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승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이 꼭 사모님을 마중하러 오겠다고 하셨어요.”강성연이 물었다.“화성 쪽은 순조로웠나요?”희승이 대답했다.“그냥 그래요. 순조롭다고 하기는 좀 어려워요. 처음에 HS그룹과 레이문 개발권을 경쟁하던 서인그룹이 파티에서 수작을 부렸는데 대표님이 그걸 눈치채셨어요.”“서인그룹이요?”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인그룹은 들어본 적 있었다.희승이 설명하길 서인그룹은 3년 전 HS그룹과 협력한 적이 있는데 한지욱이 자리에 오른 뒤 서인그룹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한다.들은 바에 의하면 서인그룹의 회장은 사적인 거래가 깨끗하지 못하고 강예림이 사채를 썼던 회사도 서인그룹의 회장이 투자한 적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일찍 발을 빼서 강예림의 사건이 터졌을 때 영향을 받지 않았다.희승은 백미러를 힐끗 봤다.“대표님은 파티에서 투자자들이 보낸 여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어요. 대표님은 온통 사모님 생각만 하셨죠. 그렇지 않았으면 상대방의 수작에 걸려들었을걸요?”조수석에 앉아있던 지윤이 고개를 돌렸다.“무슨 수작이요?”희승은 핸들을 쥐고 말했다.“그러니까 미인을 이용해 함정을 파놓은 뒤 상대방이 함정에 걸려들면 현장에서 잡는 거죠.”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저었다.“다들 얼굴이 예쁠수록 사람을 잘 속인다던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말을 마친 뒤 그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얼른 말을 고쳤다.“사모님은 예외에요.”강성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자꾸 아부하려 하지 말아요. 아부한다고 해도 월급은 주지 않으니까요.”희승은 웃었다.“대표님이 주시면 되죠.”“넌 이번 달 월급 없어.”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낮게 말했다.희승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는 지윤을 힐끔 봤다.“이번 달에 저 좀 도와줄래요?”지윤은 알겠다고 했고 희승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진짜요? 이렇게 통이 크다고요?”지윤은 그를 보고 말했다.“20만 원 빌
정수정 뒤에 있던 남자들은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된 흰색 랜드로버를 보고 상대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걸 깨닫고 덤벼들지 못했다. 이곳은 다른 사람의 구역이었고 혹시라도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들은 다친 남자를 일으킨 뒤 떠났다.뒷배가 사라지자 자신감도 하락했는지 정수정도 황급히 도망쳤다.곽의정은 여전히 넋이 나가 있었고 남자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괜찮으세요?”곽의정은 그를 보고 당황했다.“당신은...”익숙한 카페 매니저였다.그는 웃으며 대답했다.“사장님이랑 마침 이곳에 있었거든요. 밖으로 나오다가 우연히 봤어요.”흰색 랜드로버에서 남자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편해 보이는 정장에 안에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있었다.이너가 얇은 탓에 몸 선이 뚜렷하게 보였는데 균형 잡힌 탄탄한 근육은 전혀 과하지 않았다. 과했다면 슬림한 핏의 옷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고 너무 말라도 예쁘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그는 딱 좋은 편이었다.그는 스타일리시하고 우아하며 매너도 있었다.“괜찮아요?”곽의정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두 분을 만나서 다행이에요.”그녀에게서 술 냄새를 맡은 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음주운전은 안 돼요. 어디 살아요? 제가 가는 길에 바래다 드릴게요.”그는 말하면서 차 키를 매니저에게 건넸다.매니저는 키를 받아 들고 랜드로버로 돌아갔다.곽의정은 조금 전 일 때문에 술이 반쯤 깼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차는 운전해서 끌고 가야 했지만 음주운전으로 걸리면 큰일이라 곽의정은 동의했다.차 안에 앉으니 차 내부가 넓었다.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차인 듯했다.“고마워요. 남강로 곽씨 별장까지 데려다주면 돼요.”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차를 타고 떠났다.가는 길에 곽의정은 술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 남자는 곽의정에게 뚜껑을 따지 않은 물을 건넸다.“물 마시고 정신 좀 차려요.”“고마워요.”물을 건네받은 곽의정은 뚜껑을 열었다.“그런데 당신도 마침 이곳에
반지훈은 화성에서 사업상의 이해관계가 없고 서인그룹 회장은 화성에 졸개가 꽤 많고 인맥도 넓기에 자기 구역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다.그가 부리는 수작들은 대부분 여자를 이용한 것이었는데 많은 사업가가 그의 함정에 당했었다. 사실 그는 남자들의 욕망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들은 남자가 회식 자리에서 뭘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다.철저히 준비해서 사람의 경계를 늦춘 뒤에 기회를 틈타는 것이다.반지훈은 들고 있던 찻잔을 살살 흔들며 물결치는 찻물에 시선을 돌렸다.“화성 10대 도박장이 전부 그 사람 거야?”희승이 대답했다.“주식은 있는데 평소에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터져도 바로 발뺌할 수 있는 거죠.”반지훈은 코웃음 쳤다.“할 일을 찾아줘야겠네.”그에게까지 손을 뻗어 없애려고 하다니, 정말 그가 화성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카페는 평소와 다름없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곽의정은 문을 열고 들어간 뒤 평소처럼 라테 한 잔 포장해달라고 했다.매니저가 앞치마를 두른 채 휴게실에서 나왔다. 점잖아 보이는 남자인데 사람을 때릴 때는 가차 없었다.그는 카운터로 향했다.“커피 포장하러 오셨어요?”“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계산했고 카페 안을 힐끗 보고 말했다.“오늘 장사 잘되네요.”매니저는 그녀에게 영수증을 건넸다.“이 근처 대학생들이 방학이라서 그래요.”영수증을 받은 곽의정은 옆에서 잠시 기다렸다. 몇몇 여학생들이 주문을 한 뒤 사장님은 안 계시냐고 물었다.매니저가 그들에게 뭐라고 했는데 곽의정은 듣지 못했다. 그녀는 이 카페에 여학생들이 대부분이고 커플도 몇 쌍 있는 걸 발견했다.카페 인테리어는 사진을 찍거나, 데이트를 하거나, 약속을 잡기에 좋았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그리고 또 사장이 잘생기고 성숙하며 차분한 남자라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은 우아하고 준수한 어른 남자들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서도준은 위층에서 내려왔다. 그는 검은색의 주
“여자들은 술자리에 적게 나가는 게 좋아요. 안 나갈 수가 없다면 최대한 적게 마시든가 해요.”서도준은 잠깐 뜸을 들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마시는 척하는 것도 안 될 건 없죠.”곽의정은 멈칫하더니 피식 웃었다.“서도준 씨는 술 안 마시려고 마시는 척만 해본 적 있나 봐요?”마시는 척만 한다는 건 혼란한 틈을 타서 술을 피하는 스킬로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술잔에 있는 술을 다른 술잔으로 옮겨 담거나 쏟아버리는 것이었다.물론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는 가능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좋지 않았다. 발각되지 않으면 좋은 일이지만 혹시라도 발각된다면 상대방은 성의가 없다고 생각해 거래하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서도준은 나지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전 남자니까 회식 자리에서 술을 얼마나 마시든 손해 볼 건 없죠.”곽의정은 당황했다. 예전에 성운테크에 있을 때는 다들 그녀가 성운테크 딸이라는 걸 알고 있어 그녀에게 깍듯했다.그러나 신분이나 배경이 없는 여직원들은 달랐다. 여자들은 회식 자리에서 남자보다 훨씬 더 손해를 봤다. 상사가 술을 덜 마시도록 막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고객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함께 술을 마셔줘야 하니 말이다.건강을 해치는 건 물론이고 취하면 성희롱당할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여직원이 술을 덜 마실 수 있게 도와주는 상사가 정말 드물었다.곽의정은 그를 보고 말했다.“사장님은 여자들에게 다 이렇게 다정한가요?”서도준은 솔직하게 말했다.“여성을 존중하는 건 남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존중과 다정은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여성을 존중한다는 건 개인적 수양일 뿐이고, 여성에게 다정하다는 건 오해를 불러일으켜 애매한 관계로 발전하기 쉬웠다.다정한 남자는 보통 모든 여자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거리감이 모호했고, 여성을 존중하는 남자는 그보다 조금 더 거리감이 확실했다.곽의정은 오래 있지 않고 이내 카페를 떠났다.이틀 뒤, 화성 용호 3대 그룹이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터졌다.
그는 수단이 교활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샀지만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 그에게서 이득을 본 동시에 약점을 잡혔기 때문이다.그런데 똑같은 수단으로 반지훈을 상대하려 하다니, 그야말로 자기 무덤 자기가 판 셈이었다.반지훈은 하 대표를 보고 말했다.“용호 제3구역은 화성에서 아주 값진 곳이에요. 하 대표님은 그쪽과 분쟁을 겪고 있으니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할지 말지를 잘 고려해 보세요.”하 대표는 침묵했다.삼십 분 동안 얘기를 나눈 뒤 반지훈은 레스토랑에서 떠났다. 희승은 차를 문 앞에 세웠고 반지훈은 차에 올라탔다.“서인그룹은 지금 어떤 상황이야?”희승이 대답했다.“화성 쪽과의 거래를 끊고 있어요. 서인그룹 회장은 그쪽에서 몇천억에 달하는 이익을 봤으니 일에 휘말릴까 봐 아주 두려울 거예요.”희승이 물었다.“대표님, 하 대표님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요?”반지훈은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글쎄.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용호 제3구역이 사업을 독점했고 그 탓에 지난 몇 년 동안 억눌려 있었는데 그가 이 기회를 놓칠 것 같아?”희승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서인그룹 회장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반지훈을 건드리다니, 반지훈이 오랫동안 조용히 있어 스스로 총구 앞에 선 셈이었다.-저녁 열 시, 카페는 문을 닫았고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자가 기세등등하게 안으로 들어와 서도준을 찾았다.서도준이 휴게실에서 나왔다. 이제 막 일을 마친 그는 느긋하게 거두었던 소매를 내리며 평온하게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서 회장님이 모셔 오라고 했습니다.”서도준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 그는 마무리를 책임진 직원에게 먼저 퇴근하라고 했고 직원이 떠나자마자 말했다.“지금 시간 없습니다.”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갔다.“도련님,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면 저희를 탓하지 마세요.”서도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그들이 손을 쓰려고 하는데 서도준이 테이블 위 술병을 쥐고 상대방의 머리를 가
그는 두 문을 닫았다.“이해관계라는 건가요?”그는 고개를 돌려 곽의정을 바라보았다.“이 세상에 영원한 이익은 없어요.”곽의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서도준은 돌아서서 그녀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절 도와 정리 좀 해주실래요?”곽의정은 고개를 돌려 엉망이 된 바닥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도 정리하지 못한 컵들이 있는 걸 본 그녀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서도준 씨는 손님에게 청소까지 부탁하나요?”그는 카운터로 돌아갔다.“지금 곽의정 씨는 손님이 아니고 전 사장님이 아니에요.”달리 말한다면 이미 퇴근했으니 사장과 고객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곽의정은 그를 도와 테이블 위 컵을 치웠다. 비록 집에 도우미가 있었지만 컵을 씻는 것쯤은 어려운 것 없었다.그녀는 싱크대를 닦는 서도준을 바라봤다.“조금 전 당신을 찾아온 그 두 사람, 당신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던데요?”서도준은 멈칫하더니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전 도련님이 아니에요.”“서도준 씨는 비밀이 많네요.”서도준은 그녀를 바라봤다.“저한테 관심 있어요?”곽의정은 흠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비밀스러운 사람일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죠.”“전 그런 호기심인 줄 알았는데.”“네?”곽의정은 이해하지 못했고 서도준은 웃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청소를 마친 뒤 서도준은 벽 등만 남기고 메인 등은 껐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나왔다.곽의정은 손목을 주물렀다. 설거지하는데 손목이 이렇게 저릴 줄은 몰랐다. 서도준은 그녀의 곁으로 걸어갔다.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감사의 의미로 내일 한턱 낼게요.”곽의정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네온사인 아래 윤곽이 흐릿해졌다가 뚜렷해지기를 반복했다.그녀는 잠깐 당황하더니 다급히 시선을 옮겼다.“내일요?”서도준이 말했다.“네.”“그래요.”곽의정은 차 앞에 서서 차 문을 열었고 뭔가 떠올린 건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저 내일 일곱 시에 퇴근해요.”곽의정은 차를 타
곽의정은 우산을 서도준 쪽으로 기울였다.“그냥 혼자 써요.”서도준은 눈을 접으며 웃었다.“난 괜찮아요.”차에 앉은 뒤 곽의정은 그가 운전석에 오르는 걸 보았다.“비도 오는데 레스토랑에서 기다리지 그랬어요.”직접 그녀를 마중 나오기까지 하다니, 그의 뜻을 알 수 없었다.“제가 한턱 내는 거잖아요.”그는 안전벨트를 했다.“성의가 있어야죠.”곽의정은 그를 바라보며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비록 고급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편안하고 조용했다.직원이 그들을 데리고 2층으로 향했다. 직원은 미소 띤 얼굴로 곽의정에게 메뉴판을 건넸고 곽의정은 그것을 건네받은 뒤 서도준을 바라봤다.“뭐 추천하는 거 있어요?”그는 곽의정을 바라보며 웃었다.“곽의정 씨 먹고 싶은 거 먹어요.”곽의정은 직원의 소개를 들은 뒤 음식들을 시켰다.직원이 떠난 뒤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이곳은 조용하네요.”다른 가게와 달리 시끌벅적하지 않았다.서도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여기 와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했어요.”“서도준 씨는 이곳에 사람을 많이 데려왔었나 보죠?”곽의정은 약간 의아한 얼굴로 서도준을 바라봤다.서도준은 그렇다고 했다.“손님, 동료, 상사.”그는 차를 따른 뒤 곽의정을 향해 웃었다.“그들도 들어가나요?”곽의정은 흠칫하더니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도준 형, 정말 형이네.”룸 밖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무전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이 레스토랑의 직원인 듯했는데 다가와서 서도준에게 안부를 묻다가 곽의정에게 시선을 옮겼다.“여자친구야?”찻잔을 들었던 서도준의 손이 멈칫했다.“친구야.”곽의정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는 서도준의 어깨를 두드렸다.“난 형이 연애하는 줄 알았잖아. 그것보다 왜 갑자기 일을 그만둔 거야? 2년만 더하면 부국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서도준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그쪽 일이 많이 위험하긴 하지. 스파이 일은 어렵잖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곽의정은 그의 얘기에 깜짝 놀랐다. 그가 스파이었다니 정말 의외였다.스파이는 위험한 직업이긴 했다. 발각되면 목숨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처음 서도준을 만났을 때 서도준은 우아하고 점잖으며 매너가 좋아서 그냥 평범한 카페 사장인 줄 알았다.어젯밤 그가 술병으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걸 봤을 때, 그는 정말 무자비했다. 망설임이라고는 전혀 없는 표정으로 깔끔히 처리했으니 말이다.남자는 곽의정을 보며 무던하게 웃었다.“전 조금 전에 도준이 형 여자친구인 줄 알았어요. 도준이 형이 밥 사주려고 데려온 사람들은 전부 남자였거든요.”“여자는 없었나요?”“형한테 무슨 여자가 있겠어요.”남자는 손을 내저으며 그를 걱정했다.“스파이를 할 때 자기 목숨도 지킬 수 없는 사람이 남을 신경 쓸 새가 있겠어요? 저 직업은 감정이 생기면 약점이 되거든요.”“도준이 형은 오랫동안 스파이를 했어요. 적들이 그동안 전혀 눈치채지 못한 이유가 바로 도준이 형이 신경 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에요.”곽의정은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들었다.그 말은 사실이었다. 스파이라는 직업은 특별했다. 감정에 얽매이게 되면 쉽게 일을 망치게 되고 쉽게 산만해지며, 만약 적에게 노려진다면 위협이 된다.서도준은 통화를 마친 뒤 문을 열고 들어왔고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씩 웃었다.“형 돌아왔으니까 전 이만 일 보러 갈게요.”그는 고개를 돌려 곽의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가 나가자 직원이 음식을 들고 문 앞에 섰다. 남자가 직원에게 뭐라고 얘기하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음식을 다 올린 뒤 와인을 한 병 건넸다.분명히 남자의 뜻이었다.곽의정은 술병을 들고 봤다.“당신 친구 세심하네요.”서도준은 그녀를 보고 말했다.“아까 그 녀석이 뭐라고 했어요?”곽의정은 술을 따랐다.“당신 일을 얘기했죠.”서도준이 침묵하며 뭔가 생각하는 듯하여 곽의정이 해명했다.“제가 물은 거예요. 궁금해서요.”서도준은 웃었다.“곽의정 씨는 제가 궁금한가 봐요?”곽의정이 반문했다.“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