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의 말에 청중들이 소란스러워졌다.판사가 판사봉을 내리쳤다.“정숙하세요.”곧이어 판사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원고 측을 바라봤다.“두 번째 인격을 모방했을 수도 있다고요?”반지훈은 변호사를 바라봤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 전 들고 있던 서류를 펼쳤다.“이 사례에서 이중인격 범죄자는 두 번째 인격이 살인하는 걸 통제할 수 없기에 원칙적으로 형사책임을 면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실질적으로 본인이 완전히 의식이 없고 또 두 번째 인격으로 대체된 조건에서만 형사책임을 면제할 수 있죠. 본인이 두 번째 인격으로 대체되었기에 의식을 통제할 수 없고 또 인지하고 분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만 그 조건에 부합되는 겁니다.”원고 측 변호인이 수연을 바라봤다.“그러나 피고인은 두 번째 인격의 존재를 똑똑히 인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심유연이라는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 두 번째 인격의 범죄 행위를 모방했다는 것이죠. 이중인격의 특징을 연출해 두 번째 인격이 존재하는 척 연기를 했다는 거죠.”강성연마저 놀랐으니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로 그때 배심원단 중 한 명이 무엇 때문에 두 번째 인격의 존재를 흉내 낸 거냐고 물었을 때 구의범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많은 범죄자는 형사책임을 피하고자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증명해 책임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두 번째 인격이 범죄를 저지른 척하는 건 연기일 뿐이죠.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척 완벽한 연기를 펼친 거라면 이중인격 안건이 아닌 거죠.”수연은 이성을 잃은 듯 고함을 질렀다.“헛소리하지 마요. 당신들 짜고 쳐서 절 모함하는 거죠!”뒤에 있던 경찰이 곧바로 수연이 냉정해질 때까지 그녀를 제압했다.구의범은 반지훈이 제출한 증거도 포함하여 모든 안건을 정리했다. 그는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판사님, 피고인이 두 번째 인격이 범죄를 저지른 척한 건, 피고인이 어릴 때 겪은 일로 마음에 원한을 품고 비뚤어진 것 외에도 피고인이 예전에 쌍둥
판사가 다시 피고 측 변호인에게 질문했을 때 피고 측 변호인은 변호를 포기했다. 수연은 법정에서 판결받는 순간, 영혼을 빼앗긴 사람처럼 끌려 나갈 때 발걸음이 불안정했다.강성연과 반지훈도 법원에서 나왔다.“어떻게 그렇게 많은 증거를 찾은 거예요?”강성연도 놀랐다.반지훈은 손을 들어 강성연의 콧등을 긁었다.“네 아들 덕분이야.”강시언은 수연의 저택에서 증거인 회중시계를 찾았다.회중시계에는 수연의 아버지와 한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는데 사진 속 여자는 수지와 수연의 생모였고 동시에 수연의 아버지가 수씨 집안을 몇 년 동안 떠난 이유도 증명할 수 있었다.돌아가는 길에 강성연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수연의 아버지는 수지와 수연의 어머니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비록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함께 할 수는 없었다. 수연의 아버지는 아내가 있었고 비록 아내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녀를 불쌍히 여겼었다.그들은 그저 전통적인 결혼 관념에 속박된 것뿐이었다. 심영은 수연의 아버지의 사촌동생이었는데 자기 사촌 동생과 결혼해야 한다는 건 당시 수연의 아버지에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두 사람은 결혼했고 딱 한 번 관계를 가졌다. 심영이 아이를 낳은 뒤 수연의 아버지는 곧바로 출장을 갔다.사실 수연의 아버지는 심영을 불쌍히 여겼다. 정략결혼만 아니었어도 심영은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또 심영은 효성스럽고 철이 들어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수연의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잘 챙겨줬다.출장을 다녀오면 아이와 아내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고 아이를 보고 안아주며 남편으로서 아내를 관심해 주기도 했다. 해외에서 그의 마음을 흔든 여자를 만났어도 심영에게 이혼하자는 얘기는 한 적이 없다.결혼과 사랑에서 그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가 결혼을 선택한 이유는 책임 때문이지 사랑과는 아무 상관 없었다. 안타깝지만 잘못된 타이밍에 맞는 사람을 만난 것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며칠 뒤, 수연의 재판 결과는 사형이었다.강성연은 감옥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경찰은 수연을 창구로 데려왔다. 수연은 여전히 침착하고 태연했다. 자신을 사형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수연은 자리에 앉은 뒤 수화기를 들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우습네요. 절 보러 온 사람이 당신이라니.”강성연은 수연을 바라봤다.“후회하지 않아요?”“후회요?”수연은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무심했다.“제가 왜 후회해야 하죠? 잘못한 사람이 저인가요? 잘못한 건 이 불공평한 세상이죠.”강성연의 미간이 구겨졌다.“당신의 처지는 동정할 만하지만 그것이 당신이 사람을 죽이고 복수할 이유가 될 수는 없어요.”“당신이 뭘 알겠어요? 당신이 그 일들을 겪어 봤어요?”수연의 안색이 삽시에 차가워지며 음산해졌다.“당시 제가 얼마나 어렸었는데요. 겨우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그렇게 고통스럽고 역겨운 일을 당했어요. 날 침범한 그 남자는 마음이 따뜻하다는 이유로, 또 그의 선한 행위 덕분에 좋은 사람이라고 정의됐죠. 그는 두세 마디 말로 경찰과 이웃들의 신뢰를 얻었어요. 저희 어머니도 그를 믿었죠. 반대로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였던 제가 한 말은 거짓말이 되었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어요. 절 침범한 사람이 예의 바르고 겸손한 좋은 사람이란 이유로요.”수연의 눈동자에 감춰져 있던 증오가 점차 드러났다.“그 일을 겪은 건 저예요. 그리고 제 어머니는 절 혐오했죠. 수지는 아무것도 겪지 않아 백지장 같은 사람이었고 저는 더러웠으니까요.”말을 마친 뒤 수연은 음산하게 웃었다.“제가 약을 먹였을 때, 그리고 수지가 불에 타 죽은 사실을 얘기했을 때 어머니는 울면서 제게 사과했어요.”“그만 해요.”강성연은 수연을 애처롭게 바라봤다.“당신 어머니가 정말 당신을 믿지 않아서 당신을 냉대하고 싫어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뇨. 당신은 틀렸어요.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믿지 않은 게 아니라 무력했을 뿐이에요.”“미혼모인 그녀는 타향에서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강성연은 차에 탔다.“얘기 다 나눴어요.”반지훈의 팔이 강성연 등 뒤의 의자 등받이에 가로 놓였다. 반지훈은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와 거리를 좁혔다.“왜 그래?”강성연은 미간을 구겼다.“저렇게 미친 사람일 줄은 몰랐어요.”반지훈은 강성연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이미 자신의 결말을 맞이한 사람이야.”강성연은 시선을 내려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내뱉지 못했다.뭔가 보아낸 반지훈은 강성연의 얼굴을 받쳐 들었다.“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아직 의문점이 남아있어요. 수연 씨는 어떻게 우리 일을 알아낸 걸까요?”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봤다. 수연은 그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윤티파니와 강예림의 일을 속속들이 알았던 걸까?반지훈은 강성연의 복슬복슬한 정수리에 턱을 올렸다.“누군가를 따라 하고 연기하면 그 역할에 너무 깊이 빠져들어 그 역할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때가 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우리를 조사한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강성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수연은 불쌍한 사람이었고 어렸을 때 겪었던 일도 동정받을 만했지만 그녀가 아주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 때부터 틀려먹었다.리사라는 아이는 그녀의 광기 때문에 평생 지울 수 없는 그늘이 생겼다.병원. 리사의 두 다리는 붕대로 감겨 있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부러진 다리뼈에 철심을 박았다. 겨우 열세 살짜리 아이가 몽둥이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으니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강유이를 데리고 리사를 보러 왔다. 리사는 병상 위에 누워있었는데 얼굴은 붓기가 많이 빠졌지만 여전히 멍이 들어 있었고 침대에서 내려와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해야 했다.“리사야.”강유이가 고개를 숙인 채로 침대로 향했다.“미안해, 나 때문이야. 너한테 내 옷을 입혀서는 안 됐어.”리사는 강유이를 바라보다가 어렵사리 웃음을 쥐어짜 냈다.“괜찮아.”강유이는 리사의 손을 잡았다.“넌 꼭 나을 거야.”리사는 웃기만 할 뿐 더 얘기하지 않았다.강성연은 병실 밖에서 아
“네, 아줌마. 전 강유이라고 해요.”강유이는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리사의 어머니는 병상 곁으로 다가가 리사에게 말했다.“친구를 사귀었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아빠랑 엄마한테 소개해 줘야지. 난 네가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줄 알았어.”리사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 리사 집에 놀러 갈게요.”리사의 어머니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그래. 아줌마가 엄청나게 환영해. 우리 리사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앞으로 네가 우리 리사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네, 그럴게요.”강유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리사는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려 누웠다.“저 피곤해요. 저 자고 싶어요.”리사의 어머니는 리사의 태도에 버럭 화를 냈다.“이것 봐, 아빠랑 엄마가 너 보러 병원까지 왔는데 왜 짜증을 내? 여기 네 친구도 있는데 아빠랑 엄마가 창피해서 그래?”“여보, 리사 몸도 안 좋은데 적당히 해.”리사의 아버지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집안에서는 항상 그의 아내만 발언권이 있었다.“내가 뭐 잘못 말했어? 리사는 지금까지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어. 학부모회 때도 우리에게 오지 말라고 하잖아. 세상에 어떤 자식이 부모를 창피해해?”리사의 어머니는 그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학부모회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집에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면 리사는 화를 냈다.강유이는 리사의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병상 위에 있는 리사를 힐끗 봤다. 사실 강유이는 예전에 리사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얘기한 적 있었는데 리사는 내키지 않는 듯했다.리사는 어머니가 엄격해서 집에 친구들을 데려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지만 사실 리사의 어머니는 리사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했다.하지만 강유이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강유이가 리사를 싫어할까 봐 걱정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리사의 집안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강유이는 상관없었다.*M국 메이
윤티파니는 순간 몸이 굳었다.한지욱은 그녀를 바짝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입술을 붙였다. 그는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살이 빠졌네요.”윤티파니를 찾으러 오기 전 그는 재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향한 그리움을 미친 듯이 얘기할 수도, 또는 다시 한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그녀를 자기 곁에 묶어뒀을 수도 있었다.수없이 생각해봤지만 다시금 만났을 때 한지욱은 두려웠다.그는 윤티파니가 거절할까 봐, 그를 미워할까 봐 두려웠다.윤티파니는 그의 품에 안겨 몸이 굳었다. 그녀는 한참 뒤에야 입을 앙다문 채로 그의 손을 떼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한지욱 씨.”윤티파니는 그를 보지 않았다.“왜 또 절 찾아온 거예요? 우리는 다 끝난 사이잖아요.”한지욱은 순간 움츠러들면서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아직도 제가 밉나 보네요.”“안 미워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침착한 척 말했다.“전 이미 과거를 떨쳐냈어요.”한지욱은 거리를 좁혔다.“전 떨쳐내지 못했어요.”윤티파니는 당황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당신이 왜요? 한지욱 씨, 당신에게 전 죄인이예요. 만약 그 정략결혼이 없었다면 당신과 유혜선 씨는 아주 행복했을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절 미워했죠.”“전 단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이 없어요.”한지욱은 그녀의 앞에 멈춰 서서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밉다는 건 그저 핑계였어요.”한지욱은 윤티파니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고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감싸며 무겁게 숨을 내뱉었다.“티파니 씨, 전 빌어먹을 개자식이에요. 제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인지했을 때, 전 이미 당신을 잃었어요. 당신이 떠난 3년 동안, 전 매일을 괴로움 속에서 보냈어요. 전 당신이 정말 보고 싶었어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돌렸다.“제겐 아이가 있어요.”“하지만 결혼하지는 않았잖아요.”한지욱의 손끝이 윤티파니의 입가에 멈췄다.“당신은 지난 3년간 곁에 다른 남자를 두지 않았어요. 만약 그때 임신
“한지욱 씨...”...서울시 사립학교.강유이가 가방을 메고 교실로 들어가려는데 조민과 선배 여럿이 다가왔다.“강유이.”조민이 강유이를 불렀고 고개를 돌린 강유이는 눈살을 찌푸렸다.“선배가 여긴 왜 왔어요?”조민이 항상 리사를 괴롭혔기 때문에 강유이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학생회 부회장이 된 건지 의문이었다.조민은 팔짱을 두르고 강유이의 앞에 섰다.“너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야.”강유이는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일이요?”“당연히 리사 일 때문이지.”“리사 일을 선배가 저한테 얘기할 필요는 없어요.”강유이가 몸을 돌려 교실로 들어가려 하자 조민이 갑자기 말했다.“리사가 널 속였다면 어떡할래?”강유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조민을 바라봤다.“무슨 말이에요?”리사가 날 속이다니? 그럴 리가.조민은 강유이가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을 꺼내 SNS로 들어갔다.“안 믿네. 그러면 직접 확인해 봐.”조민은 강유이에게 휴대폰을 건넸다.“네 좋은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강유이는 머뭇거리다가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고개를 숙여 화면을 확인한 순간 리사 공주라는 닉네임의 SNS 계정이 보였다.그녀가 게시한 모든 동영상과 사진들을 보면 아주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찍힌 사진들과 동영상은 강유이에게 무척이나 익숙했다.옷, 가방, 신발, 심지어 팔찌까지 전부 강유이가 리사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별장 안의 구조는 반씨 저택이었는데 그것은 리사가 강유이의 집에 놀러 왔을 때 찍은 사진인 듯했다. 차 번호판이 가려진 비싼 차 역시 강유이와 오빠들의 등하교를 책임지는 자가용이었다.그러나 영상에는 전부 리사의 것이라고 태그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강유이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조민은 강유이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웃었다.“이제야 믿겠어? 네 친한 친구는 이 SNS 계정을 만든 사실을 너한테 얘기하지 않았지?”강유이가 대답하지 못하자 조민은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그뿐만이 아니야. 리사는 부자인
강유이는 그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비록 믿지는 않았지만 조민의 말 때문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리사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일까?강유이는 리사와 알고 지낸 지 오래돼서 리사가 어떤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물건들은 강유이가 리사에게 먼저 준 것들이었고 리사가 먼저 뭔가를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러니 리사는 분명 허영심이 많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저녁, 반씨 저택.밥을 먹을 때 강유이는 줄곧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었다.강성연은 그 점을 눈치채고는 강유이의 그릇에 음식을 집어줬다.“유이야, 왜 그래?”반지훈과 강해신도 강유이를 바라봤다.강유이는 정신을 차리더니 고개를 저으며 핑계를 댔다.“리사가 보름 뒤면 퇴원할 수 있대요.”강성연은 웃었다.“리사가 퇴원하면 기뻐해야 하는 거 아냐? 이제 친구랑 같이 놀 수 있잖아.”강유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밥만 먹었다.강해신은 강유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 아무 얘기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밥을 다 먹은 뒤 위층에 있는 방으로 돌아갔다.반지훈은 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간을 살짝 구겼다.“유이 뭔가 고민이 있나 본데.”강성연은 흠칫했다.“그래요?”아이도 이제 열 살이 넘었으니 고민이 있는 건 정상이었다. 하지만 강성연은 리사가 당한 일 때문에 강유이가 자책할까 봐 걱정되었다. 강유이는 어릴 때부터 그녀와 반지훈, 그리고 오빠들의 보호 아래 자랐기에 순수했다. 리사가 겪은 일 때문에,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는 한동안 미안해했다. 또한 강성연은 강유이가 최대한 리사에게 보상하려 한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갑자기 수연이 했던 미친 말들이 떠올랐다. 사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강성연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그 일 때문에 강유이와 리사의 우정에 금이 가지는 않을까 걱정됐다.리사는 무고했다. 단지 강유이와 옷을 바꿔 입은 것 때문에 강유이라고 오해받아 수연 일당에게 잔인한 일을 당했고 리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았다.강해신은 젓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