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렇게 꾸몄는데 누가 알아보겠어요?”강성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얼굴을 꽁꽁 감추고 모자도 쓰고 옷도 검은 옷을 입었는데 누가 그를 반지훈이라고 생각하겠는가?반지훈이 강성연의 턱을 쥐었다. 그는 강성연의 요염하고 정교한 얼굴을 봤다.“나 진짜 조금 전에 너한테 맞을 뻔했어.”강성연은 고개를 홱 돌렸다.반지훈은 그녀의 뺨과 목에 입을 맞췄고 강성연은 몸을 떨었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반지훈의 가슴팍을 밀어냈다.“여기 복도예요.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반지훈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러면 방으로 돌아가자.”방으로 들어간 뒤 반지훈은 그녀를 안고 곧장 침실로 향했다. 반지훈은 강성연과 함께 침대위로 향했고 마치 굉장히 아름다운 꽃병을 바라보듯 그녀를 지긋이 바라봤다.그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강성연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왜 그렇게 쳐다봐요?”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강성연의 손목을 잡더니 그녀의 손등과 손끝에 입을 맞췄다.“오늘 밤 너무 아름다워서.”강성연은 키득거리며 웃더니 몸을 일으켜 그와 자리를 바꾸었다. 그녀는 반지훈의 몸 위로 올라타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보석이 아름답다는 거예요?”반지훈은 태연한 얼굴로 사람이 아름답다고 했다.강성연은 허리띠를 풀어 그의 두 손을 묶었고 반지훈은 당황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나쁜 것만 배웠네.”“이렇게 먼 곳까지 따라오다니, 날 스토킹했어요?”강성연은 그를 내려다보면서 그의 단추를 풀었다.반지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스토킹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따라온 건데.”“그런데 왜 나한테 얘기 안 했어요?”반지훈은 웃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어서 그랬지.”강성연은 그에게 딱 달라붙어 말했다.“경악이 아니라 서프라이즈라고 확신할 수 있어요?”반지훈은 그렇다고 했다. 그가 침을 삼키면서 눈빛이 점점 더 그윽해지자 강성연은 그만뒀다. 그녀는 곧바로 그의 몸에서 내려와 도망쳤고, 반지훈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도
강성연은 말문이 막혔다.“당신 정말 가끔 개 같을 때가 있어요.”반지훈은 덤덤히 대답했다.“그건 너한테만 그래.”“성연아.”남여진이 때마침 패션계 거물급 인사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강성연은 웃으면서 그녀를 맞이했다.“할머니, 일찍 깨셨네요.”“나 같은 늙은이는 늦잠 자는 습관이 없어.”남여진이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에게 함께 온 사람을 소개했다. 그들도 패션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강성연은 공손하게 그들과 악수하며 인사를 나눴다. 반지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난 뒤 강성연을 향해 걸어갔다.업계 내 사람들은 당연히 반지훈을 알고 있었다. 그들도 반지훈의 출현이 의아한 듯 보였다.“반지훈 씨도 계셨네요.”“네. 제 아내랑 같이 왔어요.”반지훈도 정중하게 대답했다.한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업계 내에서 반지훈 씨가 아내를 무척 아낀다는 소문이 있던데 지금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이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반지훈 씨 아내는 젊은 나이에 soul 브랜드를 창립했으니 능력도 좋으시잖아요.”“그건 반지훈 씨 덕분이겠죠.”강성연의 입꼬리에 걸렸던 미소가 살짝 굳었지만 티가 나지 않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그 말에 사람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그 말을 한 사람은 좀 젊은 나이의 여자였는데 그녀 역시 자신이 말 실수를 했음을 인지한 건지 입을 틀어막았다.“아, 죄송해요, 강성연 씨. 제 말은 반지훈 씨가 잘 챙겨주시니까 그렇게 수고스럽지는 않겠다는 뜻이었어요.”강성연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고 할 때 반지훈이 느긋하게 말을 이어받았다.“전 soul 브랜드 일은 도운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soul 브랜드가 우리 TG 산하에 있는 덕분에 제게 돈도 많이 벌어서 줬죠. 그리고 전 아내에게 2000억을 빚졌는데 아직 갚지도 않았어요. 지금 보면 제가 계속 제 아내 덕을 본 거
곧이어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났다.반지훈은 손바닥에 외롭게 남은 과일 맛 사탕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점심때 강성연은 반크와 함께 볼링을 치러 갔다. 반크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그녀에 관한 소문을 알려줬다.강성연이 손에 들고 있던 볼링공을 굴려 보내자 첫 번째 줄의 볼링핀이 쓰러지면서 단 하나만 남았다.강성연은 의자 옆에 두었던 생수 뚜껑을 딴 뒤 반크에게 휴대폰을 건네달라고 하고는 잠금을 풀고 SNS를 확인했다.그녀를 겨냥한 댓글이 몇 개 있긴 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을 말싸움에 끌어들이려는 것 같기도 했다.“이 댓글들 아이디 주소 조사했어요?”반크가 대답했다.“서울시였어.”그는 잠깐 뜸을 들였다.“네가 아는 사람이야.”강성연은 천천히 물을 마실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와 반지훈의 일을 타당하게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그들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역시나 그녀는 얌전히 보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반크는 뭔가를 봤다.“반 대표 게시물 새로 업데이트했는데?”강성연은 반지훈이 방금 업데이트한 게시물을 보았다. 그와 해신이 게임하는 사진이었다.#아내가 돈 벌고 난 집에서 애를 보지. 악플러들은 이런 걸 아나 몰라.#강성연이 아이를 이용해 억지로 그와 결혼했고, 심지어 반지훈의 재력을 이용했다는 루머가 그 게시물 하나에 완전히 무너졌다. 구천광이 댓글을 썼다.#악플러들은 모르겠죠. 악플러들은 아마 반지훈 씨가 아내 일 시키고 본인은 편히 지낸다는 것만 알 걸요?#육예찬의 댓글은 이랬다.#정말 뻔뻔하네요.#희승도 댓글을 달았다.#제발 출근 좀 하세요!#여준우도 댓글을 썼다.#네 아내는 네가 이렇게 얄미운 걸 알고 있어?#반지훈이 답장을 했다.#다들 꺼져.#강성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상한 방법으로 악성 루머라는 게 밝혀졌지만 효과만큼은 대단했다.이틀 만에 인터넷 여론은 반지훈의 게시물 때문에 뜨겁게 달궈졌다. 그의 게시물 아래 댓글을 단 건 다들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
“어디 헬스장인데? 내가 찾아갈게.”강성연은 택시를 타고 김아린이 보내준 주소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 헬스장에 도착하니 김아린이 운동을 마치고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그녀는 타월로 목의 땀을 닦았다.“너 바쁘지 않아? 갑자기 나는 왜 찾아왔대?”강성연은 문가에 기대었다.“일이 좀 있어서.”“나 대충 씻고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김아린은 탈의실로 들어갔고 잠시 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녀는 적당한 두께의 겉옷을 입고 있었다.비록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11월의 서울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나는 왜 찾아왔어?”강성연이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김아린은 깜짝 놀랐다.“나더러 가보라고?”“내 동생이랑 약속했거든. 걔한테 손 쓰지 않기로.”강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그런데 누군가는 좀 혼쭐을 내줘야지 않겠어? 그렇지 않으면 얌전해지는 법을 배우지 못할 테니 말이야.”김아린은 허리띠를 한 뒤 눈썹을 치켜올렸다.“별거 아니네. 나한테 맡겨.”*바 안에서 귀청이 떨어질 듯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들은 술을 마시며 주사위를 굴리고 있었고 화려한 조명 아래 섹시한 차림의 여자들이 폴댄스를 추고 있었다.강예림은 바에 출근해서 메이드복을 입고 손님들과 술을 마시는 것으로 팁을 받았다.그녀의 옆에는 배가 나오고 금목걸이에 금반지를 한, 한눈에 봐도 졸부인 남자가 앉아있었다.그는 손으로 강예림의 허벅지를 쓰다듬었고 강예림은 얌전히 그의 품에 기대며 그에게 술을 따라줬다.“이 사장님, 다음번에 호텔 잡을 때 저 꼭 불러주세요.”이 대표는 강예림의 턱을 잡더니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네가 말만 잘 들으면 매일 와서 돈 써서 네 실적 올려줄게.”강예림은 발가락으로 그의 바지를 잡아당겼다.“말을 잘 들으라는 건 어떤 거예요?”이 대표는 그녀의 암시에 마음이 끌려 다른 사람이 건네준 술도 마다했다.“방탕하긴. 벌써 기대하는 거야?”강예림이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이자 이 대표는 곧바로 술잔을 내려놓더니 그녀를 끌어안고 떠났다.
바 매니저는 당황했다. 그는 돌연 고개를 돌려 v29 좌석에 앉은 강예림과 이 대표를 보았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이 대표는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경찰이 그를 가리켰다.“어딜 가려고!”두 명의 경찰이 재빨리 이 대표를 바닥에 제압했다. 이 대표는 억울한 듯 말했다.“전 아니에요... 전 아닙니다. 전 거래한 적 없습니다!”앉아있던 강예림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경찰은 영상을 보았는데 영상 속 남자의 체형이 이 대표와 똑같았다.“영상 속 남자는 틀림없이 당신인데 발뺌하는 겁니까? 수갑 채워.”이 대표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이 대표가 큰 소리로 외쳤다.“저 여자가 절 유혹한 겁니다. 저 여자가 먼저 하자고 그랬어요. 제가 아니에요!”강예림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런데 바로 그때 증인이 나왔다. 영상을 찍은 청소부 아줌마가 강예림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바로 이 여자예요. 이 여자가 저 남자랑 같이 화장실에 들어갔어요. 제가 봤어요.”강예림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서 경멸과 혐오, 심지어 조롱을 느꼈다. 도망칠 곳이 없던 그녀는 그렇게 적나라하게 사람들의 앞에 서야 했다.경찰은 결국 두 사람을 데려갔다. 김아린의 차는 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경찰차가 하나둘 떠나자 그녀는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아있는 강성연을 바라봤다.“어때?”강성연은 웃었다.“대단하네. 역시 구천광의 여자다워.”“이 정도는 껌이지.”김아린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보름 정도 갇히고 벌금 내면 좀 얌전해지겠지?”강성연은 이마를 짚었다.“누가 알겠어? 그랬으면 좋겠다.”김아린은 강성연을 블루 오션으로 데려다준 뒤 떠났다. 강성연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팔짱을 두른 채로 소파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반지훈을 보았다. 오랫동안 기다린 건지 표정이 침울했다.세상에!그녀는 집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걸 깜빡했다.“여보.”강성연은 얼른 그에게 달려가 그를 안았지만 반지훈은 진짜 화가 났는지 꿈
강성연은 작게 중얼거렸다.“아니에요?”반지훈은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웃었다.“성연이는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강성연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반지훈이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짙었다.“그러면 내일부터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네.”위층에서 강성연의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렸다.“반지훈 씨, 또 나 놀린 거죠!”다음 날, soul 주얼리.“대표님 요즘 또 휴가에요?”“s국 지사에서 돌아오고 나서 반년 동안 바빴으니 좀 쉬어야죠.”안예지는 홀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때마침 세 명의 여자 직원이 얘기를 나누는 걸 들었다. 다른 자리에도 대부분 두 명이나 두 명 이상이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어 그녀가 유독 조용해 보였다.예전에는 그녀에게 먼저 다가왔던 여자 직원들도 안예지를 보고는 그저 인사만 살짝 하고 다른 곳에 자리를 잡았다.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이 그녀가 모르는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있었다. 예를 들면 휴대폰 게임이라든지, 인터넷 쇼핑이라든지, 재밌는 드라마 같은 것들 말이다.하지만 유명한 아이돌이나 배우의 얘기를 안예지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그녀는 아빠가 사준 스마트폰으로 서투르게 검색했다.“안예지 씨.”가까이 다가온 이율 때문에 안예지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재빨리 휴대폰을 거두고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무슨 일이에요?”“미리 말해주려고요. 이따 식사 다하시고 저랑 같이 원자재 사러 가요.”이율은 그녀에게 천천히 먹고 나오라며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점심을 다 먹고 나가보니 이율은 이미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구매 리스트를 꺼내며 말했다.“사실 구매는 대표님 일이긴 하지만 지금 안예지 씨도 정식으로 디자이너가 됐으니 원료 구매하는 법도 알아야 해서요.”안예지는 이율이 들고 있던 리스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는 좋아요.”이율은 직접 운전해서 안예지를 데리고 여러 공급업체로 향
안예지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저... 연락처가 없어요.”송아영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연락처가 없었다.이율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진짜예요? 너무 집순인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안 돼요. 그래도 친구를 사귀어야죠.”안예지는 뭐라고 하려다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멈춰요!”이율이 반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빨간 신호등 때문에 멈춰 선 차와 부딪혔다.이율은 넋을 잃고 멍해졌다.“세상에, 내가 사고를 내다니... 상대방 차 어떤 차예요?”이율은 어떤 브랜드의 차인지 알아보지 못했지만 아주 비싼 듯했다. 그녀는 혹시나 배상할 수 없을까 봐서 걱정이었다.안예지는 브랜드를 확인했다.“랜드로버네요. 3.0 L6 시리즈라 최소 2억이에요.”“세상에, 2억짜리 랜드로버라고요?”이율은 멘탈이 나갔다. 몇천만 원 짜리 차라고 해도 배상금이 엄청날 텐데 하필 2억이 넘는 랜드로버랑 부딪치다니, 벤틀리나 롤스로이스였다면 그냥 제자리에서 죽기를 선택했을 것이다.랜드로버에 앉아있던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남자였는데 이율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자리에 앉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바로 그때 안예지가 차에서 내렸고 그제야 이율은 부랴부랴 안전벨트를 풀었다.남자는 들이박은 범퍼를 힐끗 보았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살짝 파이기까지 한 걸 본 그는 혀를 찼다.“운전을 어떻게 한 거예요?”안예지가 대답했다.“정말 죄송합니다. 이 일은 저희 탓이니 배상하겠습니다.”배상이라는 말에 이율은 다가가서 안예지를 한쪽으로 끌어당겨 작게 속삭였다.“예지 씨, 이거... 얼마나 배상해야 해요? 일단은...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줘요!”안예지는 힐끗 보고 말했다.“그렇게 비싸지는 않아요. 이 차는 대리점에서 한 번 관리할 때 6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 들 거고 수리하면 움푹 들어간 곳에 판금을 하고 도색하면 80에서 100만 원 정도 들 거예요. 등은 수리하는 데 20에서 40정
배상하지 않으면 오늘 이렇게 안 끝나요. 여기서 떠날 생각 하지도 마요.”남자가 악다구니를 썼다. 주변을 지나는 차들이 점점 막히기 시작하면서 경적이 끊이질 않았고 양옆에 행인들도 구경하기 시작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이율도 다급했다.“배상하겠다고 했잖아요. 하지만 2천만 원은 정말 없어요. 좀 깎아주시면 안 돼요?”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깎아주긴, 배상을 해야죠. 당신들이 여자라고 내가 봐줄 줄 알아요?”안예지는 태연하게 그를 바라봤다.“당신 차는 2억 3천8백만 원일 거예요. 가장 싼 거니까 보험비는 연간 560만 원이겠죠. 거기에 기름값, 주차비, 통행료, 2천 만 원이 든다고 쳐요. 그런데 겨우 긁힌 것 갖고 2천만 원을 달라니, 보험회사에서 그렇게 준다고 하던가요?”“제가 대신 계산해 드리죠. 대리점에서 등 고치는 건 40만 원이고 밖에서 고치면 겨우 10만 원 정도예요. 판금 복원과 페인트칠하는 것도 몇십만 원이죠. 그리고 이런 작은 충돌은 보험이 완전히 적용되고요. 당신 차를 박은 건 우리 잘못이 맞고 합리적인 배상을 할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불합리한 비용을 요구하니 저희는 당연히 거절할 수 밖에 없죠. 그리고 전 절차를 밟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협조하려고 하지도 않고 심지어 제 휴대폰을 박살 냈어요. 그러고 보면 당신이 의도적으로 공갈 치려는거 아니에요?”이렇게 만만치 않은 상대일 줄은 몰랐던 건지 남자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는 안예지를 손가락질하면서 욕했다.“내가 누군지 알아요? 내일 당장 사람 불러서 당신을 죽일 수도 있어요!”안예지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거기다가 협박죄까지 더해졌군요. 어디 한 번 해보세요.”“빌어먹을...”남자가 갑자기 팔을 들어 올렸다.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안예지는 뺨을 맞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남자 또한 놀란 듯했다.“당신은 누굽니까?”구의범은 그를 밀어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