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담담하게 웃었다.“고객님 동생은 이런 언니가 있어서 정말 좋겠어요.”“뭘요, 저희는 그렇게 친하지 않아요.”곽의정은 고개를 숙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전 회사에 가봐야 해서, 먼저 가볼게요.”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가게 점원이 테이블을 정리할 때 명찰 하나를 발견했다.“사장님, 이건 아까 그 손님이 놓고 가신 물건 같은데요.”남자는 명찰을 건네받은 후 흘깃 보았다.J 과학 기술 책임자 - 곽의정그 시각, 강 노부인은 유성 엔터 카운터에서 손자인 강현을 만나겠다고 했다. 하지만 카운터 직원은 일찍부터 통지를 받은 건지 사장님이 없다고 대답했다.강 노부인의 표정이 단번에 굳어졌다.“강현이 어떻게 없을 수 있어? 여긴 내 손자 회사라고, 난 강현의 할머니야. 눈치 없는 것들, 얼른 강현 사무실로 안내해.”카운터 직원은 고개를 들었다.“할머니, 자꾸 소란을 피우시면 경호원을 부를 거예요.”강 노부인이 화를 내며 뭐라 하려고 하자 곁에 있던 친척이 말렸다.“아이참, 됐어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 강현이 피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강현 집에 가서 기다리는 건 어때요? 어쨌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갈 거 아니에요?”강 노부인은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카운터 직원을 흘겨본 후 몸을 돌려 떠났다.카운터 직원이 행정 부서에 전화를 하자 강현이 전화를 받았다. 카운터 직원의 말을 들은 강현은 가볍게 웃었다.“고생했어요.”통화가 끝난 후 카운터 직원은 강현을 위해 가슴 아파했다.“우리 새 사장님이 얼마나 좋은데, 왜 저런 막무가내인 할머니가 있는 거지?”다른 직원이 다가오며 말했다.“사장님 친척들이 찾아와서 자식들의 직업을 안배해달라고 부탁했대, 하지만 사장님이 거절하신 거야.”“정말 이상해, 왜 그 친척들을 도와줘야 할까? 전에 사장님도 친척들만 채용하다가 회사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잖아. 난 지금 친척이라는 말만 들어도 소름이 끼쳐.”-저녁이 되었을 때, 강현은 퇴근한 후 이율을 데
그녀는 삶을 대하는 데 있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손에 많이 넣었다고 해서 행복한 게 아니었다.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이다.사람은 살면서 만족을 할 줄 알아야 한다.강현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와 함께 지낸 후, 그녀가 작은 일에도 만족해하는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율은 특히 눈이 맑았다.그녀에게는 강현을 세속적인 잡념으로부터 떨쳐버리게 하는 일종의 순진함이 담겨 있다.많은 사람들은 직장에 출근한 후 순수한 자아를 보존하기 어렵다. 형형색색의 복잡한 사람들을 많이 접하면 자연스레 괴팍한 사람이 되기 마련이었다.하지만 이율은 줄곧 순수한 마음을 지켜냈다.늦은 시간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강현을 강 노부인과 친척들은 한참이나 기다렸다.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그의 휴대폰이 꺼져있다는 신호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노부인은 하는 수없이 강역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역은 노부인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아버지나 아들이나 똑같이 내 속을 긁네!” 아들과 손자에게 화가 난 노부인이 몸을 떨었다. 노부인의 친척들은 하루 종일 배까지 곯아가며 그녀와 함께 힘들게 뛰어다녔지만 결국 아무런 이득도 볼 수 없었다.“그러니까, 어르신 아들과 손자는 이제 어르신 말씀을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이네요.”“그러게 말이에요. 남자들은 손에 권력만 쥐면 가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더니. 강현이 그놈도 사장직을 달더니 이제 할머니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거죠.”친척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노부인은 자신의 아들과 강현을 떠올렸다. 만약 두 사람 모두 노부인을 보살피지 않겠다고 하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이제 최후의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해변가.강현과 이율은 기다란 벤치에 앉아 술을 마셨다. 두 사람은 치킨을 시키고 양손에는 꼬치구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후덥지근한 열기를 씻어주었다.이율은 맨발로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밟으며 끝없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직원들은 이미 퇴근했고 카페 사장 혼자 카운터에 앉아 가계부를 보고 있었다. 노란색의 은은한 조명 아래, 그는 짙은 회색의 셔츠에 재킷을 입고 있었고 소매는 살짝 걷워 피부가 드러났으며 손목시계 줄은 시장에서 보기 드문 가죽으로 된 레트로 스타일이었다.그가 입고 있는 옷들 중 럭셔리 브랜드는 거의 없었고 다 핸드메이드였다.심플하고 편안하며 청량해 보였다.그는 고개를 들며 서랍을 열었다.“전 당신이 놓고 간 물건을 가져가려고 오후쯤에나 올 줄 알았어요.”곽의정은 멋쩍은 표정으로 다가갔고 그가 사원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걸 보며 말했다.“정말 죄송해요. 이 가게에 물건을 두고 갔을 줄은 몰랐어요.”곽의정은 사원증을 줄곧 가방 안에 넣고 꺼낸 적이 없는 걸로 기억했다. 설마 계산하려고 지갑을 꺼낼 때 실수로 떨어뜨린 걸까?곽의정은 뭔가를 떠올렸다.“제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요?”그는 살짝 미소 지었다.“회사 프런트 데스크에 연락해서 번호 물어봤어요.”베이 테크놀로지 회사 직원이 오늘 마침 야근을 했으니 그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었다.곽의정은 웃으며 사원증을 거두어들였다. 그녀의 시선은 선반 위 어긋난 것 같지만 가지런히 놓인 술병으로 향했다. 주방 벽도 온갖 칵테일로 가득 차 있었다.“카페를 차리신 분이 이런 것도 하세요?”그녀는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었다.“오늘 낮에 왔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남자는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돌렸다.그가 한쪽으로 걸어가 스위치를 누르자 벽장이 움직였고 곧 낮에 곽의정이 봤던 그 모습으로 돌아왔다.곽의정은 넋이 나갔다.“미안해요. 바꾼다는 걸 깜빡했네요.”남자는 직접 만든 칵테일을 들고 가볍게 흔들었다.“저희 가게 직원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곽의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면 제가 당신 가게의 비밀을 알게 된 첫 번째 손님인가요?”남자는 천천히 술을 들이켜더니 눈꺼풀을 들고 소리 내어 웃었다.“그러네요.”“예전에 바 차린 적 있어요?”그는
강현의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할머니, 누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사람을 모함하지는 마세요.”하정화가 화를 내려는데 강역이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어머니, 현이가 여자친구랑 같이 어머니를 뵈러 왔잖아요. 왜 자꾸 화를 내고 그러세요?”여자친구?두 친척과 하정화의 시선이 이율에게로 향했다.이율은 그들을 향해 예의 바르게 웃어 보이며 그들에게 선물을 건넸다.“할머니, 몸이 편찮으셔서 입원하셨는데 화내지 마세요. 자주 화를 내시면 몸에 좋지 않아요. 이건 제가 할머니 드리려고 산 영양제예요.”하정화는 이율을 훑어봤다. 옷차림이 평범한 걸 보니 형편이 좋은 집안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면 손자의 권세를 탐낸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니?”이율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하정화는 그녀가 건넨 물건을 받지 않고 팔짱을 둘렀다.“우리 강씨 집안에 발을 들이려면 부잣집 딸이어야지. 너희처럼 평범한 여자아이들은 꿈도 꾸지 마. 우리 손자는 이제 막 사장이 되었어. 너 우리 손자 돈이랑 신분이 탐나서 그런 거지?”욕은 없었지만 듣기 거북한 얘기였다.이율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강현은 안색이 한없이 흐려졌다. 그는 이율이 들고 있던 영양제를 빼앗아 쓰레기통 안에 넣었다.“받기 싫으면 마세요. 왜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세요?”말을 마친 뒤 그는 이율의 손을 잡고 병실을 떠났다.“강현, 이 자식, 돌아와!”하정화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그녀의 손자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그녀는 화를 내며 테이블 위 물건들을 쓸어내렸다.“이 자식, 역시 강성연에게서 저 고약한 성질을 배운 거야.”“어머니.”강역은 심호흡하면서 볼을 부풀렸다.“제가 정말 어머니를 잘못 봤어요.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어머니는 여전히 고집불통이네요. 강씨 집안이 불행해진 건 전부 어머니 탓이에요.”강역은 문을 열고 떠났다.하정화는 얼이 빠진 채로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강현은 이율을 데리고 차 앞으로
“할머니는 저한테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가르쳐준 적이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옳든 그르든 항상 절 도와주셨죠. 그래서 전 제가 큰 사고를 쳐도 할머니가 절 도와줄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그런데 제가 틀렸더라고요. 전 타락하고 나쁘게 변했어요. 심지어 밖의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도 몰랐죠. 만약 성연 누나가 아니었더라면 전 아마 천천히 심연으로 추락했을 거예요.”“저희 친누나 강예림 알아요? 누나는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할머니에게 무시당했어요. 심지어 할머니의 고리타분한 교육 때문에 인생을 망쳤어요. 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누나가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도 할머니는 눈물 한 방울 떨구지 않았어요. 할머니는 다른 친척들이 가족보다 훨씬 더 중요했거든요.”이율은 순간 심장이 저려와 두 손으로 강현의 뺨을 감싸 쥐었다.“당신 마음 이해해요.”강현은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 언저리에 얼굴을 파묻더니 웃으며 말했다.“성연 누나가 말한 것처럼 이제 전 제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요. 더는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될 필요가 없죠. 가족이라고 해도 제 인생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할 수 없어요.”점심이 되자 하정화는 아들과 손자에게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지만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당황한 하정화는 부랴부랴 병실을 나섰다.계단을 지날 때 그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쳐다봤다. 두 친척이 복도에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저 늙은이 우리 앞에서만 체면을 차린다니까. 며칠 동안 늙은이 옆에서 분주히 뛰어다녔는데 아무것도 얻지 못했잖아. 이 문제는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면서, 강현이 자기 말을 들을 거라고 하더니, 역시 그 말을 믿어서는 안 됐어.”두 친척은 의논한 뒤 짐을 정리하고 진성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막 몸을 돌린 그들은 하정화가 문가에 서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하정화는 두 친척이 자신의 뒷담화를 하자 기분이 씁쓸했지만 그와중에도 체면을 생각했다.특히 친정 쪽 친척 앞에서
그들은 하정화가 자랑하기를 좋아한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사실 하정화도 그렇게 잘살고 있는 건 아니었다.며느리가 죽고, 다른 아들도 죽고, 손녀도 죽고, 다른 손녀에게는 빌붙을 기회도 없다. 사람이 늙으면 복을 누린다고들 하지만 하정화는 복을 누리기는커녕 아무것도 없었다.하정화가 자기 손자가 사장이 됐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더라면, 친척인 그들을 자기가 도와줄 거라고 장담하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비위를 맞추며 회사까지 가서 강현을 찾았다가 망신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두 친척은 더 이상 하정화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아 얼른 떠났다. 결국 홀로 남은 하정화는 속이 답답했다.지윤은 복도 입구에 서서 두 친척이 떠나는 걸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들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 강성연에게 병원에 있는 하정화의 상황을 보고했다.강성연은 보고를 들으며 펜을 들고 도면 위에 색을 더했다. 그녀는 하정화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았다. 자업자득이니 말이다.강현을 압박하기 위해 엄살을 부려서 입원까지 한다니, 참 답이 없는 사람이었다.지윤이 물었다.“퇴원하셨는데 따라갈까요?”강성연의 펜이 우뚝 멈췄다.“계속 따라가 봐요. 또 무슨 짓을 벌일 것 같은데 만일을 대비해야죠.”강역과 강현이 친척들 앞에서 크게 망신을 줬으니 하정화의 고집불통인 성격을 생각하면 아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리석은 짓을 벌일지도 몰랐다.한편, 하정화는 퇴원한 뒤 진성으로 향하는 티켓을 샀다. 아들과 손자에게서 좋은 꼴을 못 보고 또 친척들에게 비웃음까지 샀으니 본가로 돌아가 임신한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할 셈이었다.그녀의 며느리는 하정화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정화에게 차를 한 잔 따라서 줬다.하정화는 찻잔을 받은 뒤 차를 한 모금 마셨고 차가 뜨겁다며 아예 차를 전부 쏟아버렸다.“네 시어머니를 이렇게 대해도 되니? 이렇게 뜨거운 차를 사람 마시라고 준 거야?”“죄송해요, 어머님. 제가 소홀했어요.”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하정화는 경멸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살짝 민 것뿐인데 양수가 터질 리가 있겠어? 난 예전에 너보다 배가 더 컸는데도 장작을 팼어. 사람이 왜 이렇게 엄살을 부려?”그녀의 다리 안쪽에서 핏물이 흐르는 걸 본 하정화는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하정화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지윤이 밖에서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하정화는 당황했다.“당신은 누구야?”지윤은 그녀를 무시하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구급차를 불렀다.-강역은 아내가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전화를 받고 곧바로 진성 병원으로 향해다.조산인 데다가 출혈도 많아 간호사는 곧바로 가족에게 즉시 사인하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강역이 사인하려는데 하정화가 그를 말렸다.“뭘 사인해?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데 피를 안 흘리는 사람이 어딨어? 수술하면 돈도 내야 하잖아.”옆에 있던 간호사가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할머님, 안에 누워있는 건 할머님 며느리예요. 출혈이 심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산모랑 아이의 목숨이에요.”강역은 하정화를 밀치고 사인했다.강성연과 강현은 뒤늦게 도착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복도에서 하정화와 강역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가 몇 번이나 말리려 했지만 소용없었다.하정화는 본인이 억울한 듯 욕을 했다.“난 널 낳아서 기른 네 엄마야. 겨우 여자 하나 때문에 날 이렇게 대한다고? 난 그냥 살짝 민 것뿐이야. 그런데 엄살이 저렇게 심할 줄은 몰랐지. 조산은 쟤 몸이 원래 안 좋아서 그래. 그게 내 탓이니?”그 말은 강역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지윤은 강성연에게 다가가 상황을 전달했고 강현과 강역은 그 얘기를 들은 뒤 안색이 달라졌다.하정화는 여전히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강성연을 탓했다.“네 사람이었니? 난 네가 나쁜 마음을 먹은 걸 알고 있었다. 너희 다 같이 판을 짜서 내게 누명을 씌우려는 거지?”강성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강역은 고개를 숙인 채로 말없이 다른 쪽으로 걸어
“아버지가 할머니랑 연을 끊으려는 건 자업자득이에요.”강현은 하정화를 지나쳐서 분만실로 들어갔다.하정화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조금 전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다음 날, 강역은 곧바로 본가에서 나왔다. 이웃들은 하정화 때문에 며느리가 하마터면 유산할 뻔했다는 소문을 듣고 하정화에게 조금의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같은 동네에 살면서 그들은 하정화의 막무가내인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강현과 강성연의 일 때문에 잠깐 기세가 수그러든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본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결국 그녀 때문에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들과 손자 모두 그녀를 떠났으니 불쌍하기도 했지만 쌤통이기도 했다.일주일 뒤, 강성연은 강현의 새어머니를 병문안하러 병실로 찾아갔다. 그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아이는 막 우유를 마시고 잠이 든 상태였다.강성연은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몸은 좀 괜찮으세요?”“많이 괜찮아졌어요.”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연이 자신을 구했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이 아이가 살 수 있었던 건 성연 씨 덕분이에요.”강성연은 미소를 지었다.“감사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돼요.”그녀는 최연과 확실히 많이 달랐다. 현명한 아내를 얻은 걸 보면 강역은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 듯했다.“참, 강현이 오늘 여자친구를 데리고 절 보러 온다고 들었어요. 솔직히 얘기해서 현이가 새어머니인 절 받아준 걸 보면 좀 뜻밖인 것 같아요.”“여자친구요?”강성연은 당황했고 강현의 새어머니는 의아해했다.“몰랐어요?”강성연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강현이 밖에서 걸어왔다. 그리고 강현의 곁에는 이율이 있었고 이율은 강성연을 본 순간 흠칫했다.“강... 대표님.”강현은 이율의 손을 잡고 있었다.강성연은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율이었구나.”이율은 조금 머쓱했다. 강성연에게 얘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들켰기 때문이다.“나 몰래 사귀고 나한테 얘기하지도 않은 거야?”강성연은 일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