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어떤 여자요?""그건 저도 잘 몰라요. 집 안에서 애를 보고 있느라 목소리만 들었거든요. 그 여자 말로는 강예림 씨의 친구인데 집 정리를 도와주러 왔다고 했어요."며느리가 기억을 되짚으며 말했다."그리고 어머님께 40만 원을 팁으로 줬더라고요. 어머님이 신이 나서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요."...차 안.강성연은 팔짱을 끼고 등받이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혹시 그 여자가 수연은 아닐까? 그리고 강예림의 집을 찾아온 건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닐까?'강예림이 사고를 당한 시점에서 집주인이 죽었다니, 이 모든 게 이상하리만큼 동시에 일어났다. 마치 수연이라는 여자가 뒤에서 증거를 하나둘씩 지워가는 것처럼 말이다.만약 강성연의 추측이 맞다면 수연은 아주 치밀하고 무서운 여자인 게 분명했다. 이때 연희승에게서 전화가 왔고, 강성연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수연에 관한 단서가 나타났어요."TG그룹.강성연은 반지훈의 사무실로 왔다. 그녀는 연희승이 말하기도 전에 테이블 앞으로 와서 반지훈에게 말했다."수연이 서울에 있는 것 같아요."반지훈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컴퓨터 화면을 그녀에게 돌렸다. 화면에는 한 사람의 개인정보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컴퓨터 화면에 뜬 사진을 보고 강성연은 넋을 잃었다."어... 어떻게 이럴 수가!"강성연은 제자리에 얼어버렸다. 왜냐하면 수연의 얼굴은 서영유가 태워 죽인 수지와 똑같았기 때문이다.반지훈은 수지의 사망 증명서를 본 적 있었다. 그녀의 사망 증명서는 공개된 적도, 삭제된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서영유가 수지를 태워 죽이고 시체를 받아서는 사망신고를 하기는커녕 수지의 이름으로 살아갔기 때문이다.하지만 서영유는 이미 바다에 빠져 죽었고 수지의 인적 사항 또한 삭제되어야 정상이었다. 그게 서영유의 자료이든, 수지의 자료이든... 수연이라는 여자는 과연 어떻게 수지의 자료에 나타난 것일까?강성연은 막연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연희승은 머리를 숙
반지훈은 계속해서 자료를 바라보며 말했다."어쩌면 불에 타 죽은 아리의 학생이 수지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강성연은 이제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수지는 그녀보다도 키가 작았기에 아리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예전에는 서영유가 거짓말을 잘하나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제야 완전히 설명이 되었다. 자료 속에는 수연의 키가 167cm라고 나왔는데 서영유와 비슷했다. 아마 서영유 본인도 이 우연의 일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수지가 쌍둥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연희승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참 이상하네요. 서영유가 수지인 척하는 걸 보고서도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수지의 이름으로 아리 곁에 있게 하고요."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지훈은 컴퓨터를 닫으며 말했다."진정한 이유는 아마 본인만 알겠지.""여기 서서 뭐 해요?"이때 지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연희승은 훔쳐 듣는 사람이 있는 줄 알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봤다. 문밖에는 심유연과 지윤이 대치하고 있었다.심유연은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서류를 내보이며 말했다."죄송해요. 저는 서류 배달 온 거예요. 하지만 얘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 같길래 들어가지 않았어요."지윤이 정색하며 말했다."그게 훔쳐 듣는 거잖아요."심유연은 잠깐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저는 문밖에 서 있었을 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훔쳐 듣는 거예요?"강성연과 반지훈도 걸어 나왔다. 반지훈은 심유연이 들고 있는 서류를 힐끗 보고 연희승에게 받아 들라는 눈치를 줬다.연희승이 서류를 받아 든 후, 반지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이런 일은 앞으로 책임자한테 맡겨요."심유연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알겠어요.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심유연이 몸을 돌렸다.연희승은 걱정되는지 물었다."저희 말을 다 들은 모양인데 이대로 보내줘도 될까요?"반지훈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들었으면 뭐 어때. 우리가 엄청난 비밀 얘기를 나
"그림자?""네."심유연은 턱을 괴며 말했다."사모님도 그림자의 뜻을 알고 있죠? 평생 남의 그림자에서 조연 역할로 살아야 하는 그런 그림자 말이에요. 사람들은 오직 수지만 알지, 수연이라는 동생이 있다는 건 잘 몰라요."수연과 수지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언니 수지가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오직 수지만이 우수한 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수연과 달리 수지는 항상 성적이 좋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역시 동생보다는 언니가 유능하다고 생각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수지를 내세웠다. 친척이 찾아와 인사를 할 때마저 수지만 내보내고 수연은 방에 가둬버렸다. 어머니는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지 못하는 수연을 불필요한 사람으로 여겼다.고등학교 졸업 후, 수연은 토론토 예술 아카데미에서 떨어졌지만 수지는 단번에 붙어서 아리의 학생이 되었다. 수지는 동생이 토론토 예술 아카데미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흔쾌히 기회를 양보했다. 그렇게 수연은 수지의 이름으로 입학해 아리의 학생이 되었다.하지만 수지는 교수나 어머니한테 들키게 될까 봐 논문부터 시험까지 전부 직접 했다. 그녀는 수연에게 자신을 표현할 기회를 한 번도 주지 않았다. 훌륭한 논문 덕분에 수지는 아리가 유망주라고 평가하는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수연은 그저 수지의 빛을 빌려 사는 것뿐이었다.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수지의 재능이었지 수연의 것이 아니었다. 교수와 학생도 수지만 알았지 수연은 알지 못했다.강성연은 시선을 떨궜다. 그녀와 반지훈의 추측이 정확했다. 역시 아리의 학생은 수지의 이름으로 위장한 수연이었다. 하지만 심유연은 이를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강성연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두 사람이 잘 아는 사이라면 수연이 서울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죠?"심유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수연이 서울에 있어요? 그건 몰랐네요."강성연은 말없이 심유연을 바라봤다. 그녀는 시종일관 태연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잠시 후 강성연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강성연이 물었다."차량은 어디에서 발견했나요?"경찰은 현장 사진을 건네며 말했다."교외에서 발견했어요. 차량은 불에 타서 틀만 남았고 사람의 시신은 없었어요. 저희는 이번 뺑소니 사건이 고의적 살인이라고 생각해요. 차를 불태운 건 아무래도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겠죠."강성연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차량 블랙박스는요?"경찰이 답했다."물론 없었어요."강성연도 이는 고의적 살인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러면 이토록 깔끔하게 증거를 인멸할 필요가 없었다."성 사장도 모르는 일이래요?""몇 번 취조를 해보니 고인을 때린 적은 있지만 죽이지는 않았대요."강성연은 미간을 찌푸리고 복도로 나왔다. 만약 고의적 살인이라면 수연의 혐의가 가장 컸다. 하지만 그녀는 왜 강예림을 죽여야만 했을까?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강성연은 문득 강예림이 자신의 차에 독을 탄 일이 생각났다."설마..."강성연은 다시 경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저기... 혹시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경찰이 멈칫하더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무슨 부탁이요?"강성연이 천천히 말했다."강예림의 휴대전화를 수리할 수 있을까요?"경찰이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될 거예요. 하지만 수리해도 SIM 카드가 없는데요."강성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메시지 기록만 있으면 돼요."...HS그룹.회의를 끝낸 한지욱은 비서와 함께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 여자가 그의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비서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다가갔다."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어?"심유연은 차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한지욱 씨, 저 엄청 오래 기다렸어요."한지욱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비서를 내보냈다. 그는 소파 앞으로 가서 여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당신 누구야?"심유연은 가방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그건 알 필요 없고... 한지욱 씨가 사랑하는 여자분은 외국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한지욱은 소파에 앉아 사진을 바라봤다. 그는 사진 속의 여자를 영원히
저녁.강성연은 침대에 엎드려 일하고 있었다. 샤워를 끝낸 반지훈은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닦으며 그녀의 뒤로 왔다.침대의 흔들림과 함께 따뜻한 피부가 강성연의 몸에 닿았다. 향긋한 샴푸 냄새도 함께 몰려왔다."아직도 일해?"강성연은 몸을 돌리더니 그의 가슴에 손을 댔다."네. 요즘은 회사 일을 할 시간이 저녁 밖에 없어서요."반지훈은 그녀의 이마에 짧게 뽀뽀하더니 곧 입술을 향해 덮쳤다. 강성연은 손을 뻗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지훈 씨.""응."반지훈은 집요하게 키스하며 대답했다. 강성연은 어렵게 피하며 말했다."심유연과 수연 사이의 관계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근데 약간 걱정되는 게... 수연이 아무래도 저를 목표로 찾아온 것 같아요."반지훈은 동작을 멈추더니 강성연을 바라봤다. 강성연의 눈초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예림이의 죽음도 저한테 독을 탄 것과 연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예림이 죽게 된 건 아닐까요?"반지훈은 그녀의 입술을 만지며 말했다."네 머릿속의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어?"강성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같은 사람이요?"반지훈은 몸을 일으키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연 비서가 요즘 심유연을 계속 지켜보고 있거든. 심유연이 TG그룹 안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내가 다 알고 있어. 그 여자 강예림이 사고당한 날에 출근하지 않았더라고."강성연도 몸을 일으켰다. 심유연이 출근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알리바이였다. 그녀는 돌연 이렇게 물었다."그럼 그저께는요?""그저께도 출근하지 않았어."강성연은 머리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저께 누군가가 강예림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주인의 며느리는 여자라고 했다. 그럼 틀림없을 것이다. 사고 당일과 그저께 출근하지 않은 심유연은 수연인 게 틀림없었다.'그럼 수연이 얼굴에 이름까지 바꾸고 나를 찾아온 건가? 도대체 왜? 나는 수연과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반지훈은 강성연의 얼굴을 감싸며 말했다."그 여자가
그녀는 분명 당사자이면서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강성연에게 털어놓았었다.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못했다.백미러를 확인한 강성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뒤따라 오고 있는 차는 분명 경찰서 앞에 주차되어 있던 차였다.뒤따라오던 차가 갑자기 속력을 내더니 그녀의 차를 앞질렀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강성연의 차량 바퀴에 이상이 생겼는지 그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부딪힐 것 같자 강성연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차체가 급속도로 옆으로 미끄러지며 길에 세워진 표지판과 충돌했다.갑작스러운 충격에 머리가 윙윙거렸다. 그녀는 흐릿한 시선으로 몇 분 동안 정차되어 있다 사라진 차량을 바라보았다.같은 시각 TG 그룹.반지훈과 희승이 이제 막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때 전화를 받은 희승이 급히 그에게 다가왔다.“대표님, 사모님한테 사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반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그가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희승이와 회사를 나섰다.비슷한 시기, 뒤에서 걷고 있던 심유연한테도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두꺼운 회의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날 조사하려고? 절대 이렇게 빨리 끝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병원 처치실, 간호사가 강성연의 상처 부위에 거즈를 대주었다. 그러면서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밖으로 나갔다.강성연이 거즈를 댄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마침 눈썹 뼈 주위에 상처가 난 거라 살짝만 미간을 찌푸려도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가 작게 신음했다. 바로 그때, 반지훈이 문 앞에 나타났다.당황한 그녀가 반지훈의 얼어붙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로 그가 화가 났음을 알아차렸다.그녀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이번엔 제가 방심했어요. 다음부터 조심할게요.”그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다음도 있어?”“없어요. 약속할게요.”강성연이 그의 손을 잡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반지훈이 천천히 그
반지훈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가 전화를 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그가 밖으로 나갔다.강성연은 침대 헤드에 가만히 기대앉아있었다. 방문이 닫친 후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한지욱이 아무 이유도 없이 그녀를 해치려 할 리가 없었다. 이번 일은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반지훈과 희승은 곧바로 HS 그룹으로 찾아갔다. 그들은 프런트 직원의 확인을 거치지도 않고 곧장 안으로 쳐들어갔다.그들의 기세에 놀란 프런트 직원이 정신을 차린 후 얼른 한지욱의 비서한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다.소식을 들은 비서가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욱에게 알리려 사무실로 막 들어가려던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반지훈이 나타났다.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비서를 바라보았다.“한 대표 안에 있죠?”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그가 태연한 표정으로 옷소매 단추를 풀고 희승과 함께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희승이 노크를 한 후 바로 문을 열었다.한지욱이 고개를 들고 그들을 확인했다. 그가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대표님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반지훈이 거리낌 없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물어볼 게 있어서 말입니다.”한지욱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지훈이 앉아있는 맞은편에 앉았다.“어떤 거죠?”반지훈이 희승이한테 눈짓하자 그가 다가와 녹음된 파일을 한지욱한테 건넸다. 한지욱이 그들을 한번 바라본 후 음성을 확인했다.다 듣고 난 한지욱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었다.“저는 모르는 일입니다.”한지욱은 갑자기 뭔가 기억난 듯이 보충하며 말했다.“어제 웬 여자가 저를 찾아왔었습니다.”희승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어떤 여자였습니까?”“처음 보는 여자였습니다. 그녀가 티파니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저한테 강성연 씨가 사라져야 티파니가 저한테 돌아올 거라고 하더군요.”한지욱
아무리 사전에 강성연에 관한 조사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할 수는 없었다. 강성연에 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는.그리고 만약 수연이 수지를 대신해 복수하는 거라면 응당 서영유를 미워해야 하는 게 아닌가. 수지를 죽인 건 서영유였다. 그런데 왜 ‘복수’의 대상이 강성연이 되어버린 건가?반지훈은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서서 단추를 잠갔다. 그리고 희승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복수가 아니야.”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희승이 그의 뒤를 따라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누르던 희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복수가 아니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단순히 재미를 위해?”반지훈이 소리 내어 웃었다.“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누군가에게 복수를 하면 바로 상대방을 죽여버릴 거야?”희승이 잠깐 머뭇거렸다.“물론이죠. 당연히 법률이 허락하는 법위 내에서 해야겠지만.”“바로 그거야.”반지훈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여자가 복수를 원했다면 바로 성연이를 죽이려 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까지 그 여자는 제3자를 통해서 손을 쓰거나, 성연이 주변 사람들을 이용하기만 했어. 복수라기보다는 장난에 더 가까워.”“뱀이 사냥을 할 때 보통 한 입에 삼키는 법이 없지. 일단 목표를 갖고 놀면서 사냥감이 서서히 저항력을 잃어갈 때쯤 되면 그제야 잡아먹어.”희승이 경악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확실히 수상했다. 그녀가 만약 강성연을 죽이는 게 목적이었다면 TG 그룹보다 soul 주얼리에 들어가는 게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TG를 선택했다.강예림을 죽인 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서였다면, 한지욱이 윤티파니에 대한 마음을 이용한 원인은 또 뭐란 말인가. 만약 정말로 강성연을 죽이려 했다면 강성연의 차바퀴를 펑크 내는 걸로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복수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독해질 수 있다. 그러면 심유연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걸까?차 안으로 돌아온 반지훈이 희승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