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선은 표정이 굳었다."지욱아, 나...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유혜선은 손목의 상처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황급히 일어나 설명했다."네가 계속 전화를 안 받으니까 무서워서 그랬어. 의사 말로는 임신 때문에 호르몬이 불안정해서 이럴 수도 있대. 나... 진짜 너무 무서워."한지욱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너 내 아버지가 오늘 뇌출혈 수술한 거 알아?"유혜선의 안색은 창백해졌다."나 어제 하루 종일 아버지 병원에 있었어. 그 전날 너랑 같이 있어 준 거로 모자라? 아버지가 죽든 말든 그냥 너랑 같이 있을까?""미안해... 지욱아, 내가 잘못했어."유혜선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나 몰랐어..."한지욱은 마른세수를 하며 말했다."유혜선, 나 진짜 피곤해."남자가 말한 '피곤'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몸이 피곤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피곤한 것이다.한지욱은 유혜선에게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못 알아듣는 척하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나는 몰랐잖아. 미안해, 지욱아. 너도 그냥 나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네가 얘기를 안 하니까 내가 이상한 생각을 하지."유혜선은 한지욱을 끌어안으며 말했다."난 네가 떠날까 봐 그랬어. 나한테 남은 건 너랑 아이뿐이야. 나 앞으로 절대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게."한지욱은 유혜선을 밀어냈다. 그녀의 손목에서는 또 피가 흐르고 있었다."상처가 아물지 않았으면 가만히 있어.""그럼 나를 용서해 주는 거야?"유혜선은 어깨를 흠칫 떨며 물었다.한지욱은 말없이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더니 간호사를 불러와 상처를 소독했다.유혜선은 침대에 누워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지욱아, 나 용서하는 거 맞지?"한지욱은 간호사가 붕대를 감는 모습을 바라보며 성의 없이 짧게 답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진성에서 며칠 보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두 사람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레스토랑으로 왔다. 강성연은 잡지를 펼치며 한씨, 윤씨 집안의 파혼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는
강성연이 말을 끝내자마자 주변 사람들이 이상한 눈빛을 보내왔다.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반지훈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강미현이 아닌 다른 여자면 괜찮은 거야?"강성연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휘적이며 투덜거렸다."궁금하면 어디 한번 해보던가요."반지훈은 짧게 대답하며 말했다."밥 먹고 나서 해 봐야겠어."반지훈이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블루 오션에 도착한 다음 강성연은 바로 차에서 내려왔다. 반지훈이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차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녀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밥 먹고 나서 뭘 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왜 차에서 내려요?"반지훈은 웃으며 말했다."만약 진짜 간다면 네가 날 가만히 놔두겠어?"강성연은 머리도 돌리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을 때, 반지훈이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질투하는 거야."반지훈의 숨결에 목이 간질거렸던 강성연은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제가 언제 질투했다고 그래요.""지금."반지훈은 그녀의 귀에 뽀뽀하며 말했다.강성연은 그의 손목을 잡고 벽 쪽으로 밀쳤다. 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손쉽게 벗어나서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너 이거 가정폭력이야."강성연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싸울래요?"반지훈이 그녀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방으로 돌아가서 계속하자."...한지욱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윤티파니는 이미 대부분 짐 정리를 끝냈다. 그녀는 한지욱을 힐끗 보더니 계속해서 옷을 정리했다."대부분 필요 없는 물건이라 그냥 남겨뒀어요."윤티파니는 자신이 갖고 온 물건만 챙겼다. 자신의 것이 아닌, 특히 한지욱이 선물한 것은 절대 손대지 않았다.한지욱은 문틀에 한참 기대어 있더니 입을 열었다."미안해요."윤티파니는 트렁크를 닫고 몸을 일으켰다."지욱 씨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좀 비켜줄래요?"윤티파니는 한지욱의 앞으로 가서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비킬 생각이
한지욱은 약간 멈칫했다."지욱 씨가 저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고 있어요. 저한테 잘해줬던 것도 다 집안사람을 안심하게 하기 위한 비즈니스였죠. 누군가가 저와 결혼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이미 감지덕지해요. 제 명성이 얼마나 나쁜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지욱 씨를 귀찮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떠나요. 제가 이래봬도 윤씨 집안사람이라서요.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고귀함은 잃지 않았어요.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건 제가 응당 치러야 할 대가이니 남자한테 기대 행복 따위는 쫓지 않을 거예요"윤티파니는 한지욱을 밀치더니 밖으로 걸어 나갔다. 한지욱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로 주먹을 꽉 쥐었다.차에 올라탄 윤티파니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도 슬픈 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더 심한 것을 겪고 나니 무뎌졌을 뿐이지. 그녀는 눈물마저도 값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며칠 후, 윤씨 집안에서는 정식으로 파혼을 선포했다. 기자의 질문에 윤진은 형식적인 말로 대충 넘기고 현장을 떴다.유혜선은 TV를 보며 입꼬리를 쓱 울렸다. 그녀가 원하던 바가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그녀는 애초부터 윤티파니와 같은 여자는 자신과 경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버림받은 것도 당연하였다.비록 유혜선은 가정형편이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배 속의 아이만 있다면 꼭 한씨 집안에서 받아주리라 생각했다....주말, 안씨 저택.안예지는 거울 앞에 서서 옷을 몇 벌째 바꿔 입었다. 이율은 이미 재촉을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오렌지색 후드에 치마를 입고 모자 하나를 쓴 채 밖으로 나갔다.안지성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에 서서 통화하고 있었다. 딸이 황급히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고 그는 휴대전화를 내리며 물었다."예지야, 너 오늘 휴식 아니야?""맞아요."안예지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으며 말했다."근데 약속 있어요."안예지의 대답을 들은 안지성은 잠깐 멈칫하다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거참 오래간만이구나. 잘 놀다 와."안예지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오
이율은 머리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그녀는 출발 전에 구의범에게 문자를 보냈었다.안예지는 잠깐 기다리다가 말했다."아니면 저희 먼저 둘러볼까요? 구의범 씨는 도착한 다음 합류하면 되잖아요."이율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요."이율은 구의범에게 문자를 보내고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고팠던 이율은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왔고 자리에 앉자마자 투덜거리기 시작했다."의범 씨 진짜 안 나올 생각인 것 같아요. 나오기 싫으면 그냥 거절하지 약속을 어기는 건 너무 했잖아요."그녀는 메뉴판을 펼치며 계속해서 말했다."역시 잘생긴 남자는 믿을 게 못 돼요. 흥!"안예지는 피식 웃었다."괜찮아요. 저희 둘이 놀면 되죠.""그건 그래요. 진짜 좋은 인연이 곧 나타날 수도 있고."이율은 금방 화가 풀린 모양이었다. 안예지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이율은 휴대전화를 만지작댔다."블랙 리스트에 넣어야겠어요.""네?"안예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율은 휴대전화를 내려놓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간단한 약속도 못 지키는 남자는 믿을 게 못 돼요. 어쩌면 지금쯤 다른 여자를 품에 안고 저희를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죠. 제가 너무 얼빠라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속고 말았네요."안예지는 미간을 찌푸렸다."제 생각에는... 고의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일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반 시간 동안 문자 한 번 답장 안 하는 게 어떻게 고의가 아니에요?"이율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됐어요. 이미 블랙 리스트에 넣었으니까 신경 쓰지 말자고요."안예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리를 숙이고 그릇 안의 음식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때 그녀의 휴대전화가 진동하기 시작했고 낯선 번호가 보였다.안예지는 수락 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휴대전화 건너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친구분이 저를 차단했는지 연락이 안 돼서요. 지금 어디에 있어요?"안예지는 전화번호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귀가에 댔다."저희..
그녀는 멈칫하다가 구의범을 바라보았고 마침 구의범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재빨리 이율의 말을 반박했다.“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색상 차이가 엄청나잖아요.”“둘 다 밝은 계열이잖아요. 저만 어두운 계열이네요.”이율은 입고 있던 검은색 패딩을 여몄다.안예지는 할 말을 잃었고 구의범은 빙긋 웃었다.“우연이에요.”밥을 먹은 후 이율은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영화관에 도착한 후, 그녀는 상영한 영화 중에서 공포 영화를 선택했다.“오늘 이 영화를 도전해 보는 게 어때요?”공포 영화가 로맨스 영화보다 더 재미있을 거다. 특별히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 곁에 있는 사람에게 안길 수 있어 연애에 도움이 되었다!안예지가 말했다.“전 다 괜찮아요.”구의범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정말 이걸 볼 거예요?”이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네!”하지만 이율은 곧 큰 코를 다치게 되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는 건 그녀뿐이었고 하마터면 안예지에게 안길 뻔했다.무시무시한 음향 효과 외에 안예지는 무서운 것이 없었고 스토리도 괜찮다고 여겼다. 구의범도 놀란 것 같지 않았다.이율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영화관에서 나올 때 이율은 다리에 힘이 풀렸다.“무섭지 않았어요?”“괜찮아요.”안예지는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차피 다 가짜잖아요.”“......”이율은 할 말을 잃었다.그게 중점이 아니라, 놀라지 않아도 놀란 척해야 하잖아!구의범은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율은 할 말이 없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갈증 나죠? 마실 것 좀 사 올게요.”두 사람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떠났다.두 사람만 남게 되자 안예지는 더 어쩔 줄 몰라 했다.그녀는 곁에 있는 구의범을 슬쩍 보더니 입술을 깨물었다.“참, 어떻게 제 번호를 아는 거예요?”구의범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신 회사에 물어보았어요.”그녀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그러더니 어색하게 웃었다.“저기, 사실 많이 바쁘죠? 당
안예지는 머뭇거리다가 휴지를 받았다.“고마워요.”그는 큰비가 내리는 걸 보고 말했다.“한참 내릴 것 같네요.”안예지는 눈길을 내리깔고 입술을 깨물었다.사실 그녀는 비가 빨리 그치길 바라지 않았다.바로 이때 구의범이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을 확인한 그는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안예지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왜서인지 데이트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데이트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져 볼을 감쌌다. 요즘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야!하지만 바로 이때 구의범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흘깃 바라보았다. 마침 구의범은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붉어진 볼을 감싸는 걸 보았다.이율의 행동이 너무 티가 났기 때문에 구의범은 일찍 눈치챘다.그는 눈을 내리깔고 몸을 돌려 계속 전화를 받았다. 통화가 끝난 뒤에야 그는 안예지를 바라보았다.“당신 친구는 아직 연락이 없어요?”안예지는 멈칫했다.“...... 아직 없어요.”“보아하니 작정한 것 같네요.”“네?”안예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구의범은 휴대폰을 넣은 후 담담하게 웃었다.“우리 단둘이 있게 해주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그녀는 멍해졌다.구의범은 그녀의 앞에 서서 말했다.“나한테 그런 뜻이 있는 거예요?”안예지는 표정이 조금 굳어졌고 주먹을 꽉 쥐었다.“전...... 아니에요.”그녀는 고개를 숙였고 자신의 마음을 밝힐 용기가 없었다.상대방에게 들키다니!구의범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친구한테 연락해요. 전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해서요.”“네?”안예지는 고개를 들었다.“하지만 아직 비가 내리는데......”구의범은 담담하게 말했다.“비서가 데리러 올 거예요.”얼마 지나지 않아 구의범의 비서가 우산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는 우산을 쓰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렸다.“미안해요.”안예지는 그들이 빗속에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발그스름하던 얼굴은 이미 핏기를 잃었다.비가 그
구의범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이율이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다고 열정적으로 요청한 탓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던 거다.오늘 이율의 행동을 보면 의도적으로 그와 안예지를 엮어주려는 것 같았다. 안예지의 뜻인지, 아니면 이율 스스로의 행동인지 알 수 없었다.한성연 사건이 있은 뒤로 구의범은 여자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었다. 두 번째 “한성연”이 나타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병원.한 부인은 병실 곁에 앉아 한수찬에게 죽을 먹여주고 있었다. 한수찬은 며칠 전에 수술을 했고 아직 회복 기간이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일어나려면 전동 침대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한지욱이 들어오자 한수찬은 그를 흘깃 보더니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고개를 돌렸다.“지욱아.”한 부인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아버지는 조금 전에 깨어나셨어. 시간 있을 때 자주 와.”한지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수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죽만 먹었다.죽을 모두 먹은 후 한 부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난 먼저 돌아가서 저녁을 준비할게.”그녀는 자동 침대를 원래 위치로 조정하고 이불을 여며준 다음에야 나갔다.한 부인이 떠난 후 병실에는 두 부자만 남았다. 한수찬은 눈을 감고 끝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한수찬이 말을 하지 않자 한지욱도 침묵을 지켰다.한지욱은 병실에서 아버지와 함께 두 시간 있었고, 아버지는 일찍 잠들었다. 그는 마음이 어수선해져 비상통로로 가서 담배를 피웠다. 그가 담배를 몇 대 피웠을 때 유혜선이 또 문자를 보냈다. 퇴원해도 되니 집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한지욱은 담배 연기 때문인지 눈을 가늘게 떴고 바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밤 그는 돌아가지 않고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늦은 저녁, 윤티파니는 휴대폰 벨에 깨어났다.그녀는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한지욱 도련님 약혼녀 되십니까? 한지욱 도련님께서 취하셔서 데리러 오시라고 합니다.”윤티파니는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한지욱은 비수로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아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그럼 집에 데려다줘요.”가게 매니저가 걸어왔다.“아가씨, 한지욱 도련님 좀 배웅해 주세요. 정말 취하셨어요. 저희 가게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희는 책임지기 힘들어요.”윤티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에 놓은 그의 외투를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차에 탄 후 윤티파니는 외투를 그에게 덮어주려고 했다. 한지욱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불렀다.“티파니.”윤티파니는 멈칫했고, 일 년 전 한지욱이 부모님 앞에서 그녀를 이렇게 불렀던 게 떠올랐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지만 눈은 여전히 싸늘했다.“아직도 연기하는 거예요? 이젠 끝났어요.”한지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티파니는 운전해서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는 유혜선도 이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한지욱을 그녀 집에 보내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후 그녀가 13층을 누르자 한지욱이 갑자기 16층을 눌렀다.윤티파니는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한지욱은 그녀의 행동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손을 꽉 잡더니 품에 끌어안았다.“한지욱!”윤티파니가 품에서 발버둥 치자 한지욱이 그녀의 얼굴을 잡고 키스했다. 예상치도 못한 알코올 냄새가 가득 담긴 키스에 그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뭔가를 눈치챈 그녀는 그를 저지했다.“미쳤어요? 한지욱 씨, 난 지금 당신이랑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이럴 자격 없다고요!”한지욱은 손바닥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더니 억지로 그녀가 고개를 들게 했다.“관계있으면 되는 거예요?”윤티파니는 멍하니 있다가 그를 밀쳤다.“더 이상 관계있을 리가 없잖아요.”그녀가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하자 한지욱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한지욱이 그녀를 끌고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한지욱 씨, 이러지 마요......”지금 한지욱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알코올로 인해 이성을 잃은 그는 그녀에 대한 깊은 집착을 느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