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의 눈빛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러니까 심유연 씨 말은 이익이 더 중요하다 이거죠?”심유연이 미소 지었다.“큰일 하는 사람들 중에 이익을 따지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그렇게 말한 그녀가 한걸음 더 그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만약 제 남편이 사업가였다면 전 당연히 제 남편이 이익을 선택할 수 있게 지지할 거예요.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좋은 아내라고 할 수 있겠어요.”반지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심유연이 립스틱 하나를 꺼내 그의 외투 주머니에 넣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대표님께서 저를 믿어만 주시면 연 비서님처럼 항상 대표님 곁에서 성심성의껏 모시겠다고 약속드릴게요.”반지훈이 피식 웃었다.“좋습니다. 심유연 씨가 이렇게 자신 있어 하는데 기회를 드려야죠.”심유연이 몸을 곧게 펴면서 미소 지었다.“절대 대표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심유연이 나간 후 반지훈은 주머니 속의 립스틱을 꺼내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을 닦았다.희승이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저 여자 도대체 무슨 목적이랍니까?”“보아하니 목표가 성연이뿐만은 아닌 것 같네.”반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건너 희승이 앞에 멈춰 섰다. 그가 희승의 어깨를 두드렸다.“연극이 끝나려면 아직 좀 걸려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하루빨리 저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내일부터 수습 비서 신분으로 너한테 붙여줄 테니까 잘 주시하고 있어.”Soul 주얼리.강성연은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윤이 들어와 강성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윤의 말을 들은 강성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그 여자가 먼저 지훈 씨 곁에 있기를 자처했다고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희승 씨 말로는 그 여자의 목적이 아가씨뿐만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아마 더 큰 목적은 아가씨와 반지
반지훈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심유연이 강성연의 굳은 표정을 확인하고 해명했다.“사모님, 대표님을 오해…”“나랑 지훈 씨 일이에요. 그쪽은 빠져요.”강성연이 싸늘한 표정으로 심유연을 흘겨보았다. 그녀의 태도를 확인한 심유연이 순간 비웃는 표정을 짓다가 곧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사모님, 어떻게 대표님을 의심하실 수 있으세요. 저랑 대표님은 그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일 뿐이에요. 사모님은 대표님의 와이프신데, 대표님을 신뢰하셔야죠.”강성연이 심유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미지근한 태도로 웃었다.“왜요. 안타까워요? 당신도 내가 저 사람 와이프라는 걸 알고 있긴 했네요. 아까 만약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주 둘이 딱 붙어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지 누가 알겠어요.”반지훈의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꿋꿋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성연아 일단 나가있어.”강성연이 소리 질렀다.“하나만 물을게요. 꼭 저 여자를 당신 옆에 둬야겠어요?”반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회사 일이야. 생트집 잡지 마.”반지훈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심유연은 더욱 안심하며 점점 더 대담해졌다.“사모님, 여기는 soul 주얼리가 아니라 TG 그룹이에요. 남편분의 입장도 이해해 주셔야…”그녀가 막 말을 마치려던 그때 강성연이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심유연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성연을 바라보았다.“사모님…”강성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그쪽이 뭔데요? 지금껏 내 남편한테 접근하려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굴복했었어요. 당신이라고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심유연은 자신의 뺨을 감싸고 엄청난 서러움을 당한 사람처럼 강성연을 쳐다봤다.“사모님, 정말로 오해세요.”그때 반지훈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강성연, 그만하고 당장 돌아가.”강성연이 그를 돌아보았다.“지금 나를 쫓아내는 거예요?”그녀가 화를 내며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좋아요
‘판다 눈’이 된 희승을 확인한 강성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미안해요, 희승 씨.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당분간만 참아줘요. 그리고 지윤 씨도 충분히 살살 때렸는걸요.”‘이, 이 악마들!’화가 난 희승이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렸다.그 일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이 강성연과 반지훈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을 믿게 되었다. 심지어 그 소문이 돌고 돌아 반준성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집에 돌아온 반지훈한테 당장 서재로 오라는 불호령이 내려졌다. 화가 난 반준성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려쳤다.“너 이 자식, 사는 게 지겨워?”반지훈은 들어오기 전 집사한테서 사정을 들었기에 아버지가 화가 난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가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반준성이 다시 테이블을 내려쳤다.“반지훈, 애초에 네가 빌어서 성연이가 너랑 결혼해 줬어. 이제 결혼한 지 채 십 년도 안 되는데 벌써 질린 거냐!”반지훈이 점점 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깐요.”“뭐가 아니라는 거냐.”반준성이 테이블 위를 힐끗 쳐다보더니 책 하나를 들고 반지훈한테 던지려고 했다.그 순간 강성연이 들이닥쳤다.“아버님, 잠깐만요—”손에 들린 물건을 던지려던 반준성이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이런 자식 편 들어줄 필요 없다. 이 자식이 감히 너를 배신해? 내가 절대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성연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반지훈 앞에 막아섰다.“아버님, 저희 말 좀 들어주세요. 진짜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저희가 이렇게 일을 벌인 이유가 있어요.”“이유?”반준성이 그제야 화를 누그러뜨리며 평정심을 찾았다. 그가 책을 다시 원위치에 돌려놓았다.“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들어나 보자꾸나.”강성연은 할 수없이 반준성한테 사건의 진상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유를 알게 된 반준성이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곧바로 화를 완전
강시언은 열세 살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키가 170이 훌쩍 넘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청춘 드라마 속의 잘생긴 남자 주인공 같았다.검은 옷의 사내들은 한참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중 한 남자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서둘러 차 옆으로 다가왔다. 시언이 창문을 내리자 그가 말을 전했다.“도련님, 집안에서 이 상자를 발견했습니다.”시언이 상자를 받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브론즈 회중시계가 있었다. 열 수 있게 디자인된 시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진이 담겨있었다.반영운의 저택. 한옥처럼 지은 커다란 저택의 정원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쭉 서있었다. 그들은 강시언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오셨습니까 도련님.”시언이 그들 사이로 지나며 물었다.“증조할아버지는요?”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서재에 계십니다.”그리고 곧바로 그를 서재로 안내했다.시언이 서재에 들어서자 서류를 보고 있던 반영운이 고개를 들었다.“시언이구나. 무슨 일 있느냐?”시언이 회중시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반영운이 흠칫거렸다. 그가 괴이한 표정으로 회중시계를 손에 들었다.“너 이거 어디서 났어?”“최근 연 비서님이 사람을 시켜 수연이라는 여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가 서울에서 우리 엄마한테 나쁜 짓을 했거든요. 이제 저도 이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되었으니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담담하게 답을 하는 시언을 보고 반영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손에 들린 회중시계를 바라만 보았다.저녁 무렵 반 씨 가문.어스름한 저녁노을이 화단 옆 연못에 비춰들자 수면이 반짝반짝 빛났다. 저녁 식사를 마친 강성연은 홀로 정원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희승이 조사해온 단서를 떠올렸다.이젠 심유연이 수연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녀가 커피숍에서 했던 말들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인 수지와 사이가 나빴다.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지
“우리 성연이 지금 질투해?”그가 소리 없이 웃으며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아쉽지만 성연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그녀가 멈칫했다.“제가 무슨 괜한 걱정을 했어요?”그가 더욱 환하게 웃었다.“성연이는 그 여자가 나한테 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요 며칠 내가 여러 차례 기회를 줬는데도 달려들지 않는 걸 보면, 그 여자의 관심사가 남녀상열지사는 아닌 것 같아.”강성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설마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매력이 떨어져 그런 거 아니에요?”반지훈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럼 성연이는 그 여자가 정말로 나를 덮쳤으면 좋겠어?”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은 농담일 뿐. 만약 그가 정말로 심유연한테 방심하면 그의 가죽을 한 꺼풀 벗겨버릴 것이다.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당신한테 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당신 곁에 있는 거라니. 이건 너무 아귀가 안 맞잖아요.”반지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그러니까 이제 그 여자가 바라는 연극을 해줘야지.”강성연이 그를 쳐다보았다. 문뜩 그녀의 머릿속에 계략이 떠올랐다.다음날 TG 그룹.심유연이 예전과 다름없이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막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 사무실 안에서 희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정신이세요 대표님? 정말로 사모님과 이혼하시려고요?”반지훈이 계약서에 서명하며 말했다.“안 그러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소란을 피우게 놔둬? 까짓것 양육권 포기하지 뭐.”“하지만 예전에도 사모님과 이혼 문제로 소란이 있으셨잖아요. 지금 또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 혹시 사모님께서 나쁜 마음을 먹고 투신이라도 하면 어떡해요.”희승이 큰소리로 말했다.반지훈이 그를 힐끗 노려보았다. 어쩐지 자신보다 더 연기에 진심인 것 같았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연 희승이 심유연과 마주쳤다.“심 비서님,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긴 머리의 여학생이 리사의 앞까지 걸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강유이가 널 친구로 생각하니까 네가 진짜 부잣집 아가씨라도 되는 줄 알아? 이미 네 몸에는 가난뱅이 기질이 깊숙하게 자리 잡아서 절대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 가난한 건 죄가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자랑을 해서는 안 되지.”리사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여학생이 웅크려 앉아 리사의 팔목을 잡아당겨 그녀가 찬 시계를 확인했다.“이것 봐. 네가 지금 4백만 원짜리 시계를 찰 수 있는 건 다 강유이 덕분이잖아. 그 애도 알고 있어? 자신한테 이렇게 허영심 가득한 친구가 있다는걸?”리사의 어깨가 작게 떨리더니 시선을 떨구었다.“허영심이 아니라…”“이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정하네.”여학생이 리사가 있는 쪽으로 몸을 수그렸다.“난 너의 비밀을 알고 있거든.”순간 리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조민 선배!”때마침 도착한 강유이가 조민이 리사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고, 리사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유이가 달려가 조민을 밀쳤다.“제가 분명 리사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었잖아요.”조민이 쯧 하고 혀를 찼다.“강유이, 너 도대체 왜 얘한테 그렇게 잘 해주는 거야. 너 정도 되는 애가 뭐가 모자라서 이런 애랑 친구를 해. 네 그 허울만 좋은 친구한테 배신 당하는 게 두렵지도 않아?”리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이가 그런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켰다.“난 절대 유이를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조민이 싸늘하게 웃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리사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조민을 바라보았다.“내 친구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선배가 뭐라 할 필요 없어요. 다시는 리사를 괴롭히지 말아요!”그리고 리사를 데리고 옥상을 벗어났다.건물 아래로 내려온 뒤 유이가 리사를 돌아보았다.“괜찮아? 저 선배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왜 번마다 너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거야!”리사가 고개를 저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난 괜찮아. 그 선배는 아마… 아마 내가 너랑 친구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자를 잡아 일으키더니 가차 없이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골드 룸살롱 룸.보디가드 몇 명이 남자를 향해 주먹세례를 날렸다. 두 손이 묶인 남자는 그저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성연이 들어오고 나서야 보디가드들이 행동을 멈췄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바닥에 뻗어있는 처참한 몰골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강예림을 차로 친 사람, 당신 맞죠?”남자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곁에 있던 보디가드가 입을 열었다.“사모님, 이놈 생각 밖으로 입이 무거운 놈입니다. 아니면 저희가 좀 더 손을 볼까요?”“아마 맞아 죽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강성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저희가 폭력만 쓸 줄 아는 건 아니잖아요.”보디가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사모님 말씀은…”강성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한테 다가갔다.“심유연… 아니 수연 씨라고 해야 하나. 보아하니 당신 그 여자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히 돈을 위해 움직이는 거 아니죠? 서울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S 국에서 왔나요? 지금껏 경찰의 수배를 잘 피해 다녔다는 건 당신도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말해주겠죠.”그녀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실력도 출중해 보이던데, 당신 프로죠? 안타깝게도 지윤 씨 상대는 안 되겠지만요.”남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찢어 죽이든 삶아 죽이든 바로 결단을 내!”강성연이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들더니 주저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뿌렸다. 얼이 빠진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가 덤덤한 표정으로 잔을 카펫 위에 던졌다.“당신을 죽일지 살릴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뺑소니로 사람을 쳐 죽이고, 거기다 죄 없는 사람까지 한 명 더 죽였잖아요. 당신의 죄는 법이 심판할 거예요. 강예림 한 사람뿐만 아니죠. 억울하게 엮여서 죽은 집주인도 있으니까요.”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가는 것을 확인한 강성연이 몸을 숙이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걱정 마세요.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덫을 쳐놓았으니 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반지훈이 실눈을 떴다.“사람들은 준비됐어?”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준비됐습니다. 항구와 공항 부근, 그리고 고속도로에까지 사람들을 심어놓았습니다.”그가 몸을 돌려 문밖으로 걸어나갔다.“그럼 시작해 볼까.”심유연이 차를 몰고 항구 근처에 도착했다. 멀리서 항구 근처에 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곧바로 차를 멈추고 전화를 걸었다.“너희들 지금 어디야?”상대편 사람이 오는 중에 구간 단속에 걸렸다고 답했다.심유연은 맞은편에 보이는 차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표정을 굳혔다.“오지 말고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봐.”그녀는 상대편의 답을 듣지도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항구를 다시 한번 돌아본 그녀는 엑셀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실으며 그곳을 벗어났다.다른 한편, 강성연과 지윤이 골드 룸살롱에서 나왔다. 그녀가 막 차에 오르려던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처음 보는 번호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나예요.”강성연이 미간을 찌푸렸다.“심유연 씨?”지금 한창 도망치고 있어야 할 심유연이 그녀한테 전화를 걸다니?전화기 속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당신들 정말 판을 잘 짰네요. 하마터면 깜빡 속아 넘어갈 뻔했어요.”강성연이 눈을 깜빡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그게 무슨 말이죠?”심유연이 차창 밖을 내다봤다.“이혼한다는 거 거짓말이죠? 두 사람이 짜고 이런 연극을 펼친 게 다 나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잖아요”그녀가 두 사람의 이혼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조셉을 보내자마자 조셉이 돌연 자수를 하겠다고 했다. 이는 그의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것을 설명했다.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고 생각한 그녀는 바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항구에는 수상한 차량 몇 대가 서있고, 그녀의 사람들은 하필 오늘 같은 날 구간 단속에 걸렸다.일단 단속에만 걸리면 그들이 불법으로 입국했다는 게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구속을 면치 못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