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연은 저택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강현이 출국했다는 소식만 알리고 바로 나왔다.돌아가는 길에 강성연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는 것을 듣고 반지훈이 물었다."아까는 배가 안 고프다면서?"강성연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방금 배고파진 거예요."반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물었다."뭐 먹고 싶어?"강성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양념 족발을 먹고 싶어요!"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soul 주얼리.몇몇 직원은 화장실에서 나와 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고치며 말했다."예지 씨 그렇게 비싼 케이스를 쓰는 걸 봐서 무조건 돈 많은 남자 찾은 것 같지 않아요?""원래는 조용한 성격인가 했는데 우리랑 안 어울리는 이유가 있었던 거네요.""이율 씨가 번마다 거절당하는 걸 보는 게 가슴 아플 지경이라니까요. 이율 씨는 왜 계속 편을 들어주는지 모르겠어요.""이율 씨가 원래 좀 그래요. 안 그러면 어떻게 반크의 조수에서 매니저까지 됐겠어요? 경력으로 따지면 제가 훨씬 긴데도 말이죠."직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 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이율은 23살이었고 soul 주얼리에 들어온 지 2년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조수에서 매니저 사이의 계급도 엄청났다. 이율이 강성연의 예쁨을 받는 모습을 보고 그녀들은 이율이 아첨에 능하다고 생각했다.여직원들이 화장실 밖으로 나가자 안예지가 화장실 구석진 칸에서 나와 손을 씻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말을 빠짐없이 다 들었다.'평소 이율 씨랑 그렇게 사이좋아 보이더니, 뒤에서는 저런 말을 할 줄이야...'복도로 나온 안예지는 방금 화장실에서 나온 직원들이 이율과 웃으며 떠드는 것을 봤다. 마치 방금 뒷담화를 하던 사람은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직원들이 떠난 다음, 이율이 몸을 돌리다 안예지를 발견하고 서류 다발을 든 채로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다."예지 씨."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또 서류 심부름이에요?"이율이 머리를 끄덕였다."네. 오늘 화요
이율이 계속해서 말했다."다들 예지 씨에 대해 몰라서 그래요. 근데 저도 살짝 궁금하기는 했는데..."그녀가 머리를 돌려 안예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 휴대폰 케이스 진짜 그렇게 비싸요?"안예지는 잠깐 멈칫하다가 되물었다."제 케이스요?"그녀는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가 왜 갑자기 언급되는지 이해가 안 되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그건 아빠가 폰 바꿔줄 때 그냥 같이 준건데... 저도 정확히 얼마 하는지는 몰라요.""아빠요?"이율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안예지가 웃으며 다시 한번 대답했다."네, 아빠요."이율은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그럼 아침에 회사까지 데려다준 사람도..."안예지는 직원들 사이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맞아요, 아빠예요."'아, 아버님이셨구나!'이율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미소를 지었다."제가 몰라뵀네요. 그래도 소문이 잘못됐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어쩐지 200만 원을 가볍게 말한다 했어요."'부잣집 딸이 비싼 차에 비싼 핸드폰 케이스를 쓰는 게 뭐 어때서.'안예지는 이율이 자신을 믿어주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주 따듯했다. 그녀는 이게 바로 믿음을 받는 느낌인가 싶었다.곧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안에 타고 있던 남자가 머리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안예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구의범도 soul 주얼리에서 두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다. 두 사람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그가 열림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탈거예요?"이율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 말했다."아,네."그녀는 안예지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미소를 지었다."그날 저희를 도와주신 분이죠? 어떻게 soul 주얼리에서 다 만나요?"구의범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만날 사람이 있어서요."그는 두 사람을 힐끗 보며 물었다."성연이 직원이에요?"이율이 멈칫하며 물었다."저희 디렉터 님을 아세요?"구의범이 짧게 대답했다.안 그래도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던 이율은 도움을 준 적 있는 남자가 강성연까
성공적으로 친구 추가를 하고 난 이율은 머리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락처를 보내줄까요?"안예지가 바로 대답했다."아... 아니요.""그렇게 조심스러울 것 없어요. 선제공격하지 않으면 다음 기회가 없다고요. 예지 씨 아직 솔로죠? 이참에 제가 도와줄게요."이율이 웃으며 말했다.안예지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선제공격이라니, 그게 무슨...""그냥 확 꼬셔버리는 거예요!"이율은 말하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안예지를 향해 물었다."설마 모태 솔로예요?"안예지가 대답을 못 하며 말을 얼버무리는 것을 보고 이율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모태 솔로라고 해서 부끄러울 건 없어요. 저도 비웃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요."이율은 카톡을 열며 이어서 말했다."일단 저랑 친구 추가 해요. 그리고 제가 구의범 씨의 연락처를 보내줄게요."안예지는 입술을 깨물며 걸음을 늦췄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며 말했다."저... 카톡 없어요."이율은 몸을 돌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구씨 저택.구세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그는 잡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도 네 어머니를 만나러 갔어?"구의범이 짧게 대답하고 계단 앞에 멈춰서서 넥타이를 풀어 팔에 걸쳤다."어머니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구세호는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결국 말하지 못하고 화제를 바꿨다."내일 밤 나랑 한씨 집안과 윤씨 가문의 결혼식에 참가하자.""네."구의법은 짧게 대답하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밤안개가 짙게 끼고, 화려한 등불이 켜진 날.한씨 집안과 윤씨 집안은 한씨 집안의 오성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열었다.두 집안의 결혼 소식은 대부분 서울 사람이 다 알고 있었다. 원래는 지난해에 열려야 할 결혼식이지만 일 년이나 미뤄진 덕분에 더 유명세를 탔다.누군가는 한지욱이 더러운 여자와 결혼하기 싫어서 결혼을 반대했지만, 한수찬이 윤씨 집안의 도움을 받기 위해 억지로 결혼을 성사한 것이라고 하기
안예지의 얼굴형은 아주 갸름했고 움직임도 적어서 시끄러운 인파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하객이 전부 입장하고 결혼식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입장 멘트를 시작하고 현장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결혼 행진곡과 함께 사람들은 머리를 돌려 입장하는 신부를 바라봤다.윤티파니는 예쁜 드레스를 입고 아버지 윤진의 손을 잡은 채로 천천히 걸어왔다. 한지욱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명이 어두운 탓에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윤진이 윤티파니의 손을 한지욱에게 건네줬다. 한지욱은 그녀의 손을 잡은 채로 주례 앞으로 섰다. 기나긴 주례사가 끝나고 예비부부에게 동의를 구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저는 이 결혼을 동의할 수 없어요!"사람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단발머리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한수찬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호텔 지배인과 경비를 불렀다.여자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위로 올라왔고 한지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미쳤어?""너도 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 걸 알아. 넌 이 여자를 사랑하지 않잖아!"여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그리고 나랑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잖아.""선아, 넌 일단 돌아가."한지욱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때 경비가 달려와서 여자를 끌어내리려 했다. 하지만 여자는 끝까지 기를 쓰며 고집을 부렸다."나 안 가!"경비가 힘을 쓰자 여자는 철퍼덕 넘어졌다. 그녀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려는 듯 소리를 질렀다."나 임신했어!"이 말을 들은 경비는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했다. 한수찬과 한지욱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고 윤진 부부도 표정이 좋지 못했다."헐, 이게 무슨 일이야?""결혼이 장난도 아니고 임신한 여자를 두고 다른 여자랑 결혼한단 말이야?""가문의 불행이군."하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한 것을 보고 한수찬이 참다못해 경비에게 말했다."당장 이 여자를 끌어내요!"경비는 여자를 억지로 일으키려고 했다. 여자는
한지욱은 심호흡하며 잠깐 생각하더니 머리도 돌리지 않고 유혜선과 함께 멀어져갔다."한지욱!"한수찬은 고함을 질렀다. 그는 가슴을 움켜쥐더니 갑자기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한 부인은 깜짝 놀라며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해 줬다."여보!"결혼식에서 신랑이 다른 여자와 도망가고 신부 혼자 남게 되자 사람들은 동정의 마음을 품었다.윤진은 어쩔 수 없이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밥도 먹지 않고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구세호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의범이 몸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보고 재촉까지 했다."결혼식도 끝난 모양이니 얼른 가자.""저를 데리고 올 때는 언제고 또 데리고 가려는 거예요? 이번에는 가려면 혼자 가세요."구의범이 단호하게 말했다."너..."구세호는 화가 나기는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윤티파니는 치마를 들고 휴게실로 돌아갔다. 안예지도 따라 가면서 말했다."티파티 씨."윤티파니는 귀걸이를 벗다 말고 머리를 돌려 안예지를 바라봤다. 그녀는 안예지가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만약 위로하러 왔다면 필요 없어요."안예지는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예요. 분명 붙잡을 수 있었는데 왜 다른 여자랑 떠나도록 내버려 둔 거예요?"안예지는 어쩌면 한지욱이 떠나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윤티파니가 붙잡았었더라면 말이다.윤티파니는 피식 웃더니 립스틱을 닦으며 말했다."빌어서 하는 결혼이 뭐가 좋다고 제가 붙잡아야 하나요?""빌어서 하는 결혼이요?"안예지는 의아한 표정이었다.윤티파니는 몸을 일으켜 그녀를 향해 걸어오더니 말했다."맞잖아요. 서울에 어떤 남자가 저처럼 명성이 바닥난 여자와 결혼하겠어요. 지욱 씨와의 결혼은 제 아버지가 꿈에서 바라던 거예요. 그리고 저같이 더러운 여자는 좋은 남자를 바라지도 못해요."안예지는 잠깐 멈칫하다가 윤티파니를 바라보며 말했다."티파니 씨, 그렇게 말하지 마요.""티파니 씨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의
구의범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안예지는 아주 긴장되었다. 남자와 별로 얘기를 나눠본 적 없는 그녀는 무슨 화제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이 순간만큼은 용감한 이율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안예지는 심호흡하며 다른 화제를 찾았다."아직 안 가셨어요?""지금 가려고요."구의범이 머리 숙여 시계를 힐끗 봤다."먼저 내려갈게요."안예지는 어떻게 말할지 몰라 그저 머리를 끄덕였다."네.""예지 씨도 내려갈 거죠?""아... 네."안예지는 자꾸만 꼬이는 자신의 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구의범의 앞으로 가서 걸었다.구의범은 안예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여자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저번에 운전자가 시비를 걸 때는 그렇게 당당하던 사람이 말이다.구의범과 안예지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이 아주 많았고 두 사람은 양쪽에 섰다.엘리베이터가 내려가고 사람이 들락날락하면서 안예지는 점점 더 구석으로 밀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남자는 자꾸만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느끼한 차림의 남자의 몸에는 술 냄새가 났다.안예지는 일부러 피하기도 했는데 남자는 자꾸 알게 모르게 자신의 손을 그녀의 골반에 스쳤다.구의범은 안예지의 안색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리고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한눈에 알아봤다.구의범은 손을 뻗어 안예지를 자신을 향해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와 자리를 맞바꿨다. 덕분에 그녀는 구의범 뒤에 숨어 있을 수 있었다.남자는 어색한 표정으로 눈을 피했고 안예지는 머리를 숙였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손목에는 아직도 구의범의 따듯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안예지는 구의범을 따라가며 말했다."아까는 고마웠어요."구의범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별말씀을요."안예지는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미소를 지었다."그럼 저는 이만 먼저 돌아갈게요."안예지는 급하게 손을 흔들고 밖으로
안예지는 어쩐지 통제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한지욱 불륜녀와 도망'윤씨 집안과 한씨 집안의 결혼식이 끝난 후, 기사는 바로 터졌다. 여자들은 한지욱과 유혜선을 좋게 안 보는 한편, 남자들은 더러운 여자와 결혼할 바에는 도망가는 게 낫다고 응원을 표시했다.윤진은 뉴스를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라 책상을 내리쳤다."한지욱 이 자식이...!"윤진의 부인 강현숙은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이제 만족해요?""그건..."윤진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한씨 집안에 농락당했음을 인정했다. 이때 그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강현숙을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당신 진작에 이렇게 될 줄 알았던 거야?"강현숙은 정색했다. 그녀는 1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한씨 집안에서 자신의 딸을 받아주니, 그녀도 처음에는 당연히 기뻤다. 그리고 한지욱이 윤티파니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무조건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강현숙은 한지욱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지욱은 윤티파니에게 아주 잘해줬고 다정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녀는 한지욱이 꽤 괜찮은 사윗감이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비가 오는 그날, 강현숙은 윤티파니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그녀가 마침 돌아가려고 할 때, 차 한 대가 서서히 다가와서 멈춰 섰다.익숙한 차에서 우산을 쓴 한지욱이 먼저 내려왔다. 강현숙이 마침 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 조수석에 있는 여자가 내려와 한지욱과 포옹을 했다. 한지욱은 여자의 어깨를 잡고 우산을 기울이더니 짧게 뽀뽀를 했다.이 장면을 직접 목격한 강현숙은 눈가가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농락한 남자가 뼈에 사무치도록 미웠다. 그녀는 몰래 두 사람을 따라갔고 두 사람은 윤티파니가 사는 집이 아닌 다른 집으로 향했다. 그 여자도 윤티파니와 같은 건물에 살았던 것이다.며칠 동안의 관찰 끝에 강현숙은 모든 증거를 다 모았고 한지욱이 유혜선이라는 여자와 만나고 있음을 확신했다.강현숙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결혼이 엎어졌으면 엎어졌지 뭐 어쩌겠어요. 이 세상 남
한지욱은 윤티파니가 떠올랐다. 그녀는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자신과 유혜선을 목격한 적 있는데도 말이다.한지욱은 그걸 열등감으로 여겼다. '더러운' 몸으로 시집갈 수 있는 자체만으로도 그녀에게는 감지덕지한 일이였기에... 하지만 이는 결코 열등감이 아니었다.윤티파니는 단 한 번도 한지욱에게 부탁한 적 없었다. 이는 열등감보다는 냉정함에 가까웠다. 한지욱이 유혜선과 무슨 짓을 하던 언제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차가운 표정이었으니 말이다.이때 한 부인이 전화 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한지욱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지금 바로 갈게요."한지욱은 외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룻밤을 꼬박 새운 그는 아주 초췌해 보였다."지욱아, 너 갈 거야? 누구한테 가는데? 설마 윤티파니?"유혜선의 말을 들은 한지욱은 정색하며 말했다."내가 그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아."그는 머리도 돌리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유혜선은 침대에 누워서 점점 멀어지는 한지욱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한수찬은 갑자기 혈압이 높아진 관계로 뇌출혈이 와서 정신을 잃었다. 한 부인은 병실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딸은 감옥에 가고 의붓아들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데다가 남편까지 정신을 잃었으니 슬플 만도 했다.한지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한 부인이 언성을 높였다."너 왜 이제야 오는 거니? 네 아버지가 죽든 살든 이젠 신경도 안 쓴다는 거야?"한지욱이 침묵했다.이때 의사가 병실로 들어오더니 수술을 추천했다. 안 그럼 죽을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한 부인은 자칫 기절할 뻔했다."개두술을 해야 한다고요?"의사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네, 출혈량이 너무 많은 관계로 최대한 빨리 수술해야 합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뇌신경을 압박할 것이고 급성 질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한 부인은 의사를 덥석 잡으며 말했다."안 돼요. 개두술은 위험한 거잖아요. 제 남편은 나이도 많은데 수술을 견디지 못할 거예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