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희는 강성연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이것도 나름 인연이네요."강성연이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말했다."저랑 지훈 씨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준우 씨가 평생 혼자 살까 봐 걱정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반지훈이 웃으며 말했다."37살이나 먹었으면 빨리 연애할 때도 됐지."여준우가 반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세 살 밖에 차이 안 나거든?""됐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놈들이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말다툼하는 거냐. 성연이랑 승희가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여 노부인은 말로만 투덜거릴 뿐,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명승희와 강성연은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승희야."여 노부인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내가 준우의 어머니를 대신해 너한테 사과하마."명승희는 잠깐 멈칫하다가 황급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저... 그게...""준우 어머니 유나가 우리 여씨 집안사람이니 내가 대신 사과를 해도 되겠지?"여 노부인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유나뿐만 아니라 레이나도 있었군."명승희는 술잔을 꽉 잡으며 여준우를 바라봤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유나도 자기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태생이 이기적인 데다가 아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서 그런 짓을 한 모양이야."여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레이나의 일은 전적으로 여씨 집안 잘못이야. 우리가 레이나는 구하지 못했지만 넌 다행히 살아남았으니 내 꼭 사과해야 할 것 같구나."명승희는 여 노부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따라서 마셨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결말인 듯 했다.저녁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명승희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알코올의 작용 때문인지 그녀는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여준우는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으며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록 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그의 팔뚝에 닿았다."취했어요
며칠 후, S국.송아영은 잡지에서 여준우와 명승희가 연애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기사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둘이 진짜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육예찬은 커피를 마시면서 눈썹을 찡긋했다."좋은 소식 아니야?""당연히 좋은 소식이지! 승희 씨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앞으로 당신 생각을 안 할 거 아니야."송아영은 턱을 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자칫 커피에 사레 걸릴 뻔한 육예찬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지금 그걸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송아영은 웃으며 답했다."장난이야. 걱정이라기보다는..."송아영은 시선을 떨구며 이어서 말했다."승희 씨가 당신 6년이나 좋아했는데 헤어지는 게 쉽지 않았겠다 싶어서.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겠지. 참 다행이지 않아?"육예찬은 웃으며 말했다."맞아, 다행이지."송아영은 잡지를 내려놓고 배를 만졌다. 그녀는 금방 밥을 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배가 고픈 것 같았다."나 또 배고파."육예찬은 머리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다 비만이라도 되면 어떡하려고 그래."송아영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지금 살쪘다고 놀리는 거야?"육예찬이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아니."육예찬은 몸을 일으켜 송아영의 곁으로 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간식거리라도 만들어 줄게."송아영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이튿날, 체중계 위로 올라간 송아영은 믿을 수 없는 숫자에 절규했다."내가 5kg나 쪘다니!"송아영은 전보다 훨씬 두꺼워진 허리를 만지작대며 생각했다.'어쩐지 요즘 예찬 씨가 얌전하다 했더니 내가 살이 쪄서였구나...'"예찬 씨!"송아영은 부리나케 방으로 쳐들어갔다. 한창 잘 자고 있던 육예찬은 영문도 모른 채 혼 나고 말았다."어제까지만 해도 놀리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나 살쪘잖아. 살찌고 예전처럼 예쁘지 않으니까 요즘 뜸해진 거 아니야?"육예찬은 가로누워서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그
송아영은 얼빠진 표정으로 배를 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임신에 그녀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육예찬은 쉴 틈 없이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일찍 자도록 잔소리하고, 좋은 음식만 먹게 하고, 하이힐을 못 신게 할 뿐만 아니라, 뛰지도 못하게 하는 걸 봐서 진작에 발견한 듯했다.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예찬은 송아영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줬다."왜 빨리 말 안해줬어?"육예찬은 시무룩한 표정의 송아영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당연히 아니지."송아영이 황급히 말했다."하지만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거 아니야. 하루아침에 임신 소식을 알고 나니까 약간 무서워..."육예찬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빨리 알려주면 혹시 아이를 지우지 않을까 해서 감히 말 못 했어."육예찬은 3개월 차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때가 되면 쉽게 아이를 지우지 못할 테니까. 아이가 너무 간절한 나머지 그는 송아영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누가 지운대?"송아영이 울다가 웃다가 하며 말했다."나는 그냥 아플까 봐 무서울 뿐이야."윤예찬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마에 뽀뽀했다."내가 계속 같이 있어 줄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의사를 찾아서 무조건 고생하지 않도록 해 줄게."송아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만약에... 나랑 아이가 다 위험해지면 누구부터 살릴 거야?"육예찬은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당신부터 구해야지. 아이는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아내는 아닌걸."송아영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가끔가다 내가 아내를 만난 건지, 딸을 만난 건지 알 수가 없어. 이렇게 툭 하면 눈물을 흘리니...""뭐라고?""아무것도 아니야."육예찬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우
여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넌 양심도 없냐?"'여기서 또 나를 얼마나 더 귀찮게 하려고?'반지훈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얘기에 양심이 왜 필요하지?"여준우는 피식 웃더니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강성연 씨도 알고 있나? 네가 얼마나 뻔뻔한지?"반지훈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뻔뻔하지 않고 어떻게 연애를 해?""..."강성연과 명승희는 마침 위층에 있었고, 명승희는 강성연의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저 두 사람 원래 저런 식이에요?" 강성연은 머리를 돌려 명승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야 발견했어요? 3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유치함이죠."명승희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얼음보다 차갑다던 전설 속의 반지훈이 여준우만 만나면 약간 이상해지니 말이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사이좋은 커플이고 명승희와 강성연이 방해꾼 같았다.강성연은 명승희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지훈 씨는 누굴 만나든 다 같은 태도거든요. 예전은 구천광 씨, 지금은 여준우 씨. 그래도 아직 할아버지를 상대로 투덜거리는 건 본 적 없네요."명승희는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과 함께 방 안으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성연 씨한테만 잘 해주면 됐죠."강성연은 침대의 끄트머리에 앉으며 말했다."그건 준우 씨도 마찬가지잖아요."명승희는 커튼을 열고 창가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봤다."확실히 전보다 훨씬 잘 해주기는 해요."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인정하기 전에는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몸을 돌려 강성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서로 좋아하는 것과 짝사랑은 완전히 다른 거더라고요. 저는 이제야 발견했어요."강성연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왔다."제가 보기에 승희 씨는 행운아예요."명승희는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비는 점차 줄어들었고 우중충하던 하늘도 서서히 맑아졌다. 강성연과 반지훈은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강성연은 떠나기 직전에 무언가 생각난 듯 명승희의 앞으로
반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써 반지까지 선물한 거야?""그럼요."강성연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다른 브랜드에서 반지를 맞추기 전에 제가 선수 쳐야죠."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이때 강성연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아영이었다.메시지를 확인하고 난 강성연은 기쁜 말투로 반지훈을 불렀다."지훈 씨, 아영이가 임신했대요."반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나도 좋은 소식이 있어. 구천광이 딸을 낳았대.""벌써요?"강성연은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반지훈은 덤덤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방금 문자 받았어."반년 후, 늦가을.반지훈과 강성연은 soul 주얼리가 S국에서 자리를 잡은 후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강성연은 양손 무겁게 선물을 들고 아이를 낳은 김아린을 만나기 위해 구씨 저택으로 왔다. 김아린은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물건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왔어?""당연히 많이 들고 와야지. 우리 집 유이가 언니가 될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강성연은 아이의 침대 곁으로 가서 앉았다. 아이는 젖병을 문 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아주 귀여웠다.김아린은 팔짱을 끼고 곁에서 웃었다."아영이도 곧 아이를 낳을 테니 유이가 소원을 제대로 이루겠네.""그러게. 31주라고 하던데 올해 안에 낳을 것 같아."강성연은 아이의 볼을 찔러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다 희나를 깨우겠어. 희나를 달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희나?"강성연이 머리를 들며 물었다."벌써 이름을 지었어?"김아린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천광 씨가 지었어, 구희나라고.""희나야."강성연이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언제 다 커서 우리 집으로 시집올래?"김아린은 웃으면서 말했다."나는 이 혼사에 동의한 적 없어.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이를 벌써 며느리로
강성연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스스로 검찰원에 들어가서 바닥부터 시작하는 용기가 아주 대단하네요."검찰원에는 구의범의 큰아버지가 인맥으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구의범이 부탁하기만 하면 바로 취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의범은 자신의 힘으로 시험을 통과해 검찰원에 들어갔다. 모든 이에게 자신이 방탕한 재벌 집 도련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이다."네가 감히 내 남자를 꼬셔?!"룸의 다른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손님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강성연도 머리를 돌렸다. 한 40대 여자가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손을 올렸다. 젊은 여자가 그녀를 등지고 있는 관계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젊은 여자는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레스토랑 직원이 후다닥 달려가 말렸다. 그러자 중년 여자는 더욱 기세등등해서 소리를 질렀다."신경 꺼! 내 남자를 꼬신 년을 좀 때리겠다는데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막아?"뺨을 맞은 여자는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언성을 더 높이며 말했다."남편을 두고 먼저 바람피운 주제에 어디서 감히 큰 소리예요? 당신은 유부녀지민 저는 솔로라고요!""솔로? 남편한테 버림받은 주제에 감히 솔로를 운운해?"중년 여자는 안색이 확 변하며 말했다. 젊은 여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저는 이혼이지만 당신은 기혼이에요. 당신 남편이 누군지 다 알고 있으니까, 내 몸에 한 번만 더 손을 댔다가는 다 일러바칠 줄 알아요."갑작스러운 상황에 관심 없었던 강성연은 머리를 돌려 밥 먹는 데 열중했다. 이때 그녀는 익숙한 이름을 들었고 멈칫하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머리를 돌렸다.레스토랑 매니저는 경비와 함께 두 사람을 찾아갔고 강성연은 그제야 젊은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했다.강예림.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자 그녀는 강현 못지않게 많이 변해 있었다. 유일한 다른 점이라면 강현은 이성적으로 변한 한편, 강예림은 완전히 타락했다는 것이다.구의범은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는 강성연에
"만약 강성연이 진심으로 너를 걱정한다면 밑바닥에서 일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닌 회사 관리직을 맡겼을 거야."강현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강예림이 더 큰 소리로 웃었다."넌 어쩌면 할머니랑 똑같이 멍청할까? 너도 할머니도 그냥 강성연의 개노릇을 할 운명이..."짝!강예림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뒤늦게 정신 차린 그녀는 빨개진 얼굴을 감싸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강현은 찌릿찌릿한 손바닥을 힐끗 보고는 심호흡했다."성연 누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을 한 사람은 우리야."강예림은 피식 웃었다."너 혹시 강성연한테 세뇌라도 당했어?"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악독해졌다."그년만 아니었어도 내가 정유하 같은 쓰레기랑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강현의 머릿속에는 강예림이 일 년 전 정씨 집안에서 쫓겨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팔뚝, 다리, 하물며 목까지 전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그중에는 담배불로 지진 흔적, 칼로 그은 흔적, 벨트나 막대로 때린 흔적, 주먹을 휘두른 흔적까지 있었다. 다년간의 가정폭력 끝에 강예림은 여러 차례 유산을 했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강예림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정씨 집안에서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렇게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강현은 눈을 찔끔 감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그게 성연 누나랑 무슨 상관인데?""왜 상관없어?"강예림이 강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그년이 꾀만 부리지 않았어도 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어! 누구는 인생이 파탄 났는데 넌 아직도 그년 편을 드는 거야?"강예림의 아우성에 강현은 그저 머리를 숙였다."누나 혹시 인과관계가 뭔지 알아?"강현이 말했다."내가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닐 때 사우현 형님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지? 내가 감옥에서 우현 형님을 만났어. 얼마 전 형님이 살인죄로 15년 판결을 받았거든. 형님은 진성의 사장이자 장사꾼이야. 인맥
"할머니랑 엄마도 물론 잘못했지. 근데 누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어?"강현의 질문에 강예림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 그녀는 호흡마저 멈춘 듯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강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할머니랑 엄마가 무슨 계획을 세우는지 알면서도 동참한 것. 그건 누나의 잘못이 아니야?"강예림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아... 아니야.""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 또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아. 같은 의미에서 절대적인 희생자 역시 존재하지 않아. 할머니랑 엄마를 도와 성연 누나를 못살게 굴려고 만든 계획에 되레 당했으니, 이게 대가가 아니고 뭐겠어?"강현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성연 누나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할머니를 내쫓지 않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누나는 상상도 못 하지? 우리는 성연 누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어. 만약 갈 곳이 없다면 내가 집이라도 찾아줄게."강현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떠났다.강예림은 머리를 숙이고 벽에 기댔다.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악물었다.'이제 와서 나를 동정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얌전히 도움받는 거지라도 되는 줄 아나?"강예림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한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강현이 네 동생이었어?"강예림은 몸을 흠칫 떨다가 상대가 유태식인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아까는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예요?"유태식은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돌리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감히 나서겠어. 내 미래가 그 여자 손에 있는걸. 승진만 아니었어도 그런 늙다리는 상종하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강현이 진짜 네 동생이야?"강예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강현을 알아요?"유태식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알다마다. 우리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거든. 그 녀석이 나랑 늙다리의 관계를 빌미 삼아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네 동생 감옥에 간 적 있다했지? 그게 강현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