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삶을 대하는 데 있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손에 많이 넣었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었다.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이다.사람은 살면서 만족을 할 줄 알아야 한다.강현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지낸 후, 그녀가 작은 일에도 만족해하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율은 특히 눈이 맑았다.그녀에게는 강현을 세속적인 잡념으로부터 떨쳐버리게 하는 일종의 순진함이 담겨 있다.많은 사람들은 직장에 출근한 후 순수한 자아를 보존하기 어렵다. 형형색색의 복잡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면 자연스레 괴팍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었다.하지만 이율은 줄곧 순수한 마음을 지켜냈다.늦은 시간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강현을 강 노부인과 친척들은 한참이나 기다렸다.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신호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노부인은 하는 수없이 강역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역은 노부인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아버지나 아들이나 똑같이 내 속을 긁네!” 아들과 손자에게 화가 난 노부인이 몸을 떨었다. 노부인의 친척들은 하루 종일 배까지 곯아가며 그녀와 함께 힘들게 뛰어다녔지만 결국 아무런 이득도 볼 수 없었다.“그러니까, 어르신 아들과 손자는 이제 어르신 말씀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네요.”“그러게 말이에요. 남자들은 손에 권력만 쥐면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더니. 강현이 그놈도 사장직을 달더니 이제 할머니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거죠.”친척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과 강현을 떠올렸다. 만약 두 사람 모두 노부인을 보살피지 않겠다고 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이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해변가.강현과 이율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은 치킨을 시키고 양손에는 꼬치구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후덥지근한 열기를 씻어주었다.이율은 맨발로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끝없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직원들은 이미 퇴근했고 카페 사장 혼자 카운터에 앉아 가계부를 보고 있었다. 노란색의 은은한 조명 아래, 그는 짙은 회색의 셔츠에 재킷을 입고 있었고 소매는 살짝 걷워 피부가 드러났으며 손목시계 줄은 시장에서 보기 드문 가죽으로 된 레트로 스타일이었다.그가 입고 있는 옷들 중 럭셔리 브랜드는 거의 없었고 다 핸드메이드였다.심플하고 편안하며 청량해 보였다.그는 고개를 들며 서랍을 열었다.“전 당신이 놓고 간 물건을 가져가려고 오후쯤에나 올 줄 알았어요.”곽의정은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갔고 그가 사원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걸 보며 말했다.“정말 죄송해요. 이 가게에 물건을 두고 갔을 줄은 몰랐어요.”곽의정은 사원증을 줄곧 가방 안에 넣고 꺼낸 적이 없는 걸로 기억했다. 설마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낼 때 실수로 떨어뜨린 걸까?곽의정은 뭔가를 떠올렸다.“제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그는 살짝 미소 지었다.“회사 프런트 데스크에 연락해서 번호 물어봤어요.”베이 테크놀로지 회사 직원이 오늘 마침 야근을 했으니 그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곽의정은 웃으며 사원증을 거두어들였다. 그녀의 시선은 선반 위 어긋난 것 같지만 가지런히 놓인 술병으로 향했다. 주방 벽도 온갖 칵테일로 가득 차 있었다.“카페를 차리신 분이 이런 것도 하세요?”그녀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오늘 낮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남자는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돌렸다.그가 한쪽으로 걸어가 스위치를 누르자 벽장이 움직였고 곧 낮에 곽의정이 봤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곽의정은 넋이 나갔다.“미안해요. 바꾼다는 걸 깜빡했네요.”남자는 직접 만든 칵테일을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저희 가게 직원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곽의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면 제가 당신 가게의 비밀을 알게 된 첫 번째 손님인가요?”남자는 천천히 술을 들이켜더니 눈꺼풀을 들고 소리 내어 웃었다.“그러네요.”“예전에 바 차린 적 있어요?”그는
강현의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할머니,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사람을 모함하지는 마세요.”하정화가 화를 내려는데 강역이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어머니, 현이가 여자친구랑 같이 어머니를 뵈러 왔잖아요. 왜 자꾸 화를 내고 그러세요?”여자친구?두 친척과 하정화의 시선이 이율에게로 향했다.이율은 그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웃어 보이며 그들에게 선물을 건넸다.“할머니, 몸이 편찮으셔서 입원하셨는데 화내지 마세요. 자주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이건 제가 할머니 드리려고 산 영양제예요.”하정화는 이율을 훑어봤다. 옷차림이 평범한 걸 보니 형편이 좋은 집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손자의 권세를 탐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니?”이율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하정화는 그녀가 건넨 물건을 받지 않고 팔짱을 둘렀다.“우리 강씨 집안에 발을 들이려면 부잣집 딸이어야지. 너희처럼 평범한 여자아이들은 꿈도 꾸지 마. 우리 손자는 이제 막 사장이 되었어. 너 우리 손자 돈이랑 신분이 탐나서 그런 거지?”욕은 없었지만 듣기 거북한 얘기였다.이율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강현은 안색이 한없이 흐려졌다. 그는 이율이 들고 있던 영양제를 빼앗아 쓰레기통 안에 넣었다.“받기 싫으면 마세요. 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세요?”말을 마친 뒤 그는 이율의 손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강현, 이 자식, 돌아와!”하정화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그녀의 손자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그녀는 화를 내며 테이블 위 물건들을 쓸어내렸다.“이 자식, 역시 강성연에게서 저 고약한 성질을 배운 거야.”“어머니.”강역은 심호흡하면서 볼을 부풀렸다.“제가 정말 어머니를 잘못 봤어요.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고집불통이네요. 강씨 집안이 불행해진 건 전부 어머니 탓이에요.”강역은 문을 열고 떠났다.하정화는 얼이 빠진 채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강현은 이율을 데리고 차 앞으로
“할머니는 저한테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옳든 그르든 항상 절 도와주셨죠. 그래서 전 제가 큰 사고를 쳐도 할머니가 절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그런데 제가 틀렸더라고요. 전 타락하고 나쁘게 변했어요. 심지어 밖의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도 몰랐죠. 만약 성연 누나가 아니었더라면 전 아마 천천히 심연으로 추락했을 거예요.”“저희 친누나 강예림 알아요? 누나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무시당했어요. 심지어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교육 때문에 인생을 망쳤어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나가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도 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다른 친척들이 가족보다 훨씬 더 중요했거든요.”이율은 순간 심장이 저려와 두 손으로 강현의 뺨을 감싸 쥐었다.“당신 마음 이해해요.”강현은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 언저리에 얼굴을 파묻더니 웃으며 말했다.“성연 누나가 말한 것처럼 이제 전 제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더는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될 필요가 없죠. 가족이라고 해도 제 인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할 수 없어요.”점심이 되자 하정화는 아들과 손자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지만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당황한 하정화는 부랴부랴 병실을 나섰다.계단을 지날 때 그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쳐다봤다. 두 친척이 복도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저 늙은이 우리 앞에서만 체면을 차린다니까. 며칠 동안 늙은이 옆에서 분주히 뛰어다녔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 이 문제는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면서, 강현이 자기 말을 들을 거라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됐어.”두 친척은 의논한 뒤 짐을 정리하고 진성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막 몸을 돌린 그들은 하정화가 문가에 서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하정화는 두 친척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자 기분이 씁쓸했지만 그와중에도 체면을 생각했다.특히 친정 쪽 친척 앞에서
그들은 하정화가 자랑하기를 좋아한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사실 하정화도 그렇게 잘살고 있는 건 아니었다.며느리가 죽고, 다른 아들도 죽고, 손녀도 죽고, 다른 손녀에게는 빌붙을 기회도 없다. 사람이 늙으면 복을 누린다고들 하지만 하정화는 복을 누리기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하정화가 자기 손자가 사장이 됐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친척인 그들을 자기가 도와줄 거라고 장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비위를 맞추며 회사까지 가서 강현을 찾았다가 망신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두 친척은 더 이상 하정화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얼른 떠났다. 결국 홀로 남은 하정화는 속이 답답했다.지윤은 복도 입구에 서서 두 친척이 떠나는 걸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들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 강성연에게 병원에 있는 하정화의 상황을 보고했다.강성연은 보고를 들으며 펜을 들고 도면 위에 색을 더했다. 그녀는 하정화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았다. 자업자득이니 말이다.강현을 압박하기 위해 엄살을 부려서 입원까지 한다니, 참 답이 없는 사람이었다.지윤이 물었다.“퇴원하셨는데 따라갈까요?”강성연의 펜이 우뚝 멈췄다.“계속 따라가 봐요. 또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은데 만일을 대비해야죠.”강역과 강현이 친척들 앞에서 크게 망신을 줬으니 하정화의 고집불통인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리석은 짓을 벌일지도 몰랐다.한편, 하정화는 퇴원한 뒤 진성으로 향하는 티켓을 샀다. 아들과 손자에게서 좋은 꼴을 못 보고 또 친척들에게 비웃음까지 샀으니 본가로 돌아가 임신한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할 셈이었다.그녀의 며느리는 하정화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정화에게 차를 한 잔 따라서 줬다.하정화는 찻잔을 받은 뒤 차를 한 모금 마셨고 차가 뜨겁다며 아예 차를 전부 쏟아버렸다.“네 시어머니를 이렇게 대해도 되니? 이렇게 뜨거운 차를 사람 마시라고 준 거야?”“죄송해요, 어머님. 제가 소홀했어요.”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하정화는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살짝 민 것뿐인데 양수가 터질 리가 있겠어? 난 예전에 너보다 배가 더 컸는데도 장작을 팼어. 사람이 왜 이렇게 엄살을 부려?”그녀의 다리 안쪽에서 핏물이 흐르는 걸 본 하정화는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하정화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지윤이 밖에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정화는 당황했다.“당신은 누구야?”지윤은 그녀를 무시하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강역은 아내가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고 곧바로 진성 병원으로 향해다.조산인 데다가 출혈도 많아 간호사는 곧바로 가족에게 즉시 사인하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강역이 사인하려는데 하정화가 그를 말렸다.“뭘 사인해?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데 피를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딨어? 수술하면 돈도 내야 하잖아.”옆에 있던 간호사가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님, 안에 누워있는 건 할머님 며느리예요. 출혈이 심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산모랑 아이의 목숨이에요.”강역은 하정화를 밀치고 사인했다.강성연과 강현은 뒤늦게 도착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복도에서 하정화와 강역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몇 번이나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하정화는 본인이 억울한 듯 욕을 했다.“난 널 낳아서 기른 네 엄마야.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 날 이렇게 대한다고? 난 그냥 살짝 민 것뿐이야. 그런데 엄살이 저렇게 심할 줄은 몰랐지. 조산은 쟤 몸이 원래 안 좋아서 그래. 그게 내 탓이니?”그 말은 강역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지윤은 강성연에게 다가가 상황을 전달했고 강현과 강역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안색이 달라졌다.하정화는 여전히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강성연을 탓했다.“네 사람이었니? 난 네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걸 알고 있었다. 너희 다 같이 판을 짜서 내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지?”강성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강역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다른 쪽으로 걸어
“아버지가 할머니랑 연을 끊으려는 건 자업자득이에요.”강현은 하정화를 지나쳐서 분만실로 들어갔다.하정화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조금 전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다음 날, 강역은 곧바로 본가에서 나왔다. 이웃들은 하정화 때문에 며느리가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다는 소문을 듣고 하정화에게 조금의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들은 하정화의 막무가내인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강현과 강성연의 일 때문에 잠깐 기세가 수그러든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본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결국 그녀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들과 손자 모두 그녀를 떠났으니 불쌍하기도 했지만 쌤통이기도 했다.일주일 뒤, 강성연은 강현의 새어머니를 병문안하러 병실로 찾아갔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는 막 우유를 마시고 잠이 든 상태였다.강성연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몸은 좀 괜찮으세요?”“많이 괜찮아졌어요.”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연이 자신을 구했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 아이가 살 수 있었던 건 성연 씨 덕분이에요.”강성연은 미소를 지었다.“감사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돼요.”그녀는 최연과 확실히 많이 달랐다. 현명한 아내를 얻은 걸 보면 강역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 듯했다.“참, 강현이 오늘 여자친구를 데리고 절 보러 온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현이가 새어머니인 절 받아준 걸 보면 좀 뜻밖인 것 같아요.”“여자친구요?”강성연은 당황했고 강현의 새어머니는 의아해했다.“몰랐어요?”강성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현이 밖에서 걸어왔다. 그리고 강현의 곁에는 이율이 있었고 이율은 강성연을 본 순간 흠칫했다.“강... 대표님.”강현은 이율의 손을 잡고 있었다.강성연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율이었구나.”이율은 조금 머쓱했다. 강성연에게 얘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켰기 때문이다.“나 몰래 사귀고 나한테 얘기하지도 않은 거야?”강성연은 일부러
희승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대표님이 꼭 사모님을 마중하러 오겠다고 하셨어요.”강성연이 물었다.“화성 쪽은 순조로웠나요?”희승이 대답했다.“그냥 그래요. 순조롭다고 하기는 좀 어려워요. 처음에 HS그룹과 레이문 개발권을 경쟁하던 서인그룹이 파티에서 수작을 부렸는데 대표님이 그걸 눈치채셨어요.”“서인그룹이요?”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인그룹은 들어본 적 있었다.희승이 설명하길 서인그룹은 3년 전 HS그룹과 협력한 적이 있는데 한지욱이 자리에 오른 뒤 서인그룹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한다.들은 바에 의하면 서인그룹의 회장은 사적인 거래가 깨끗하지 못하고 강예림이 사채를 썼던 회사도 서인그룹의 회장이 투자한 적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일찍 발을 빼서 강예림의 사건이 터졌을 때 영향을 받지 않았다.희승은 백미러를 힐끗 봤다.“대표님은 파티에서 투자자들이 보낸 여자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어요. 대표님은 온통 사모님 생각만 하셨죠. 그렇지 않았으면 상대방의 수작에 걸려들었을걸요?”조수석에 앉아있던 지윤이 고개를 돌렸다.“무슨 수작이요?”희승은 핸들을 쥐고 말했다.“그러니까 미인을 이용해 함정을 파놓은 뒤 상대방이 함정에 걸려들면 현장에서 잡는 거죠.”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저었다.“다들 얼굴이 예쁠수록 사람을 잘 속인다던데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말을 마친 뒤 그는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얼른 말을 고쳤다.“사모님은 예외에요.”강성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자꾸 아부하려 하지 말아요. 아부한다고 해도 월급은 주지 않으니까요.”희승은 웃었다.“대표님이 주시면 되죠.”“넌 이번 달 월급 없어.”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낮게 말했다.희승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그는 지윤을 힐끔 봤다.“이번 달에 저 좀 도와줄래요?”지윤은 알겠다고 했고 희승은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진짜요? 이렇게 통이 크다고요?”지윤은 그를 보고 말했다.“20만 원 빌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