게 가까이 서서?"반재신은 약하게 꿀밤을 때리며 말했다."네 눈은 장식품이냐?"반재신은 줄곧 한태군을 도둑놈 취급해 왔다. 강유이가 18살 성인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심해지기만 할 법하다.강유이는 이마를 만지작대며 피식 웃었다."잔소리 좀 그만해. 나 이제 어린애 아니거든.""됐어. 아빠랑 엄마 Y국에 도착하셨대. 오늘 생일 파티 제대로 꾸미고 가자. 오늘만큼은 네가 파티장에서 가장 예뻐야 하니까."강유이가 Y국에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도 반지훈과 강성연은 매해 직접 생일을 챙겨주러 비행기를 타고 왔다. 예전에는 소규모의 생일파티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생일파티 겸 성인식이었으니 말이다.강유이는 팔짱을 끼며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그 정도는 충분히 자신 있으니까."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날 저녁. 서양식 건축이 밀집된 번화가에 어둠이 내려앉고, 은은한 가로등 불빛이 꿈과 같은 그림을 연출해 냈다.원래도 눈부셨던 연회장은 고급스러운 장식 덕에 더욱 화려해졌다. 전체적인 배치는 강유이가 가장 좋아하는 파란색 꽃을 위주로 했고, 풍선, 생화, 인형 등으로 만든 궁전으로 소녀적인 감성도 놓치지 않았다.반씨 집안의 막내딸이 Y국의 대학에 다닌다는 소식은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강유이는 여준우의 조카이자, M국 메트로폴리탄의 X마저 해마다 생일파티에 참석해 주는 존재이니 말이다. 더구나 최근 떠오르기 시작한 한씨 가문도 있었으니, 대부분 사람이 그녀의 생일파티에 참석하려고 했다.이는 생일파티라고 하기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스케일이었다. 화려한 착장의 거물들이 연이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여준우는 어린 딸 여설희를 품에 안고 명승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최근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그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덕분에 믿음직하고 어른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되기도 했다. 반대로 반지훈과 강성연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이게 누구야?"강성연은 여준우 등이 온 것을
반지훈은 몸을 돌려 강성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누구 딸인데, 당연히 예뻐야지."강유이는 팔을 뻗어 반지훈과 강성연을 동시에 끌어안았다."올해도 같이 생일을 보내게 되어서 너무 행복해요.""일생에 한 번뿐인 성인식을 우리가 놓칠 리 있겠어?"강성연은 강유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생일 파티를 시작할 때가 되자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아한 자태로 술과 음식을 즐기며 얘기를 나눴다. 반지훈과 강성연도 그 속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 시작했다.강유이는 주로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중에는 빅토리아대학교의 선후배도 있었다. 이때 선배로 보이는 여자가 물었다."오늘 한태군은 안 왔어?"강유이는 잠깐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올 거예요. 조금 늦나 봐요.""학교에서 보니 두 사람 꽤 친해 보이던데, 한태군이 너를... 좋아하는 거 아니야?"강유이는 샴페인을 마시다 말고 사레 걸려버렸다. 그녀는 입을 막고 기침하기 시작했고 귀는 불이 붙은 것처럼 화끈거렸다."말도 안 돼요.""말이 안 되긴. 다들 한태군이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던데?"'한태군이... 나를...?'강유이는 머리를 숙였다. 샴페인을 너무 많이 마셔서인지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랐다.빅토리아대학교에서 한태군의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강유이는 그의 모든 도움을 친구로서의 호의로 여겼다. 좋아하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이때 지각한 한씨 집안사람이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예전 같으면 한태군과 그의 부모님, 혹은 한태군과 한재욱만 참석했겠지만, 올해는 불청객도 함께 있었다. 그 불청객은 다름 아닌 리사였다."저 아이는 누구예요?""한씨 집안의 수양딸이래요. 하지만 그다지 중시를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에요. 집안의 성씨도 물려 받지 못했잖아요."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말이 좋아 '수양딸'이지 집안과 일절 관계없는 남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은 집안의
리사는 힘들게 한재욱을 설득해서 강유이의 생일 파티에 참석했다. 수많은 거물이 지켜보는 곳에서는 아무리 반씨 가문이라고 해도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4년 전, 한씨 집안의 수양딸로 들어간 리사는 앞으로 Y국에서 행복해질 일만 남은 줄 알았다. 하지만 한태군의 부모님은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한재욱이 그들을 설득해 줄 줄 알았지만 '우리 집안일은 태군이가 결정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리사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자신과 나이가 엇비슷한 어린애가 집안 어른에게 지시를 내린다는 게 상상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한재욱마저도 한태군의 말을 들어야 했으니 말이다.한태군이 싫다는 일은 그의 부모님도 강요할 수 없었다. 그는 또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와 회사 경영을 동시에 도맡았고, 한씨 집안의 도우미들은 그를 공손하게 '작은 회장님'이라고 불렀다.리사는 한때 한재욱의 마음을 얻어 그의 수양딸이 되기만 한다면 한태군을 통제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게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지는 한씨 집안에 들어가서야 깨달았다. 한태군이 집안의 실세라는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한재욱에게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리사는 아직도 한태군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인 강유이가 하필이면 빅토리아대학교에 입학했다. 강유이가 근처에 있는 한 한태군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속으로 강유이가 영영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연회장의 분위기가 북적북적 달아오르고 있을 때, 강유이가 앞으로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오늘 저의 생일 파티이자 성인식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모두 좋은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강유이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높은 환호성으로 응답했다.얼마 후, 잔잔한 음악 소리와 함께 춤을 추는 시간이 되었다.성인이 된 강유이의 퍼스트 댄스는 당연히 반재신과 함께였다. 두 사람은
한태군과 강유이는 마치 한 쌍의 커플처럼 다정하게 춤을 췄다.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예쁘기만 한 춤사위지만, 이는 전부 한태군의 발을 희생해서 만들어진 그림이었다.또 한 번 한태군의 발을 밟은 강유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미안."반재신과 함께 할 때는 괜찮았는데, 왜 이제 와서 자꾸 실수하는지 모르겠다. 한태군은 무언가를 보아낸 듯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왜, 나랑 춤추는 거 긴장돼?""아, 아니거든..."강유이가 말을 얼버무렸다. 긴장한 게 맞는지 아닌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조금 전 학교 선배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는 한태군의 눈을 직시하기도 어려웠다.한태군은 강유이의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확 좁혀졌고, 한태군의 잔잔한 목소리는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내가 네 성인식에서 왈츠 추려고 얼마나 오래 준비했는지 알아?"강유이는 잠깐 멈칫하며 머리를 들어 물었다."왜 그렇게까지...?""당연히 네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지."한태군의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강유이는 미소를 지었다."결국에는 내가 실수했네.""아니야, 너도 잘하고 있어."한태군은 몸을 돌리는 틈을 타서 그녀를 품으로 당겨 거리를 좁혔다."너 오늘 진짜 예뻐."강유이는 넋이 나간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한태군은 음악이 끝난 다음에야 그녀를 풀어줬다. 그리고 가면을 벗어던지고 어른들과 인사를 나누러 갔다. 한재욱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놀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어쩐지 네가 갑자기 춤바람이 났다 했더니 오늘을 위해서구나."한태군은 몇 달 전만 해도 왈츠 무식자였다. 연회에 참석한 적 별로 없는 데다가, 배울 여유 또한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몇 달이나 준비했으니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한태군은 덤덤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정도면 집안에 먹칠하지 않았겠죠?""그럼, 물론이지."한재욱
리사는 당황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주변에서 키득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유이야,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우리 예전에는...""예전 얘기 좀 그만해."강유이는 우아하게 팔을 뻗어 테이블 위의 샴페인을 들어 올렸다."혹시 내가 아직도 예전의 그 순진한 바보로 보이나?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으면 너한테 아무 짓도 못 할 줄 알았어?"강유이는 술잔 한가득 담긴 샴페인을 자기 몸에 쏟아부었다. 그러고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곧이어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반재신이 첫 번째로 뛰쳐나갔다. 강유이의 얼룩진 드레스를 보고서는 리사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리사, 너 이게 또 무슨 짓이야?"리사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저 아니에요. 조금 전 유이가...""리사야, 나는 이러라고 너를 파티에 데려온 게 아니야.""아버지, 저 진짜 아니에요. 유이가 스스로 샴페인을 붓고 저를 모함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도 다 봤을 거란 말이에요!"한재욱이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오자, 리사는 황급히 변명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실을 안다고 해도 반씨 집안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며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강유이는 치마를 툭툭 털며 반재신을 말렸다."오빠, 됐어. 그냥 드레스가 더러워진 것뿐인데, 뭘. 너무 화내지 마.""너 진짜 바보야? 그러게 왜 쟤랑 단둘이 있었어? 4년 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벌써 잊은 거야?"반재신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4년이나 지났는데도 바보같이 행동하는 강유이가 답답하기만 했다.강유이는 반재신의 손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오늘은 내 생일이잖아. 오빠가 화내는 건 싫단 말이야."강유이는 창백한 안색의 리사를 힐끗 바라봤다. 4년 전 당했던 일을 드디어 되돌려준 셈이었다. 그녀는 리사한테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마냥 어리게만 보던 강유이도 드디어 다 큰 듯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허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제 딸이 저를 닮은 게 뭐 어때서요?"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다행이라는 뜻이야.""흥, 그런 일을 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게 더 문제거든요."강성연은 강유이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게다가 먼저 흑심을 품고 접근한 사람은 이번에도 역시 리사였다. 그녀는 이익과 허영심을 위해 강유이를 배신하는 순간부터 예전의 그 단순한 아이가 아니었다.강유이는 치맛자락을 들고 드레스 룸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리사를 모함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리사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도무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강성연도 말했듯이 착한 성품으로 타인에게 약점 잡히면 안 되기 때문이다.강유이가 드레스 룸에서 옷을 벗어 내리고 있을 때, 거울 속의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감쌌다."야, 한태군!"한태군은 팔짱을 낀 채로 문틀에 기대 미소를 지었다."옷 갈아입을 때는 문을 잠가야지.""어... 얼른 나가지 못해?! 나가!"강유이는 빨개진 얼굴로 몸을 돌렸다."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한태군은 밖으로 걸어 나가며 문을 닫았다.강유이가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 룸에서 나오자 한태군은 말대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강유이는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이제 성인이거든? 우리는 서로 거리를 둘 필요가 있어."강유이는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남녀 사이에 이토록 가깝게 지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를 쓱 훑어보며 물었다."어디가 성인이야?"강유이는 무의식적으로 가슴을 막으며 말했다."어딜 보는 거야!"어쩐지 한태군이 날이 가면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듯한 강유이였다.한태군은 피식 웃으며 가까이 걸어가더니 옷을 갈아입다 헝클어진 강유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
'잠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태군이... 방금 고백한 건가?'강유이는 일단 의심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도 안 돼."한태군의 입술이 돌연 강유이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시간은 마치 정지된 것만 같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한태군은 그녀와 이마를 맞댄 채로 나지막하게 물었다."이제 믿겠어?"강유이는 서서히 시선을 올려 한태군과 눈을 마주쳤다."그게..."끼익.이때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강유이는 한태군을 밀쳐냈다. 반지훈과 강성연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옷 다 갈아입었으면서 왜..."한태군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반지훈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강유이는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했다."아빠, 엄마."강성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말했다."손님들이 기다리고 있어. 옷 다 갈아입었으면 빨리 나와.""네, 지금 가요."강유이는 부랴부랴 밖으로 달려 나갔다. 마치 부끄럼을 탄 토끼처럼 말이다.한태군은 앞으로 걸어 나가며 인사를 건넸다."아저씨, 아주머니, 안녕하세요.""누굴 더러 아저씨라고 하는 거야."한태군은 반지훈의 어두운 눈빛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덤덤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아버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강성연은 피식 웃더니 자신의 표정을 가리고자 손을 올렸다. 한태군이 이 정도로 대담할 줄은 몰랐다.반지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마에는 실핏줄이 튀어 올랐다."선을 넘지 마라.""제가 선을 넘었나요?"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튕기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위험한 분위기에 강성연이 반지훈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됐어요, 지훈 씨. 지금 어린애랑 뭐 하는 거예요?""그게 아니라 저 자식이..."강성연은 반지훈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저는 태군이 마음에 드는데요. 적어도 당신보다는 똑똑하고 보는 눈도 있잖아요."강미현 때문에 자신을 오해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는 듯한 말이었다.반지훈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너 이제 옛
"아주머니, 저에게 어려운 일이란 없습니다."한태군의 대답에 강성연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이튿날, 빅토리아대학교.강유이는 막막한 표정으로 학교 안에 들어섰다. 어젯밤 한태군이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 그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태군이 나를 좋아하다니... 도대체 언제부터?""강유이!"이때 금발 여자가 화난 표정으로 달려오더니 그녀를 확 밀쳤다."재벌이면 리사를 이렇게 괴롭혀도 되는 거야? 착한 리사를 모함하니 속이 후련해?"강유이는 그녀의 손이 닿은 옷을 툭툭 털며 물었다."지금 친구를 대신해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여자의 정체는 리사의 친구 줄리안나였다. 그녀는 수차례나 학교에서 그녀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아무래도 리사의 계략인 듯했다. 빅토리아대학교에 입학하지도 못한 주제에 친구를 심어둔 것도 꽤 얄미웠다.이때 리사가 부랴부랴 달려오며 줄리안나를 말렸다."화내지마, 안나야. 이번 일은 유이 탓이 아니야. 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야.""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이런 년도 친구라고 나한테 소개한 거야? 친구가 어떻게 친구를 모함할 수 있어!""그게 아니라..."리사는 불쌍한 척 머리를 숙였다. 속으로는 얼마나 웃고 있는지 모른다.리사는 자신이 빅토리아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친구 줄리안나가 있는 한 강유이는 단 하루도 무사히 지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어젯밤 그런 일을 당하고 나서는 속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복수를 할 것이라고 단단히 마음먹었다."안나야, 이건 내 문제야. 내가 미움 당할 짓을 해서 그래. 너 오해했어.""그만 말해. 집안 믿고 나대는 재벌 집 아가씨들이 어떤지 내가 모를 것 같아?"줄리안나는 강유이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지금 당장 리사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모든 사람한테 네 만행을 알릴 거야!""그래?"강유이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대단한 의리네. 그냥 원하는 대로 해.""너..."강유이는 피식 웃으며 턱을 만지작댔다."밖에서 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