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준이 다가가려 하자 이율이 성큼 막아서며 말했다."서도준 씨, 만약 제 언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세요."서도준은 여전히 차량 뒷좌석에 있는 곽의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제 행동이 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서도준은 이율을 스쳐 지나가서는 곽의정을 차 밖으로 안아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서도준은 곽의정을 안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이율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강현이 다가와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두 사람의 문제는 두 사람이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북로 남원.서도준은 곽의정을 안고 자신의 침실로 와서는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곽의정은 정신이 약간 드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서도준이 그녀의 신발을 벗겨주자 천천히 눈을 뜨고 눈앞의 사람을 바라봤다."도준 씨?""네, 저예요."서도준은 이불을 덮어주더니,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속은 괜찮아요?""아니요..."시원하게 토해 내면 훨씬 편하겠지만, 곽의정은 메슥거리기만 해서 더욱 힘들었다. 서도준은 침대에 앉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왜 그렇게 많이 마셨어요."곽의정은 몽롱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기분이 나빠서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 오늘 김아린 씨를 만났어요. 아린 씨말로는 도준 씨가 저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예전 일에 대해서도 듣게 됐어요."곽의정은 너무 졸려서 눈이 감길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말했다. 서도준은 입을 꾹 다문 채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미안해요, 제가 너무 제멋대로였어요. 혹시... 화났어요?"서도준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아니요.""진짜죠?'"그럼요."곽의정은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행이에요."곽의정은 천천히 눈을 감더니 바로 잠들어버렸다. 서도준은 그녀를 물끄러미
서도준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어젯밤보다 더 취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요?""저... 저는 씻으러 갈게요."곽의정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황급히 화장실로 갔다.곽의정이 씻고 나왔을 때, 식탁 위에는 서도준이 준비한 죽과 해장국이 놓여있었다. 곽의정은 먼저 해장국부터 마시고 따끈한 죽을 떠먹었다, 덕분에 속이 훨씬 편해지는 것 같았다.곽의정은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생각난 듯 이렇게 물었다."근데 저 어제 어떻게 여기서 잠든 거예요?""제가 데리고 왔어요.""어떡해요?""의정 씨 동생한테서 전화 왔더라고요. 많이 취했다고...""이율이 저를 여기로 데려다줬어요?""아니요, 제가 데리고 왔어요."곽의정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머리를 들었다. 서도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순간 헷갈렸다."귀찮게 해서 미안해요."서도준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약혼녀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걸 귀찮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죠."'약혼녀...'곽의정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약혼녀라는 호칭을 들으니 설렐 수밖에 없었다.서도준은 10시쯤에 곽의정을 회사로 데려다줬다. 곽의정이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서도준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의정 씨.""왜요?""우리 같이 살래요?""도준 씨 집에서요?""네, 의정 씨가 원한다면요."곽의정은 시선을 피하더니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말했다."아빠랑 상의하고 결정해도 돼요?""그럼요."...진여훈은 강유이와 강시언을 데리고 레스토랑으로 왔다. 강해신은 미술 학원을 가야 해서 같이 올 수 없었다.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려 던 강유이는 가만히 앉아있는 진여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삼촌은 드시고 싶은 거 없어요?"진여훈은 그저 그들이 주문한 음식을 함께 먹겠다고 했다. 강유이는 음식을 남기게 될까 봐 조금만 주문하고 메뉴판을 직원에게 건네줬다. 곁에 앉아 있던 강시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이걸로 배부르겠어?""그럼. 너무 많이 주문하면 먹지도 못하고, 그건 낭비잖아."강유이는 음
이미 강시언의 정체를 추측해 낸 민서율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아.""어떻게 알았어요?""이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어."강시언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민서율을 바라봤다. 그는 진작에 강해신에게서 민서율이 강유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었다."만나서 반가워요."강시언은 차가운 표정으로 먼저 인사했다. 민서율은 짧게 묵례하며 인사를 받아줬다."저도 만나서 반가워요."어쩐지 불편한 분위기에 강유이는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같은 시각, 프라이빗 룸."왜 따라 들어와?"진여훈은 하정원의 앞에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왜 서울로 왔어? 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에 창피를 주고 싶었어?"하정원은 피식 웃으며 의자에 기댔다."내가 어디로 가든 너한테 허락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하정원은 또 일부러 놀란 척하며 물었다."너 혹시 나한테 관심 있어?""내가 거지한테 관심이 생길지언정, 너한테 관심 생길 리는 없어."진여훈은 하정원에게 증오의 감정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정략결혼으로 묶여진 이유도 있지만, 사람들이 하정원에 대한 평가가 나쁜 이유도 있었다.하정원은 지금껏 두 손 두 발을 합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자를 만났다. 업계에서 그녀는 어장관리의 고수로 평가받았다. 그녀는 스캔들을 거의 달고 살았고, 길어서는 반년, 짧아서는 사흘이라는 연애 기록으로 유명하기도 있었다.어느 남자가 이런 여자와 결혼하고 싶어 하겠는가?진여훈은 집안사람에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하정원과 정략결혼을 했다. 원래는 같이 사는 동거인 정도로 여기려고 했는데, 집에 있는 날이 얼마 없을 정도로 자주 외박하는 하정원 때문에 증오만 점점 깊어져 갔다.하정원은 진여훈이 이렇게 대답할 줄 안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럼 내 아빠부터 설득해 줄래? 우리가 이혼해야 내가 거지한테 기회를 주지."진여훈은 식탁을 탕 소리 나게 내리치고는 몸을 일으켰다."설득은 당연히 할 거야. 내가 경고하는데 서울
직원이 음식을 들고 들어온 문틈으로 민서율은 밖에 있는 강유이를 바라봤다. 강유이는 아주 해맑게 웃고 있었다. 곁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야만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순진한 미소였다.밥을 먹고 난 강유이랑 그의 오빠는 레스토랑에서 나왔다. 진여훈이 기분 나빠 보이는 관계로 두 사람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바로 차에 올라탔다."유이야, 너 민서율이랑 어떤 사이야?""그냥 좋은 사이지... 오빠까지 이럴 거야?"강유이는 강해신에 이어 강시언도 민서율을 싫어하나 싶었다."아니야, 난 너랑 친한 사이 같아서 물어봤을 뿐이야."강시언도 강유이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기는 하지만, 강해신처럼 티를 내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는 강유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건 강유이가 매력적이라는 뜻이니까.다만 강유이는 중학생이고, 민서율은 고등학생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은 아직 깊은 관계를 맺을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강시언이 최고로 아끼는 여동생을 쉽게 다른 남자한테 넘겨줄 일도 없고 말이다.강유이는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강시언에게 물었다."오빠도 둘째 오빠랑 같은 걱정을 하고 있지?"강시언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강유이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내가 연애할까 봐 걱정하는 거 아니야?"강시언은 시선을 피하며 마른기침을 했다."걱정은... 되지.""걱정하지 마. 나 연애 안 해. 서율 오빠랑도 그냥 친한 사이일 뿐이야."강유이는 강시언이 강해신처럼 무섭지 않았다.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강시언은 단 한 번도 그녀를 나무란 적 없었다. 강해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거리낌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둘째 오빠는 요즘 자꾸 서율 오빠 때문에 나를 혼내. 걱정돼서 그러는 거는 알지만... 아무튼, 내가 연애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강시언은 시름을 놓은 듯 싱긋 웃으며 말했다."그럼 다행이야."그는 강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한태군의 일은 역시 숨기는 게 낫겠다
곽의정은 놀란 눈빛으로 서도준을 바라봤다. 그녀는 서도준의 능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구름에 별장은 복층으로 이뤄졌다. 2층에는 두 개의 침실, 1층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었다. 그리고 전부 넓은 베란다가 있었다. 별장의 인테리어는 곽의정이 좋아하는 단아한 스타일이었다.'이렇게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구나...'"위층도 구경할래요?"서도준이 곽의정의 앞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곽의정은 머리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침실에 들어섰다.넓은 침실에는 커다란 창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옷방과 화장실이 전부 따로 있어서 두 사람이 살기에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곽의정은 창가로 가서 항구의 야경을 바라봤다. 조명이 반사된 바다 위에서 오가는 배는 항구의 야경에 독특한 매력을 더 해줬다.서도준은 곽의정의 뒤로 와서 물었다."마음에 들어요?"곽의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이 야경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생각 없이 몸을 돌린 곽의정은 그대로 서도준의 품에 부딪혔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들었다."뭐야..."곽의정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생각 없이 나온 반말은 분위기를 더 한 층 무르익게 했다.서도준은 곽의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제가요?"서도준은 곽의정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숨결이 코끝에서 맴돌기 시작했다."네, 방금 뭐라고 말했잖아요."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기에, 곽의정은 발그레한 얼굴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엉겁결에 반말을 한 것 같은데, 우리 그냥 반말할까... 요?""그래."서도준은 피식 웃으며 곽의정의 목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숨결은 천천히 한데 엉키기 시작했다.곽의정은 서도준의 옷깃을 꽉 잡았다. 비록 서도준과의 첫 키스는 아니지만 그 어느때 보다도 강렬하고 정열적이었다.이때 서도준이 갑자기 멈춰서서 그녀를 밀어냈다."우리 이만 각자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도준이 나가려는 것을 보고 곽의정이 뒤에서
샤워를 끝낸 곽의정은 욕실에서 나왔다. 사실 그녀는 오늘 밤을 위해 수많은 속옷을 준비했지만, 결국 입지 못하고 허벅지까지 오는 넓은 티셔츠를 걸쳤다.곽의정이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서도준은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아직도 일하는 거야?"서도준은 머리를 들더니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사인해, 이건 약속했던 지분이야."곽의정은 서류를 바라보았다. 서인그룹의 5% 지분을 양도한다는 계약서였다.서인그룹의 5% 지분을 받으면 주주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서도준이 처음부터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곽의정은 지분이 어떻게 됐든 상관없었다. 정작 받게 되자 자신들의 사이가 이익을 위한 거래가 된 것마냥 마음이 복잡하기도 했다.서도준은 사인을 하지 않는 곽의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곽의정은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이건 우리가 정략 결혼을 제안할 때 얘기잖아...""그렇지."서도준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곽의정은 멈칫하며 머리를 들었다."지금은 예물이라고 생각해."곽의정은 발그레한 얼굴로 머리를 숙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도준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무슨 고민이라도 했어?"곽의정은 입술을 꼭 깨물며 고민하다가 말했다."응... 나 너무 이기적이지 않아? 혹시 우리 결혼하고 아이가 갖고 싶다면...""입양하면 되지."서도준은 곽의정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네가 아이를 갖고 싶다면 입양하면 돼.""넌 괜찮아?""그럼, 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그리고 아이를 가질 생각도 없어. 혹시 그때 레스토랑에서 얘기를 나눴던 매니저 기억나?""응."서도준은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으며 말했다."같이 스파이 일을 할 때, 임신한 약혼녀가 혼자 아이를 낳다가 죽었거든. 근데 약혼녀의 시체를 보러 가는 길에 의사가 그래도 아이는 살았다고 다행이라고 하더래. 다행이긴 하지만 과연 정말 다행이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데. 아이때문에 죽은게 아니라 자신때문에 죽은 것 같
서도준은 피식 웃으며 살금살금 걸어가 백허그를 했다. 곽의정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머리를 들었다."언제 내려왔어?""방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아침밥을 하려고..."'언제까지 얻어먹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서도준은 그녀의 귀가에 뽀뽀하며 말했다."넌 안 해도 돼, 내가 할게.""싫어. 나도 할 거야."곽의정의 단호한 눈빛에 서도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래, 네가 이겼다."곽의정은 단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 없었다. 오늘도 비록 레시피를 보며 하기는 했지만 결과물은 여전히 참담했다.곽의정 본인도 감히 입을 대지 못한 음식을 서도준은 깔끔하게 비웠다, 그것도 아주 맛있어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서도준의 모습에 더욱 충격받은 곽의정은 퇴근하자마자 수민 아파트로 달려가 이율에게 요리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이율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언니 요리하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요?"곽의정은 부잣집 딸로 태어나 주방에 들어간 적 없거니와, 기름 냄새가 싫어서 들어가기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 사람이 요리를 배우겠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곽의정은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몰라, 일단 그냥 가르쳐줘."이율은 어쩔 수 없이 간단한 요리부터 가르쳐줬다. 주방에서 사건사고가 생기지 않을 쉬운 요리로 말이다.곽의정은 습득력이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꽤 봐줄 만한 저녁 식사를 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 만든 도시락으로 들고 서도준의 카페에 찾아가기도 했다.곽의정을 발견한 매니저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사모님, 사장님 만나러 오신 거예요?"'사모님...'갑작스러운 호칭 변화에 곽의정은 약간 어색한 감이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매니저의 말을 따라 도시락을 들고 서도준의 사무실로 갔다.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도준은 바로 곽의정이 들고 있는 도시락을 발견했다. 곽의정은 미소를 지으며 책상 위에 도시락을 내려놓았다."오늘은 카레 덮밥이야.""요리 공부는 잘돼가?"곽의정은 도시락 뚜껑을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줄곧 높은 성적을 유지해 온 강해신은 아직 13살밖에 안 됐지만 벌써 대학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강성연은 반지훈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그럼 천재 아들은 천재 아빠한테 맡길게요."반지훈은 직접 사립명문고등학교의 교장에게 전화해서 강시언의 전학을 준비했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으로 전학하게 되었는데 마침 민서율과 같은 반이었다.오늘 전학생이 온다는 소문에 교실은 유난히 시끄러웠다. 민서율도 궁금하기는 했지만, 토론에 가담하지는 않고 조용히 책을 읽었다.이때 담임 선생님이 한 사람을 데리고 걸어왔다. 학생들은 일제히 창밖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에 민서율도 책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봤다.담임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교탁에 올라섰다."얘들아, 조용. 오늘 우리 반에 외국에서 온 전학생이 왔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도록. 박수!"문밖에 서 있던 사람이 들어온 순간 교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쟤 반재신 아니야?""반재신이 무슨 외국에서 온 전학생이야?"다들 의아해하고 있을 때, 오직 민서율만 그가 누군지 알아봤다.담임 선생님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재언아, 자기소개해야지."강시언은 펜을 들고 보드에 '반재언' 석 자를 적었다. 그러고는 태연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서 말했다."앞으로 잘 부탁해."강시언이 고등 학교로 전학왔다는 사실은 전교에 퍼졌다. 특히 그가 강해신의 쌍둥이 형이라는 사실이 가장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지금껏 반씨 가문의 세 남매 중에서 강해신과 강유이만 봤지, 맏이인 강시언은 본적 없었다.강시언과 강해신은 거의 똑같이 생겨서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분위기와 점으로 구분을 해볼 수는 있었는데, 강해신은 눈가에 점이 있고 오만한 성격 때문에 친해지기 아주 어려웠다. 강시언은 점이 없고 오만하지도 않았지만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더욱 친해지기 어려웠다.강유이는 강시언이 민서율과 같은 반이라는 말을 듣고 바로 고등 학교로 달려갔다. 강시언이 계단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