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우가 손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덧 그리다가 피식 웃었다.“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나한테 여자가 많지는 않아요.”“몇 백은 아니더라도 몇 십 명은 될 거 아니에요?”그녀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여준우가 오히려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아니요.”명승희는 그의 변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 붙잡힌 손을 빼낸 후 여준우의 가슴을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단단한 바윗돌처럼 꿈쩍하지 않았다.그가 그녀의 쇄골에 얼굴을 묻으며 웃었다.“나한테 여자가 많은 게 싫어요?”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자 명승희는 아예 버둥거리는 걸 포기했다. 그녀는 작전을 바꾸었다. 그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여자를 흉내 내는 것이다.“맞아요. 난 당신 주위에 여자가 많은 게 너무 싫어요.”명승희가 적극적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녀가 섹시한 눈빛으로 그를 흘겨보았다.“내가 왜 다른 여자들과 한 남자를 공유해야 하는데요. 그것도 여준우 씨처럼 이렇게 우수한 남자를 말이에요. 난 당신을 독점하고 싶어요.”그녀가 순간 그의 목을 잡아당겨 그와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당신 말이 맞아요. 그날 밤, 내가 당신을 거절하지 않았던 건 당신한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여자가 되어달란 말을 거절했던 건 그냥 한번 튕겨봤던 것뿐이고요.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진 갑부의 여자가 되는 걸 누가 싫어하겠어요? 난 당신의 여자가 될 거고, 당신 주변의 여자들을 깡그리 쫓아버릴 거예요.”명승희가 고개를 숙여 그에게 키스하려 했다. 이쯤 했으면 그가 자신을 밀쳐내야 하는 게 정상인데,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피하지도 않았다.여준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 속의 저의를 찾아내고 있었다. 명승희가 머뭇거린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갑자기 그가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고정한 채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입을 맞추었다.그녀가 얼어붙었다.여준우는 짧게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곧바로 입술을 뗐다. 그가 커다란 손으로 한 손에 잡히는
명승희가 고개를 홱 돌린 후 잠깐 숨을 돌렸다.“난 물러서지 않았어요.”여준우가 끙 하고 짧게 신음하더니 이어서 말했다.“나를 좋아하게 될까 걱정하며 움츠러든 것도 물러서는 것에 속하죠.”명승희는 그의 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누가 움츠러들었다고 그래요. 그리고 왜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대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죠.”“당신…”명승희는 씩씩거리면서도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혀 뭐라 대꾸하지 못했다. 여준우가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그녀의 몸에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본 그가 낮게 웃었다.“당신은 나로 인해서 얻는 자극을 좋아하잖아요. 거봐요. 역시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거예요.”명승희가 입술을 꼭 깨물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여준우가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대외적으로는 나한테 여자가 꽤나 많지만.”그가 몇 초간 침묵했다. 그의 눈에 웃음기가 가득했다.“함께 밤을 보낸 여자는 당신이 두 번째에요. 어쩌면 마지막 여자가 될지도 모르죠.”샌디에이고 저택.유나와 맨디가 정원에 앉아 함께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 작전이 실패한 걸 알고 맨디를 위로해 주었다.“그 여자는 신경 쓰지 말거라. 넌 케니 가문의 딸이잖니. 준우도 결국에는 너를 선택하게 될 거야.”맨디가 찻잔을 내려놓았다.“어머님, 어쩌면 준우 씨가 그 여자한테 진심일지도 몰라요.”“진심?”유나가 냉소를 지었다. 그녀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그 여자가 죽은 뒤로 준우는 그 어떤 여자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어. 그저 잠깐 생긴 흥미 거리일 뿐이야.”유나가 그 여자를 거론하자 맨디가 몸을 굳혔다.“하지만 그녀가 죽은 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흘렀잖아요. 어쩌면 준우 씨도 이미 그녀를 잊고…”유나가 눈을 치켜떴다.“만약 그 애가 살아있다면?”“그럴 리가요!”매디가 화들짝 놀랐다.“장례를 마치고 화장하는
반지훈은 손을 들어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은 후 예쁜 케이크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데이브가 선물한 거야.”강성연은 케이크를 받았다.“데이브 대통령을 만났어요?”반지훈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후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치더니 천천히 소매를 올렸다.“아직 남은 일 있어?”강성연은 웃음을 터뜨렸다.“절 도와주려고요?”“아니면?”반지훈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직원 몇 명 더 구하라니까, 매일 늦게까지 당신을 기다리게 되잖아.”강성연은 소파에 앉아 케이크 포장을 뜯었다.“아직 안정적이지 않아서 그래요. 안정되면 직원을 더 채용할래요.”그녀가 포크로 조금 먹어 보니 달콤하고 맛있었다.“어머, 맛있네요.”반지훈은 그녀를 도와 정산을 했다.강성연은 고개를 들어 열심히 일하고 있는 반지훈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열심히 일하는 남자는 멋있어!“여보, 먹어봐요.”강성연은 케이크를 그의 앞에 놓았다. 반지훈은 고개를 들었고 강성연 입에 묻은 초콜릿 크림을 발견했다.“맛봐요, 나 혼자 다 못 먹어요.”강성연은 그에게 먹여주려고 했다.반지훈은 손을 멈추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당신에게 말해줄 비밀이 있어.”그녀는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무슨 비밀이요?”반지훈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입술에 키스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케이크 맛이 당신보다 달콤하지 않은 것 같은데.”강성연은 빨개진 얼굴로 낮게 중얼거렸다.“정말 못살아.”반지훈은 웃었다.“난 항상 이렇잖아.”그녀는 계속 케이크를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당신의 그런 모습이 좋아요.”반지훈은 그녀의 턱을 잡았다.“이틀 뒤에 당신의 사촌 오빠랑 송아영이 S국으로 올건데, 기뻐?”강성연은 그들이 아마 외할아버지를 보러 왔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질투” 하는 반지훈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질투쟁이, 아영이가 저랑 놀고 싶어 해도 아영이 남편이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이틀 후, 육예찬과 송아영이 S국에 도착했다. 연혁을 만난 적이 없는
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전 그 사람의 일에 대해 잘 몰라요.”육예찬은 이마를 주무르며 전방을 바라보았다.“명승희를 걱정할 바에는 차라리 이따 외할아버지를 만날 일이나 걱정해.”송아영은 표정이 살짝 바뀌더니 강성연의 손을 잡았다.“성연아, 네 외할아버지...... 무서워?”강성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널 놀리는 거야. 외할아버지는 무서운 분이 아니셔.”송아영은 한시름을 놓았다가 연혁을 보고 다시 깜짝 놀랐다. 연혁은 비록 휠체어에 앉아있지만 매우 남다른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서있었다.“외, 외 할아버지 안녕하세요.”연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육예찬을 바라보았다.“말더듬이와 결혼한 거냐?”육예찬은 참지 못하고 웃었다.송아영은 난처하여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대답했다.“외할아버지, 전 말더듬이가 아니라...... 긴장해서 그래요.”“아, 긴장한 거구나.”연혁은 시름을 놓고 찻잔을 내려놓았다.“내가 호랑이도 아니고, 긴장할 필요 없어.”강성연도 웃으며 말했다.“아영이가 처음 외할아버지를 만나게 된 거니, 긴장한 것도 당연하죠.”연혁은 표정이 조금 풀어지더니 손을 저었다.“앉거라, 다 가족인데 편하게 있어.”송아영은 고개를 끄덕인 후 소파에 앉았다. 육예찬도 함께 소파에 앉자 연혁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널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육예찬은 고개를 들었다.“전 왜 앉으면 안 돼요?”“예전에는 반지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 네가 마음에 들지 않구나.”연혁은 현장에 있는 반지훈을 신경 쓰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반지훈은 연혁을 흘깃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예찬은 미간을 찌푸렸다.“반지훈 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죠? 저도 외할아버지 친손자잖아요.”“친손자면 또 뭐?”연혁은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다.“너 결혼하면서도 이 할아버지한테 알리지 않았잖아. 근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앉아?” “전 억울해요, 전 할아버
다른 계획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진심일 수도 있었다.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일주일 뒤에 여준우 만나러 Y국에 가는데 같이 갈래?”강성연은 그의 넥타이 주름을 펴줬다.“네, 그래도 명승희 씨는 soul 브랜드 모델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모르는 척해요?”반지훈은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웃었다.*명승희가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협탁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강성연의 답장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다급히 휴대폰을 베개 밑에 숨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준우는 화장대 앞에서 헤어 오일을 바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아침을 먹지 않았네요.”“배고프지 않아요.”명승희는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비친 그를 바라보았다.“연예인들은 몸매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여준우는 그녀 쪽으로 걸어오더니 화장대에 손을 지탱하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육감적인 당신이 더 좋아요.”명승희는 무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되고 싶지 않아요.”그는 웃으며 명승희의 볼을 만졌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난 다 좋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바라보았다.“나가서 쇼핑하고 싶어요. 호텔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해요.”여준우는 그녀의 턱을 잡고 눈을 맞췄다. “요즘 외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무슨 뜻이죠?”명승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여준우 씨, 지금 당신은 불법적으로 절 감금하는 거예요. 당신 때문에 모든 일이 지연됐잖아요,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고요!”여준우는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거부하자 여준우는 웃었다.“본인이 한 달 전부터 일정 다 미뤘잖아요. 정말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게 맞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렸다.“후회하면 안 돼요? 전 지금 돈이 필요해요.”여준우가 말했다.“얼마 필요한데요? 내가 줄게요.”명승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당신 돈은 싫어요.”여준우는 그녀를 꽉
명승희는 심호흡했다.“기쁘지 않은 거예요?”“기뻐요.”여준우는 이를 악물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명승희 씨는 너무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요?”명승희는 힘겹게 침을 삼키며 헛웃음 쳤다.“남자들은 달래기 참 어렵네요.”“달래는 건 어렵지 않아요.”여준우는 바닥으로 흘러내렸던 가운을 다시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그저 명승희 씨에게 달랠 마음이 없는 것뿐이죠.”명승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대를 짚었다.“그러면 이제 저 나가봐도 될까요?”여준우는 입고 있던 정장의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다행히도 여준우는 결론적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뮤지컬을 보러 갔고 여준우가 공연장을 통째로 빌려 커다란 공연장에 관중은 두 사람과 경호원뿐이었다.명승희는 그 뮤지컬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보는 내내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졸린 듯 연신 하품했다.“졸리면 돌아가요.”여준우는 여전히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명승희는 그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해 깨려고 노력했다.“안 졸려요.”여준우의 입가에 잠깐 엷은 미소가 걸렸지만 그는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두 시간짜리 뮤지컬인데 명승희는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녀는 배고 고프다는 핑계를 댔고 여준우는 경호원에게 레스토랑을 예약하라고 했다.명승희는 여준우의 옆에서 걷고 있었다. 쇼핑센터의 럭셔리 브랜드 광고 포스터에 그녀가 있었다. 명승희는 몇 분간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예전에는 걱정이라고는 없던 세계적인 모델이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어떤가?우리에 갇힌 채로 사육당하는 카나리아와 다를 바 없었다.여준우는 팔로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여준우는 그녀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 아름다운 눈동자만 내놓게 하고 다른 곳은 철저히 가렸다.쇼핑센터의 환한 조명이 두 사람 위로 드리워졌다. 여준우는 명승희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
맨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살짝 경직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그저 이분 얼굴이 궁금해서 그런 건에요.”여준우는 맨디의 손을 뿌리치더니 경고했다.“당신이 내 어머니랑 뭘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맨디는 안색이 살짝 달라지더니 이내 자연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여준우에게 조금이라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여준우 씨, 당신이 오해한 거예요.”맨디는 누군가를 봤는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애슐리.”여준우는 고개를 돌렸다. 조명 아래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지자 그의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됐다. 명승희를 끌어안고 있던 손도 내려놓았다.“레이나...”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봤다가 섬세하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빚어진 듯했고 실재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아름다운은 아주 공격적이었다.여준우의 반응을 본 맨디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레이나와 비슷하게 생긴 애슐리는 성형을 한 얼굴이었고, 여준우는 여전히 레이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애슐리는 그녀의 편이었고, 여준우의 곁에서 이 여자를 쫓아낸 뒤에 애슐리는 쓸모가 없어지니 말이다.맨디의 시선이 명승희에게 닿았다.애슐리는 살짝 미소 지었다.“미안해, 맨디. 나 좀 늦었어.”맨디는 애슐리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참, 이 사람은 내 약혼자, 여준우 씨야.”애슐리는 여준우를 바라보더니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여준우는 그녀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침묵했다.맨디는 여준우를 바라봤다.“당신이 레이나를 잊지 못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얘는 레이나가 아니라 애슐리예요. 애슐리를 만났을 때 나도 많이 놀랐어요. 이 세상에 레이나랑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여준우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맨디는 그의 눈동자에 레이나와 지나치게 닮은 애슐리만 있는 걸 보고 의기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레이나 씨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준우 님께서는 레이나 씨가 돌아가셔서...”경호원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명승희는 그가 하려던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준우는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뜨자 여자들을 가볍게 만나고 다녔을 것이다.그는 오늘 밤 레이나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만나고 크게 동요했다.하지만 이건 명승희에게 오히려 좋은 결과였다. 여준우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애슐리를 사랑하게 된다면 분명 자신을 놓아줄 것이니 말이다.그렇다면 떠날 수 있지 않을까?명승희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기쁘거나 기대가 되지 않았다.경호원이 핸들을 꺾으며 코너를 돌았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튀어나와 그들의 차량을 들이박았다.같은 시각, 레스토랑.여준우는 앞에 놓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맨디는 애슐리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이따금 여준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어쩐지 정신이 딴 데 팔린 듯했다. 맨디는 미소를 살짝 거두어들이며 물었다.“여준우 씨, 왜 그래요?”애슐리도 그를 바라보았다.여준우는 애슐리와 눈빛이 마주쳤음에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네요.”나이프를 들고 있던 맨디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여준우 씨,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레이나는 죽었어요.”여준우는 자세를 바꾸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내 앞에 데려온 이유는 날 시험하기 위해서인가요?”애슐리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유나 부인이 손보라고 해서 손본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맨디는 여준우를 바라봤다.“여준우 씨, 정말 오해예요. 난 당신이 레이나를 잊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난 단지 당신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길 바라는...”여준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몸을 뒤로 젖히더니 등받이에 팔을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