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신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내가 왜? 내가 아무리 심심해도 그렇지, 한씨 집안을 건드릴 이유는 없거든."강유이는 의심이 가시지 않는 듯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가 무언가 더 말하려고 할 때, 강시언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을 가로챘다."유이야, 삼촌이랑 숙모가 화해 했으니, 우리는 이만 서울로 돌아가자."강시언의 화제 전환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강유이는 벌써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을 잊은 듯 얼굴을 긁적였다."오늘?""내일.""그래, 그럼 난 숙모랑 인사하러 가야겠어."강유이는 몸을 돌려 저택 안으로 돌아갔다.강해신에 비해 신중한 편이었던 강시언은 그제야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들키지는 않겠지?""당연하지. 한씨 집안에서는 기껏해야 해킹이 군오에서 이뤄졌다는 것밖에 모를 거야. 우리가 서울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문제 없어."강해신은 자기 기술에 아주 자신만만했다. 서울로 돌아가기만 하면 용의선상에서 제외되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강시언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다행이고."같은 시각, Y국의 한씨 저택.집사와 비서는 불안한 표정으로 서재에 서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소년은 노트북을 켜고 데이터를 손보고 있었다. 길쭉한 손가락이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오갈 때마다 화면에는 파란색 코드가 줄줄이 나타났다.약 한 시간 후, 모든 데이터를 회복하고 난 소년은 덤덤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돌렸다."다 됐어요."간단하게 살펴보고 난 비서는 드디어 시름을 놓은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도련님."오늘 회사 시스템이 예고 없이 해킹을 당했다. 다행히 외부로 새어 나간 기밀은 없었다. 안 그러면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의 손해가 생길 것이다. 도대체 누가 해킹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악의를 품은 공격보다는 단순한 장난에 가까웠다.한태군은 이마를 짚었다. 잔잔한 호수 같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남들과 다른 유년기를 보낸 그는 어린 나이에 벌써 냉혹하고 차분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
진여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좋으면 직접 낳아."하정원은 미소를 지우고 그의 손을 내팽개쳤다."왜 또 헛소리야?!"진여훈은 소리 내어 웃으며 이미 몸을 돌려버린 그녀를 따라갔다.약 두 시간 후, 비행기는 마침내 서울 공항에 착륙했다. 연희승은 벌써 도착해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쌍둥이가 짐을 밀고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바로 트렁크를 열어 짐을 옮겼다."군오에서 재밌게 놀았어?"강유이는 조수석에 앉으며 물었다."네, 아빠랑 엄마는요?""두 분은 군오에서 돌아오고 나서부터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계셔."연희승은 안전벨트를 매며 말했다. 강유이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그의 목에 빨간색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러 옷깃으로 가리기는 했지만, 그냥 무시하기에 너무 선명한 흔적이었다."아저씨, 목은 어쩌다 그렇게 됐어요? 혹시 모기한테 물렸어요?"강시언과 강해신은 바로 연희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연희승은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척추가 아파서 마사지하다가 이렇게 됐어."강유이는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누군가에게 물린 듯한 흔적은 반지훈과 강성연의 목에서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강유이가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을 보고 연희승은 몰래 한숨 돌렸다.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똑똑한 세쌍둥이를 속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AM그룹.한재욱의 전화를 받은 반지훈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가 먼저 전화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 했다.한재욱이 Z국에 온다는 것을 듣고 반지훈은 결재마저 멈추고 물었다." Z국에 와서 얼마 정도 있을 거예요?""꽤 오래 있을 거야."한재욱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태군이도 같이."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재욱의 말을 듣고 있다가 그는 가늘게 눈을 뜨며 되물었다."해커요?""내가 보기에는 그냥 장난 같아. IP 주소가 Z국 군오에 있던데, 혹시 네가 조사해 줄 수 있을까 해서 연락했어."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지윤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망설이다 물었다.“혹시 이상한가요?”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이상하긴요. 지윤 씨 마음에 들면 되는 거죠.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기 위해 입은 것도 아니잖아요. 여자가 예쁘게 화장하고, 차려입는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위해서지, 다른 사람 보기 좋아하라고 꾸미는 게 아니잖아요.”치마를 입으니, 지윤도 제법 소녀같이 보였다.그녀는 본바탕이 나쁘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생긴 이목구비에, 정갈한 눈썹. 남장을 해도 핸섬했을 외모였다.그런 그녀가 머리를 풀고, 치마까지 입으니 더욱 색다르게 느껴졌다.강성연은 지윤의 스타일이 왜 갑자기 이렇게 돌변한 건지 짐작이 갔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지윤은 서류를 건네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어가던 그녀는 마침 희승과 마주쳤다.고개를 들고 지윤을 바라본 희승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는 순간 몇초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번뜩 정신을 차린 그가 빠르게 지윤의 앞으로 걸어가더니, 그녀를 비상계단으로 잡아끌었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입을 열었다.“옷이 왜 이래요?”그녀가 되물었다.“전 이렇게 입으면 안 돼요?”희승이 당황하더니 시선을 피했다.“당연히 그건 아니죠. 그냥… 별일도 없는데 회사에서 이런 차림은 적합하지 않잖아요.”지윤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당신이 치마 입은 여자가 좋다면서요.”그가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요?”“그저께 밤에요.”“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술에 취해서 그렇게 말했잖아요.”술에 취했다는 그녀의 말에 희승은 곧바로 후회했다. 그가 한 손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다. 역시 술이 원수였다.“난 정말 그날에 내가 뭘 했던지 기억이 안 나요. 그런 말을 했던 건 더더욱 생각 안 나고요.”보통 술에 완전히 취한 상태였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쯤 취해있었다면 자신이 뭘 했는지 정도는 당연히 인상이 남을 것이고.그런데 어쩐
여자한테 마음이 있으면, 남자도 생각이 있기 마련이다.남자가 만약 명품 감정사를 한다면 여자보다 더 안목이 뛰어날 것이다.희승은 반지훈 곁에 오랜 시간 함께 있다 보니 수많은 유혹적인 여자들을 보아왔었다. 애초에 그는 강미현한테도 호감이 가지 않았다.단지 그녀가 반지훈한테 은혜를 베풀었다고 오해해서 마지못해 존경했던 것뿐이었다.하지만 지윤의 청순은 거짓이 아니었다. 청순을 떠나서 너무 정직하고 솔직했다. 그녀는 무슨 말이든 생각나는 대로 직설적으로 뱉어냈다.만약 그렇다면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그날 지윤을 건드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만취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윤은 아마 남녀가 함께 밤을 보낸다는 그 말 자체를 오해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컸다.“그날 밤, 나랑 지윤 씨 같이 잤어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희승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리고 뭘 더 했나요?”지윤이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그의 목을 빤히 쳐다보았다.“내가 당신을 물었어요.”그가 웃으면서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이거 말이죠?”그녀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책임질 것 없네요. 우린 아무것도 안 했으니깐요.”“하지만 같이 잤잖아요.”“하지는 않았죠.”지윤이 잠깐 침묵하다가 물었다.“뭘 더 해야 해요?”희승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었다.“당연히 아이를 만들만한 행동이죠.”“짝!”지윤이 그의 뺨을 때렸다.“변태.”그러더니 몸을 휙 돌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희승이 그녀가 때린 뺨을 매만졌다. 아프지도, 간지럽지도 않았지만 어이없고 서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은 그저 그녀한테 설명을 해줬을 뿐인데, 순식간에 변태로 내몰리다니?-이틀 후.한재욱과 한태군이 탄 비행기가 군오에 도착했다. 진철이 직접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다.진철과 한재욱이 마주 보며 한참 동안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 진철이 고개를 돌렸다. 그와 한태군의 시선이 마주쳤다.진철은 순간 그를 알아보지
어째 그녀의 사촌 동생한테는 기회가 없을 것 같은데?서울 반 씨 가문.반지훈의 부름을 받은 해신이 서재 문을 열고 들어섰다.“아빠 부르셨어요?”반지훈이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보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 씨 가문 일, 네가 그런 거야?”해신은 자신이 아버지를 속일 수 없을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승인했다.“맞아요.”“하려면 깔끔하게 했어야지.”반지훈이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딱히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조사해서 밝혀지면 내가 네 뒤처리까지 해줘야 하잖니.”자기 아들이 남의 회사 시스템을 해킹했다. 비록 너무 큰 일도 아니고, 손실을 일으키지도 않았지만, 한재욱은 자신한테 이번 일의 배후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범인이 자기 아들이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단 말인가.해신이 멈칫거리더니 확신에 찬 어조로 답했다.“절대 제가 한 거라고 밝혀낼 수 없을 거예요.”“절대란 건 없어.”반지훈이 눈을 치켜뜨고 아이를 바라보았다.“나도 찾을 수 있는 걸 다른 사람이라고 못 찾을 것 같아?”“자신감이 있는 건 좋아. 하지만 자신이 지나치면 실패하기 쉬워. 이번 일로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해.”확실히 해신의 해킹 기술은 훌륭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해킹 기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너무 과신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부주의와 허점만으로도 충분히 약점을 잡힐 수 있었다.해신이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그는 자기 실력을 너무 믿고 있었다.만약 자기 아버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먼저 이걸 찾아냈다면 확실히 아버지한테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잠시 후 그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잘못된 태도를 인정했다.“제가 더 잘할게요.”“넌 장차 회사를 관리하게 될 사람이야. 자그마한 방심이 어떤 나쁜 결과를 빚어낼 수 있는지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해. 넌 아주 우수해. 하지만 꼭 기억해 둬. 이 세상에 우수한 사람이 너 혼자만은 아니라는 걸.”반지훈은 참을성 있게 아이한테 일깨워 주었다. 해신도 그의 말을 마음에 새겨들었다. 자신의 결
희승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이게 대체…”지윤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싸우는 중인데요.”그의 등장에 불량소녀가 지윤의 팔을 뿌리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서둘러 도망쳤다.지윤이 그들을 쫓아가려는데 희승이 막아섰다.“쫓아가서 어쩌려고요.”그가 막아서는 모습에 지윤의 표정이 굳어졌다.“비켜요!”그녀가 정말로 화가 난 듯했다.희승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아니 저 애들이 지윤 씨한테 무슨 죄지었어요? 다 큰 성인이 애들과 싸울 필요가—”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함께 온 남자 동료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지윤 씨, 그만하면 됐어요. 아마 저 애들도 이제 다시는 제 동생을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남자 뒤에 숨어있는 여자아이는 기껏해야 열여섯 열일곱 정도로 되어 보였다. 여학생은 방금 울고 난 것처럼 눈 주위가 빨개져 있었다. 볼은 퉁퉁 부어있었고 치마에는 온통 발자국이 찍혀있는 초라한 행색이었다.희승은 순간 뭔가를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지윤은 머릿수만 믿고 약자를 괴롭히는 걸 가장 싫어했다. 만약 직장 동료의 동생이 학원 폭력과 공갈 협박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녀도 이 일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방에 들어왔을 때 여자아이가 여러 사람한테 둘러싸여 맞고 있었고, 심지어 강제로 바닥에 무릎을 꿇기까지 했었다.여자아이와 같은 반 친구라는 애들은 그 상황을 즐기며 부추기기까지 했다.결국 참지 못한 그녀가 당장 그들에게 뼈아픈 참회의 시간을 베푼 것이다.나이가 몇이든 상관없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절대 다른 사람을 폭행한 것이 정당방위가 될 수는 없었다!남자 동료가 자기 동생을 데리고 방을 나갔다. 처참하게 깨 부서진 방안에 지윤과 희승만 남게 되었다.지윤은 분이 풀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누가 조금이라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면 숨이 간당간당해질 때까지 죽도록 패주곤 했었다.하지만 지금은 강성연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는 봐주면서 때렸다. 그 때문에 그들을 절대 쉽게 보내주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무릎 꿇고 빌게는
해신이 막 회답하려고 하던 그때,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그가 곧바로 노트북을 닫고 고개를 들었다.“엄마?”강성연이 외투 하나 걸친 채 문 앞에 서 있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그녀가 해신의 방문 틈새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들어온 것이다.“밤도 늦었는데 왜 아직 안 자고 있어?”“저… 저 다음 학기 학술 문제 좀 연구하느라고요.”강성연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들이 공부를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너무 늦은 시간까지 하면 몸을 상하기 마련이었다.“새벽 한 시가 다 됐어. 일찍 자야지.”그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엄마.”그 시각 다른 한편.한태군은 상대 쪽에서 아무런 답변이 없자 그제야 노트북을 한편으로 밀어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상대방이 그를 알고 있다면 이번 해킹도 그를 노리고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상대방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다음날, 희승이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의 표정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대표님.”서류를 확인하던 반지훈은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사상 첫 지각이네. 어젯밤에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닌 거야.”희승이 얼른 해명했다.“오늘 딱 한 번 늦잠 잔 것뿐입니다. 헛짓거리라뇨.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어젯밤 지윤과 함께 새벽 4시까지 밤을 새웠던 탓에 아침 알람이 울리는 것도 못 듣고 잠들어 버린 것이다.깨어나 보니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반지훈이 서류를 닫고 희승을 올려다보았다.“여자가 생겼군.”그가 당황하며 변명했다.“아닙니다.”“내 눈은 뭐 장식인 줄 알아?”희승이 무의식적으로 목을 감쌌다. 삼 일이나 지났다. 옅어지긴 했지만 그렇게 명확했던 흔적이 가린다고 없어질 리가 없었다. 눈먼 장님이 아니라면 누구나 봤을 것이다.“됐어. 연 비서 사생활 따위 내 알 바 아니지.”희승이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사
강유이도 둘째 오빠가 왜 따라 나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저 자신을 혼자 두는 게 걱정되어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넘겼다.“우리 어디 가요?”“뮤지컬 보러 가자. 어때?”“뮤지컬이 뭐가 재밌어요.”뮤지컬을 좋아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었다. 그리고 마침 강유이는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조민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그냥 나랑 한 번만 가줘. 응?”강유이는 차마 그녀를 거절하지 못했다.그때 휴대폰을 확인하던 해신이 불쑥 말을 꺼냈다.“먼저들 가 있어. 나중에 찾으러 올게.”그가 외출한 건 완전히 강유이 때문만은 아니었다.조민과 함께 있으니, 유이한테 무슨 일이 생길 가능성은 작았다.강유이가 뭔가를 물으려고 하던 그때, 조민이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반재신 후배님. 후배님 대신 내가 동생 잘 보살피고 있을 테니까.”해신이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강유이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왠지 둘째 오빠가 급히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았다.해신은 홀로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그때 검은색 세단이 천천히 그의 옆에 멈춰 서더니 뒷좌석 창문이 스르륵 내려갔다.상대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거라고는 그도 생각지 못했었다. 그가 미처 뭐라 말하기 전에 남자가 물었다.“그쪽이 우리 도련님을 만나보고 싶다던 분입니까?”해신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한태군이 날 데리고 오라고 시켰어요?”전유준은 해신의 말이 곧 긍정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다음 대사를 뱉었다.“도련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해신은 아무 거리낌 없이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차는 한 음식점 앞에 멈춰 섰다.전유준은 해신을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는 한 소년이 앉아있었다. 몇 년 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해신은 그를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한태군이 룸 안으로 들어오는 소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렸다.어딘가 익숙한 얼굴이긴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는 전유준한테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전유준이 룸을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