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울상인 희승은 사실 속으로는 반지훈의 연기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기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정말로 그를 발로 차서 쫓아내다니.때마침 나타난 심유연이 희승의 곁으로 다가왔다.“연 비서님.”심유연을 확인한 희승이 순간 당황하더니 곧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심유연 씨, 지금 대표님께서 기분이 좋지 않으셔서 일에 관한 거면 나중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이 여자도 분명 회사에 떠돌고 있는 유언비어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 이 타이밍일수록 사모님을 찾아가서 괴롭혀야 하는 거 아닌가?오늘 아침 사모님과 대표님이 그런 연기를 펼친 건 심유연한테 본인이 직접 나설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표님이 사모님을 돕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심유연이 거리낌 없이 나설 것이라 추측했었다.그런데 그녀가 대표님한테 찾아왔다.‘설마 다른 목적이 있는 건가?’“어머 그래요?”심유연이 일부러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반지훈 대표님과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연 비서님께서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희승이 뺨을 긁적였다.“그건… 제가 들어가서 대표님한테 여쭤볼게요. 하지만 심유연 씨를 꼭 만나주실지는 장담 못 하겠네요.”그녀가 싱긋 미소 지었다.“알겠어요.”희승이 다시 한번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서 화가 난 반지훈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꺼지라고 했잖아.”희승이 고개를 수그리고 말했다.“대표님, 심유연 씨가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반지훈이 잠깐 침묵했다.“들어오라고 해.”심유연도 반지훈이 자신을 만나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순간 우쭐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빠르게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허락을 받은 심유연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온 희승이 휴대폰을 꼭 쥐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그는 강성연에게 전화를 걸었다.희승의 전화를 받은 강성연은 심유연이 반지훈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
반지훈의 눈빛에서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그러니까 심유연 씨 말은 이익이 더 중요하다 이거죠?”심유연이 미소 지었다.“큰일 하는 사람들 중에 이익을 따지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그렇게 말한 그녀가 한걸음 더 그에게 다가가 몸을 숙였다.“만약 제 남편이 사업가였다면 전 당연히 제 남편이 이익을 선택할 수 있게 지지할 거예요. 공과 사도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좋은 아내라고 할 수 있겠어요.”반지훈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심유연이 립스틱 하나를 꺼내 그의 외투 주머니에 넣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대표님께서 저를 믿어만 주시면 연 비서님처럼 항상 대표님 곁에서 성심성의껏 모시겠다고 약속드릴게요.”반지훈이 피식 웃었다.“좋습니다. 심유연 씨가 이렇게 자신 있어 하는데 기회를 드려야죠.”심유연이 몸을 곧게 펴면서 미소 지었다.“절대 대표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게요.”심유연이 나간 후 반지훈은 주머니 속의 립스틱을 꺼내더니 쳐다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손수건을 꺼내 자신의 손을 닦았다.희승이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저 여자 도대체 무슨 목적이랍니까?”“보아하니 목표가 성연이뿐만은 아닌 것 같네.”반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건너 희승이 앞에 멈춰 섰다. 그가 희승의 어깨를 두드렸다.“연극이 끝나려면 아직 좀 걸려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하루빨리 저 여자의 정체를 알아내야 해. 내일부터 수습 비서 신분으로 너한테 붙여줄 테니까 잘 주시하고 있어.”Soul 주얼리.강성연은 사무실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윤이 들어와 강성연의 귓가에 속삭였다. 지윤의 말을 들은 강성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그 여자가 먼저 지훈 씨 곁에 있기를 자처했다고요?”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희승 씨 말로는 그 여자의 목적이 아가씨뿐만 아닌 것 같다고 했어요. 아마 더 큰 목적은 아가씨와 반지
반지훈이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 거 아니야.”심유연이 강성연의 굳은 표정을 확인하고 해명했다.“사모님, 대표님을 오해…”“나랑 지훈 씨 일이에요. 그쪽은 빠져요.”강성연이 싸늘한 표정으로 심유연을 흘겨보았다. 그녀의 태도를 확인한 심유연이 순간 비웃는 표정을 짓다가 곧바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다.“사모님, 어떻게 대표님을 의심하실 수 있으세요. 저랑 대표님은 그냥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일 뿐이에요. 사모님은 대표님의 와이프신데, 대표님을 신뢰하셔야죠.”강성연이 심유연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미지근한 태도로 웃었다.“왜요. 안타까워요? 당신도 내가 저 사람 와이프라는 걸 알고 있긴 했네요. 아까 만약 내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주 둘이 딱 붙어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지 누가 알겠어요.”반지훈의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꿋꿋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성연아 일단 나가있어.”강성연이 소리 질렀다.“하나만 물을게요. 꼭 저 여자를 당신 옆에 둬야겠어요?”반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회사 일이야. 생트집 잡지 마.”반지훈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심유연은 더욱 안심하며 점점 더 대담해졌다.“사모님, 여기는 soul 주얼리가 아니라 TG 그룹이에요. 남편분의 입장도 이해해 주셔야…”그녀가 막 말을 마치려던 그때 강성연이 그녀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심유연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성연을 바라보았다.“사모님…”강성연이 그녀에게 다가갔다.“그쪽이 뭔데요? 지금껏 내 남편한테 접근하려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나한테 굴복했었어요. 당신이라고 내 상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심유연은 자신의 뺨을 감싸고 엄청난 서러움을 당한 사람처럼 강성연을 쳐다봤다.“사모님, 정말로 오해세요.”그때 반지훈이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강성연, 그만하고 당장 돌아가.”강성연이 그를 돌아보았다.“지금 나를 쫓아내는 거예요?”그녀가 화를 내며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좋아요
‘판다 눈’이 된 희승을 확인한 강성연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미안해요, 희승 씨.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잖아요. 당분간만 참아줘요. 그리고 지윤 씨도 충분히 살살 때렸는걸요.”‘이, 이 악마들!’화가 난 희승이 씩씩거리며 차에서 내렸다.그 일이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이 강성연과 반지훈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을 믿게 되었다. 심지어 그 소문이 돌고 돌아 반준성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집에 돌아온 반지훈한테 당장 서재로 오라는 불호령이 내려졌다. 화가 난 반준성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려쳤다.“너 이 자식, 사는 게 지겨워?”반지훈은 들어오기 전 집사한테서 사정을 들었기에 아버지가 화가 난 원인을 알고 있었다. 그가 코를 긁적이며 말했다.“아버지가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반준성이 다시 테이블을 내려쳤다.“반지훈, 애초에 네가 빌어서 성연이가 너랑 결혼해 줬어. 이제 결혼한 지 채 십 년도 안 되는데 벌써 질린 거냐!”반지훈이 점점 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그러니까 그게 아니라니깐요.”“뭐가 아니라는 거냐.”반준성이 테이블 위를 힐끗 쳐다보더니 책 하나를 들고 반지훈한테 던지려고 했다.그 순간 강성연이 들이닥쳤다.“아버님, 잠깐만요—”손에 들린 물건을 던지려던 반준성이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이런 자식 편 들어줄 필요 없다. 이 자식이 감히 너를 배신해? 내가 절대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강성연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반지훈 앞에 막아섰다.“아버님, 저희 말 좀 들어주세요. 진짜 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저희가 이렇게 일을 벌인 이유가 있어요.”“이유?”반준성이 그제야 화를 누그러뜨리며 평정심을 찾았다. 그가 책을 다시 원위치에 돌려놓았다.“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들어나 보자꾸나.”강성연은 할 수없이 반준성한테 사건의 진상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유를 알게 된 반준성이 처음에는 당황하더니 곧바로 화를 완전
강시언은 열세 살밖에 안되었지만 이미 키가 170이 훌쩍 넘었다. 교복을 입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마치 청춘 드라마 속의 잘생긴 남자 주인공 같았다.검은 옷의 사내들은 한참 동안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그중 한 남자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서둘러 차 옆으로 다가왔다. 시언이 창문을 내리자 그가 말을 전했다.“도련님, 집안에서 이 상자를 발견했습니다.”시언이 상자를 받아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낡은 브론즈 회중시계가 있었다. 열 수 있게 디자인된 시계 뚜껑을 열어보니 작은 사진이 담겨있었다.반영운의 저택. 한옥처럼 지은 커다란 저택의 정원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쭉 서있었다. 그들은 강시언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오셨습니까 도련님.”시언이 그들 사이로 지나며 물었다.“증조할아버지는요?”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서재에 계십니다.”그리고 곧바로 그를 서재로 안내했다.시언이 서재에 들어서자 서류를 보고 있던 반영운이 고개를 들었다.“시언이구나. 무슨 일 있느냐?”시언이 회중시계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반영운이 흠칫거렸다. 그가 괴이한 표정으로 회중시계를 손에 들었다.“너 이거 어디서 났어?”“최근 연 비서님이 사람을 시켜 수연이라는 여자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 여자가 서울에서 우리 엄마한테 나쁜 짓을 했거든요. 이제 저도 이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되었으니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요.”담담하게 답을 하는 시언을 보고 반영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묵묵히 손에 들린 회중시계를 바라만 보았다.저녁 무렵 반 씨 가문.어스름한 저녁노을이 화단 옆 연못에 비춰들자 수면이 반짝반짝 빛났다. 저녁 식사를 마친 강성연은 홀로 정원에 놓인 긴 의자에 앉아 희승이 조사해온 단서를 떠올렸다.이젠 심유연이 수연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녀가 커피숍에서 했던 말들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쌍둥이 언니인 수지와 사이가 나빴다.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수지
“우리 성연이 지금 질투해?”그가 소리 없이 웃으며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아쉽지만 성연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그녀가 멈칫했다.“제가 무슨 괜한 걱정을 했어요?”그가 더욱 환하게 웃었다.“성연이는 그 여자가 나한테 반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요 며칠 내가 여러 차례 기회를 줬는데도 달려들지 않는 걸 보면, 그 여자의 관심사가 남녀상열지사는 아닌 것 같아.”강성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설마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매력이 떨어져 그런 거 아니에요?”반지훈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웃으며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무슨 생각 하는 거야. 그럼 성연이는 그 여자가 정말로 나를 덮쳤으면 좋겠어?”강성연이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은 농담일 뿐. 만약 그가 정말로 심유연한테 방심하면 그의 가죽을 한 꺼풀 벗겨버릴 것이다.그녀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당신한테 반한 것도 아니고. 단지 우리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당신 곁에 있는 거라니. 이건 너무 아귀가 안 맞잖아요.”반지훈이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그러니까 이제 그 여자가 바라는 연극을 해줘야지.”강성연이 그를 쳐다보았다. 문뜩 그녀의 머릿속에 계략이 떠올랐다.다음날 TG 그룹.심유연이 예전과 다름없이 사무실로 향했다. 그녀가 막 문을 두드리려고 할 때 사무실 안에서 희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정신이세요 대표님? 정말로 사모님과 이혼하시려고요?”반지훈이 계약서에 서명하며 말했다.“안 그러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소란을 피우게 놔둬? 까짓것 양육권 포기하지 뭐.”“하지만 예전에도 사모님과 이혼 문제로 소란이 있으셨잖아요. 지금 또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 혹시 사모님께서 나쁜 마음을 먹고 투신이라도 하면 어떡해요.”희승이 큰소리로 말했다.반지훈이 그를 힐끗 노려보았다. 어쩐지 자신보다 더 연기에 진심인 것 같았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연 희승이 심유연과 마주쳤다.“심 비서님,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긴 머리의 여학생이 리사의 앞까지 걸어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강유이가 널 친구로 생각하니까 네가 진짜 부잣집 아가씨라도 되는 줄 알아? 이미 네 몸에는 가난뱅이 기질이 깊숙하게 자리 잡아서 절대 그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어. 가난한 건 죄가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자랑을 해서는 안 되지.”리사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여학생이 웅크려 앉아 리사의 팔목을 잡아당겨 그녀가 찬 시계를 확인했다.“이것 봐. 네가 지금 4백만 원짜리 시계를 찰 수 있는 건 다 강유이 덕분이잖아. 그 애도 알고 있어? 자신한테 이렇게 허영심 가득한 친구가 있다는걸?”리사의 어깨가 작게 떨리더니 시선을 떨구었다.“허영심이 아니라…”“이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부정하네.”여학생이 리사가 있는 쪽으로 몸을 수그렸다.“난 너의 비밀을 알고 있거든.”순간 리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조민 선배!”때마침 도착한 강유이가 조민이 리사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고, 리사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유이가 달려가 조민을 밀쳤다.“제가 분명 리사를 괴롭히지 말라고 했었잖아요.”조민이 쯧 하고 혀를 찼다.“강유이, 너 도대체 왜 얘한테 그렇게 잘 해주는 거야. 너 정도 되는 애가 뭐가 모자라서 이런 애랑 친구를 해. 네 그 허울만 좋은 친구한테 배신 당하는 게 두렵지도 않아?”리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유이가 그런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켰다.“난 절대 유이를 배신하지 않을 거예요.”조민이 싸늘하게 웃을 뿐 답을 하지 않았다.강유이는 리사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조민을 바라보았다.“내 친구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선배가 뭐라 할 필요 없어요. 다시는 리사를 괴롭히지 말아요!”그리고 리사를 데리고 옥상을 벗어났다.건물 아래로 내려온 뒤 유이가 리사를 돌아보았다.“괜찮아? 저 선배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왜 번마다 너를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거야!”리사가 고개를 저으며 애써 미소 지었다.“난 괜찮아. 그 선배는 아마… 아마 내가 너랑 친구
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남자를 잡아 일으키더니 가차 없이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골드 룸살롱 룸.보디가드 몇 명이 남자를 향해 주먹세례를 날렸다. 두 손이 묶인 남자는 그저 맞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성연이 들어오고 나서야 보디가드들이 행동을 멈췄다.그녀는 소파에 앉아 바닥에 뻗어있는 처참한 몰골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강예림을 차로 친 사람, 당신 맞죠?”남자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곁에 있던 보디가드가 입을 열었다.“사모님, 이놈 생각 밖으로 입이 무거운 놈입니다. 아니면 저희가 좀 더 손을 볼까요?”“아마 맞아 죽더라도 입을 열지 않을 거예요.”강성연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저희가 폭력만 쓸 줄 아는 건 아니잖아요.”보디가드가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사모님 말씀은…”강성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한테 다가갔다.“심유연… 아니 수연 씨라고 해야 하나. 보아하니 당신 그 여자와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히 돈을 위해 움직이는 거 아니죠? 서울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그 여자와 마찬가지로 S 국에서 왔나요? 지금껏 경찰의 수배를 잘 피해 다녔다는 건 당신도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걸 말해주겠죠.”그녀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실력도 출중해 보이던데, 당신 프로죠? 안타깝게도 지윤 씨 상대는 안 되겠지만요.”남자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찢어 죽이든 삶아 죽이든 바로 결단을 내!”강성연이 테이블 위에 놓인 술잔을 들더니 주저하지 않고 그의 얼굴에 뿌렸다. 얼이 빠진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가 덤덤한 표정으로 잔을 카펫 위에 던졌다.“당신을 죽일지 살릴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에요. 뺑소니로 사람을 쳐 죽이고, 거기다 죄 없는 사람까지 한 명 더 죽였잖아요. 당신의 죄는 법이 심판할 거예요. 강예림 한 사람뿐만 아니죠. 억울하게 엮여서 죽은 집주인도 있으니까요.”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가는 것을 확인한 강성연이 몸을 숙이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걱정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