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가세요.”윤티파니는 그제야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좋아하는 유혜선처럼 당신 앞에서 비굴하게 굴 생각은 없어요.”한지욱은 그녀의 턱을 잡았다.“왜 자꾸 혜선이를 말하는 거예요? 혜선이를 질투해요?”한지욱은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혜선이가 당신보다 깨끗하다는 걸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 애를 임신했다는 걸 질투하는 거예요?”윤티파니는 이런 모욕을 들어본 적이 있었고 이보다 더 심한 말도 들었다.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그런 말들이 항상 그녀를 맴돌았고, 괜찮을 줄 알았던 자신이 드디어 무뎌졌을 때 한지욱이 한 번 또 한 번 무뎌진 마음을 다시 짓밟았다.그녀의 눈빛은 공허하고 아무런 빛도 없었다. 마치 영혼을 잃은 껍데기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욱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의 볼을 감쌌다.“미안해요. 난...... 난 그런 뜻이 아니에요.”그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우리 화해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그의 품에 안긴 윤티파니는 담담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은 유혜선을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랑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한지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티파니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저처럼 더러운 여자가 어떻게 순결한 유혜선 씨랑 감히 비할 수 있겠어요? 왜요, 하룻밤 만에 벌써 마음이 변한 거예요?”지금 한지욱을 바라보는 윤티파니 눈빛에는 조소와 싸늘함으로 가득했다.왜서인지 한지욱은 그녀가 이런 눈빛으로 그를 보는 게 싫었다. 그는 온몸에 가시가 돋친 그녀가 싫었다. 그녀는 유독 어젯밤만 영혼과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두려움과 눈물을 보였다.한지욱은 그녀의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윤티파니는 입술을 꾹 닫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한지욱의 입술을 깨물자 한지욱의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피 맛이 느껴졌다.윤티파니가 그를 밀치고 도망치려고 하자 한지욱은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더 세게 안았다.“한지욱 씨, 이거 놔요.”한지욱은 어두운 눈빛으로
“사흘 뒤에도 돈을 내놓지 않으면...”그는 칼등으로 그녀의 턱을 들었다.“네 사진을 퍼뜨릴 거야. 한지욱 도련님한테 여자친구가 돈을 위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줘야지.”유혜선은 부들부들 떨었고 복부에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얼굴이 창백했다.장성호는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유혜선은 다리 밑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고 치마를 들었다. 피를 본 그녀는 흐느꼈고 심호흡을 한 후 소파로 기어가 한지욱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한지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윤티파니 매니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을 때, 한지욱이 외투를 들고 걸어왔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셔츠도 조금 구겨져있었다.매니저는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한지욱은 그녀를 스쳐지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매니저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아가씨, 아까 한......”사무실 광경을 본 그녀는 멍해졌다.윤티파니는 소파에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있었고 나시만 입고 있었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와 몸에 남은 흔적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매니저는 재빨리 옷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줬다.“한지욱 도련님이 한 짓이에요?”윤티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같은 여자로서 매니저는 마음이 아팠다.“한지욱 도련님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너무 해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다른 사람한테 알려지는 게 싫어, 내가 부탁할게.”그녀는 충분히 비참했고, 더 이상 다른 소문이 떠도는 걸 원하지 않았다.매니저는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고 그녀를 안아줬다.“네, 알겠어요.”*한지욱은 티몬 그룹에서 나오는 길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다급히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유혜선이 수술실로 이송돼고 있을 때 한지욱이 뛰어왔다.“혜선아!”의사가 그를 수술실 밖에서 저지했고 그는 의사를 잡고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환자분 남자친구
한지욱은 손을 빼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혜선은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불쌍하게 말했다.“말하면 믿어줄 거야?”한지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까스로 일어나더니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윤티파니 아가씨야,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 걸 원하지 않아서 사람을 보냈어. 그래서 내가 유산하게 된 거야.”한지욱이 여전히 침묵하자 유혜선은 낮게 흐느꼈다.“다 내 탓이야. 내가 네 곁에 돌아오지 말아야 했어, 네 아내가 되려는 허튼 생각을 접어야 했어. 내 가련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지욱아, 나 너무 슬퍼, 죽고 싶어.”한지욱은 눈을 껌뻑이더니 그녀를 부축하면서 눕혔다.“허튼소리 하지 말고 쉬어.”“지욱아.”유혜선은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유산했어도 나 버리지 않을 거지? 지금 난 너밖에 없어.”한지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때처럼 그를 사랑하고, 그의 보살핌이 필요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지금 그는 감히 단언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한지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혜선아, 나 속인 적 있어?”유혜선은 멍해졌고 오늘 유달리 냉담한 한지욱을 눈치채고 점점 불안해졌다. 설마 뭔가를 알게 된 건가?“지욱아...... 내가 널 속인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의 일, 날 의심하는 거야?”“아이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한지욱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넌 더 이상 임신하지 못한다고 해. 왜 그런지 알아?”그 한 마디에 유혜선은 굳어졌다.속으로 몹시 당황한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점차 사라졌다.“어떻게...... 지욱아, 난 몰라. 난 정말 몰라.”“왜 네가 유산했었다는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한지욱의 말을 들은 유혜선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검사로 유산이나 낙태 유무를 알 수 있다는 걸 내가 왜 잊어버린 거지?그녀가 예전에 유산을 한 횟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간호사가 귀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혜선은
하지만 고작 이런 일로 그녀가 그를 포기할까?절대 그럴 리 없었다.*점심시간, 이율과 안예지는 근처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새로 출시된 케이크를 맛보러 갔다.“여기 디저트 가게 괜찮죠? 요즘 인터넷에서 엄청 핫한 가게에요. 저도 인터넷에서 보고 영업당했거든요.”안예지가 의문스러운 눈길로 물었다.“영업당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이율이 멈칫거렸다.“그러니까 추천받았다는 말이에요. 누군가가 인터넷에 이 가게가 맛집이라는 리뷰를 남기고, 그걸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 훌륭한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뭐 그런 뜻이죠.”설명을 마친 이율이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쳐다봤다.“평소에 인터넷을 아예 안 하는 거예요? 예지 씨도 아직 젊은데, 가끔은 어르신이랑 대화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 알아요?”안예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하기는 해요.”“그럴 줄 알았어요.”이율이 스푼으로 생크림을 한 움큼 떴다.“그래도 이해는 돼요. 예지 씨 같은 부잣집 아가씨는 가정 교육도 엄청 엄했겠죠? 인터넷을 할 시간도 없었을 것 아니에요.”안예지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참.”이율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안예지 쪽으로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구의범 씨 말이에요. 그 대스타 구천광의 사촌 동생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안예지가 잠깐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들은 적 있어요.”“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죠?”이율이 놀라더니 곧바로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휴, 다 제 탓이에요. 제가 하마터면 예지 씨한테 피해를 줄 뻔했어요.”그녀가 정색하며 말했다.“내가 예지 씨한테만 특별히 말하는 건데 그 구의범 씨 있잖아요. 예전에 바람둥이였대요. 글쎄 여자를 임신시키고 유산까지 시켰다지 뭐예요. 참, 그 여자가 바로 한 씨 그룹의 아가씨인데 이번에 결혼하기 싫어 도망
안예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의범을 쫓아갔다.먼저 주차장에 도착한 구의범이 차 유리에 비치는 안예지를 발견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안예지를 돌아보며 물었다."안예지 씨, 무슨 일이세요?"안예지는 숨을 고른 후 천천히 허리를 폈다."죄송해요. 일부러 구의범 씨의 사생활을 뒤에서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아 주세요."구의범은 안예지를 빤히 쳐다보았다."저 그렇게 소심한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루머는 루머니까요. 사실일 수도 있잖아요."그의 말에 안예지는 깜짝 놀랐다.그녀의 깜짝 놀란 표정을 보고 구의범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안예지 씨는 사람을 쉽게 믿는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진짜 나쁜 사람이라면, 안예지 씨는 어떨 것 같아요?"안예지는 바닥만 쳐다보고 두 손을 꼭 쥐었다."아니요! 저는 저의 직감을 믿어요! 구의범 씨는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그는 그녀를 가만히 쳐다보다 픽 소리를 내어 웃었다."그래요? 안예지 씨는 순진한 건지, 아니면 바보 같은 건지 모르겠네요."안예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그는 한 손으로 차 문을 지탱하고 안예지를 바라보았다."얼굴인가요?""네?"안예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구의범은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포즈를 잡았다."제 외모가 마음에 들어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건 아니죠?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똑같게 생각했을까요?"안예지는 구의범의 말투에서 비아냥 거리는 말투를 들었다."제가 사람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것 같나요?""아닌가요?"구의범은 어깨를 으쓱거렸다."이 세계는 외모지상주의 세계 아닌가요? 안예지 씨는 회장님이 잘 가꾼 온실에서 자란 공주님이니까 아직 밖에 남자들을 만나보지 못했을 거예요. 많이 만나보면 안예지 씨도 생각이 바뀔 거니까.""구의범 씨."안예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구의범 씨, 제가 구의범 씨를 좋아한다고 생각해서 저한테 함부로 대하시는 것 같은데, 저 구의범 씨한테 호감이 있었던 건 맞아요. 그래
두 사람의 사이가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계기는 그녀가 아이를 유산한 다음이다. 한지욱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유혜선은 불안한 듯 손톱을 뜯었다. 윤티파니도 받아 줄 수 있었으면서 왜 그녀는 안된다고 하는 걸까?하물며 오늘 있은 일은 윤티파니를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닐까? 윤티파니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을 많이 꾸몄으니 윤티파니를 의심하는 것도 맞다.그 시각, 한지욱은 유혜선의 일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그는 보안요원에게 복도 CCTV를 확인하도록 했다. 세 남자가 그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 선명하게 찍혔다. 그의 방에서 나오는 세 남자의 모습은 CCTV에 선명하게 찍혔다. 한지욱은 경호원에게 세 남자의 신분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경비실에서 나온 한지욱은 조금 전에 도착한 문자메시지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읽지도 않은 채 삭제했다.그때, 다른 한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윤티파니는 목에 자국이 사라지지 않아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잠시 호텔에 머물 생각이었고 갈아입을 옷도 비서가 가져왔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그녀는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에 몸을 바짝 웅크렸다."누구세요?""안녕하세요 고객님. 오늘 저희 호텔에서 샴페인을 공짜로 드리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스위트룸에 묵는 고객님 들에게만 드리는 이벤트입니다."여자 종업원의 목소리였다."아니요, 필요 없어요."그러나 종업원은 떠나지 않고 계속하여 문을 두드렸다."공짜 샴페인입니다. 손님, 얼른 받으세요."윤티파니가 문을 열고 종업원이 건네는 샴페인을 받는 순간, 다른 한 손이 나타나 그녀의 손목을 꽉 쥐었다.한지욱이 모습을 드러내자 윤티파니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는 종업원을 보며 말했다."이제 내려가 보세요."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피했다.윤티파니는 그의 손을 쳐내고 싶었지만 한지욱의 힘이 어찌나 센지 떨쳐내지 못했다.한지욱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나디아가 우리 가문의 계열 호텔인 거 몰랐어요?"윤티파니는 화가 치밀어 아무 말도 하고 싶
윤티파니는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한지욱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자 윤티파니가 몸을 흠칫 떠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몸을 돌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미안해요. 우리 조금씩 물러서면 안 될까요?"윤티파니는 천천히 눈을 뜨고 말했다."나 아니에요."한지욱은 처음부터 윤티파니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 더는 놓아주지 않겠어요."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집어 들고 나갔다. 문이 세게 닫히는 순간까지 윤티파니는 눈을 감고 있었다.호텔에서 나온 한지욱은 경호원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어제 그 세 남자, 신분 확인 끝났습니다. 사채업자들입니다.""사채업자?""네."통화를 마친 한지욱은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유혜선이 자신을 떠난 그 몇 년 동안의 행적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점심시간이 되자 한지욱은 병원으로 향했다. 그를 발견한 유혜선은 창백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지욱아, 왔어?"한지욱은 의자를 빼들고 침대 곁에 앉았다."몸은 좀 어때?""간호사가 그러는데, 나 곧 퇴원해도 된대."그녀는 조심스럽게 한지욱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지욱아, 아직도 내가 많이 미워?""네가 왜 미워?""내가 너한테 사실을 숨겨서..."유혜선은 고개를 숙였다."나는 네가 나를 떠날 가봐 너무 무서워서 그랬어..."한지욱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유혜선, 나한테 더 숨기는 일 없어?"그의 말에 유혜선은 물컵을 꽉 쥐었다."무슨... 일?"한지욱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유혜선을 빤히 쳐다보았다. 유혜선은 등골이 오싹해 났다."지욱아, 너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그 사람들 혹시 티파니 씨가 보낸 사람이라고 해서...""유혜선."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한지욱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차가웠다."윤티파니가 한 짓이라면 왜 사채업자들을 찾았을까?
"유혜선, 네가 만약 방금 전에 나한테 사실대로 말했다면 나는 다시 너를 믿었겠지. 그런데 너는 나를 한번 또 한 번 속였어. 이제 내가 너를 어떻게 믿니?"한지욱은 고개를 들어 병실 천장을 바라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심지어 윤티파니가 사람을 시켜 너를 때렸다고... 혜선아, 너 정말 많이 변했어."유혜선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주먹을 꽉 쥐었다."내가 변했다고..."그녀는 고개를 들어 한지욱을 바라보았다."내가 변했을까? 아니면 네가 변했을까?"한지욱은 대답하지 않았다.유혜선은 울부짖으며 말했다."내가 임신한 후부터 네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알아? 나는 매일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었어. 너를 잃을까 봐.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사실대로 말할 수 있겠니?""한지욱, 나 여자야. 여자의 직감은 틀린 적 없어. 네가 그 여자한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그 순간부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그녀의 말에 한지욱은 몸을 흠칫 떨었다.언제부터일까... 한지욱도 모른다. 그는 줄곧 유혜선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유혜선은 그의 첫사랑이자 지금의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사랑을 했고, 헤어졌지만 그는 여전히 그 감정을 잊지 못했다.윤티파니가 그의 아내가 된다는 말에 그는 견딜 수 없었다. 한지욱은 그녀를 싫어하기 때문이다.그녀와 유혜선은 비교될 수 없는 상대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유혜선이 제일 깨끗하고 완벽했다.그러나 언제부터일까, 윤티파니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유혜선은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사람이었기에 항상 미안하고 소중했다. 그러나 윤티파니는 그에게 거부감만 주었다. 유혜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흐느꼈다."너는 그 여자를 미워하지 않아. 너는 내가 너를 속이고 유산했다는 사실이 싫은 거야. 결국 나에 대한 너의 사랑이 변했어. 내가 유산을 했다는 사실은 너에게 나를 떠날 수 있는 핑계밖에 되지 않아.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가 이제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