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훈은 덤덤하게 한 마디 보탰다.“곧 40대인 늙은 남자니 급할 건 없지.”여준우는 예의 있는 미소를 지었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웃었다. 밖에서 폭죽소리가 들려오자 강유이는 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오빠, 얼른 먹어. 우리도 불꽃놀이 보러 가자!”아이들은 사 온 폭죽을 밖으로 가져갔고 희승이 아이들 대신 폭죽에 불을 붙였다. 폭죽이 밤하늘까지 치솟아 피어나는 순간, 아이들은 무척 기뻐했다.강성연은 마당에 서서 밤하늘의 화려한 불꽃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반지훈을 바라봤다.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한지욱은 조명을 켜지 않고 방안 창가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마음은 번화한 거리와 반대로 썰렁했다.한지욱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바라봤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배경 화면은 윤티파니의 사진이었다.윤티파니가 떠난 지 벌써 두 달째였다.초인종 소리에 한지욱은 의기소침하게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 문 앞에 서 있는 건 그의 어머니였다.“지욱아, 설날인데 집에 와야지. 아버지가 집에서 널 기다리신다.”한지욱은 어두컴컴한 방 안을 쓱 둘러보고는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이따가 돌아갈게요.”한성연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렸다. 그런데 한지욱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어머니.”한성연의 어머니는 멈칫하더니 놀란 표정으로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너... 뭐라고 부른 거니?”그녀가 한수찬과 재혼한 뒤로 한지욱은 단 한 번도 그녀를 어머니라 부른 적이 없었다. 그녀는 한지욱이 계모인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그런데 한지욱이 그녀를 어머니라고 불렀으니 감동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그는 뜬금없는 얘기를 했다.“그동안 저희 아버지 챙겨주셔서 고마워요,”예전에 그는 그녀가 아버지의 돈을 탐내서, 한씨 집안 사모님이라는 신분과 지위를 위해서 아버지와 결혼한 줄 알았다.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병 때문에 쓰러졌을 때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그를 돌봤다. 사람의 나쁜 점만 보
만약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었다.같은 시각, M국.윤티파니는 병실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그녀의 얼굴을 감싼 거즈를 벗겨줬고 간호사는 거울을 들고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윤티파니는 거울 속 두 번의 성형수술로 낯설어진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은 아직 부어있었다.의사가 당부했다.“윤티파니 씨, 회복하는 6개월 동안 얼굴을 세게 문지르지 마세요. 그래야 최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윤티파니는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난 뒤 윤티파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앞으로 그녀는 과거와 완전히 작별할 수 있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미디어에서는 soul 주얼리가 국내 상장회사 랭킹 6위에 올라 톱10에 진입한 걸 축하했다. soul 주얼리는 주얼리 업계에서 케이트 주얼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국제 주얼리 브랜드가 되었다.주얼리 업계는 패션 업계와 관계가 밀접했다. soul은 럭셔리 커스터마이징 브랜드에서 프리미엄 커스터마이징 브랜드로 성장했기에 아주 성공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강성연의 첫 공식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강성연 씨, 처음 soul 주얼리 브랜드를 창립했을 때 왜 글로벌 디자이너 zora의 신분을 사용해서 성공을 얻으려 하지 않은 거죠?”만약 처음부터 zora의 신분을 사용해 주얼리 회사를 차렸다면 신인 디자이너보다 인맥과 경험이 많아 신인보다 출발점이 앞섰다.강성연은 잠깐 침묵을 유지하다가 웃으며 대답했다.“저에게 있어 zora는 과거를 의미해요.”“zora의 신분을 이용했더라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저에게 있어 zora와 저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에요. zora의 신분은 제게 많은 한계를 가져다줄 거예요. 예를 들면 처음부터 기대치가 높아 제가 실패한다면 zora가 제게 가져다준 영광에 미안하게 되죠.”“신입으로서 시작하는 것도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
차는 호텔 앞에 멈춰 섰고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레스토랑 안에는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을 빼면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누가 봐도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린 듯했다.직원들은 한 줄로 서서 환영했다.“어서 오세요.”강성연은 준비된 하얀 식탁 앞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요염한 검은 장미꽃이 놓여 있었다.강성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돌아서서 반지훈을 바라봤다.“이게 당신이 준비한 서프라이즈예요?”반지훈은 그녀를 위해 의자를 끌어당긴 뒤 그녀를 자리에 앉혔고 허리를 숙여 거리를 좁혔다.“네가 꿈을 이룬 걸 축하하기 위해서지.”반지훈은 강성연의 맞은편에 앉았고 직원에게 와인 한 병을 따게 했다. 강성연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당신을 따라잡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해요.”반지훈은 술병을 건네받더니 천천히 와인을 디캔터에 따랐다.“톱10에 든 것도 대단한데 뭘.”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당신 체면 구기게 만들면 안 되죠. 난 적어도 톱3는 될 거예요.”반지훈은 와인잔을 들고 살살 흔들더니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며 웃었다.“야망이 참 커.”“난 당신이랑 같이 서고 싶거든요.”강성연은 와인잔을 들었고 유리를 통해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의 아내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반지훈은 소리 없이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그러면 네가 날 따라잡을 날을 기대할게.”강성연과 반지훈은 식사를 마친 뒤 레스토랑을 떠났다. 두 사람은 호텔에서 나왔고 자신의 곁을 지나가는 여자를 본 강성연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반지훈이 강성연을 끌어안으며 말했다.“왜 그래?”강성연은 조금 익숙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강성연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여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강성연이 아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강성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요. 구천광 씨가 감독을 맡은 영화 있잖아요. 감독 데뷔작이
“뭐라고?”김아린은 강성연을 바라봤고 강성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만약 당시 그 아이를 사고 때문에 잃지 않았더라면 그녀에게는 지금 아이가 넷이 있었을 것이다.아마 운명일지도 몰랐다.강성연은 지금까지 네 번째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같은 시각, TG 그룹 면접실.한 여자가 세 명의 면접관의 맞은편에 앉아 TG 그룹의 관련 산업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했고 그녀의 자신감에 세 명의 면접관들은 모두 만족했다.그녀의 자료를 살펴보니 이름은 심유연, 나이는 스물아홉에 s국 명문대 건축학과 대학원을 졸업해 학력도 좋았다.한 면접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심유연 씨, 이만 돌아가서 연락을 기다리세요.”심유연은 미소 띤 얼굴로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수고하셨어요.”그녀는 이내 가방을 들고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면접실을 떠났다.때마침 그곳을 지나던 희승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힐끗 봤고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떠났다.희승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비록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말로 하기 어려운 음산함과 기괴함이 느껴졌다.세 명의 면접관은 면접실에서 나와 희승을 봤다.“희승 씨.”희승은 그들을 바라봤다.“좀 전에 그 여자분 면접 보러 온 건가요?”“네. 기획팀 면접 보러 온 거예요. 이건 이력서고요.”한 면접관이 희승에게 이력서를 건넸다. 이력서를 확인하는 희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희승은 반지훈의 사무실 앞에 서서 노크한 뒤 안으로 들어가 그의 책상 앞에 섰다.“대표님, 오늘 면접 보러 온 사람들 이력서입니다.”반지훈은 서류를 닫은 뒤 희승이 들고 있던 자료를 건네받았다. 희승은 입술을 깨물다가 갑자기 말했다.“오늘 면접 보러 온 여잔데 학력도 좋고 건축학과를 전공으로 한 해외파예요. 면접관이 그러던데 우리 회사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신경을 꽤 많이 쓴 것 같아요. 하지만...”반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하지만 뭐?”
강예림은 덜덜 떨면서 고개를 들더니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사장님, 전... 전 일부러 도망치려던 게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전... 전 그 사람 시중들고 싶지 않아요. 그 사람은 절 때려죽일 거예요.”성 사장은 강예림의 머리카락을 휘어잡았다.“몸 파는 주제에 고객을 고르려고 해?”성 사장은 그녀의 뺨을 때렸고 강예림의 뺨은 부어올랐다.성 사장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두 가지 선택지를 줄게. 2억을 내든지 아니면 고객님 찾아가서 사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 시켜서 지금 당장 죽여줄게.”강예림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저... 전 위약금을 드릴게요. 위약금을 선택할게요!”그녀는 다시는 그 정신병자 같은 손님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사흘 줄게.”성 사장은 강예림의 머리카락을 잡아 고개를 들게 해 강예림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했다.“사흘 내로 돈을 주지 않는다면 널 갈기갈기 찢어 물고기 밥으로 강에 던질 거야.”성 사장은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고 비참한 꼴의 강예림만 그곳에 남았다. 강예림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온몸이 아픈 것도 신경 쓸 새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적어도 그 정신병자에게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2억...2억을 얻으려면 그녀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soul 주얼리.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던 강성연은 누군가 노크하자 고개를 들었다.“들어오세요.”지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아가씨, 프런트 데스크에서 누군가 아가씨를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강예림이라고 했어요.”강성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3년 전 강예림이 풀려난 뒤 강역이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들었다. 지난 3년간 강예림은 더 이상 아무 일도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지냈다.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강성연을 찾아온 걸 보면 뭔가 부탁할 일이 있는 듯했다.강성연은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지윤과 함께 사무실에서 나갔다. 강예림은 1층 로비 벤
“강성연, 너... 너 설마 내가 널 속이는 거라고 의심하는 거야? 난 널 속이지 않았어!”강예림은 당황했다. 그녀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고 얘기할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고 얘기하면 강성연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강예림,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난 다른 사람이 날 속이는 걸 아주 싫어해. 한 번 거짓말을 한 사람은 그 거짓말을 위해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하게 돼. 네가 계약할 때 그런 일이라는 걸 알고 계약을 했다면 오늘 네가 이렇게 된 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 만약 그 사람들에게 속은 거라면 법적으로 보상받게 해줄게.”강성연은 느긋하게 말했다.강예림은 그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강성연, 나한테는 2억도 빌려줄 생각이 없는 거야? 난 네 사촌 동생이야. 지금 네 신분과 지위에 2억은 아무것도 아니잖아.”“2억도 돈이야.”강성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누구는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알아? 네가 내 동생인 건 맞아. 하지만 난 널 도울 의무는 없어. 내가 널 도우려면 이유정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야?”강예림은 멍한 얼굴로 그 자리에 앉아 눈물을 흘렸다.“나한테는 사흘밖에 없어. 강성연, 넌 내가 아니니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잖아! 법적으로 해결하면 뭐? 그래도 그 사람들은 나한테 복수할 거야. 내가 무슨 권리로 그들과 맞서 싸우겠냐고. 난 그냥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강예림.”강성연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강예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지금 네가 괴롭게 사는 걸 누굴 탓해? 난 너한테 기회를 많이 줬어. 네가 계속 틀린 선택을 이어 나갈 때부터 네 오늘 날이 결정된 거야.”“사람이 달라지려는 의지가 없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강성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옆으로 걸어갔다.“넌 원래 평범한 일을 찾아서 새로 시작할 수 있었어. 네 동생 강현처럼 말이야. 그런데 넌 그럴 생각이 없었잖아. 네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짓밟고 자신을 경시했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심유연은 차창을 올린 뒤 떠났다. 강예림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명함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짓씹었다.*저녁, 블루 오션.강성연은 샤워를 마친 뒤 타올을 두르고 나왔다. 그녀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감싼 뒤 화장대 앞에 앉아 로션을 발랐다.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온 반지훈은 팔에 걸치고 있던 겉옷을 침대 위로 던지며 강성연을 뒤에서 끌어안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매혹적인 모습을 보네.”강성연은 거울을 통해 반지훈을 바라봤다.“그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반지훈은 소리 없이 웃었다.“네 생각.”강성연은 얼굴을 마사지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손가락에 남은 로션을 반지훈의 얼굴에 바를 생각이었는데 반지훈이 고개를 돌리며 피하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나지막하게 웃었다.“또 장난치려고 하네.”강성연은 실패하자 손목을 빼냈다.“교활하네요.”반지훈은 강성연을 안고 그녀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입술이 닿은 듯했다.“교활한 사람이 누군데, 응?”강성연은 간지러워서 피했다.“반지훈 씨, 계속 이러면 나...”반지훈은 억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강성연은 그를 침대 위에 눕혀 간지럼을 태웠지만 반지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피하지도, 간지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팔을 뻗어 강성연의 뒤통수를 붙잡고 예고 없이 입을 맞췄다.바로 그때, 강성연의 휴대폰이 울렸다.강성연이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자 반지훈은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몸을 뒤집어 그녀를 가두더니 이를 가르고 들어가 깊게 키스했다.점차 거칠어지는 반지훈의 숨은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 같았다. 강성연은 마치 중독된 사람처럼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다른 한편, 강성연의 번호를 알게 된 강예림은 강성연이 전화를 받지 않자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강예림은 이를 바득다득 갈았다.“강성연, 참 매정하네. 그러면 이번에는 날 탓하지 마.”명함을 꺼내 그 위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다음
안내 데스크 직원이 머리를 끄덕였다."그래요?"직원은 또 다른 직원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의심을 거두고 걸어와서 말했다."신입사원이라고 했죠? 이곳의 차는 행정팀 전용이에요. 강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건 캐모마일이라는 차인데 너무 뜨거운 물을 쓰면 안 돼요."강예림은 머리를 끄덕이며 자신이 가루을 넣은 찻주전자를 바라봤다.직원은 주전자에 물을 넣더니 끓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일분일초 흘러가고 강예림은 설사 그녀들이 이상함을 눈치챌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물이 끓은 다음 직원은 대표님 전용이라고 적혀 있는 찻잎을 텀블러에 넣고 따듯한 물을 부었다.강예림은 힘겹게 숨을 쉬며 식은땀을 닦았다. 그녀는 여자의 말대로 사람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자신을 위로하며 애써 버티고 있었다.이때 직원이 머리를 돌리며 말했다."이건 제가 할 테니 다른 일을 하러 가세요.""아, 네... 고마워요."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가던 강예림은 하필이면 강성연의 곁에 있던 지윤과 마주쳤다.지윤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황급하게 도망가는 듯한 뒷모습을 바라봤다. 직원은 강성연의 텀블러를 들고 와서 그녀에게 말했다."텀블러를 가지러 오셨죠? 제가 찻잎을 넣어 놨어요."지윤은 텀블러를 받아 들며 머리를 끄덕였다."고마워요."사무실.강성연이 서류를 훑어보고 있을 때, 지윤이 노크하고 들어왔다. 그녀는 텀블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강성연은 머리를 들며 미소를 지었다."수고했어요."강성연이 텀블러를 들어 올리려 할 때, 지윤이 돌연 말했다."저 방금 강예림 씨를 봤어요."강성연은 텀블러 뚜껑을 열다 말고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강예림을요?"지윤이 머리를 끄덕였다."탕비실 근처에서 뭘 하고 있던 모양인데 저를 보자마자 도망가더라고요."강성연은 텀블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CCTV를 확인하죠."soul 주얼리에서 도망 나온 강예림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휴대전화를 꺼내 심유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가 연결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