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이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할아버지가 왜 갑자기 그들에게 임무를 부여하나 했는데.이런 속셈이 있을 줄이야!반지훈은 단번에 아버지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다. 그가 실눈을 떴다.“그건 좀 아니잖아요.”자기 딸을 한태군 저놈한테 붙여놓다니?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아니긴 뭐가 아니야.”반준성이 그를 힐끗 노려보더니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었다.“둘이 예전에 같은 반 동창이었잖아. 이 기회에 유이가 태군이의 기억도 회복해 주면 얼마나 좋아.”“아직 아이들일 뿐인데,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반지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아버지가 너무 사실만 콕 집어서 말했기 때문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확실히 두 사람은 아직 아이들이었다.하지만 그들 나이에 연애하는 애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만약 자기 딸이 저놈을 좋아하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가 어떻게든 막고 있었던 일이 자기 아버지 손에 무너지는 꼴이 아닌가?반지훈이 화를 참고 유이를 돌아보았다.“유이야, 넌 어떻게 생각해.”누가 봐도 아이가 거절했으면 좋겠다는 뜻이 강렬했다.강유이는 두 오빠와 아빠까지 자신을 쳐다보자, 순간 압박감을 느꼈다.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이 보세요들, 다들 몸이 근질근질한가 봐? 감싸고 도는 건 좋은데, 정도껏 해야죠.”강성연이 쾅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훈계하듯이 말을 이었다.“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우리 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 애들은 크면서 자기 일은 스스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해요. 여기 반 씨 가문 남성분들처럼 시시콜콜 유이의 일에 간섭하면 안 된다고요. 보호하는 건 좋은데, 한평생 유이를 아빠와 오빠의 날개 아래서 키울 거예요? 그게 다 무슨 소용 있어요.”강유이가 그들의 바람대로 살았다가는 평생 독립할 수 없을 것이다.그랬다가는 아이가 나중에 어떤 곤란이 닥쳐도 먼저 오빠들과 아빠를 떠올리게 될 게 분명했다. 하다못해 자그마한 선택을 할 때도 자기 뜻대로가 아닌 오빠들과 아빠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유
한태군이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는 넌 왜 갑자기 돌아선 건데.”순간 말문이 막힌 그녀가 아예 그를 지나치고 앞으로 걸어갔다.강유이는 손에 꼬치가 담긴 박스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먹고 있었다. 한태군은 그런 그녀의 곁에 서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그녀가 순간 걸음을 멈추더니 손에 들고 있던 꼬치를 그에게 건넸다.“자.”“안 먹어.”“싫으면 말어.”그녀도 자기 먹을 걸 그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그녀는 순간 몸의 이상을 감지했다. 갑자기 배가 너무나 아팠다. 이상함을 느낀 한태군이 그녀를 잡으며 물었다.“너 왜 그래.”“나… 나 속이 안 좋아.”한태군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녀를 꾸짖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여기 음식 다 위생적이지 않아. 그런 음식을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아파도 싸지.”강유이는 바로 반박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배를 붙잡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한태군이 그녀를 안아 들었다.“병원에 데려다줄게.”그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녀를 안고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전유준에게 빨리 병원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강유이의 안색이 점점 더 안 좋아지는 걸 확인한 한태군은 난생처음 누군가가 걱정되었다.“괜찮을 거야. 유이야.”전유준이 병원 앞에 차를 세웠다.차에서 내린 그가 유이를 안으려 하자 한태군이 거절했다. 전유준은 강유이를 품에 안고 병원 안으로 달려가는 한태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외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보아온 이래로 도련님은 한 번도 누군가를 저렇게 걱정한 적이 없었다.의사가 강유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 간호사에게 말을 전했다. 유이가 누워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온 간호사가 웃으며 물었다.“학생, 지금 몇 살이에요?”강유이가 옆으로 누워 배를 감싸고 있었다.“올해 열네 살이요.”그렇게 대답한 그녀가 순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되물었다.“왜요? 설마 저 무슨 죽을병 걸린 거 아니죠?”간호사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차근차근 설명해
해신과 시언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동시에 답했다.“알겠어요, 엄마.”일주일 뒤, 유이의 생리가 드디어 끝이 났다.봄날의 햇빛은 눈부시긴 했지만 그만큼 따사로웠다. 정원에서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리던 그녀는 순간 조민과 민서율이 대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조민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강유이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문 앞으로 다가가 그들을 바라보았다.“선배, 서율 오빠, 여긴 어쩐 일이에요?”조민이 휴대폰을 꺼내며 자신이 예매한 표를 보여주었다.“너랑 영화 보러 가려고 왔지. 영화관에 금방 새로 개봉한 영화가 있거든. 그래서 내가 미리 세 장 예매해 놨어.”강유이는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조민이 이미 예매를 하고 민서율까지 함께 대동한 채 요청한 거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그녀가 막 대답하려던 그때, 등 뒤에서 해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도 데리고 가요.”조민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반재신 후배님은 또 갑자기 웬 참견이실까.”그녀가 특별히 표 세 장을 예매해서 강유이를 요청한 건, 사실 민서율을 돕기 위해서였다.민서율이 강유이 후배한테 관심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하지만 하필 그녀의 곁에는 괴물 같은 오빠가 지키고 있었다. 괴물은 누가 자기 동생한테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당장 물어뜯을 태세였다.해신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팔짱을 꼈다.“나는 왜 환영 안 해 줘요?”조민이 이를 악물었다.민서율은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당연히 환영하지. 해신이 너도 같이 가자.”“나도 갈래.”한태군의 등장에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조민과 민서율은 그와 초면이었다.“유이야, 이쪽은…”강유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해신이 느긋하게 답했다.“이쪽은 한 씨 가문의 도련님, 한태군이에요.”조민은 그를 몰랐으나 민서율은 그를 모를 리가 없었다.하정원이 분명 민서율에게 알려줬을 테니까.민서율이 그의 이름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강유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얼마 후 다시
거기까지 생각한 한태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한태군 오빠?”그때 누군가가 그의 생각을 방해했다. 고개를 돌리니 멀지 않은 곳에서 웬 여자아이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한태군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그녀를 기억 못 했지만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커피숍 안을 힐끗 바라보던 그가 굳은 표정으로 여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누구야 너.”긴장한 리사가 소매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싱긋 웃었다.“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어요?”커피숍 내부, 강유이는 사는 김에 한태군이 마실 카페라테까지 포장했다. 돌아서서 문 쪽을 바라본 그녀는 그제야 한태군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엘리베이터 바로 옆 복도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다. 한태군이 걸음을 멈추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리사를 바라보았다.“너 도대체 누구야.”“오해하지 말아요.”리사가 손을 저어 보였다. 그녀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전 태군 오빠가 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전 다 이해하니까 괜찮아요.”한태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태군 오빠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예전에 알던 사이는 맞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이 아이가 어떻게 아는 거지?그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리사가 입술을 깨물며 천천히 설명했다.“사실 오빠가 기억을 잃었다는 거… 유이가 저한테 알려줬어요. 오빠는 기억 못 하겠지만 유이랑 저 예전에 엄청 친한 친구였거든요.”그녀는 그에게 우연히 알게 된 거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한태군은 하필 기억을 잃고도 강유이와 함께 있었으니까.두 사람은 같은 반이었었기에 멀쩡한 한태군이 리사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보아하니 그가 기억을 잃은 게 확실해 보였다.한태군이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어떻게 네 말을 믿지?”리사가 그를 바라보았다.“제가 오빠에 관해서 알고 있어요. 군오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어요. 맞죠?”한태군이 시선을 내려뜨렸다.그 일이라면
한태군은 리사를 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한태군이 믿을지 믿지 않을지 리사도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리사는 잠시 뒤 마주칠까 봐 두려워 핑계를 댔다.“더 얘기하지 않을게요. 전 먼저 가볼게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해요.”리사는 부랴부랴 떠났다.한태군은 고개를 숙이고 손에 쥐고 있던 연락처를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다른 한편, 강유이 일행은 한태군을 찾아 헤매다가 이내 그가 사람들 틈 사이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걸 보았다.“태군 오빠, 왜 막 돌아다니는 거야.”강유이는 숨을 몰아쉬면서 다가갔다.“오빠를 잃어버리면 우리가 오빠 작은아버지에게 뭐라고 얘기해?”강해신은 코웃음 쳤다.“나이가 얼만데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하는 거야?”조민과 민서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태군의 시선이 강유이에게로 향했다. 아무리 봐도 강유이는 조금 전 그 여자아이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협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사실 그는 믿지 않았다. 그저 뇌리에 기억의 파편이 스쳐 지나갔고, 그것이 그녀와 말한 것과 조금 흡사했을 뿐이다.보아하니 확실히 수상쩍었다.한태군은 한참 뒤에야 미소 지었다.“미안, 내가 걱정시켰네.”강유이는 들고 있던 커피를 건넸다.“오빠 주려고 산 거야.”한태군은 멈칫하더니 강유이가 건네준 커피를 받으며 덤덤히 웃었다.“너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강유이는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홱 돌리며 당당하게 말했다.“싫긴 한데 우리랑 같이 와서 우리 때문에 억울한 일 생기면 우리가 돌아가서 욕먹잖아.”강유이는 솔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에 대한 미움을 감추지 않았지만 악의는 전혀 없었다.진짜 싫어한다면 강유이처럼 굴지 않았을 것이다.들고 있던 커피는 따뜻했다. 마치 지금 한태군의 마음속처럼 말이다.조민과 민서율은 먼저 돌아갔고 세 사람은 그제야 차를 타고 반씨 저택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강해신과 한태군은 서로를 무시했고 그 탓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 중간에 앉아있던 강유이만
설령 강유이가 평생 남이 떠받드는 공주로 산다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떠받들 것이다.감히 강유이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혼쭐 내줄 생각이었다.강해신과 강시언은 평생 강유이의 뒷배가 되어줄 생각이었다.한태군은 눈동자를 굴렸다.“그러면 유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물은 적은 있어?”강해신은 코웃음 쳤다.“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강유이는 줄곧 침묵을 유지했다. 듣지 않고 있던 게 아니라 한 마디, 한 마디 빼놓지 않고 듣고 있었다.강유이는 오빠들이 자기를 지켜주고 싶어 하고, 그녀가 영원히 세상일에 어둡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강유이는 평생 그들에게 의지할 생각은 없었다.엄마가 말했다시피 사람은 크면 독립할 줄 알아야 하고,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일도 스스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강유이의 성적은 강해신이나 강시언만큼 좋은 건 아니었고, 심지어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조차 말할 수 없었다.강유이는 단지 어렸을 때 연기를 하면서 칭찬받고,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져서 자기가 아주 잘난 줄로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실 누군가는 여전히 그녀를 싫어하고, 그녀를 따돌리려 하고, 심지어 그녀를 속이고 배신하기도 했다.강유이는 어릴 때 구천광과 연기를 하면서 광고를 몇 개 따내며 수많은 팬을 보유하게 되었고 팬들은 그녀가 자라기를 기다렸다.하지만 강유이 본인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오빠들이 빅토리아를 목표로 할 때도 강유이는 여전히 미래가 막막했다.차는 반씨 저택 정원에 멈춰 섰고 강유이는 차에서 내린 뒤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강유이의 이상한 모습을 눈치챈 한태군은 위층으로 올라가는 강유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 끝내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다음 날이 되자 강유이는 모든 수업과 숙제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시언 오빠, 해신 오빠, 나 공부하고 싶어.”강시언과 강해신은 시선을 주고받았다. 강유이의 행동에 겁을 먹은 것이다.“유이야, 너 왜 그래?”강유이
강성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네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다니, 정말 드문 일이네요.”반지훈은 강성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목표가 일치해서 그래.”모두 강유이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다.강성연은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봤어요? 저게 우리 딸이 가져야 할 모습이에요. 계속 감싸기만 하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우리 유이를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돈 많고 바보 같은 반씨 집안 공주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요?”딸이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낳지 않는 것이 나았다.부자 셋이 강유이를 바보처럼 착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반지훈은 조용히 웃었다.“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우리 딸은 너한테 맡길게. 그래도 돼?”강성연은 턱을 괴었다.“예체능 쪽도 배우게 해야겠어요.”반지훈은 걱정스러운 듯했다.“유이가 다 소화할 수 있겠어?”강성연은 그를 힐긋댔다.“두 아들 다 소화했는데 유이가 못할 게 뭐가 있어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래, 그래. 네 말대로 하자.”더하면 강성연이 화를 낼 것 같았다.강유이는 오전에 공부했고 점심에는 쉬었으며 오후부터 다른 수업을 받았다. 강유이는 매일을 아주 알차게 보냈다.동시에 강유이의 학습 속도가 향상되었다. 그리고 속도가 제고 된 이유는 한태군이 가르쳐준 방법 덕분이었다. 아주 간단명료하고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강해신은 달갑지 않은 듯했다.“왜 쟤가 알려준 방법을 쓰면 그렇게 손쉽게 하는 거야?”강유이는 입을 비죽였다.“간단하게 가르쳐줘서 그렇지. 오빠랑 시언 오빠가 가르쳐준 건 너무 복잡해. 이해 못 하겠어.”예를 들면 같은 문제라도 여러 가지 풀이 방법이 있는데 강시언과 강해신이 가르친 건 아주 복잡했고 오직 한태군만이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신속히 답을 도출했다.강해신은 고개를 홱 돌리고 한태군을 무시했다.강시언은 풀이 방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군의 풀이 방법은 간단하고 쉽게 이해할 수
강해신이 입을 열려는데 강시언이 먼저 선수를 쳤다.“유이 남게 해. 요 며칠 태군이가 유이 많이 도와줬잖아.”“그러든지.”강해신이 먼저 나갔다.그들이 떠난 뒤 강유이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 위 빈 컵을 본 강유이는 물을 한 잔 떠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우연히 그의 휴대폰 아래 쪽지 하나가 있는 걸 발견했다.강유이는 궁금증 때문에 쪽지를 열어 봤고 아주 익숙한 번호를 보았다.단번에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한 번호였다.한태군은 저녁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손등을 이마에 가져다 대보니 몸이 훨씬 나아진 것 같았다.고개를 돌려 보니 옆에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로 자는 강유이가 보였다.한태군은 당황했다. 그는 강유이가 보였을 때 그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한태군은 일어나 앉더니 이불을 젖히고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곯아떨어진 강유이에게 시선을 두었다. 강유이의 입가에 침이 고여 있는 걸 본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강유이는 깜짝 놀라 깨어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가를 닦았다. 한태군과 시선을 마주한 강유이는 다급히 몸을 일으켰다.“어... 일어났어?”한태군은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러면 열 내렸겠네.”“응.”강유이는 한숨 돌렸다.“그러면 됐어. 별일 없으면 난 나가볼게.”한태군은 강유이가 문 앞까지 걸어가는 걸 보고 있다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강유이.”강유이는 그를 돌아봤다.“왜?”한태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고맙다고.”강유이는 멋쩍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별거 아닌데 뭘. 요즘 공부하면서 나 많이 도와줬잖아. 그러니 인사 안 해도 돼.”강유이는 방에서 나갔다.한태군은 휴대폰을 들려다가 휴대폰 아래 두었던 쪽지를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룸살롱.리사는 작업실에 앉아 이따금 휴대폰을 꺼내 확인해 봤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한태훈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그녀는 일부러 한태군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한태군이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