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원은 고개를 숙였다.“괜찮아 보였어요. 아빠가 걱정하지 말래요.”사실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는 그만 알고 있었다.비록 징역 2년뿐이지만 2년 동안 자유를 잃는 것이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한혜숙은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진여훈은 그들을 집으로 데려다줬다. 그는 마당에 서서 그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았고 잠시 뒤 몸을 돌려 차 앞으로 걸어갔다.문을 여는 순간, 하정원이 따라왔다.“잠깐만.”그는 몸을 돌린 뒤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멈췄다.“왜 그래?”하정원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감사 인사 하려고.”한참을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하정원은 입꼬리를 당겼다.“인사받기 싫으면 말고.”진여훈이 갑자기 웃었다.“내가 언제 안 받는대?”하정원은 뜸을 들이다가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에 옅은 웃음기가 보였는데 아주 자세히 봐야 보였다.하정원은 다급히 시선을 옮겼다.“누가 알겠어. 네가 인사 안 받는다고 하면 내가 무지 무안할 거 아니야?”진여훈은 잠깐 침묵했다.“말로 때우려고?”“그... 그러면 내가 밥이라도 사줘야 해?”진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정원은 기가 막혔다.“사양하지도 않네.”진여훈은 웃었다.“동생이 오빠 밥 사준다는데 내가 사양해야 해?”하정원은 팔짱을 두르고 고개를 돌렸다.“아냐. 밥 한턱낼 수는 있으니까.”곧이어 하정원이 말을 보탰다.“언제 시간 있어?”진여훈은 앞으로 나서며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알맞았다.“언제든.”레스토랑은 환경이 좋고 아늑하며 스타일은 회색 위주에 어두운 파란색 벽등이 걸려 있었다. 높은 건물에서 군오의 야경을 내려다보면 반짝거리는 밝은 구슬이 밤의 장막에 박힌 것처럼 보였다.하정원은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종업원과 대화를 나누며 주문했다.하정원은 흰색 털 코트에 샴페인 색 터틀넥 셔츠를 입고 있었고 넥라인에 리본을 맸으며 긴 머리는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얼굴을 드러냈다.하정원은 메
진여훈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똑같이 잔을 들어 하정원과 건배했다.“밥도 안 먹었는데 날 취하게 만들려고?”하정원은 천천히 술을 마셨다.“어차피 집까지 데려다 줄 기사가 있잖아. 그래도 취하는 게 무서워?”그의 시선이 유리창 속 그녀에게 향했다.“나 취하게 만든 뒤에 거리에 버려둬서 뉴스에 나오게 하려고?”“...”하정원은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진여훈을 취하게 만들어 망신을 줄 생각은 있었다.진여훈은 손끝으로 컵을 만지며 시선을 들었다.“내가 맞췄어?”하정원은 잔을 내려놓았다.“난 그렇게 지나친 사람은 아냐.”진여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태연하게 말했다.“그러면 네게 날 취하게 할 능력이 있어야 할 텐데.”하정원은 믿지 않았다.“그래. 두고 보자고.”밤은 점차 깊어졌고 네온사인이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거리를 비췄다.검은색 차가 천천히 골목길에 들어섰다.하정원은 취기가 오른 상태였는데 진여훈은 의자에 기대어 꼼짝하지 않았다. 하정원은 거리를 좁히고 그의 뺨을 툭툭 쳤다.“진여훈?”그에게서 반응이 없자 하정원은 더욱더 우쭐했다.“겨우 이 정도면서 안 취할 거라고? 당당한 진씨 집안 도련님이 여자보다도 주량이 약하네.”기사는 백미러를 힐끗 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는 진여훈의 집에 도착했고 하정원은 창밖을 바라봤다.“절 먼저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요?”기사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저 혼자서는 도련님을 부축하지 못합니다.”하정원은 그를 훑어봤다. 건장해 보이는 남자가 진여훈을 부축하지 못한다고?기사는 그녀의 시선에 불편해져서 뒷좌석을 바라봤다,“날도 어두우니 하정원 씨께서는 도련님 집에서 묵으시죠.”어차피 진여훈의 집에 그녀가 묵을 방도 있으니 하정원은 흔쾌히 승낙했다.“그래요.”하정원은 뒷좌석 문을 열었고 기사가 진여훈을 부축해 차에서 내렸다. 그가 하정원에게 몸을 기대는 바람에 하정원은 살짝 비틀거렸는데 다행히도 기사가 반응이 빨랐다.하정원은 혀를 찼다. 그녀는 진여훈의 주량이 이렇게 약할
진여훈은 하정원의 어깨에 기대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일부러 나를 취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하정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참나, 그러게 누가 마시지도 못하는 술로 자존심을 세우래?"하정원은 자신이 진여훈의 주량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고 생각했다. 주제에 체면을 지키려는 그가 웃기기도 했다."하정원."진여훈은 그녀의 귀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하정원은 어깨를 흠칫 떨며 옆으로 피했다."왜?"허스키한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심장 떨리는 핑크빛 분위기에 하정원은 약간의 위기감이 들었다.사실 하정원도 경험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육진우와 꽤 깊은 사이였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육진우는 특유의 다정함과 부드러움으로 그녀에게 최고의 즐거움을 줬다.하정원이 육진우를 잊지 못하는 데는 젊은 나이에 사별한 이유도 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 때문도 있었다. 육진우와의 기억은 마치 오래된 영화의 수많은 명장면과 같았다. 그가 존재했던 흔적과 기억은 거품과 같이 약하면서도, 감정을 파도치게 할 정도로 강했다.육진우가 죽은 다음 하정원은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린 적 없었다.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육진우와 같은 남자가 없을 것 같았다.진여훈과 결혼한 3년 동안은 서로 미워하기 바빠서 더욱 마음이 흔들릴 새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 선을 넘을락 말락 한 거리에 놓이게 되었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한 쪽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말이다.술에 취한 남자, 무의식적인 충동, 이 모든 것이 황당한 일로 이어지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진여훈이다. 하정원을 없애지 못해서 안달 난 전 남편 진여훈 말이다. 만약 그와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어떠한 목적을 위해 일부러 함정을 팠다는 어이없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하정원은 애써 이성의 끈을 잡으며 진여훈을 밀어냈다."야, 일단 놔 봐."진여훈은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크럽 유리에서는 진여훈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가 옷을 벗는 것부터 샤워하는 것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부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실루엣이었다.'지금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거야?'하정원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빠르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문을 빼꼼 열었다. 다행히 복도에 아무도 없어서 성큼 밖으로 나갔다.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한 가족이 보였다.강유이는 약간의 안도감이 섞인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방 안에 있던 사람 숙모였어요?"하정원이 진여훈과 함께 밤을 보낼 정도의 사이인 것을 보고 강유이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도했다.강성연은 마른기침을 하며 하정원에게 말했다."같이 식사해요.""아... 아니에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하정원은 차마 남아서 같이 식사할 낯이 없었다. 그래서 도망가다시피 밖으로 나갔다.반지훈은 강성연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강유이를 향해 말했다."우리 오늘 출발해서 서울로 돌아갈 거야.""이렇게나 빨리요?""왜, 더 놀고 싶어?"강유이는 입을 삐죽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군오에서 하정원과 함께 노는 것이 꽤 즐거웠다."만약 더 놀고 싶으면 개학하기 전까지 증조할아버지랑 같이 있어 돼.""정말요?""그럼, 네 오빠들도 같이 있어 줄 거야."반지훈은 이참에 강성연과 단둘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끽할 생각이었다....하정원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어머니인 한혜숙은 주방에서 디저트를 만들고 있었다. 어젯밤 어디로 갔냐는 질문에 그녀는 솔직하게 진씨 저택에 있었다고 답했다.한혜숙은 하정원의 목에 남아 있는 선명한 자국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여훈이랑 같이 있었니?""아니거든요."입으로는 부정했지만 찔리는 그녀였다. 왜냐하면 하정원은 어젯밤 내내 진여훈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아니야. 그건 사고였어!'한혜숙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정원아, 난 여훈이 걔가 참 마
일주일 후.반지훈은 강성연과 단둘이 먼저 서울로 돌아갔다. 강시언과 강해신은 강유이와 함께 군오에서 방학을 보내기로 했다.강유이는 조각 케이크를 들고 하정원을 만나러 화실로 왔다. 하정원은 마침 연필을 들고 인물화를 그리고 있었다.강유이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하정원이 누구를 그리고 있는지 할끗 봤다. 점점 선명해지는 사람의 얼굴에 강유이는 결국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이거 우리 삼촌이죠?"하정원은 손을 흠칫 떨며 머리를 돌려 강유이를 바라봤다."아니거든. 누가 그래?"강유이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삼촌이랑 닮은 것 같은데...""말도 안 돼, 네 삼촌 아니거든."하정원은 단호하게 반박하고 머리를 돌렸다. 연필을 들고 있는 손은 또다시 흠칫 떨렸다. 강유이의 말대로 그림 속의 얼굴이 진여훈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이거 왜 이래? 난 절대 진여훈 그 자식을 그린게 아닌데... 그래, 유이가 갑자기 그렇게 말해서 비슷해 보이는 걸 거야.'하정원은 연필을 들고 그림을 수정하며 말했다."이제는 다르지?"강유이는 한쪽에 자리 잡고는 턱을 괴며 미소를 지었다."숙모, 우리 삼촌 보고 싶죠?"하정원은 연필을 내려놓으며 머리를 홱 돌렸다."내가 왜?"하정원은 자신이 진여훈을 보고 싶어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두 사람은 아무런 사이도 아니니 말이다.지난번 그런 일이 일어난 후, 진여훈은 어디로 갔는지 일주일 동안이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 자신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지, 안 그러면 지금보다 더 어색했을 것이다."우리 아빠는 숙모 같은 사람을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어요.""너 계속 어른을 놀릴래?"하정원은 강유이가 분명 일부러 이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강유이는 소중히 들고 왔던 조각 케이크를 건네며 말했다."여기요, 이건 삼촌이 전해 달라고 한 케이크예요."하정원은 멈칫하며 물었다."진짜? 그 사람이 나한테 전해주라고 했어?"강유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정원은 말문이 막힌 듯 멈칫하며 진여훈에게 물었다."언제부터 듣고 있었어?"진여훈은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서 거리를 좁혔다. 벽에 드리워진 두 사람의 그림자는 다정한 자세로 꼭 붙어있었다."네가 나를 그리고 있다고 말할 때부터.""그거 너 아니거든."진여훈은 눈살을 찌푸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하정원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나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진여훈은 멀어져가는 하정원의 팔을 잡아당겼다. 예고 없이 뒤로 당겨진 하정원은 중심을 잃고 그의 품으로 쓰러졌다. 그는 하정원을 벽에 대고 머리를 숙여 입술에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말했다."솔직하게 말해."하정원은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뭘?"진여훈은 뜨거운 숨결을 내뱉으며 물었다."나 어때?""네... 네가 뭐?"하정원은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진여훈은 두 손으로 그녀의 볼을 감싸며 또다시 물었다."그날 밤 나 어땠어?"하정원은 머뭇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파르르 떨리는 눈초리로 말했다."장난치지 마.""장난 아니야."진여훈은 더 가까이 다가가며 끈질기게 물었다."나 진짜 어땠어?"하정원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동공 지진을 했다. 진여훈을 밀어내기 위해 그의 가슴에 놓인 손은 주먹 모양으로 잡혔다.솔직히 말하자면 하정원은 그날 밤 약간의 설렘을 느꼈다. 진여훈과의 스킨십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평생 육진우 한 명만 바라볼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의 반응은 생각과 달랐다. 그녀는 약간 부끄러운 감도 들었다, 마치 배신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하정원은 오랜 시간 동안 육진우를 향한 마음을 지켜왔다. 다른 사람의 방해는 받고 싶지도, 받을 리도 없다고 생각했다.하정원은 진여훈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포기하고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아무렇지도 않았어.""확실해?"끝도 없이 질문하는 진여훈에 하정원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도대체 어쩌자는 거야!"진여훈은 하정원의 목을 감싸더니 예고 없이 입술을 겹쳤다
진여훈은 하정원의 마음을 얻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하정원은 멈칫하며 물었다."너 또라이야?""그건 인정하는 바야."진여훈은 피식 웃었다. 하정원은 이때다 싶어 몰래 옆으로 비켜서며 물었다."만약 내가 계속 너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내기할래?""무슨 내기?"진여훈은 또다시 하정원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과연 나를 좋아하게 될지 말지로 내기하자. 나는 좋아하게 된다에 한 표."하정원은 어이없는 듯 피식 웃으며 진여훈을 바라봤다."자신 있나 봐?""그럼, 넌 어디에 걸래?"하정원은 진여훈을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유치하게 무슨 내기야. 안 해."진여훈은 피식 웃으며 또다시 하정원을 끌어안았다."나를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워?"하정원은 머리를 숙여 신발을 바라봤다."그냥... 별 의미 없는 것 같아서."진여훈은 하정원의 손을 꼭 잡았다. 그녀가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기회를 주지 않았다."맞네, 무서워하는 거."하정원은 계속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진여훈의 따듯한 숨결이 그녀의 이마를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그녀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거든..."진여훈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가에 짧게 뽀뽀를 남겼다."나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무서워?""아니라고 했잖...!"진여훈은 또다시 예고 없이 입술을 겹쳤다. 조금 전보다 더욱 격렬한 움직임에 하정원의 입은 저절로 벌려졌다. 거침없이 파고드는 열정은 그녀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렸다. 얼마 후 진여훈은 천천히 머리를 들고 여운에 잠긴 채 그녀의 입술을 쓰다듬었다."나 잘할 수 있어."하정원은 뒤늦게 정신 차리고 그를 밀어냈다."이건 반칙이야!"진여훈은 미소를 짓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정원은 후다닥 화실 안으로 들어가서는 문을 닫아버렸다. 밖에 가둬진 진여훈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어차피 그에게는 남는 게 시간이니까.강유이는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여훈이 화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뒤늦게 정신 차린 하정원은 한혜숙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먼저 돌아가요.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요."한혜숙에게 속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하정원은 애써 진여훈을 무시하고 말했다. 한혜숙은 그냥 기분이 나쁘겠거니 하고 머리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난 먼저 갈게. 너 혼자 조심해."하정원은 한혜숙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머리를 돌렸다. 진여훈과 단발머리 여자는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하정원은 입술을 꼭 깨물더니 몰래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과 함께 카페 앞까지 왔다.하정원은 약간 현타가 오기도 했다. 진여훈이 누구와 만나든 그녀가 상관할 바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만 따라다니고 돌아가려고 했다. 이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강유이가 갑자기 말했다."숙모!"하정원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뒷걸음질 치더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유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있어?"강유이는 밀크티를 든 채로 활짝 웃었다."오빠랑 삼촌이랑 다 같이 쇼핑 나왔다가 삼촌은 친구 만나야 한다고 해서 헤어진 참이었어요."강유이는 또 카페를 바라보며 말했다."친구라고 한 사람이 여자였구나..."하정원은 강유이의 이마를 살짝 밀며 말했다."어린애는 몰라도 되는 일이야."강유이는 이마를 만지작대며 입을 삐죽였다."제가 뭘 어쨌다고요. 근데 숙모... 여기까지 몰래 따라온 거예요?""아, 아니거든! 누가 따라왔다고 그래! 나도 그냥 우연히 발견한 거야."하정원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보고 강유이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진짜 엄청난 우연이네요.""강유이, 솔직히 말해. 너 삼촌한테서 뭐 받았지? 요즘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아니에요, 숙모. 오해예요."강유이는 커다란 눈으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그날 화실에서는 삼촌이 저한테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런 거예요. 또 삼촌이 샀다고 하면 숙모가 싫어할 것 같아서 제가 샀다고 했단 말이에요.""너 좀 의심스러운데."하정원이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말하자, 강유이는 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