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범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이율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열정적으로 요청한 탓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거다.오늘 이율의 행동을 보면 의도적으로 그와 안예지를 엮어주려는 것 같았다. 안예지의 뜻인지, 아니면 이율 스스로의 행동인지 알 수 없었다.한성연 사건이 있은 뒤로 구의범은 여자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었다. 두 번째 “한성연”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병원.한 부인은 병실 곁에 앉아 한수찬에게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 한수찬은 며칠 전에 수술을 했고 아직 회복 기간이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일어나려면 전동 침대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한지욱이 들어오자 한수찬은 그를 흘깃 보더니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지욱아.”한 부인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아버지는 조금 전에 깨어나셨어. 시간 있을 때 자주 와.”한지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수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만 먹었다.죽을 모두 먹은 후 한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먼저 돌아가서 저녁을 준비할게.”그녀는 자동 침대를 원래 위치로 조정하고 이불을 여며준 다음에야 나갔다.한 부인이 떠난 후 병실에는 두 부자만 남았다. 한수찬은 눈을 감고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한수찬이 말을 하지 않자 한지욱도 침묵을 지켰다.한지욱은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두 시간 있었고, 아버지는 일찍 잠들었다. 그는 마음이 어수선해져 비상통로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가 담배를 몇 대 피웠을 때 유혜선이 또 문자를 보냈다. 퇴원해도 되니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한지욱은 담배 연기 때문인지 눈을 가늘게 떴고 바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돌아가지 않고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늦은 저녁, 윤티파니는 휴대폰 벨에 깨어났다.그녀는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한지욱 도련님 약혼녀 되십니까? 한지욱 도련님께서 취하셔서 데리러 오시라고 합니다.”윤티파니는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한지욱은 비수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그럼 집에 데려다줘요.”가게 매니저가 걸어왔다.“아가씨, 한지욱 도련님 좀 배웅해 주세요. 정말 취하셨어요. 저희 가게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희는 책임지기 힘들어요.”윤티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놓은 그의 외투를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차에 탄 후 윤티파니는 외투를 그에게 덮어주려고 했다. 한지욱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불렀다.“티파니.”윤티파니는 멈칫했고, 일 년 전 한지욱이 부모님 앞에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던 게 떠올랐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여전히 싸늘했다.“아직도 연기하는 거예요? 이젠 끝났어요.”한지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티파니는 운전해서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는 유혜선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한지욱을 그녀 집에 보내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후 그녀가 13층을 누르자 한지욱이 갑자기 16층을 눌렀다.윤티파니는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한지욱은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손을 꽉 잡더니 품에 끌어안았다.“한지욱!”윤티파니가 품에서 발버둥 치자 한지욱이 그녀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예상치도 못한 알코올 냄새가 가득 담긴 키스에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뭔가를 눈치챈 그녀는 그를 저지했다.“미쳤어요? 한지욱 씨, 난 지금 당신이랑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이럴 자격 없다고요!”한지욱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더니 억지로 그녀가 고개를 들게 했다.“관계있으면 되는 거예요?”윤티파니는 멍하니 있다가 그를 밀쳤다.“더 이상 관계있을 리가 없잖아요.”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한지욱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한지욱이 그녀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한지욱 씨, 이러지 마요......”지금 한지욱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알코올로 인해 이성을 잃은 그는 그녀에 대한 깊은 집착을 느꼈
한지욱이 옷을 입고 방에서 나왔다. 주방에서 누군가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지 향긋한 냄새가 풍겨와 코끝을 간지럽혔다.그는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가 기대하고 있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유혜선이 방금 만든 계란 프라이를 접시에 담으며 그를 돌아보다 싱긋 미소 지었다.“일어났어?”한지욱이 미간을 찌푸렸다.“유혜선... 너... 네가 왜 여기에 있어.”유혜선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준비된 아침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설마 어젯밤에 있었던 일 잊은 건 아니지?”어젯밤 일...물론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기억하는 어젯밤 그 여인은 윤티파니였다. 그런데 왜 깨어나 보니 윤혜선으로 바뀐 거지.“지욱아.”윤혜선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돌아보았다.“난 널 기다리고 있었어. 꼬박 하루를 기다렸다고. 그런데 넌 끝까지 날 찾아오지 않더라.”한지욱이 입을 꾹 다물었다.윤혜선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나도 알고 있어. 내가 지금 임신 중이라 너도 함부로 날 건드리지 못했겠지. 너는 그간 쌓인 욕구를 풀 곳이 필요했겠고. 사실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어. 하지만...”그녀가 울컥하는 마음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내렸다.“하지만 왜 하필 그 여자야?”아침에 이곳에서 윤티파니와 마주친 그 순간, 그녀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윤티파니의 목에 울긋불긋하게 새겨진 그가 남긴 흔적들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동시에 그녀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한지욱은 그녀의 것이었다!왜 그런 여자가 그에게 안길 수 잇단 말인가?분명 그녀가 현재 홀몸이 아닌 탓일 것이다.한지욱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혜선이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안겼다.“네가 이 아이를 원치 않는다면 지울 수도 있어. 임신했다는 이유로 네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이런 이유로 네가 후회하고 그 여
그는 침대 곁에서 아버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렇다면 아이는요?”한수찬은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무표정으로 말했다.“아이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생모는 절대 안 돼.”한지욱은 아버지 말을 예상한 듯했다. 예전이라면 그는 반드시 단호한 태도로 아버지와 따질 거다. 하지만 지금은......윤티파니가 그에게 영향을 준 건지, 아니면 “사고”로 생긴 아이가 영향을 준 건지 그는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병원에서 나온 한지욱은 티몬 그룹에 갔다. 티몬 그룹 직원들은 그와 윤티파니의 일을 알고 있었고 결혼식 날 사건이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에 한지욱이 나타나자 다들 수군거렸다.“한지욱 도련님은 신부를 버리고 다른 여자랑 도망쳤잖아?” “쯧, 결혼식을 망쳐놓고 왜 아가씨를 찾아온 거야? 정말 쓰레기라니까!”“쓰레기? 사실 난 한지욱 도련님이 가장 운이 없다고 생각해. 한 씨 가문 도련님 내놓고 서울에 아가씨랑 결혼하려는 사람이 있어? 한지욱 도련님은 전부터 여자친구가 있었고 가문의 핍박 때문에 헤어진 거라 들었어.” “싫으면 거절하면 되잖아. 벙어리인 거야? 승낙한 일을 번복하다니, 여자 가슴에 상처를 주는 게 남자다운 일이라고 생각해?”“......”한지욱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곧장 윤티파니 사무실로 향했다.윤티파니는 책장 앞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연두색 니트에 은색 목걸이를 꼈고, 가죽 H라인 스커트는 그녀의 골반을 더욱 돋보여 주었다.그는 조용히 눈앞의 여자를 훑어보았다. 윤티파티는 몸매가 좋았고 심지어 유혜선보다 더 뛰어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쌍방 부모의 요구로 동거할 때 그들은 각방을 썼었다.그는 자신과 윤티파니 사이에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자신했고, 연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정말 결혼까지 갔었으나 윤티파니는 그저 한 씨 가문의 며느리고 명분 상의 아내일 뿐이라 생각했다.남자들은 혼인과 이익을 같은 거라 생각하고 이익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한지욱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뭔가
“그럼 가세요.”윤티파니는 그제야 그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좋아하는 유혜선처럼 당신 앞에서 비굴하게 굴 생각은 없어요.”한지욱은 그녀의 턱을 잡았다.“왜 자꾸 혜선이를 말하는 거예요? 혜선이를 질투해요?”한지욱은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혜선이가 당신보다 깨끗하다는 걸 질투하는 거예요, 아니면 내 애를 임신했다는 걸 질투하는 거예요?”윤티파니는 이런 모욕을 들어본 적이 있었고 이보다 더 심한 말도 들었다.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그런 말들이 항상 그녀를 맴돌았고, 괜찮을 줄 알았던 자신이 드디어 무뎌졌을 때 한지욱이 한 번 또 한 번 무뎌진 마음을 다시 짓밟았다.그녀의 눈빛은 공허하고 아무런 빛도 없었다. 마치 영혼을 잃은 껍데기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지욱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의 볼을 감쌌다.“미안해요. 난...... 난 그런 뜻이 아니에요.”그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우리 화해해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요.”그의 품에 안긴 윤티파니는 담담한 눈빛으로 다른 곳을 보면서 비아냥거렸다.“당신은 유혜선을 사랑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저랑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한지욱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티파니는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저처럼 더러운 여자가 어떻게 순결한 유혜선 씨랑 감히 비할 수 있겠어요? 왜요, 하룻밤 만에 벌써 마음이 변한 거예요?”지금 한지욱을 바라보는 윤티파니 눈빛에는 조소와 싸늘함으로 가득했다.왜서인지 한지욱은 그녀가 이런 눈빛으로 그를 보는 게 싫었다. 그는 온몸에 가시가 돋친 그녀가 싫었다. 그녀는 유독 어젯밤만 영혼과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두려움과 눈물을 보였다.한지욱은 그녀의 볼을 잡고 입을 맞췄다.윤티파니는 입술을 꾹 닫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가 한지욱의 입술을 깨물자 한지욱의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피 맛이 느껴졌다.윤티파니가 그를 밀치고 도망치려고 하자 한지욱은 그녀를 벗어나지 못하게 더 세게 안았다.“한지욱 씨, 이거 놔요.”한지욱은 어두운 눈빛으로
“사흘 뒤에도 돈을 내놓지 않으면...”그는 칼등으로 그녀의 턱을 들었다.“네 사진을 퍼뜨릴 거야. 한지욱 도련님한테 여자친구가 돈을 위해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보여줘야지.”유혜선은 부들부들 떨었고 복부에서 전해지는 고통 때문에 얼굴이 창백했다.장성호는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유혜선은 다리 밑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고 치마를 들었다. 피를 본 그녀는 흐느꼈고 심호흡을 한 후 소파로 기어가 한지욱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한지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윤티파니 매니저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을 때, 한지욱이 외투를 들고 걸어왔다.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았고 셔츠도 조금 구겨져있었다.매니저는 당황했지만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한지욱은 그녀를 스쳐지나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매니저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아가씨, 아까 한......”사무실 광경을 본 그녀는 멍해졌다.윤티파니는 소파에 몸을 옹송그리고 앉아있었고 나시만 입고 있었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와 몸에 남은 흔적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매니저는 재빨리 옷을 가져와 그녀에게 덮어줬다.“한지욱 도련님이 한 짓이에요?”윤티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바라보았다.같은 여자로서 매니저는 마음이 아팠다.“한지욱 도련님이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너무 해요!”윤티파니는 고개를 들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다른 사람한테 알려지는 게 싫어, 내가 부탁할게.”그녀는 충분히 비참했고, 더 이상 다른 소문이 떠도는 걸 원하지 않았다.매니저는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보고 그녀를 안아줬다.“네, 알겠어요.”*한지욱은 티몬 그룹에서 나오는 길에 병원의 전화를 받았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다급히 차를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유혜선이 수술실로 이송돼고 있을 때 한지욱이 뛰어왔다.“혜선아!”의사가 그를 수술실 밖에서 저지했고 그는 의사를 잡고 물었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환자분 남자친구
한지욱은 손을 빼내면서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일 있었어?”유혜선은 멍하니 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불쌍하게 말했다.“말하면 믿어줄 거야?”한지욱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가까스로 일어나더니 가녀린 목소리로 말했다.“윤티파니 아가씨야, 우리 아이가 태어나는 걸 원하지 않아서 사람을 보냈어. 그래서 내가 유산하게 된 거야.”한지욱이 여전히 침묵하자 유혜선은 낮게 흐느꼈다.“다 내 탓이야. 내가 네 곁에 돌아오지 말아야 했어, 네 아내가 되려는 허튼 생각을 접어야 했어. 내 가련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지욱아, 나 너무 슬퍼, 죽고 싶어.”한지욱은 눈을 껌뻑이더니 그녀를 부축하면서 눕혔다.“허튼소리 하지 말고 쉬어.”“지욱아.”유혜선은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유산했어도 나 버리지 않을 거지? 지금 난 너밖에 없어.”한지욱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그때처럼 그를 사랑하고, 그의 보살핌이 필요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지금 그는 감히 단언할 수 없었다. 잠시 후, 한지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혜선아, 나 속인 적 있어?”유혜선은 멍해졌고 오늘 유달리 냉담한 한지욱을 눈치채고 점점 불안해졌다. 설마 뭔가를 알게 된 건가?“지욱아...... 내가 널 속인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이의 일, 날 의심하는 거야?”“아이 일을 말하는 게 아니야.”한지욱은 눈빛이 어두워졌다.“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넌 더 이상 임신하지 못한다고 해. 왜 그런지 알아?”그 한 마디에 유혜선은 굳어졌다.속으로 몹시 당황한 그녀는 얼굴에 핏기가 점차 사라졌다.“어떻게...... 지욱아, 난 몰라. 난 정말 몰라.”“왜 네가 유산했었다는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한지욱의 말을 들은 유혜선은 제자리에 굳어졌다. 검사로 유산이나 낙태 유무를 알 수 있다는 걸 내가 왜 잊어버린 거지?그녀가 예전에 유산을 한 횟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간호사가 귀띔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혜선은
하지만 고작 이런 일로 그녀가 그를 포기할까?절대 그럴 리 없었다.*점심시간, 이율과 안예지는 근처에 있는 디저트 가게에 새로 출시된 케이크를 맛보러 갔다.“여기 디저트 가게 괜찮죠? 요즘 인터넷에서 엄청 핫한 가게에요. 저도 인터넷에서 보고 영업당했거든요.”안예지가 의문스러운 눈길로 물었다.“영업당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이율이 멈칫거렸다.“그러니까 추천받았다는 말이에요. 누군가가 인터넷에 이 가게가 맛집이라는 리뷰를 남기고, 그걸로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이렇게 훌륭한 가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뭐 그런 뜻이죠.”설명을 마친 이율이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쳐다봤다.“평소에 인터넷을 아예 안 하는 거예요? 예지 씨도 아직 젊은데, 가끔은 어르신이랑 대화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거 알아요?”안예지는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하기는 해요.”“그럴 줄 알았어요.”이율이 스푼으로 생크림을 한 움큼 떴다.“그래도 이해는 돼요. 예지 씨 같은 부잣집 아가씨는 가정 교육도 엄청 엄했겠죠? 인터넷을 할 시간도 없었을 것 아니에요.”안예지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과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참.”이율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안예지 쪽으로 몸을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구의범 씨 말이에요. 그 대스타 구천광의 사촌 동생이라는 거 알고 있었어요?”안예지가 잠깐 멈칫거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들은 적 있어요.”“설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 아니죠?”이율이 놀라더니 곧바로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휴, 다 제 탓이에요. 제가 하마터면 예지 씨한테 피해를 줄 뻔했어요.”그녀가 정색하며 말했다.“내가 예지 씨한테만 특별히 말하는 건데 그 구의범 씨 있잖아요. 예전에 바람둥이였대요. 글쎄 여자를 임신시키고 유산까지 시켰다지 뭐예요. 참, 그 여자가 바로 한 씨 그룹의 아가씨인데 이번에 결혼하기 싫어 도망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