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술자리에 적게 나가는 게 좋아요. 안 나갈 수가 없다면 최대한 적게 마시든가 해요.”서도준은 잠깐 뜸을 들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마시는 척하는 것도 안 될 건 없죠.”곽의정은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서도준 씨는 술 안 마시려고 마시는 척만 해본 적 있나 봐요?”마시는 척만 한다는 건 혼란한 틈을 타서 술을 피하는 스킬로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술잔에 있는 술을 다른 술잔으로 옮겨 담거나 쏟아버리는 것이었다.물론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는 가능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좋지 않았다. 발각되지 않으면 좋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발각된다면 상대방은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 거래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서도준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전 남자니까 회식 자리에서 술을 얼마나 마시든 손해 볼 건 없죠.”곽의정은 당황했다. 예전에 성운테크에 있을 때는 다들 그녀가 성운테크 딸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녀에게 깍듯했다.그러나 신분이나 배경이 없는 여직원들은 달랐다. 여자들은 회식 자리에서 남자보다 훨씬 더 손해를 봤다. 상사가 술을 덜 마시도록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함께 술을 마셔줘야 하니 말이다.건강을 해치는 건 물론이고 취하면 성희롱당할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여직원이 술을 덜 마실 수 있게 도와주는 상사가 정말 드물었다.곽의정은 그를 보고 말했다.“사장님은 여자들에게 다 이렇게 다정한가요?”서도준은 솔직하게 말했다.“여성을 존중하는 건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존중과 다정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여성을 존중한다는 건 개인적 수양일 뿐이고, 여성에게 다정하다는 건 오해를 불러일으켜 애매한 관계로 발전하기 쉬웠다.다정한 남자는 보통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거리감이 모호했고,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는 그보다 조금 더 거리감이 확실했다.곽의정은 오래 있지 않고 이내 카페를 떠났다.이틀 뒤, 화성 용호 3대 그룹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터졌다.
그는 수단이 교활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샀지만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에게서 이득을 본 동시에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다.그런데 똑같은 수단으로 반지훈을 상대하려 하다니, 그야말로 자기 무덤 자기가 판 셈이었다.반지훈은 하 대표를 보고 말했다.“용호 제3구역은 화성에서 아주 값진 곳이에요. 하 대표님은 그쪽과 분쟁을 겪고 있으니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지 말지를 잘 고려해 보세요.”하 대표는 침묵했다.삼십 분 동안 얘기를 나눈 뒤 반지훈은 레스토랑에서 떠났다. 희승은 차를 문 앞에 세웠고 반지훈은 차에 올라탔다.“서인그룹은 지금 어떤 상황이야?”희승이 대답했다.“화성 쪽과의 거래를 끊고 있어요. 서인그룹 회장은 그쪽에서 몇천억에 달하는 이익을 봤으니 일에 휘말릴까 봐 아주 두려울 거예요.”희승이 물었다.“대표님, 하 대표님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반지훈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글쎄.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용호 제3구역이 사업을 독점했고 그 탓에 지난 몇 년 동안 억눌려 있었는데 그가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아?”희승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서인그룹 회장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반지훈을 건드리다니, 반지훈이 오랫동안 조용히 있어 스스로 총구 앞에 선 셈이었다.-저녁 열 시, 카페는 문을 닫았고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들어와 서도준을 찾았다.서도준이 휴게실에서 나왔다. 이제 막 일을 마친 그는 느긋하게 거두었던 소매를 내리며 평온하게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서 회장님이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서도준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마무리를 책임진 직원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했고 직원이 떠나자마자 말했다.“지금 시간 없습니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갔다.“도련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저희를 탓하지 마세요.”서도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그들이 손을 쓰려고 하는데 서도준이 테이블 위 술병을 쥐고 상대방의 머리를 가
그는 두 문을 닫았다.“이해관계라는 건가요?”그는 고개를 돌려 곽의정을 바라보았다.“이 세상에 영원한 이익은 없어요.”곽의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서도준은 돌아서서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절 도와 정리 좀 해주실래요?”곽의정은 고개를 돌려 엉망이 된 바닥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도 정리하지 못한 컵들이 있는 걸 본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서도준 씨는 손님에게 청소까지 부탁하나요?”그는 카운터로 돌아갔다.“지금 곽의정 씨는 손님이 아니고 전 사장님이 아니에요.”달리 말한다면 이미 퇴근했으니 사장과 고객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곽의정은 그를 도와 테이블 위 컵을 치웠다. 비록 집에 도우미가 있었지만 컵을 씻는 것쯤은 어려운 것 없었다.그녀는 싱크대를 닦는 서도준을 바라봤다.“조금 전 당신을 찾아온 그 두 사람, 당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던데요?”서도준은 멈칫하더니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전 도련님이 아니에요.”“서도준 씨는 비밀이 많네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저한테 관심 있어요?”곽의정은 흠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비밀스러운 사람일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죠.”“전 그런 호기심인 줄 알았는데.”“네?”곽의정은 이해하지 못했고 서도준은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청소를 마친 뒤 서도준은 벽 등만 남기고 메인 등은 껐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나왔다.곽의정은 손목을 주물렀다. 설거지하는데 손목이 이렇게 저릴 줄은 몰랐다. 서도준은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감사의 의미로 내일 한턱 낼게요.”곽의정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네온사인 아래 윤곽이 흐릿해졌다가 뚜렷해지기를 반복했다.그녀는 잠깐 당황하더니 다급히 시선을 옮겼다.“내일요?”서도준이 말했다.“네.”“그래요.”곽의정은 차 앞에 서서 차 문을 열었고 뭔가 떠올린 건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저 내일 일곱 시에 퇴근해요.”곽의정은 차를 타
곽의정은 우산을 서도준 쪽으로 기울였다.“그냥 혼자 써요.”서도준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난 괜찮아요.”차에 앉은 뒤 곽의정은 그가 운전석에 오르는 걸 보았다.“비도 오는데 레스토랑에서 기다리지 그랬어요.”직접 그녀를 마중 나오기까지 하다니, 그의 뜻을 알 수 없었다.“제가 한턱 내는 거잖아요.”그는 안전벨트를 했다.“성의가 있어야죠.”곽의정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고 조용했다.직원이 그들을 데리고 2층으로 향했다. 직원은 미소 띤 얼굴로 곽의정에게 메뉴판을 건넸고 곽의정은 그것을 건네받은 뒤 서도준을 바라봤다.“뭐 추천하는 거 있어요?”그는 곽의정을 바라보며 웃었다.“곽의정 씨 먹고 싶은 거 먹어요.”곽의정은 직원의 소개를 들은 뒤 음식들을 시켰다.직원이 떠난 뒤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이곳은 조용하네요.”다른 가게와 달리 시끌벅적하지 않았다.서도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여기 와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했어요.”“서도준 씨는 이곳에 사람을 많이 데려왔었나 보죠?”곽의정은 약간 의아한 얼굴로 서도준을 바라봤다.서도준은 그렇다고 했다.“손님, 동료, 상사.”그는 차를 따른 뒤 곽의정을 향해 웃었다.“그들도 들어가나요?”곽의정은 흠칫하더니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도준 형, 정말 형이네.”룸 밖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 레스토랑의 직원인 듯했는데 다가와서 서도준에게 안부를 묻다가 곽의정에게 시선을 옮겼다.“여자친구야?”찻잔을 들었던 서도준의 손이 멈칫했다.“친구야.”곽의정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서도준의 어깨를 두드렸다.“난 형이 연애하는 줄 알았잖아. 그것보다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둔 거야? 2년만 더하면 부국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서도준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그쪽 일이 많이 위험하긴 하지. 스파이 일은 어렵잖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곽의정은 그의 얘기에 깜짝 놀랐다. 그가 스파이었다니 정말 의외였다.스파이는 위험한 직업이긴 했다.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처음 서도준을 만났을 때 서도준은 우아하고 점잖으며 매너가 좋아서 그냥 평범한 카페 사장인 줄 알았다.어젯밤 그가 술병으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걸 봤을 때, 그는 정말 무자비했다.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으로 깔끔히 처리했으니 말이다.남자는 곽의정을 보며 무던하게 웃었다.“전 조금 전에 도준이 형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요. 도준이 형이 밥 사주려고 데려온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거든요.”“여자는 없었나요?”“형한테 무슨 여자가 있겠어요.”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그를 걱정했다.“스파이를 할 때 자기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남을 신경 쓸 새가 있겠어요? 저 직업은 감정이 생기면 약점이 되거든요.”“도준이 형은 오랫동안 스파이를 했어요. 적들이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유가 바로 도준이 형이 신경 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에요.”곽의정은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들었다.그 말은 사실이었다. 스파이라는 직업은 특별했다. 감정에 얽매이게 되면 쉽게 일을 망치게 되고 쉽게 산만해지며, 만약 적에게 노려진다면 위협이 된다.서도준은 통화를 마친 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씩 웃었다.“형 돌아왔으니까 전 이만 일 보러 갈게요.”그는 고개를 돌려 곽의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가 나가자 직원이 음식을 들고 문 앞에 섰다. 남자가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하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음식을 다 올린 뒤 와인을 한 병 건넸다.분명히 남자의 뜻이었다.곽의정은 술병을 들고 봤다.“당신 친구 세심하네요.”서도준은 그녀를 보고 말했다.“아까 그 녀석이 뭐라고 했어요?”곽의정은 술을 따랐다.“당신 일을 얘기했죠.”서도준이 침묵하며 뭔가 생각하는 듯하여 곽의정이 해명했다.“제가 물은 거예요. 궁금해서요.”서도준은 웃었다.“곽의정 씨는 제가 궁금한가 봐요?”곽의정이 반문했다.“궁
곽의정은 당황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서도준의 그윽한 눈빛을 마주했다.그녀는 심호흡했다.“서도준 씨... 농담이죠?”그와 정략결혼이라니?몇 번 만난 적 없는, 알게 된 지 보름도 안 된 남자와 말인가?서도준은 그녀를 응시하며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결혼한 뒤에 제가 곽의정 씨의 자유를 제한할 일은 없을 거예요. 곽의정 씨는 곽의정 씨가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곽의정은 한참을 침묵했다.“거래를 말하는 건가요? 허울뿐인 결혼 같은 거 말이에요.”서도준은 시선을 내려뜨리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그것은 묵인이었다.곽의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저죠?”서도준은 시선을 거두어들인 뒤 와인잔을 바라봤다.“당신은 결혼 때문에 속박되는 게 싫고 전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삶을 싫어해요. 굳이 선택하려면 곽의정 씨가 가장 잘 맞을 것 같아서요.”곽의정은 침묵했다.형식적인 결혼은 각자의 수요를 위해서, 서로 간섭하지 않고 그저 혼인신고만 하는 것이었다.곽의정은 단 한 번도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목표가 있었다. 그녀는 여자는 평생 결혼하지 않아도 멋지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곽의정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서도준 씨는 언젠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 그녀가 당신이 이미 결혼했다는 걸 신경 쓰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아요?”서도준은 흠칫했다.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술잔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만날 리 없어요.”곽의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 걸까?그는 고개를 돌려 곽의정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곽의정 씨가 앞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제게 얘기하면 돼요.”곽의정은 피식 웃으며 술잔을 흔들었다.“전 사업가의 딸이에요. 형식적인 결혼이라고 해도 제가 얻어야 하는 이익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곽의정은 아무
곽 회장은 신문을 펼치다 말고 멈춰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건 왜 물어?"곽의정은 밥을 우물우물 먹으며 말했다."만약 제 정략결혼 상대가 그 사람 아들이라면 어떡해요?"곽 회장은 잠깐 멈칫하더니 쾅 소리 나게 신문을 밥상에 내려놓았다."너 미쳤니?"곽 부인은 잔뜩 놀란 모습이었다. 회사 일에 대해 잘 몰랐던 그녀는 다른 일보다 곽의정이 스스로 '정략결혼'이라는 말을 입에 담았다는 게 더 놀라웠다.곽의정은 곽 회장이 서현식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씨 집안과 정략결혼을 하게 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사실 그녀도 서도준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르는 남자와 결혼할 바에는 서도준이 나을 것 같았다."제가 자기랑 결혼하면 서인그룹 주식의 5%를 주겠다고 했어요. 솔깃하지 않아요?"곽 회장의 안색은 급격하게 변했다."누가 그러더냐?"곽의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당연히 서인그룹 도련님이죠."곽 회장은 심호흡을 했다. 만약 나이에 비해 건강한 편이 아니었더라면 이번 일로 숨이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의정아, 혹시 나랑 장난하는 거니?""아닌데요.""네... 네가 서인그룹의 도련님을 만났다고?"곽의정은 곽 회장의 질문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되물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모든 사람이 서도준을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게다가 서인그룹의 주식을 주겠다고 했으니, 그녀는 당연히 서인그룹의 도련님일 것으로 생각했다.곽 회장은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의정아, 서 회장의 하나뿐인 아들은 네가 절대 만날 수 없는 곳에 있어. 서 회장의 아들 서강우는 심각한 정신병을 앓고 있어 외부인과 접촉한 적 없거든. 너 사기꾼한테 당한 건 아니니?"곽의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같은 시각, 서씨 저택."쓸모없는 자식! 어쩌면 사람 한 명 잡아 오는 일도 못 하는 거냐!"서현식은 경호원을 향해 사정없이 발길질했다. 바닥에 쓰러진 경호원은 머리를 숙인 채로 말했다."죄송합니다, 회장님
서도준의 목소리에 정신 차린 곽의정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의 앞으로 걸어가서는 팔짱을 꼈다."서도준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저한테 거짓말할 수가 있어요?""거짓말이요?"서도준은 옷매무새를 다듬던 손을 멈추고 곽의정을 바라봤다."제 아버지 말로는 서 회장님한테 아들이 한 명밖에 없다고 하던데요. 그것도 정신병 때문에 밖에 나오지도 못하는 아들이요."서도준은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뭘 웃어요?"곽의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서도준은 느긋하게 커피를 따르며 대답했다."거짓말 아니에요.""그럼... 도준 씨 혹시 병이 있었어요?"곽의정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서도준은 커피를 들고 소파로 가서 앉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밝혀진 아들이 한 명이니까요."곽의정은 서도준을 바라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서 회장을 입에 담을 때의 눈빛은 아주 어두웠다.돈이 많을수록 방탕한 생활을 즐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돈 많은 남자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니 서현식에게 숨겨둔 아들 한 명쯤 있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도준 씨 서자에요?"곽의정은 말을 뱉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그녀의 질문은 과하게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서도준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커피를 마시고는 대답했다."혹시 서자는 싫어요?"곽의정은 소파에 가방을 내려놓더니 테이블을 짚으며 말했다."제 답을 듣기 전에 도준 씨의 목적부터 알려줘요.""저는 다른 세력의 힘을 빌려 권력을 얻고 싶어요. 답이 되었나요?"서도준은 곽의정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서도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커피 향기가 코끝에 맴돌았다.서도준의 몸에서는 담배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곽의정은 담배를 피우는 남자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담배 냄새로 가득한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키스하는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갑자기 떠오른 키스라는 단어에 곽의정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