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는 부랴부랴 교실에서 나와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확인했다. 댓글을 보니 그녀에게 부도덕하고 양심 없는 사람이라고 욕하는 게 태반이었다.그녀에게 친구 추가를 보낸 건 전부 구천광의 팬들이었는데 좋지 않은 얘기들을 했다. 리사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변기 위에 앉았다.리사는 연예 뉴스와 정보를 클릭했는데 전부 어젯밤 그녀가 찍은 영상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리사는 그 영상들이 팬들인 네티즌들에 의해 퍼질 줄은 몰랐다.이번에 정말 일이 크게 번졌다.같은 시각, 구씨 집안은 즉시 사람을 찾아 언론을 내리게 했지만 모자이크가 되지 않은 아이의 모습은 이미 대부분 사람에게 공개되었고 사적으로 계속해 퍼질 수 있었다.구희나는 할머니 송민희의 품에 안겨 있었다. 구희나는 작은 빗을 들고 인형의 머리카락을 빗겨줬는데 아직 어린 나이라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알지 못했다.김아린은 창가 앞에 서서 통화하고 있는 구천광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천광은 전화를 끊고 돌아섰다.“실검은 없앴고 모자이크 안 된 게시물도 전부 삭제했어. 시간이 조금 흐르면 사람들은 차차 잊을 거야.”송민희는 화가 났다.“대체 어떤 부도덕한 놈이 그랬는지 모르겠어. 우리 손녀는 아직 어린데 찍은 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모자이크를 안 할 수 있지?”구천광은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이번에는 제가 소홀했어요.”김아린은 구천광의 손을 잡았다.“당신은 충분히 조심했어. 우리는 그 근처에 누군가 몰래 찍고 있을 거라는 걸 몰랐잖아.”구천광이 예전에 타고 다니던 차들은 전부 몇억짜리였는데 지금 외출할 때 쓰는 차들은 몇천만 원짜리 벤츠였다.그는 김아린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등을 잡았다.“당분간 희나랑 같이 외출할 때 경호원들 데리고 다녀.”김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구천광의 비서가 거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영상을 찍은 사람과 영상이 최초로 게시된 플랫폼을 찾았습니다. 하지만...”비서는 망설였다.송민희는 손녀를 안고 입을 열
강유이는 뭐든 갖고 있었기에 당연히 알 수 없었다. 갖지 못한 자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뭔가를 얻게 된다면, 손만 뻗으면 귀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걸 말이다.강성연이 걱정했던 것과 같았다. 강성연은 이마를 짚었다.“이 일은 내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게.”김아린은 한숨을 쉬더니 몸을 기울이고 그녀를 바라봤다.“넌 나서지 않는 게 좋겠어. 선생님이나 걔 아버지가 가르치게 해. 유이가 걔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네가 나서면 안 좋을 것 같아.”강성연은 책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사립학교.리사는 다급히 강유이를 옥상으로 끌고 와서 긴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강유이도 리사를 따라 두리번거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리사를 바라봤다.“리사, 너 누굴 피하는 거야?”강유이는 기사를 보지 않았기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건지 알지 못했다. 게다가 실검에서 일찌감치 사라졌기에 지금 봐도 찾을 수 없었다.리사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였다. 지금 네티즌들은 다들 그녀를 욕하고 있고 심지어 그녀의 신상정보를 캐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어 리사는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녀는 이 일 때문에 사이버 불링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손을 뻗어 강유이의 손을 잡았다.“나...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강유이는 흔쾌히 도와주겠다는 얼굴이었다.“응, 얘기해.”리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강유이에게 얘기했지만 강유이가 혹시나 도와주지 않을까 걱정됐는지 자신이 몰래 영상을 찍은 사실을 숨기고, 자신이 사진을 찍다가 구천광 가족이 실수로 카메라에 담겨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영상을 SNS에 업로드했다고 말했다.강유이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리사를 바라봤다.리사는 억울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지금 구천광 씨 팬들이 다 날 욕하고 있어. 하지만 난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난... 난 진짜 그 사람이 구천광 씨인 줄 몰랐어.”말을 마친 뒤 리사는 간절한 눈빛으로 강유
강유이는 고개를 들었다.“하지만...”“유이야, 잘못을 했으면 본인이 책임져야지. 한두 번은 도와줄 수 있겠지만 평생 도와줄 수 있어?”강성연은 영상을 거두어들인 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리사가 너더러 나한테 말해보라고 한 거지?”“아니요...”강유이는 거짓말을 못 했다. 거짓말을 하면 귀가 빨개졌다.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진짜 친구라면 널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을 거야.”강유이는 위층으로 달려갔고 방으로 돌아간 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낙담한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왜 리사가 자신을 속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 그냥 비난받을까 두려웠던 건 아닐까?강해신은 어느샌가 문 앞에 서서 문가에 기대고 있었다.“바보야, 리사가 변했다는 걸 아직 눈치채지 못한 거야?”강유이는 일어나 앉아 강해신을 힐끗 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이를 악물었다.“그럴 리가 없어. 리사가 왜 변하겠어?”강해신은 팔짱을 두른 채로 걸어왔다.“사람은 커가면서 변하기 마련이야. 걔는 여전히 리사지만 예전의 리사는 아니야.”강유이는 대답하지 않았다.강해신이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팔찌를 책상 위에 내려놓자 강유이는 당황했다.“그건 내가 리사한테 준 건데?”“맞아. 내가 주워 왔어.”주워 왔다는 뜻은 명확했다. 리사가 그걸 버렸다는 뜻이었다.강유이는 넋이 나간 채로 책상 위에 놓인 팔찌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가 직접 만들어 선물로 준 것을 버렸다는데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강유이는 어젯밤 잠이 들지 못한 채로 줄곧 리사의 일을 생각했다. 그녀는 책상에 엎드린 채로 어떻게 다시 평소처럼 리사를 마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유이야.”리사가 교실 밖에서 강유이를 불렀다.정신을 차린 강유이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걸어갔다.“리사야, 나...”“너희 엄마한테 얘기했어?”리사는 강유이의 말허리를 자르며 기대에 찬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강유이는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내려뜨리더니 잠시 뒤 천천히 물었다.“리사야
교실로 돌아온 뒤 휴대폰을 꺼낸 강유이는 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해명하려고 했지만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리사가 자신을 차단했다는 걸 발견했다.다른 한편, 강유이를 차단한 리사는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강유이가 자신을 찾아와서 설명할 것이라고 믿었고, 강유이를 차단한 것은 단지 위기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강유이는 그녀와의 우정을 몹시 소중히 여겼으니 분명 아주 슬퍼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잠시 뒤 강유이가 먼저 찾아온다면 리사는 그녀와 화해할 셈이었다.리사는 강유이를 욕했던 댓글들을 지우고 게시물을 업데이트했다.며칠 뒤, 체육 시간. 야외활동이라 강유이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리사에게 차단당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 책을 읽으며 답답함을 풀 생각이었다.강유이는 책꽂이 앞에서 서서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너 왜 요즘 강유이랑 안 놀아?”“그러게. 너 강유이랑 사이좋았잖아.”강유이는 책을 다시 책꽂이에 넣고 몰래 그쪽으로 다가가 머리를 살짝 내밀었다. 리사와 그녀의 반 친구 두 명도 도서관에 있었다.리사는 책을 넘기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내가 무시해도 강유이는 분명히 날 찾아올 거야.”두 여학생은 시선을 주고받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너 그렇게 자신 있어?”리사는 코웃음을 쳤다.“걔는 걔 오빠 제외하고 친구라고는 나 하나뿐이야. 걔가 누구랑 놀겠어?”“그렇긴 해. 강유이는 너한테 달라붙는 거 좋아하더라.”“하하, 너희 다른 반 애들이 유이를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지? 리사 말고는 친구가 없다고 그래.”리사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기쁜 듯 얘기했다.“정말 그렇게 얘기했어?”그 여학생이 대답했다.“그래. 그리고 남자아이들은 전부 유이 비위를 맞춰준다고 했어. 유이는 그냥 예쁘게 생겼을 뿐이잖아. 유이 오빠가 남자아이들이 유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더라면 강유이는 아마 남자아이들한테 아주 쉽게 속아 넘어갔을걸?”다른 여학생은 키득거리며 말했다.“강유이는 좀 멍청해 보여
-저녁, 하교 후. 리사는 학교 문 앞에 서 있었다. 강유이가 먼저 자신을 찾아오길 일부러 기다리는 듯했다.리사는 강유이가 먼저 자신을 찾아오면 강유이를 용서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강유이는 다음번에 리사를 잃는 걸 두려워할 것이다.강유이는 학교에서 나왔고 고개를 든 순간 리사가 표지판 아래 서 있는 걸 보고 발걸음을 살짝 멈추었다.리사는 강유이를 힐끔 보고 일부러 무시했다.그녀는 강유이가 먼저 자신에게 들러붙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바로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바로 쟤야!”그들은 강유이에게 다가갔고 강유이는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밀쳐서 바닥에 넘어지게 됐다. 리사는 당황했다. 그녀가 다가가려 하는데 마스크를 쓴 여자들이 휴대폰을 들고 영상을 찍으며 강유이를 욕했다.“배신자!”“구천광 씨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감히 정보를 누설해?”“너희 아빠는 네가 이런 배신했다는 걸 알고 있어?”강유이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영상을 찍자 강유이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지금 뭣들 하는 거예요?”선생님과 경비들이 달려 나왔고 옆에 있던 학생들은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며 의논이 분분했다.강해신은 상황을 파악한 뒤 곧바로 강유이의 앞을 막아섰다.“지금 제 동생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강유이가 먼저 구천광 씨를 배신했어!”“맞아. 영상을 올린 사람이 해명했어. 강유이가 영상을 찍으라고 했다고. 어린 나이에 감히 구천광 씨 딸을 이용해 인기를 얻으려 해? 너 때문에 구천광 씨 딸이 언론에 노출됐잖아. 양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것!”그들은 전부 구천광의 팬들로 구천광의 편을 들고 싶은 것뿐이었다. 게다가 해명까지 보았으니 그들은 곧바로 학교 앞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그들은 강유이가 어느 집안 딸인지 상관하지도 않았다. 잘못했으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강유이는 강해신의 부축을 받아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반지훈과 반지훈의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밥만 먹었다.그들은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강성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반지훈의 아버지는 고개를 들어 반지훈을 바라봤다.“네 아내가 한 말 들었지? 앞으로는 유이 너무 감싸고 돌지 마.”반지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아버지는 감싸고 돌지 않은 척하네요.”반지훈의 아버지는 입을 비죽였다. 그의 손녀인 걸 어떡한단 말인가? 게다가 집에 뭔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는 단지 손녀가 좋은 걸 쓰고 좋은 걸 입길 바랄 뿐, 잘못은 없었다.사실 강유이는 확실히 그들의 보호 아래 자라 마치 온실 속 화초 같았다. 그들의 보살핌에서 떠난다면 강유이는 홀로 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강유이는 세상 물정을 몰랐고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과도하게 순진했다. 만약 강해신이 학교에서 강유이를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강유이는 아마 남에게 속아도 자신이 속은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이 일로 강유이가 조금 성장하길 바랐다. 적어도 우정은 이득만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득으로 유지한 것은 우정이 아니라 거래였다. 그리고 거래라는 것은 상대방이 동등한 이득을 봐야 한다. 마치 사업처럼 말이다.강성연은 강유이의 방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방안이 어두컴컴했다. 강유이는 커튼 뒤에 숨어 벽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유이의 눈빛에서 실망이 보였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강성연은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강유이에게 다가간 뒤 쭈그리고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유이야, 슬프면 울어도 돼.”강유이는 고개를 저었다.“울고 싶지 않아요.”강유이는 우는 것이 힘들었다. 충분히 울었는지 눈물 한 방울도 짜낼 수 없었다.“그러면 울지 않아도 돼.”강성연은 손을 들어서 강유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엄마는 예전에 너보다 더 비참했을 때도 울지 않았어. 네가
강유이가 문을 두드리자 리사의 아버지가 문을 열었다.강유이는 웃으며 물었다.“아저씨, 리사 있어요?”리사의 아버지는 리사가 물건을 사러 막 내려갔다고 말하면서 강유이에게 안으로 들어와 기다리라고 했고 강유이는 고개를 숙이며 거절했다.“괜찮아요. 내일 다시 찾아올게요.”강유이는 돌아서서 떠났다.강유이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리사가 다른 쪽에서 걸어왔다. 차는 리사의 곁을 지나쳤지만 강유이는 창밖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어 리사를 채 보지 못했다.집으로 돌아온 리사는 아버지에게서 강유이가 찾아왔다는 걸 전해 들었다.리사는 당황했다.“강유이가 절 찾으러 왔다고요?”사실 리사는 자신이 한 일에 찔렸고 강유이와 만날 엄두도 나지 않았다.리사는 그런 일이 벌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강해신은 아마 지금쯤 그녀를 죽도록 미워할 것이고 강유이도 그녀를 용서해 줄지 미지수였다.다음 날.리사는 계단을 올라 교실로 향했다.어젯밤 리사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강유이와 절교할 생각은 없었다.강유이는 사실 그녀에게 아주 잘해줬고 통도 컸으며 가난하다고 그녀를 싫어하지도 않았다. 매번 다툼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유이가 먼저 찾아와서 사과했고 항상 리사의 기분을 고려해 주면서 조건 없이 그녀를 받아주었다. 리사의 집에서도 이런 관용을 베풀지는 않았다.게다가 그것은 단지 사고일 뿐이었다.그래서 리사는 강유이가 어젯밤 화해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리사야.”누군가 리사를 불러 세웠다.고개를 든 리사는 계단에 서 있는 강유이를 보았다.리사는 강유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결정했기에 그다지 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유이가 절대 자신과 절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리사는 강유이의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난 어제... 널 도와주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겁이 많잖아. 용서해 줘.”강유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괜찮아. 네 탓 안 해.”말을 마친 뒤 강유이는 몸을 돌렸다.“우리 매점 가서 먹을 것 좀 사자.”리사는
하지만 강유이는 단 한 번도 리사를 졸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런데 리사는 왜 자신이 졸개 같다고 느낀 걸까?리사가 너무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강유이는 리사에게 비싼 선물을 줬고 자신이 가진 건 전부 리사에게 줬다. 리사가 자신을 너무 얕보지 않기를, 리사도 공주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길 바라면서 말이다.그런데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체육복을 갈아입으러 갔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강유이 멍청한 거 아냐? 리사에게 그렇게 비싼 선물을 주다니. 걔는 리사가 자신을 뒤에서 뭐라고 말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걔는 그냥 돈이 너무 많아서 쓸데가 없는 바보잖아. 집에 돈이 그렇게 많은데 가난뱅이 리사에게 아부나 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리사가 걔를 업신여기지.”강유이는 억울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친구의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강유이는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리사와 함께 있을 때면 잠깐이라도 그 얘기들을 전부 잊을 만큼 즐거웠기 때문이다.하지만 도서관에서 그 얘기를 들은 뒤 강유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학교 문 앞에서 구천광의 팬들에게 욕까지 먹었고, 리사의 방패막이 되어 너무도 억울했다.강유이는 아이스크림을 쓰레기통 안에 넣고는 돌아서서 리사를 보았다.“난 정말 많이 노력했어. 난 널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어. 네가 한 말들, 네가 한 일들 전부 따지지 않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넌 날 멍청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됐어.”리사는 입을 뻐끔거리며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아니야, 그 말들은 걔들이 오해한 거야...”“그렇다고 쳐. 하지만 넌 날 속이고 이용하면 안 됐어.”강유이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고개를 돌려 눈물을 닦았다.“난 더 이상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 앞으로 난 다시는 널 찾지 않을 거야.”강유이는 리사와 작별했고 그들 사이의 우정은 철저히 부서졌다.그 뒤로 강유이는 한동안 학업에 열중했다. 다른 친구들이 리사와 어떻게 된 거냐고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