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두 조각 더 남았어요.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의사는 피로 물들어진 유리 조각을 트레이 위에 올려놓은 뒤 계속해 유리 조각을 뽑았다.옆에 있던 간호사가 명승희를 눌렀다. 명승희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턱을 덜덜 떨었고 이마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마지막 조각까지 뽑아낸 뒤 간호사는 상처를 처리하고 다시 마취를 놓고 상처를 꿰맸다.명승희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상처를 꿰맬 때는 유리 조각을 뽑을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개미가 물어뜯는 듯한 아픔에 자꾸만 앓는 소리가 났다.여준우가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겉옷을 미처 입지 못했고 넥타이는 풀어 헤쳐져서 삐뚤빼뚤했다. 그의 흰 셔츠는 땀에 젖어 그의 건장한 몸에 달라붙었는데 탄탄한 복근이 아른거렸다.그는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뒤 심호흡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평온을 되찾은 그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간호사는 명승희에게 거즈를 붙여주고 있었다. 명승희는 문을 등지고 있었고 왼쪽 어깨와 팔을 드러낸 채였다. 그녀는 간호사가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만 알고 있었지 여준우가 온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간호사가 치료를 마치고 떠나자 명승희는 그제야 창문을 통해 등 뒤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바라봤다.“왜 여기 왔어요?”여준우는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턱을 쥐고 뺨을 돌려봤다. 그녀의 오른쪽 얼굴에 희미하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여준우는 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살살 쓸어보았다.“또 어디 다쳤어요?”명승희는 넋을 놓고 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다친 데 없어요.”명승희는 천천히 소매에 팔을 넣으려 했지만 어깨의 상처가 당기는 느낌에 앓는 소리를 냈다.여준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입지 말고 그냥 누워요.”명승희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옷을 제대로 입기도 전에 여준우가 그녀의 허리를 부축해 눕게 했고 이불까지 덮어줬다.명승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준우를 바라봤다.“운전해 주신
경호원은 조금 머쓱했다.“명승희 씨,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사실...”문가에 서 있는 여준우를 본 경호원은 말을 멈췄다.“준우 님?”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어머, 깨어났어요?”여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쉬지 않고 왜 이곳에 온 거예요?”“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다리도 멀쩡한데 뭘 쉬어요?”명승희는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당신 경호원이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어요. 쉬어야 할 사람은 이분이죠.”여준우는 심호흡했다.“그러면 왜 이곳까지 와서 남 쉬는 거 방해해요?”명승희는 말문이 막혔다.“난... 그냥 감사 인사하려고 왔죠. 기사님이 운전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우리 두 사람 다 황천길 건넜을걸요.”경호원은 여준우를 바라봤다.“준우 님.”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둘이서만 얘기해야 하는 주제였다.여준우는 당연히 그 뜻을 알아챘다. 그는 명승희를 부축해서 세운 뒤 그녀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해 줬다.“일단 돌아가서 쉬어요. 자꾸 쏘다니지 말고.”명승희는 당황했다. 어젯밤부터 여준우는 굉장히 이상했다. 명승희는 그들을 힐끗 보더니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경호원은 명승희가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어젯밤 사고는 누군가 일부러 낸 거예요. 제 추측으로는 명승희 씨를 노린 것 같습니다.”다행히 어젯밤 그는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않았다. 그 차는 그들의 차를 전복시킬 만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비록 차가 전복되지는 않았지만 뒷좌석이 크게 충격을 받아 차가 기울어지는 동시에 그가 핸들을 돌려 차가 풀숲 쪽으로 쓰러졌고 그로 인해 명승희가 깨진 유리 조각에 어깨를 찔리게 된 것이었다.여준우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번 사고로 그는 다시금 레이나를 떠올렸다.이번에도 사고가 아니었다.명승희는 병실로 돌아와 최민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최민아는 여태 그녀가 여행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명승희가 최민아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할 때, 병실 밖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는 비싼 옷차림에 우아한 분
유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나는 명승희의 얼굴에서 그녀의 속셈을 파악하고 싶은 듯했다.여준우는 문밖에 서 있던 경호원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여긴 왜 오셨어요?”유나는 명승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여준우를 바라봤다.“내가 뭘 하러 왔는지 알고 있을 텐데.”여준우는 냉소를 흘렸다.“어머니께서 손을 쓰셨다는 걸 인정한 거네요.”유나의 눈동자에 노여움이 스쳐 지나갔다.“난 반드시 너 대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해. 네가 이 여자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나도 절대 이 여자가 편히 지내게 하지 않을 거야.”명승희는 다소 놀랐다.손을 썼다는 건 뭘까? 설마 어젯밤 그 일이 그냥 뜻밖의 사고가 아니었단 말인가?여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한참 뒤, 여준우는 명승희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데려갔다.유나가 소리를 질렀다.“여준우,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여준우는 걸음을 멈췄고 명승희의 어깨를 잡았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고개를 돌린 그는 눈이 벌게져서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어디 한 번 해보세요.”유나의 표정이 굳었다.여준우가 겨우 여자 한 명 때문에 자기 말에 반항하자 유나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아들이 컸다고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여준우는 명승희를 안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명승희를 차 뒷좌석에 앉힌 뒤 운전기사에게 그녀를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뒷좌석 문을 닫으려던 여준우는 갑자기 명승희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명승희의 동공이 움츠러들면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여준우는 미련을 두듯 입술을 뗐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그녀의 얼굴 전체를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손으로 명승희의 얼굴을 잡고 있었다.“당신 여권은 프런트 데스크에 뒀으니까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요.”“당신...”명승희는 살짝 놀랐다. 그가 이렇게 빨리 자신을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명승희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니 두 남자가 문을 열었고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여준우의 약혼녀 맨디였다.맨디는 미소를 지었다.“죄송하네요. 이런 방법으로 모셔 와서.”“모셔 왔다고요?”명승희는 웃었다.“납치랑 다를 바가 없는데요.”“납치면 뭐 어떤가요?”맨디는 개의치 않았다.“Y국에서는 경찰도 감히 우리 가문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해요. 혹시 신고라도 하려고요?”명승희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심호흡했다.“뭘 어쩔 셈이죠?”맨디는 팔짱을 두른 채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난 여준우 씨를 무척 좋아해요.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죠. 그가... 레이나를 사랑했을 때부터요.”맨디는 명승희의 옆으로 걸어가면서 느긋하게 말했다.“여준우 씨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난 어차피 그랑 결혼할 거니까요. 레이나가 죽은 뒤 여준우 씨의 마음도 레이나와 같이 죽었어요. 준우 씨가 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른 여자들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명승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죠?”맨디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맨디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준우 씨가 당신이랑 가볍게 만날 생각이었다면 그냥 못 본 척했을 거예요. 그의 주위에는 여자들이 널렸고 준우 씨가 진심이 아니라면 상관없으니까요.”맨디는 명승희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턱을 쥐었다.“그런데 당신을 대하는 준우 씨의 태도가 다르더라고요.”맨디의 손을 쳐낸 명승희는 상처가 아파와 이를 악물었다.“맨디 씨, 여준우 씨가 나한테 자기 연인 노릇 하라고 강요한 거예요. 그리고 난 그저 그의 수많은 연인 중 한 명일 뿐이고요. 심지어 그는 날 Y국에 가둬두려고 했어요. 그게 남다른 건가요?”맨디는 당황했다. 그녀는 갑자기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명승희는 거즈가 젖은 게 느껴졌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맨디 씨, 난 당신에게서 여준우 씨를 빼앗을
맨디가 미소를 거두었다.“반드시 사랑으로 결혼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난 그냥 준우 씨 아내가 되면 만족해요. 그가 날 사랑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나랑 그 사람은 천생연분이에요. 오직 나만이 그에게 어울린다고요!”맨디가 밀치는 바람에 명승희는 벽에 부딪혔다. 맨디는 갑자기 발을 들어 명승희 어깨의 상처를 힘껏 짓밟았다.명승희는 헛숨을 들이키면서 고통을 참았다. 피가 거즈에서 흘러나와 그녀의 옷자락을 빨갛게 물들였다.“많이 아파요?”맨디는 몸을 숙혀 그녀를 바라보며 음산하게 웃어 보였다.“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난 당신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사할 거예요.”맨디는 손을 들어 남자 3, 4명을 불렀고 명승희는 표정이 굳으면서 안색이 창백해졌다.맨디는 명승희의 팔을 잡고 그녀를 남자들의 앞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명승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준우 씨는 다른 남자가 자기 장난감에 손을 대는 걸 싫어해요. 그러니까 당신을 망쳐야만 준우 씨가 완전히 마음을 접어요.”샌디에이고 저택.여준우는 와인을 한 잔 따랐고 붉은색 액체가 천천히 유리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여준우는 와인잔을 잡고 살살 흔들더니 시선을 들어 옆에서 지키고 있는 검은색 옷을 입은 경호원을 바라봤다.“지금 날 가둔 거예요?”유나가 위층에서 내려왔다.“준우야, 이건 다 널 위해서야. 넌 그 여자랑 너무 많이 엮이면 안 돼.”여준우는 천천히 술을 들이켜더니 웃음을 터뜨렸다.“나랑 그 여자는 이미 끝났어요.”유나는 가라앉은 얼굴로 멈춰 섰다.“그래? 네가 그 여자를 떠나보내긴 했지만 네가 다시 그 여자를 찾아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잖아.”여준우는 미소를 거두고 자신의 어머니를 노려봤다.“그래서요.”유나는 미소를 지으며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준우야, 넌 엄마가 키운 훌륭한 아이야. 별거 아닌 여자 때문에 이렇게 변해버리면 안 되지.”“제가 이 꼴이 된 건 어머니 탓인데요.”여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술잔을 내려놓았다.
“당신은 절 낳아준 제 친모니까 제가 어머니께 손을 쓸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 목숨은 어머니가 제게 준 것이니 제가 다시 돌려드릴 수는 있어요.”여준우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어머니, 전 37년 중 전 25년 동안 어머니의 통제를 받으며 살았어요. 전 단 한 번도 어머니를 미워한 적 없어요. 어머니는 절 사랑하는 게 맞으니까요. 하지만 전 이제 어머니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겠어요. 레이나는 아무 잘못 없어요. 제가 잘못한 거죠. 레이나를 사랑했으면 안 됐는데. 명승희 씨도 잘못은 없어요. 잘못한 건 저죠. 제가 그녀를 건드렸으니까요.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짓을 하셨죠? 절 망가뜨리면 어머니도 이젠 그만하시겠죠.”“여준우... 총 내려놔. 착하지. 넌 내 목숨만큼 소중한 아이야. 난 너 없으면 안 돼...”유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토록 숨 막히는 기분은 느껴본 적 없었다. 친아들이 총을 머리에 가져다 대면서 본인의 목숨으로 그녀를 위협하고 있었다.여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장전한 뒤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안 돼!”유나는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절하게 소리쳤다.“보내줄게. 보내주면 되는 거지?”여준우는 그제야 총을 내려놓고 겉옷을 집은 뒤 옆에 서 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을 밀치고 밖으로 뛰쳐나갔다.유나는 힘없이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손도 덜덜 떨렸다. 그녀는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여준우는 도로 위를 질주했다. 그는 뺨을 꿈틀거리더니 이를 악물고 액셀을 밟았다.차는 교외의 허름한 곳에 다다랐다. 그곳은 외딴곳이었는데 철문은 닫혀있었고 오로지 철조망에 가로막힌 창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밖에는 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맨디 차의 번호판이었다.여준우는 총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안에서 두 남자가 걸어 나오자 여준우는 총을 들었고 남자가 그를 발견한 순간, 총을 쐈다.두 번의 총소리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죽어야 할 사람은 그였고, 잘못을 저지른 것도 그였다.결국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지 못했다.*의사 선생님, 제 아들 깨어났잖아요. 이미 일주일이 지났어요. 그런데 왜 이런 상태인 거예요?”유나는 의사의 어깨를 잡고 히스테리를 부르며 물었다.의사는 깨어난 뒤 좀비 같아 보이는 여준우를 힐끗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사모님, 죄송합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했어요. 환자분의 상태를 보니 아마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심리적인 문제라니...유나는 멍한 표정으로 의사를 놓아줬다.“왜 이렇게 된 거죠?”“준우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 아니냐?”여준우의 고모, 여정희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와 유나의 뺨을 때렸고 유나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반지훈과 강성연은 문밖에 서 있었다. 그들은 여정희와 같이 온 것이었다.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형님...”“여지우가 너한테 집안의 일을 맡겼지. 난 널 믿었어. 그래서 Y국을 오랫동안 떠나서 있었고. 그런데 그사이가 여씨 가문의 분위기를 이렇게 흐려?”여정희는 지팡이로 땅을 힘껏 내리치며 화를 냈다.유나는 흠칫했다.“형님, 제가 잘못했어요...”“네 잘못을 알아? 준우가 저 꼴이 됐으니 네가 잘못을 깨달았다고 해도 이미 늦었어.”여정희는 고개를 들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벌겠다.“유나야, 네 의도가 좋았었다고 해도 준우에 대한 너의 사랑은 너무 이기적이야. 걔한테 숨 쉴 기회조차 주지 않았잖아.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건 너처럼 걔를 통제하고 걔 인생을 장악하는 게 아니야. 놔줄 줄 알아야지. 그리고 준우는 이미 37살이야. 세 살 짜리 애가 아니라고.”입을 꾹 다문 유나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녀는 이내 얼굴을 가리고 통곡하기 시작했다.“넌 준우랑 레이나가 만나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해서 레이나가 사고를 당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그거 아니? 넌 그때 이미 네 손으로 직접 네 아들을
여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반지훈은 웃음을 터뜨렸다.“연기 잘하네. 그러면 페르시아만 프로젝트...”“사람 짜증 나게 하네.”여준우는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 비에 젖은 차가운 얼굴에서 짜증이 보였다.반지훈은 병실 안으로 들어간 뒤 의자를 당겨 앉았다.“바람둥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준우가 여자 한 명 때문에 이 꼴이 되다니, 참 보기 드문 일이야.”’여준우는 창가에 기대었다. 그의 마음은 이미 차게 식었다. 그는 차갑고 습한 빗물이 느껴지지 않았다.“웃기지 않아? 나도 웃겨.”그가 말했다.“알게 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여자인데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는 내가 너무 웃겨. 얼굴도 그리 예쁜 건 아니고, 몸매는 괜찮지만 성격은 안 좋아. 똑똑해 보이지만 사실 바보 같고 순진해.”반지훈은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들어 그를 보았다. 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여준우의 시선은 여전히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눈빛은 어두웠다.“내가 그녀를 신경 쓴 건 그녀의 레이나처럼 바보 같은 면에 끌려서였어. 처음에는 그저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여준우의 목소리가 뚝 그쳤다.여준우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손가락으로 창문을 툭툭 두드렸다. 그의 눈가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빗방울인지, 아니면 눈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반지훈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케니 가문의 딸이 죽었어. 알고 있어?”여준우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시선을 내려뜨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요 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같은 시각, 케니 가문의 사람이 샌디에이고 저택에 도착했다. 양측 사람들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맨디의 아버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냉정하게 차를 마시는 여정희의 모습을 바라봤다.“이게 무슨 뜻입니까?”여정희는 찻잔을 들면서 미소 지었다.“제 뜻은 아주 명확할 텐데요. 맨디 씨의 죽음은 저희 준우랑 무관합니다. 게다가 맨디 씨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 그게 우리 여씨 가문이랑 무슨 관련이 있나요?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