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이가 문을 두드리자 리사의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강유이는 웃으며 물었다.“아저씨, 리사 있어요?”리사의 아버지는 리사가 물건을 사러 막 내려갔다고 말하면서 강유이에게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라고 했고 강유이는 고개를 숙이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강유이는 돌아서서 떠났다.강유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리사가 다른 쪽에서 걸어왔다. 차는 리사의 곁을 지나쳤지만 강유이는 창밖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리사를 채 보지 못했다.집으로 돌아온 리사는 아버지에게서 강유이가 찾아왔다는 걸 전해 들었다.리사는 당황했다.“강유이가 절 찾으러 왔다고요?”사실 리사는 자신이 한 일에 찔렸고 강유이와 만날 엄두도 나지 않았다.리사는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강해신은 아마 지금쯤 그녀를 죽도록 미워할 것이고 강유이도 그녀를 용서해 줄지 미지수였다.다음 날.리사는 계단을 올라 교실로 향했다.어젯밤 리사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강유이와 절교할 생각은 없었다.강유이는 사실 그녀에게 아주 잘해줬고 통도 컸으며 가난하다고 그녀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매번 다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유이가 먼저 찾아와서 사과했고 항상 리사의 기분을 고려해 주면서 조건 없이 그녀를 받아주었다. 리사의 집에서도 이런 관용을 베풀지는 않았다.게다가 그것은 단지 사고일 뿐이었다.그래서 리사는 강유이가 어젯밤 화해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리사야.”누군가 리사를 불러 세웠다.고개를 든 리사는 계단에 서 있는 강유이를 보았다.리사는 강유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결정했기에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유이가 절대 자신과 절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리사는 강유이의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난 어제... 널 도와주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겁이 많잖아. 용서해 줘.”강유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 네 탓 안 해.”말을 마친 뒤 강유이는 몸을 돌렸다.“우리 매점 가서 먹을 것 좀 사자.”리사는
하지만 강유이는 단 한 번도 리사를 졸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리사는 왜 자신이 졸개 같다고 느낀 걸까?리사가 너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강유이는 리사에게 비싼 선물을 줬고 자신이 가진 건 전부 리사에게 줬다. 리사가 자신을 너무 얕보지 않기를, 리사도 공주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길 바라면서 말이다.그런데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갈아입으러 갔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유이 멍청한 거 아냐? 리사에게 그렇게 비싼 선물을 주다니. 걔는 리사가 자신을 뒤에서 뭐라고 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걔는 그냥 돈이 너무 많아서 쓸데가 없는 바보잖아. 집에 돈이 그렇게 많은데 가난뱅이 리사에게 아부나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리사가 걔를 업신여기지.”강유이는 억울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친구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강유이는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사와 함께 있을 때면 잠깐이라도 그 얘기들을 전부 잊을 만큼 즐거웠기 때문이다.하지만 도서관에서 그 얘기를 들은 뒤 강유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문 앞에서 구천광의 팬들에게 욕까지 먹었고, 리사의 방패막이 되어 너무도 억울했다.강유이는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 안에 넣고는 돌아서서 리사를 보았다.“난 정말 많이 노력했어. 난 널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어. 네가 한 말들, 네가 한 일들 전부 따지지 않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날 멍청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됐어.”리사는 입을 뻐끔거리며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아니야, 그 말들은 걔들이 오해한 거야...”“그렇다고 쳐. 하지만 넌 날 속이고 이용하면 안 됐어.”강유이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난 더 이상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 앞으로 난 다시는 널 찾지 않을 거야.”강유이는 리사와 작별했고 그들 사이의 우정은 철저히 부서졌다.그 뒤로 강유이는 한동안 학업에 열중했다. 다른 친구들이 리사와 어떻게 된 거냐고
강유이는 어리둥절해졌다.맞는 말이었다. 조민은 일찌감치 리사가 SNS에서 잘사는 척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만약 조민이 리사를 골탕 먹일 생각이었다면 이미 폭로했을 것이다.“하... 하지만 선배는 리사를 싫어하잖아요?”싫어하는 게 아니라면 왜 항상 리사를 괴롭힌 걸까?조민은 웃음을 터뜨렸다.“너 정말 순진하구나. 내가 왜 걔를 싫어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조민이 리사를 싫어한 이유는 리사가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뒤에서 남을 까 내리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사는 친구가 선물해 준 명품을 인터넷에 올려 자신의 것이라고 했다.가난은 죄가 아니지만 탐욕과 위선은 죄다.리사는 인터넷에서 그 사진들로 인해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팬이 꽤 많이 생겼고 SNS에서도 꽤 알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강유이 앞에서는 가난 때문에 울고 불쌍한 척하면서 강유이의 적선을 기다렸다.조민은 그런 사람들이 못마땅했다.게다가 학교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보조금을 받는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다른 사람은 가만히 놔두고 리사만 괴롭히는 이유가 뭐겠는가?가난한 학생은 매달 2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고 그중 성적이 좋은 학생은 100만 원을 더 받는다. 그런데 왜 일부 학생들은 학교가 돈 많은 집안의 학생들을 편애한다고 생각하는 걸까?그곳은 원래 사립학교라 가난한 학생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책이 달라지면서 학교에서는 학생 2000명을 채워야 했고 서울시에서 2000명의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보조와 장학 재단을 설랍해 공립학교에서 먼저 성적이 좋고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받아들였다.그리고 남은 학생들은 학교에서 임의로 뽑은 것이었고 성적이 좋지 않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올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운이 좋아서였다.오히려 부잣집 학생들에게 불공평했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장학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비록 부잣집 자식들이라 그 정도 돈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또 매년 가정 형편
하지만 한태군이 떠난 뒤 강유이와 리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민서율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강유이의 얼굴은 창백하고 실망에 가득 차 있었는데 일부러 강한 척했다.민서율은 싱긋 웃으며 작게 말했다.“괜챃아. 앞으로 갈 길이 멀어. 가다 보면 더욱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거야.”민서율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보탰다.“난 영원히 네 편이 되어줄게.”강유이는 살짝 놀라더니 입꼬리를 당겼다.“고마워요, 서율 오빠.”민서율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랑은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민서율과 한동안 얘기를 나누고 나니 강유이는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떠날 때 강유이는 웃으며 민서율과 손을 흔들며 작별했고, 강유이가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민서율의 미소는 서서히 사라졌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답장을 보냈다.“어떤 학교든 리사를 받지 못하게 해.”그날 도서관에서 강유이가 슬픈 얼굴로 도망친 뒤, 민서율은 리사가 다른 학생들과 강유이의 뒷담화를 한 사실을 알게 됐다.강유이는 천사 같은 아이였기에 이런 뒷담화를 견뎌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리사를 조사했다.그는 맨 처음 조민이 자주 리사를 괴롭힌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민을 찾아 일부러 그녀를 떠봐서 리사가 유이가 준 선물을 이용해 인터넷에서 잘사는 척한 사실을 알게 됐다.게다가 그날 누군가 무심코 매점에서 강유이가 싸웠다는 얘기를 했는데 민서율은 그때 리사의 사진들을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리사처럼 의리 없고 남을 배신한 학생은 학교에 남겨둘 생각이 없었다.-수민 아파트.이율은 고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가를 냈고 점심이 되어서야 겨우 일어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약국에 가서 해열제를 샀다. 그녀는 어지러움을 견디며 엘리베이터에 탔다.힘들게 12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의식이 흐릿하던 이율은 문 앞에서 쓰러졌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다. 간호사가 누군가와 문가에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렸다
이율은 의아한 표정으로 곽의정을 바라봤다.“언니가 시킨 거예요?”곽의정은 그녀를 힐끗 바라봤다.“내가 시킨 거 아닌데.”음식을 보니 꽤 많이 시킨 듯했다. 이율은 상자 밑에 쪽지가 있는 걸 보았다. 그 위에는 반듯한 글씨체로 적힌 글이 있었다.“나으려면 많이 먹어요.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어서 이것저것 시켰어요. 이 집 음식은 꽤 입맛에 맞을 거예요.”곽의정은 이율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가 쥔 쪽지를 보았다.“좋네.”이율은 그녀를 밀어낸 뒤 쪽지를 움켜쥐었다.“뭐가 좋다는 거예요. 아픈 동료 챙기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죠.”강현은 입사한 후로 여자 동료들에게 꽤 상냥히 굴었고 신사적이었다. 그래서 이율은 강현이 이렇게 잘해주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다른 사람이었더라도 강현은 살뜰히 챙겨줬을 것이다.-하루가 지난 뒤 이율은 회사에 출근했다. 강성연은 그녀가 아파서 쉬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때마침 그녀를 마주쳤다.“몸은 좀 나았어? 조금 더 쉬지 그랬어.”이율은 고개를 긁적였다.“괜찮아요. 많이 좋아졌어요.”강성연은 이율의 어깨를 토닥였다.“일하는 것 외에도 더 많은 휴식을 취해야 해. 젊음은 밑천이지만 너무 열심히 일하면 안 돼. 아직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너무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안 되지.”이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다.“참, 그... 저 강현 씨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요. 어제 절 병원까지 데려다줬거든요.”“강현이 그랬다고?”강성연은 뜸을 들이다가 이내 웃었다.“강현이 돌아온 뒤에 만났었나 보네?”“네...”이율은 쑥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제 옆집에 살더라고요. 뜻밖이었어요.”“그래.”강성연은 웃었다.“난 너희가 사적으로 연락하는 줄 알았는데.”이율은 다급히 손을 저었다.“아뇨, 아뇨. 연락처도 없는데 어떻게 연락해요? 강현 씨가 귀국한 뒤에 저희 아파트에서 지내는 걸 보고 저도 깜짝 놀랐지 뭐예요.”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로 들어
이율은 시선을 떨군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어이, 강현! 요즘 잘살고 있나 봐? 살 만하니 친구들을 잊는 건 너무 하지 않나?"금목걸이를 한 남자는 강현을 툭툭 치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다른 뜻이 있었다.강현은 남자의 손을 떼어내며 미소를 지었다."너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남자는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그래도 너와는 비할 바가 못 되지. 감옥 동기 중에서 너만 승승장구하고 있잖아."남자는 강현을 향해 담배를 내밀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나 담배 끊었어."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그래, 최고급 담배가 아니면 눈에 차지도 않겠지."강현은 시선을 떨구며 시계를 확인했다."그런 게 아니라 나 진짜 담배 끊었어. 데려다줘서 고마워, 시간이 늦었으니 나는 이만..."금목걸이를 한 남자는 강현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급할 것 뭐 있어? 내가 부탁할 일이 있는데, 친구 사이에 설마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강현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무슨 일인데?"이율은 벽 뒤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들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강현 씨가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알고 지내지? 그리고 감옥 동기는 또 무슨 뜻이야?'금목걸이를 한 남자가 무언가 말하고 강현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건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은데.""뭐 어때? 예전에는 더 큰 일도 했잖아. 이번에는 범죄도 아니고 그냥 영상만 좀 찍으면 돼. 그러니 여배우를 좀 찾아줘. 너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니까 무명 배우를 잘 알 거 아니야. 너한테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일이야. 어차피 움직이는 건 내 쪽 사람이니까, 문제가 생겨도 내 쪽에서 책임질게. 일이 제대로 끝나면 너한테 30%의 수익도 줄 거야."강현은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동의했다. 그들은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고 나서야 멀어져갔다.그들은 강현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물렁한 사람인 줄 알았다. 예전의 강현은 돈만 벌 수 있다면 거절한 적이 없으니까. 멀쩡한 직업을 얻은 지금도 돈을 주겠다는 말에 흔쾌히 머
강현은 약간 멈칫했다. 솔직히 그는 이율의 반응이 놀라웠다.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무슨 사이인지 묻는 게 아닌, 되레 사기 당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니 말이다.강현은 근처에 있는 편의점을 바라보며 물었다."뭐라도 좀 마실까요?"이율이 머뭇거리며 답했다."음... 좋아요."강현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 주스 두 캔을 사서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편의점 간판의 불빛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길에는 차가 분주히 지나다니고 있었고 길가의 식당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한 밤이다.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율은 지금의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물었다."많이 친한 사람들이에요?"이율은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 혹시라도 강현이 화를 내지는 않을까 하며 말이다.강현은 주스를 마시고는 답했다."아니요. 그냥 철부지 시절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에요.""그럼 거절하지 그랬어요."강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율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물었다."설마 약점 잡힌 건 아니죠?""약점이라고 할 만한 건 없어요. 어차피 다 같이 한 일이라서요."강현은 머리를 들며 말했다."들었죠? 제가 감옥 간 적 있는 건."이율은 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기는 했지만 강성연이 했던 말이 떠올라 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살면서 실수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강현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이율 씨는 전과자가 무섭지 않아요?""살인 방화도 아니고 뭐가 무서워요? 설사 살인 방화라고 해도 잘못을 충분히 뉘우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사람의 편견 때문에 속으로 불편해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혐오하거나 멀리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전과자가 나쁜 사람으로 여겨지는 건 오직 편견만 탓할 수는 없었다. 출소해서도 나쁜 짓을 계속하는 전과자가 파다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
"다 큰 성인들 일에 간섭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율이 연애를 해본 적 없어서 걱정되네요. 혹시라도 충동적으로 행동할까 봐 어떤 사람인지 알아만 놓자고 이렇게 찾아왔어요."곽의정이 빙빙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냥 강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함께 밤을 보낸 걸 보면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강성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요. 제 동생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가 책임질게요.""그럼 다행... 잠깐, 사모님 동생이라고요?"'그럼 반 대표님의 처남이라는 소리네?'...이율은 제때 출근하러 왔다. 그녀는 어제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고, 코를 찌르는 술 냄새까지 풍겼다."이율 씨, 술을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이율은 냄새를 맡아보며 물었다."냄새가 많이 나요?""그럼요. 복도에 이율 씨 술 냄새밖에 안 나요."동료가 손을 휘휘 젓는 것을 보고 이율은 약간 머쓱하게 웃었다."사실... 저 어제 친구랑 야식 먹으러 갔다가 밤새 술 마셨거든요."이율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강현의 차 안에 있었다. 강현도 술을 많이 마셨고 시간이 늦었기에 그냥 차에서 잠을 잤다.이율은 자신의 첫 외박이 이렇게 기억을 잃은 채로 지나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강현과 함께 차박이라니... 너무 최악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술주정을 부리지는 않았는지, 또 코를 골지는 않았는지 아주 걱정되었다. 만약 낯부끄러운 짓을 했다면 강현을 두 번 다시 만날 용기가 안 날 것 같았다.유성 엔터.강현은 부사장의 부름을 받고 사무실로 왔다. 그는 노크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부사장뿐만 아니라, 최근 3년 동안 회사에서 가장 밀고 있는 연예인 남예솜도 있었다."부사장님, 부르셨어요?"부사장은 강현에게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자신도 와서 앉으며 시가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강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