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희는 강성연과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이것도 나름 인연이네요."강성연이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말했다."저랑 지훈 씨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준우 씨가 평생 혼자 살까 봐 걱정했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반지훈이 웃으며 말했다."37살이나 먹었으면 빨리 연애할 때도 됐지."여준우가 반지훈을 바라보며 말했다."우리 세 살 밖에 차이 안 나거든?""됐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놈들이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말다툼하는 거냐. 성연이랑 승희가 보고 있는데 부끄럽지도 않아?"여 노부인은 말로만 투덜거릴 뿐,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있었다.명승희와 강성연은 애써 웃음을 참고 있었다."승희야."여 노부인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내가 준우의 어머니를 대신해 너한테 사과하마."명승희는 잠깐 멈칫하다가 황급히 술잔을 들어 올렸다."저... 그게...""준우 어머니 유나가 우리 여씨 집안사람이니 내가 대신 사과를 해도 되겠지?"여 노부인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유나뿐만 아니라 레이나도 있었군."명승희는 술잔을 꽉 잡으며 여준우를 바라봤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유나도 자기 아들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태생이 이기적인 데다가 아들이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워서 그런 짓을 한 모양이야."여 노부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레이나의 일은 전적으로 여씨 집안 잘못이야. 우리가 레이나는 구하지 못했지만 넌 다행히 살아남았으니 내 꼭 사과해야 할 것 같구나."명승희는 여 노부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따라서 마셨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게 아무래도 가장 좋은 결말인 듯 했다.저녁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명승희는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알코올의 작용 때문인지 그녀는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었다.여준우는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안으며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도록 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그의 팔뚝에 닿았다."취했어요
며칠 후, S국.송아영은 잡지에서 여준우와 명승희가 연애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기사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둘이 진짜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육예찬은 커피를 마시면서 눈썹을 찡긋했다."좋은 소식 아니야?""당연히 좋은 소식이지! 승희 씨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앞으로 당신 생각을 안 할 거 아니야."송아영은 턱을 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자칫 커피에 사레 걸릴 뻔한 육예찬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지금 그걸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송아영은 웃으며 답했다."장난이야. 걱정이라기보다는..."송아영은 시선을 떨구며 이어서 말했다."승희 씨가 당신 6년이나 좋아했는데 헤어지는 게 쉽지 않았겠다 싶어서. 하지만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더 이상 힘들어하지 않겠지. 참 다행이지 않아?"육예찬은 웃으며 말했다."맞아, 다행이지."송아영은 잡지를 내려놓고 배를 만졌다. 그녀는 금방 밥을 다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배가 고픈 것 같았다."나 또 배고파."육예찬은 머리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다 비만이라도 되면 어떡하려고 그래."송아영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투덜거렸다."지금 살쪘다고 놀리는 거야?"육예찬이 머리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아니."육예찬은 몸을 일으켜 송아영의 곁으로 가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간식거리라도 만들어 줄게."송아영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이튿날, 체중계 위로 올라간 송아영은 믿을 수 없는 숫자에 절규했다."내가 5kg나 쪘다니!"송아영은 전보다 훨씬 두꺼워진 허리를 만지작대며 생각했다.'어쩐지 요즘 예찬 씨가 얌전하다 했더니 내가 살이 쪄서였구나...'"예찬 씨!"송아영은 부리나케 방으로 쳐들어갔다. 한창 잘 자고 있던 육예찬은 영문도 모른 채 혼 나고 말았다."어제까지만 해도 놀리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나 살쪘잖아. 살찌고 예전처럼 예쁘지 않으니까 요즘 뜸해진 거 아니야?"육예찬은 가로누워서 손으로 머리를 짚은 채 그
송아영은 얼빠진 표정으로 배를 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임신에 그녀는 미처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다.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육예찬은 쉴 틈 없이 먹을 것을 만들어 주고, 일찍 자도록 잔소리하고, 좋은 음식만 먹게 하고, 하이힐을 못 신게 할 뿐만 아니라, 뛰지도 못하게 하는 걸 봐서 진작에 발견한 듯했다.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육예찬은 송아영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안아줬다."왜 빨리 말 안해줬어?"육예찬은 시무룩한 표정의 송아영을 바라보며 물었다."혹시...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당연히 아니지."송아영이 황급히 말했다."하지만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할 거 아니야. 하루아침에 임신 소식을 알고 나니까 약간 무서워..."육예찬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미안해,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 빨리 알려주면 혹시 아이를 지우지 않을까 해서 감히 말 못 했어."육예찬은 3개월 차에 들어설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때가 되면 쉽게 아이를 지우지 못할 테니까. 아이가 너무 간절한 나머지 그는 송아영의 임신에 대한 두려움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누가 지운대?"송아영이 울다가 웃다가 하며 말했다."나는 그냥 아플까 봐 무서울 뿐이야."윤예찬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마에 뽀뽀했다."내가 계속 같이 있어 줄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의사를 찾아서 무조건 고생하지 않도록 해 줄게."송아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만약에... 나랑 아이가 다 위험해지면 누구부터 살릴 거야?"육예찬은 그녀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히 당신부터 구해야지. 아이는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아내는 아닌걸."송아영은 키득키득 웃으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가끔가다 내가 아내를 만난 건지, 딸을 만난 건지 알 수가 없어. 이렇게 툭 하면 눈물을 흘리니...""뭐라고?""아무것도 아니야."육예찬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우
여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넌 양심도 없냐?"'여기서 또 나를 얼마나 더 귀찮게 하려고?'반지훈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얘기에 양심이 왜 필요하지?"여준우는 피식 웃더니 테이블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강성연 씨도 알고 있나? 네가 얼마나 뻔뻔한지?"반지훈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뻔뻔하지 않고 어떻게 연애를 해?""..."강성연과 명승희는 마침 위층에 있었고, 명승희는 강성연의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저 두 사람 원래 저런 식이에요?" 강성연은 머리를 돌려 명승희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야 발견했어요? 30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유치함이죠."명승희는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얼음보다 차갑다던 전설 속의 반지훈이 여준우만 만나면 약간 이상해지니 말이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사이좋은 커플이고 명승희와 강성연이 방해꾼 같았다.강성연은 명승희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다."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지훈 씨는 누굴 만나든 다 같은 태도거든요. 예전은 구천광 씨, 지금은 여준우 씨. 그래도 아직 할아버지를 상대로 투덜거리는 건 본 적 없네요."명승희는 미소를 지으며 강성연과 함께 방 안으로 돌아왔다."어찌 됐든 성연 씨한테만 잘 해주면 됐죠."강성연은 침대의 끄트머리에 앉으며 말했다."그건 준우 씨도 마찬가지잖아요."명승희는 커튼을 열고 창가에 맺힌 물방울을 바라봤다."확실히 전보다 훨씬 잘 해주기는 해요."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인정하기 전에는 얼마나 속을 태웠는지 모른다. 그녀는 몸을 돌려 강성연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서로 좋아하는 것과 짝사랑은 완전히 다른 거더라고요. 저는 이제야 발견했어요."강성연은 몸을 일으켜 창가로 왔다."제가 보기에 승희 씨는 행운아예요."명승희는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창 밖을 바라봤다.비는 점차 줄어들었고 우중충하던 하늘도 서서히 맑아졌다. 강성연과 반지훈은 슬슬 떠날 준비를 했다. 강성연은 떠나기 직전에 무언가 생각난 듯 명승희의 앞으로
반지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벌써 반지까지 선물한 거야?""그럼요."강성연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더니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다른 브랜드에서 반지를 맞추기 전에 제가 선수 쳐야죠."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그래, 네 말이 맞아."이때 강성연의 휴대전화가 울리고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송아영이었다.메시지를 확인하고 난 강성연은 기쁜 말투로 반지훈을 불렀다."지훈 씨, 아영이가 임신했대요."반지훈은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나도 좋은 소식이 있어. 구천광이 딸을 낳았대.""벌써요?"강성연은 머리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반지훈은 덤덤하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았다."방금 문자 받았어."반년 후, 늦가을.반지훈과 강성연은 soul 주얼리가 S국에서 자리를 잡은 후 바로 서울로 돌아왔다.강성연은 양손 무겁게 선물을 들고 아이를 낳은 김아린을 만나기 위해 구씨 저택으로 왔다. 김아린은 이루 셀 수도 없을 정도의 물건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왔어?""당연히 많이 들고 와야지. 우리 집 유이가 언니가 될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강성연은 아이의 침대 곁으로 가서 앉았다. 아이는 젖병을 문 채로 새근새근 자고 있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아주 귀여웠다.김아린은 팔짱을 끼고 곁에서 웃었다."아영이도 곧 아이를 낳을 테니 유이가 소원을 제대로 이루겠네.""그러게. 31주라고 하던데 올해 안에 낳을 것 같아."강성연은 아이의 볼을 찔러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다 희나를 깨우겠어. 희나를 달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희나?"강성연이 머리를 들며 물었다."벌써 이름을 지었어?"김아린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천광 씨가 지었어, 구희나라고.""희나야."강성연이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언제 다 커서 우리 집으로 시집올래?"김아린은 웃으면서 말했다."나는 이 혼사에 동의한 적 없어.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이를 벌써 며느리로
강성연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스스로 검찰원에 들어가서 바닥부터 시작하는 용기가 아주 대단하네요."검찰원에는 구의범의 큰아버지가 인맥으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구의범이 부탁하기만 하면 바로 취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의범은 자신의 힘으로 시험을 통과해 검찰원에 들어갔다. 모든 이에게 자신이 방탕한 재벌 집 도련님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이다."네가 감히 내 남자를 꼬셔?!"룸의 다른 한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손님들은 저마다 고개를 돌렸다.강성연도 머리를 돌렸다. 한 40대 여자가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손을 올렸다. 젊은 여자가 그녀를 등지고 있는 관계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젊은 여자는 뺨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고 레스토랑 직원이 후다닥 달려가 말렸다. 그러자 중년 여자는 더욱 기세등등해서 소리를 질렀다."신경 꺼! 내 남자를 꼬신 년을 좀 때리겠다는데 너희들이 무슨 자격으로 막아?"뺨을 맞은 여자는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언성을 더 높이며 말했다."남편을 두고 먼저 바람피운 주제에 어디서 감히 큰 소리예요? 당신은 유부녀지민 저는 솔로라고요!""솔로? 남편한테 버림받은 주제에 감히 솔로를 운운해?"중년 여자는 안색이 확 변하며 말했다. 젊은 여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저는 이혼이지만 당신은 기혼이에요. 당신 남편이 누군지 다 알고 있으니까, 내 몸에 한 번만 더 손을 댔다가는 다 일러바칠 줄 알아요."갑작스러운 상황에 관심 없었던 강성연은 머리를 돌려 밥 먹는 데 열중했다. 이때 그녀는 익숙한 이름을 들었고 멈칫하며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머리를 돌렸다.레스토랑 매니저는 경비와 함께 두 사람을 찾아갔고 강성연은 그제야 젊은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했다.강예림.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자 그녀는 강현 못지않게 많이 변해 있었다. 유일한 다른 점이라면 강현은 이성적으로 변한 한편, 강예림은 완전히 타락했다는 것이다.구의범은 두 사람을 유심히 바라보는 강성연에
"만약 강성연이 진심으로 너를 걱정한다면 밑바닥에서 일하도록 내버려 두는 게 아닌 회사 관리직을 맡겼을 거야."강현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보고 강예림이 더 큰 소리로 웃었다."넌 어쩌면 할머니랑 똑같이 멍청할까? 너도 할머니도 그냥 강성연의 개노릇을 할 운명이..."짝!강예림은 바닥으로 쓰러졌다. 뒤늦게 정신 차린 그녀는 빨개진 얼굴을 감싸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강현을 바라봤다."네가 감히 나를 때려?"강현은 찌릿찌릿한 손바닥을 힐끗 보고는 심호흡했다."성연 누나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을 한 사람은 우리야."강예림은 피식 웃었다."너 혹시 강성연한테 세뇌라도 당했어?"그녀의 표정은 점점 더 악독해졌다."그년만 아니었어도 내가 정유하 같은 쓰레기랑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어! 너도 잘 알잖아, 내가 어떤 취급을 당했는지."강현의 머릿속에는 강예림이 일 년 전 정씨 집안에서 쫓겨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팔뚝, 다리, 하물며 목까지 전부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그중에는 담배불로 지진 흔적, 칼로 그은 흔적, 벨트나 막대로 때린 흔적, 주먹을 휘두른 흔적까지 있었다. 다년간의 가정폭력 끝에 강예림은 여러 차례 유산을 했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강예림이 불임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정씨 집안에서는 이혼을 요구했고 그렇게 그녀를 쫓아내 버렸다.강현은 눈을 찔끔 감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그게 성연 누나랑 무슨 상관인데?""왜 상관없어?"강예림이 강현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질렀다."그년이 꾀만 부리지 않았어도 내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어! 누구는 인생이 파탄 났는데 넌 아직도 그년 편을 드는 거야?"강예림의 아우성에 강현은 그저 머리를 숙였다."누나 혹시 인과관계가 뭔지 알아?"강현이 말했다."내가 양아치 짓을 하고 다닐 때 사우현 형님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알지? 내가 감옥에서 우현 형님을 만났어. 얼마 전 형님이 살인죄로 15년 판결을 받았거든. 형님은 진성의 사장이자 장사꾼이야. 인맥
"할머니랑 엄마도 물론 잘못했지. 근데 누나는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있어?"강현의 질문에 강예림은 눈에 띄게 멈칫했다. 그녀는 호흡마저 멈춘 듯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강현은 덤덤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할머니랑 엄마가 무슨 계획을 세우는지 알면서도 동참한 것. 그건 누나의 잘못이 아니야?"강예림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아... 아니야.""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 또는 악이란 존재하지 않아. 같은 의미에서 절대적인 희생자 역시 존재하지 않아. 할머니랑 엄마를 도와 성연 누나를 못살게 굴려고 만든 계획에 되레 당했으니, 이게 대가가 아니고 뭐겠어?"강현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성연 누나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할머니를 내쫓지 않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누나는 상상도 못 하지? 우리는 성연 누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이 없어. 만약 갈 곳이 없다면 내가 집이라도 찾아줄게."강현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몸을 돌려 떠났다.강예림은 머리를 숙이고 벽에 기댔다. 그녀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이를 악물었다.'이제 와서 나를 동정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내가 얌전히 도움받는 거지라도 되는 줄 아나?"강예림이 몸을 돌려 떠나려고 한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다가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강현이 네 동생이었어?"강예림은 몸을 흠칫 떨다가 상대가 유태식인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아까는 어디에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예요?"유태식은 그녀의 얼굴을 억지로 돌리며 말했다."내가 어떻게 감히 나서겠어. 내 미래가 그 여자 손에 있는걸. 승진만 아니었어도 그런 늙다리는 상종하지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강현이 진짜 네 동생이야?"강예림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강현을 알아요?"유태식은 안색이 확 어두워지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알다마다. 우리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거든. 그 녀석이 나랑 늙다리의 관계를 빌미 삼아 얼마나 귀찮게 굴었는지. 네 동생 감옥에 간 적 있다했지? 그게 강현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