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강유이가 평생 남이 떠받드는 공주로 산다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떠받들 것이다.감히 강유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혼쭐 내줄 생각이었다.강해신과 강시언은 평생 강유이의 뒷배가 되어줄 생각이었다.한태군은 눈동자를 굴렸다.“그러면 유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물은 적은 있어?”강해신은 코웃음 쳤다.“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강유이는 줄곧 침묵을 유지했다. 듣지 않고 있던 게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강유이는 오빠들이 자기를 지켜주고 싶어 하고, 그녀가 영원히 세상일에 어둡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강유이는 평생 그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엄마가 말했다시피 사람은 크면 독립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강유이의 성적은 강해신이나 강시언만큼 좋은 건 아니었고, 심지어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조차 말할 수 없었다.강유이는 단지 어렸을 때 연기를 하면서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져서 자기가 아주 잘난 줄로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누군가는 여전히 그녀를 싫어하고, 그녀를 따돌리려 하고, 심지어 그녀를 속이고 배신하기도 했다.강유이는 어릴 때 구천광과 연기를 하면서 광고를 몇 개 따내며 수많은 팬을 보유하게 되었고 팬들은 그녀가 자라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강유이 본인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오빠들이 빅토리아를 목표로 할 때도 강유이는 여전히 미래가 막막했다.차는 반씨 저택 정원에 멈춰 섰고 강유이는 차에서 내린 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강유이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챈 한태군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강유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 끝내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다음 날이 되자 강유이는 모든 수업과 숙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시언 오빠, 해신 오빠, 나 공부하고 싶어.”강시언과 강해신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강유이의 행동에 겁을 먹은 것이다.“유이야, 너 왜 그래?”강유이
강성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네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다니, 정말 드문 일이네요.”반지훈은 강성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목표가 일치해서 그래.”모두 강유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봤어요? 저게 우리 딸이 가져야 할 모습이에요. 계속 감싸기만 하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유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돈 많고 바보 같은 반씨 집안 공주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요?”딸이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낳지 않는 것이 나았다.부자 셋이 강유이를 바보처럼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반지훈은 조용히 웃었다.“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우리 딸은 너한테 맡길게. 그래도 돼?”강성연은 턱을 괴었다.“예체능 쪽도 배우게 해야겠어요.”반지훈은 걱정스러운 듯했다.“유이가 다 소화할 수 있겠어?”강성연은 그를 힐긋댔다.“두 아들 다 소화했는데 유이가 못할 게 뭐가 있어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래, 그래. 네 말대로 하자.”더하면 강성연이 화를 낼 것 같았다.강유이는 오전에 공부했고 점심에는 쉬었으며 오후부터 다른 수업을 받았다. 강유이는 매일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동시에 강유이의 학습 속도가 향상되었다. 그리고 속도가 제고 된 이유는 한태군이 가르쳐준 방법 덕분이었다. 아주 간단명료하고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강해신은 달갑지 않은 듯했다.“왜 쟤가 알려준 방법을 쓰면 그렇게 손쉽게 하는 거야?”강유이는 입을 비죽였다.“간단하게 가르쳐줘서 그렇지. 오빠랑 시언 오빠가 가르쳐준 건 너무 복잡해. 이해 못 하겠어.”예를 들면 같은 문제라도 여러 가지 풀이 방법이 있는데 강시언과 강해신이 가르친 건 아주 복잡했고 오직 한태군만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신속히 답을 도출했다.강해신은 고개를 홱 돌리고 한태군을 무시했다.강시언은 풀이 방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군의 풀이 방법은 간단하고 쉽게 이해할 수
강해신이 입을 열려는데 강시언이 먼저 선수를 쳤다.“유이 남게 해. 요 며칠 태군이가 유이 많이 도와줬잖아.”“그러든지.”강해신이 먼저 나갔다.그들이 떠난 뒤 강유이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 빈 컵을 본 강유이는 물을 한 잔 떠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우연히 그의 휴대폰 아래 쪽지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강유이는 궁금증 때문에 쪽지를 열어 봤고 아주 익숙한 번호를 보았다.단번에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번호였다.한태군은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손등을 이마에 가져다 대보니 몸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로 자는 강유이가 보였다.한태군은 당황했다. 그는 강유이가 보였을 때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한태군은 일어나 앉더니 이불을 젖히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곯아떨어진 강유이에게 시선을 두었다. 강유이의 입가에 침이 고여 있는 걸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강유이는 깜짝 놀라 깨어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가를 닦았다. 한태군과 시선을 마주한 강유이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어... 일어났어?”한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러면 열 내렸겠네.”“응.”강유이는 한숨 돌렸다.“그러면 됐어. 별일 없으면 난 나가볼게.”한태군은 강유이가 문 앞까지 걸어가는 걸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강유이.”강유이는 그를 돌아봤다.“왜?”한태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고맙다고.”강유이는 멋쩍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별거 아닌데 뭘. 요즘 공부하면서 나 많이 도와줬잖아. 그러니 인사 안 해도 돼.”강유이는 방에서 나갔다.한태군은 휴대폰을 들려다가 휴대폰 아래 두었던 쪽지를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룸살롱.리사는 작업실에 앉아 이따금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봤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태훈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일부러 한태군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한태군이
리사는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고 다리 위에 올려놓았던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한태군은 기억을 잃지 않았는가?그런데 왜 갑자기 그녀를 조사한 걸까?한태군은 그녀의 말을 믿어야 하지 않는가!“태군 오빠, 제가 퇴학당한 건 맞지만 전 진짜...”“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한태군은 단번에 그녀를 꿰뚫어 봤다.“내가 예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맞지만 멍청하지는 않아.”리사는 얼어붙어서 꼼짝하지 못했다.“사실 네가 그날 한 말을 하마터면 믿을 뻔했어. 그런데 넌 내게 그 얘기를 하지 말았어야 해. 강유이와 강유이의 오빠가 어떤지 말이야.”한태군은 사실 그날 그녀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다 믿은 건 아니었다.리사는 자신이 강유이의 친구라면서 그에게 강유이와 그의 오빠가 그녀를 싫어한다고 했다. 이렇게 모순적이면서 그가 믿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걸 보면 수상쩍었다.그래서 한태군은 전유준에게 리사의 번호와 정보, 학원 자료를 찾아보라고 했고 그녀가 퇴학당한 걸 알게 되었다.그리고 퇴학당하게 된 일은 강유이와 관련이 있었다.그는 반씨 저택에 오래 있지 않았지만 최근 그들과 지내면서 강유이와 강유이의 오빠들이 아무 이유 없이 리사가 퇴학당하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아마 리사가 먼저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몰랐다.리사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녀는 자신의 부주의와 실수가 그 점을 상기시킨 것일 줄은 몰랐다.거짓말인 게 들통날까 봐 두려운 탓이었다.“태군 오빠, 정말 미안해요. 저... 제가 퇴학당한 일을 숨긴 건 맞아요. 하지만 다른 건 정말이에요.”“한 번의 거짓말은 수많은 거짓말로 채워져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야?”한태군은 냉담한 눈빛으로 말했다.“넌 내가 기억을 잃은 사실을 강유이가 알려줬다고 했지. 하지만 넌 강유이와 관련된 일 때문에 퇴학당했으니 강유이와 계속 연락할 리가 없잖아.”“그런 거짓말까지 했으면서 내가 널 믿길 바란 거야? 우습지 않아?”리사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색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한태
재벌 간의 정략결혼은 흔히 있는 일이었고 보통은 집안 실력이 비슷해야 했다. 하지만 강유이와 한태군은 죽마고우는 아니더라도 그와 거의 비슷했다.도우미들이 의논하는 걸 강유이와 한태군은 듣지 못했다. 강유이는 손으로 펜을 놀리고 있었는데 겉으로는 한태군의 문제 풀이를 듣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정신이 딴 데 팔렸었다.한태군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강유이가 건성으로 듣고 있는 것 같자 한태군은 갑자기 펜으로 강유이의 머리를 톡 쳤다.“집중 좀 해.”강유이는 정수리를 만지작거렸다.“뭐 하는 거야?”“제대로 안 하면 강의 안 해줄 거야.”한태군이 위협하는 어조로 말했다.강유이는 입을 비죽이며 머리를 긁적였다.“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사실 강유이는 일이 있을 때 참을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특히 뭔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집중할 수가 없었다.한태군은 그녀의 질문을 짐작했다.“그래.”“그게...”강유이는 미간을 구겼다.“왜 오빠한테 리사 번호가 있는 거야?”한태군은 그 질문을 예상하였기에 나른하게 이마를 짚었다.“아, 그거 물으려고? 나 오늘 리사 찾아갔어.”강유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리사와 한태군은 한때 같은 반 친구였기에 아는 건 정상이었지만 한태군은 기억을 잃었다.그런데 리사는 기억해도 강유이는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한태군이 떠보듯 물었다.“리사가 그러던데. 너랑 친구라고.”강유이는 당황하더니 이내 시선을 내려뜨리고 침묵을 택했다.그녀와 리사는 과거 친구였다.하지만 그것은 강유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리사는 어쩌면 단 한 순간도 강유이를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걸지도 몰랐다. 심지어 그녀를 웃음거리 삼았을 것이다. 반대로 강유이는 리사에게 한없이 다정했다.강유이가 방법을 잘못 선택했다.강유이는 친구 사이라면 좋은 건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유이 홀로 끊임없이 내어주다 보니 리사는 많은 걸 얻었고 그녀의 허영심도 따라서 커졌다.강유이는 입을 달싹였다.“리사가 그렇게 얘기했어
백이령은 갑자기 웃더니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천천히 내뱉었다.“너 정도 나이에 이 정도 야망을 품은 여자아이는 거의 본 적이 없어.”백이령은 담배를 잔 안에 버렸고 ‘치직’ 소리와 함께 담뱃불이 꺼졌다.“자신 있다면 널 믿을게. 실패한다면 아주 비참한 꼴이 될 거야. 알겠어?”리사는 입술을 씹었다. 이왕 한다면 절대 실패할 수 없었다.“걱정하지 마세요.”백이령은 일어나서 사람을 데리고 떠났다.복도에서 백이령의 뒤를 따르던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백 사장님, 저 여자아이 말을 믿으세요? 저 아이가 제멋대로 하게 놔두는 겁니까?”그는 백이령이 왜 리염의 여동생을 도와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우 10대 소녀인데 리사는 권력 있는 사람에게 붙을 줄 알았다.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백이령은 코웃음 쳤다.“네가 뭘 알겠어? 저 여자아이는 앞으로 크게 될 인간이야. 내가 쟤를 도와주는 건 내게 빚을 지게 만드는 거야.”“하지만 저런 사람이 장차 사장님을 배신할까 두렵지 않으십니까?”백이령은 무표정한 얼굴이었다.“사람은 나쁜 일을 하게 되면 당당할 수 없어. 길들여서 내 사람으로 만들 거나, 길들일 수 없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면 그만이지.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이틀 뒤 한태군은 한재욱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반지훈과 강성연도 아이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병문안을 갔다.한재욱은 수술받은 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의사는 상태가 심각한 건 아니라고 했다. 다리뼈가 부러졌을 뿐 다른 치명적인 곳은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한태군은 간병인 의자에 앉아 줄곧 침묵을 지켰고 반지훈과 강성연은 복도에서 의사와 얘기를 나눴다.강유이는 병실 안으로 들어선 뒤 한태군의 옆에 섰고 참지 못하고 그를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작은아버지 분명 깨어나실 거야.”한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혼수상태인 한재욱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한태군은 그곳에 남아 간호했고 다른 이들은 먼저
한태군은 대답하지 않았다.병실 문이 열렸다.“아빠...”꽃다발을 안은 리사는 갑자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원래 그녀는 병실을 잘못 찾은 척하며 한재욱과 만날 셈이었다. 리사는 한태군이 있을 거로 예상했지만 강유이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미, 미안해요. 우리 아빠 병실인 줄 알았어요.”그녀가 막 떠나려 할 때 한재욱이 그녀를 불렀고 리사는 고개를 돌렸다.“무슨 일 있으신가요?”“학생, 날 잊은 거야? 그날 학생이 날 구했어.”한재욱의 태도는 그날 밤처럼 차갑지 않았다.아무래도 그의 목숨을 구한 아이였기 때문이다.“그분이 아저씨였어요?”“네 아버지도 입원하셨니?”리사는 시선을 내려뜨리며 미소 지었다.“네.”한재욱은 불현듯 리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집안 사정을 위해서라는 걸 말이다.“참 착한 아이네.”칭찬하는 말에 리사는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웠다.왜냐하면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강유이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강유이는 지금 병실에 서 있었고, 한재욱의 칭찬에 리사는 강유이가 혹시라도 그녀의 거짓말을 까발릴까 봐 마음이 불안했다.다행히도 강유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바로 그때 한태군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착한 아이였으면 자주 병원에 아버지 병문안을 왔을 텐데 아버지 병실이 어딘지도 모를까요?”리사는 옷깃을 쥐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한태군의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그런 거 아니에요. 우리 아빠가 다른 병실로 옮겨서...”“그만.”’한재욱은 미간을 구기고 한태군을 바라봤다.“너 뭐 하는 거야? 왜 사람 곤란하게 만들어? 너희 친구 아니니? 유이에게 물어봐.”한태군은 기억이 없었지만 강유이는 리사를 알고 있었다.한태군은 강유이를 응시했고 리사 또한 조심스럽게 강유이를 살폈다.강유이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주먹을 꼭 쥐었다. 만약 아니라고 거짓말을 한다면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은 던진 격이 된다.강유이와 리사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는 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야.”강유이는 어리둥절했다.한태군은 강유이에게 다가갔다.“넌 쟤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 밝히지 않았어. 강유이, 조금 전 리사가 우리랑 같은 반 친구가 아니라고 거짓말했다면 내 삼촌은 리사를 경계했을 거야.”리사가 한재욱을 구한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어떤 음모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재욱은 이미 리사를 믿는 눈치였다.강유이는 입술을 달싹였다.“하지만 리사는 오빠 삼촌을 구했는걸...”“그게 우연일까?”“그게 아니면?”한태군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손을 들어 미간을 주물렀다. 그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네 두 오빠가 널 왜 그렇게 과보호하는지 알겠다.”강유이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착한 것과 멍청한 것은 달라.”그는 강유이의 곁을 지나쳤다.“너처럼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자란 애는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본 적이 없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지.”강유이는 돌아서서 소리를 질렀다.“지금 나보고 멍청하다고 한 거야?”한태군은 멈추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강유이는 병원을 나섰고 한태군의 말을 떠올리자 화가 나고 억울했다.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한태군은 왜 그런 얘기를 한 걸까?왜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강유이가 안다고 했을까?한태군은 기억을 잃지 않았는가?그녀와 리사 사이의 일을 한태군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유이야.”강유이는 걸음을 멈췄지만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강유이는 리사임을 알아챘고 리사는 강유이에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섰다.“유이야, 네가 날 싫어하는 건 알고 있어. 예전에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았어. 앞으로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해도 너랑 화해하고 싶어.”강유이의 성격이 어떤지 리사가 가장 잘 알았다.예전 일은 강유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을 뿐 진심으로 그녀와 절교할 생각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리사는 자신이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면 강유이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예전에도 강유이는 리사가 원하는 건 뭐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