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획이 있는 게 아니라면 진심일 수도 있었다.반지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일주일 뒤에 여준우 만나러 Y국에 가는데 같이 갈래?”강성연은 그의 넥타이 주름을 펴줬다.“네, 그래도 명승희 씨는 soul 브랜드 모델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모르는 척해요?”반지훈은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웃었다.*명승희가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협탁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강성연의 답장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그녀는 다급히 휴대폰을 베개 밑에 숨겼다. 문을 열고 들어온 여준우는 화장대 앞에서 헤어 오일을 바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아침을 먹지 않았네요.”“배고프지 않아요.”명승희는 머리를 빗으며 거울에 비친 그를 바라보았다.“연예인들은 몸매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여준우는 그녀 쪽으로 걸어오더니 화장대에 손을 지탱하면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육감적인 당신이 더 좋아요.”명승희는 무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되고 싶지 않아요.”그는 웃으며 명승희의 볼을 만졌다.“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난 다 좋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바라보았다.“나가서 쇼핑하고 싶어요. 호텔에만 있으니 너무 심심해요.”여준우는 그녀의 턱을 잡고 눈을 맞췄다. “요즘 외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무슨 뜻이죠?”명승희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여준우 씨, 지금 당신은 불법적으로 절 감금하는 거예요. 당신 때문에 모든 일이 지연됐잖아요, 경제적 손실이 너무 크다고요!”여준우는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힘껏 품으로 끌어안았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거부하자 여준우는 웃었다.“본인이 한 달 전부터 일정 다 미뤘잖아요. 정말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는 게 맞아요?”그녀는 고개를 돌렸다.“후회하면 안 돼요? 전 지금 돈이 필요해요.”여준우가 말했다.“얼마 필요한데요? 내가 줄게요.”명승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당신 돈은 싫어요.”여준우는 그녀를 꽉
명승희는 심호흡했다.“기쁘지 않은 거예요?”“기뻐요.”여준우는 이를 악물더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명승희 씨는 너무 똑똑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너무 멍청하다고 해야 할까요?”명승희는 힘겹게 침을 삼키며 헛웃음 쳤다.“남자들은 달래기 참 어렵네요.”“달래는 건 어렵지 않아요.”여준우는 바닥으로 흘러내렸던 가운을 다시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그저 명승희 씨에게 달랠 마음이 없는 것뿐이죠.”명승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화장대를 짚었다.“그러면 이제 저 나가봐도 될까요?”여준우는 입고 있던 정장의 옷매무새를 정리한 뒤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다행히도 여준우는 결론적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그들은 뮤지컬을 보러 갔고 여준우가 공연장을 통째로 빌려 커다란 공연장에 관중은 두 사람과 경호원뿐이었다.명승희는 그 뮤지컬에 크게 관심이 없었기에 보는 내내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졸린 듯 연신 하품했다.“졸리면 돌아가요.”여준우는 여전히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명승희는 그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해 깨려고 노력했다.“안 졸려요.”여준우의 입가에 잠깐 엷은 미소가 걸렸지만 그는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두 시간짜리 뮤지컬인데 명승희는 한 시간 삼십 분 동안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다. 그녀는 배고 고프다는 핑계를 댔고 여준우는 경호원에게 레스토랑을 예약하라고 했다.명승희는 여준우의 옆에서 걷고 있었다. 쇼핑센터의 럭셔리 브랜드 광고 포스터에 그녀가 있었다. 명승희는 몇 분간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예전에는 걱정이라고는 없던 세계적인 모델이었는데 지금의 그녀는 어떤가?우리에 갇힌 채로 사육당하는 카나리아와 다를 바 없었다.여준우는 팔로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녀가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여준우는 그녀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워 아름다운 눈동자만 내놓게 하고 다른 곳은 철저히 가렸다.쇼핑센터의 환한 조명이 두 사람 위로 드리워졌다. 여준우는 명승희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다정하
맨디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살짝 경직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전 그저 이분 얼굴이 궁금해서 그런 건에요.”여준우는 맨디의 손을 뿌리치더니 경고했다.“당신이 내 어머니랑 뭘 꾸미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맨디는 안색이 살짝 달라지더니 이내 자연스레 시선을 피했다. 그녀는 여준우에게 조금이라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여준우 씨, 당신이 오해한 거예요.”맨디는 누군가를 봤는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애슐리.”여준우는 고개를 돌렸다. 조명 아래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해지자 그의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됐다. 명승희를 끌어안고 있던 손도 내려놓았다.“레이나...”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봤다가 섬세하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빚어진 듯했고 실재한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녀의 아름다운은 아주 공격적이었다.여준우의 반응을 본 맨디는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레이나와 비슷하게 생긴 애슐리는 성형을 한 얼굴이었고, 여준우는 여전히 레이나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애슐리는 그녀의 편이었고, 여준우의 곁에서 이 여자를 쫓아낸 뒤에 애슐리는 쓸모가 없어지니 말이다.맨디의 시선이 명승희에게 닿았다.애슐리는 살짝 미소 지었다.“미안해, 맨디. 나 좀 늦었어.”맨디는 애슐리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나도 도착한 지 얼마 안 됐어. 참, 이 사람은 내 약혼자, 여준우 씨야.”애슐리는 여준우를 바라보더니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여준우는 그녀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침묵했다.맨디는 여준우를 바라봤다.“당신이 레이나를 잊지 못했다는 거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얘는 레이나가 아니라 애슐리예요. 애슐리를 만났을 때 나도 많이 놀랐어요. 이 세상에 레이나랑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거든요.”여준우는 여전히 아무 말 없었다.맨디는 그의 눈동자에 레이나와 지나치게 닮은 애슐리만 있는 걸 보고 의기
경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레이나 씨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준우 님께서는 레이나 씨가 돌아가셔서...”경호원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명승희는 그가 하려던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준우는 사랑하던 사람이 세상을 뜨자 여자들을 가볍게 만나고 다녔을 것이다.그는 오늘 밤 레이나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만나고 크게 동요했다.하지만 이건 명승희에게 오히려 좋은 결과였다. 여준우가 비슷한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애슐리를 사랑하게 된다면 분명 자신을 놓아줄 것이니 말이다.그렇다면 떠날 수 있지 않을까?명승희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기쁘거나 기대가 되지 않았다.경호원이 핸들을 꺾으며 코너를 돌았는데 갑자기 차 한 대가 튀어나와 그들의 차량을 들이박았다.같은 시각, 레스토랑.여준우는 앞에 놓인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맨디는 애슐리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이따금 여준우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어쩐지 정신이 딴 데 팔린 듯했다. 맨디는 미소를 살짝 거두어들이며 물었다.“여준우 씨, 왜 그래요?”애슐리도 그를 바라보았다.여준우는 애슐리와 눈빛이 마주쳤음에도 평온한 표정이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이런 방법을 쓸 줄은 몰랐네요.”나이프를 들고 있던 맨디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런데도 그녀는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여준우 씨,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레이나는 죽었어요.”여준우는 자세를 바꾸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내 앞에 데려온 이유는 날 시험하기 위해서인가요?”애슐리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녀의 얼굴은 유나 부인이 손보라고 해서 손본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맨디는 여준우를 바라봤다.“여준우 씨, 정말 오해예요. 난 당신이 레이나를 잊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난 단지 당신이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길 바라는...”여준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몸을 뒤로 젖히더니 등받이에 팔을 올
“아직 두 조각 더 남았어요.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의사는 피로 물들어진 유리 조각을 트레이 위에 올려놓은 뒤 계속해 유리 조각을 뽑았다.옆에 있던 간호사가 명승희를 눌렀다. 명승희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턱을 덜덜 떨었고 이마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마지막 조각까지 뽑아낸 뒤 간호사는 상처를 처리하고 다시 마취를 놓고 상처를 꿰맸다.명승희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상처를 꿰맬 때는 유리 조각을 뽑을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개미가 물어뜯는 듯한 아픔에 자꾸만 앓는 소리가 났다.여준우가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겉옷을 미처 입지 못했고 넥타이는 풀어 헤쳐져서 삐뚤빼뚤했다. 그의 흰 셔츠는 땀에 젖어 그의 건장한 몸에 달라붙었는데 탄탄한 복근이 아른거렸다.그는 뺨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뒤 심호흡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렸다. 평온을 되찾은 그는 침대 곁으로 다가갔다.간호사는 명승희에게 거즈를 붙여주고 있었다. 명승희는 문을 등지고 있었고 왼쪽 어깨와 팔을 드러낸 채였다. 그녀는 간호사가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만 알고 있었지 여준우가 온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간호사가 치료를 마치고 떠나자 명승희는 그제야 창문을 통해 등 뒤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녀는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돌려 여준우를 바라봤다.“왜 여기 왔어요?”여준우는 그녀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턱을 쥐고 뺨을 돌려봤다. 그녀의 오른쪽 얼굴에 희미하게 긁힌 자국이 있었다. 여준우는 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살살 쓸어보았다.“또 어디 다쳤어요?”명승희는 넋을 놓고 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다친 데 없어요.”명승희는 천천히 소매에 팔을 넣으려 했지만 어깨의 상처가 당기는 느낌에 앓는 소리를 냈다.여준우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입지 말고 그냥 누워요.”명승희는 또 한 번 당황했다. 옷을 제대로 입기도 전에 여준우가 그녀의 허리를 부축해 눕게 했고 이불까지 덮어줬다.명승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여준우를 바라봤다.“운전해 주신
경호원은 조금 머쓱했다.“명승희 씨,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사실...”문가에 서 있는 여준우를 본 경호원은 말을 멈췄다.“준우 님?”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어머, 깨어났어요?”여준우는 미간을 찌푸렸다.“쉬지 않고 왜 이곳에 온 거예요?”“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다리도 멀쩡한데 뭘 쉬어요?”명승희는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당신 경호원이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어요. 쉬어야 할 사람은 이분이죠.”여준우는 심호흡했다.“그러면 왜 이곳까지 와서 남 쉬는 거 방해해요?”명승희는 말문이 막혔다.“난... 그냥 감사 인사하려고 왔죠. 기사님이 운전 실력이 좋지 않았으면 우리 두 사람 다 황천길 건넜을걸요.”경호원은 여준우를 바라봤다.“준우 님.”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둘이서만 얘기해야 하는 주제였다.여준우는 당연히 그 뜻을 알아챘다. 그는 명승희를 부축해서 세운 뒤 그녀의 흐트러진 머릿결을 정리해 줬다.“일단 돌아가서 쉬어요. 자꾸 쏘다니지 말고.”명승희는 당황했다. 어젯밤부터 여준우는 굉장히 이상했다. 명승희는 그들을 힐끗 보더니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경호원은 명승희가 떠난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어젯밤 사고는 누군가 일부러 낸 거예요. 제 추측으로는 명승희 씨를 노린 것 같습니다.”다행히 어젯밤 그는 다른 곳에 정신을 팔지 않았다. 그 차는 그들의 차를 전복시킬 만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비록 차가 전복되지는 않았지만 뒷좌석이 크게 충격을 받아 차가 기울어지는 동시에 그가 핸들을 돌려 차가 풀숲 쪽으로 쓰러졌고 그로 인해 명승희가 깨진 유리 조각에 어깨를 찔리게 된 것이었다.여준우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이번 사고로 그는 다시금 레이나를 떠올렸다.이번에도 사고가 아니었다.명승희는 병실로 돌아와 최민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최민아는 여태 그녀가 여행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명승희가 최민아에게 메시지를 보내려고 할 때, 병실 밖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는 비싼 옷차림에 우아한 분
유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유나는 명승희의 얼굴에서 그녀의 속셈을 파악하고 싶은 듯했다.여준우는 문밖에 서 있던 경호원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여긴 왜 오셨어요?”유나는 명승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여준우를 바라봤다.“내가 뭘 하러 왔는지 알고 있을 텐데.”여준우는 냉소를 흘렸다.“어머니께서 손을 쓰셨다는 걸 인정한 거네요.”유나의 눈동자에 노여움이 스쳐 지나갔다.“난 반드시 너 대신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해. 네가 이 여자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나도 절대 이 여자가 편히 지내게 하지 않을 거야.”명승희는 다소 놀랐다.손을 썼다는 건 뭘까? 설마 어젯밤 그 일이 그냥 뜻밖의 사고가 아니었단 말인가?여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한참 뒤, 여준우는 명승희의 앞으로 걸어가 그녀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데려갔다.유나가 소리를 질렀다.“여준우,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여준우는 걸음을 멈췄고 명승희의 어깨를 잡았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고개를 돌린 그는 눈이 벌게져서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봤다.“어디 한 번 해보세요.”유나의 표정이 굳었다.여준우가 겨우 여자 한 명 때문에 자기 말에 반항하자 유나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녀는 아들이 컸다고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여준우는 명승희를 안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는 명승희를 차 뒷좌석에 앉힌 뒤 운전기사에게 그녀를 호텔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뒷좌석 문을 닫으려던 여준우는 갑자기 명승희를 바라보더니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췄다. 명승희의 동공이 움츠러들면서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여준우는 미련을 두듯 입술을 뗐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그녀의 얼굴 전체를 드러냈다. 그는 여전히 손으로 명승희의 얼굴을 잡고 있었다.“당신 여권은 프런트 데스크에 뒀으니까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요.”“당신...”명승희는 살짝 놀랐다. 그가 이렇게 빨리 자신을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명승희는 순간 호흡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보니 두 남자가 문을 열었고 여자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다름 아닌 여준우의 약혼녀 맨디였다.맨디는 미소를 지었다.“죄송하네요. 이런 방법으로 모셔 와서.”“모셔 왔다고요?”명승희는 웃었다.“납치랑 다를 바가 없는데요.”“납치면 뭐 어떤가요?”맨디는 개의치 않았다.“Y국에서는 경찰도 감히 우리 가문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해요. 혹시 신고라도 하려고요?”명승희는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심호흡했다.“뭘 어쩔 셈이죠?”맨디는 팔짱을 두른 채로 그녀에게 다가갔다.“난 여준우 씨를 무척 좋아해요.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했죠. 그가... 레이나를 사랑했을 때부터요.”맨디는 명승희의 옆으로 걸어가면서 느긋하게 말했다.“여준우 씨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난 어차피 그랑 결혼할 거니까요. 레이나가 죽은 뒤 여준우 씨의 마음도 레이나와 같이 죽었어요. 준우 씨가 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른 여자들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예요.”명승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런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죠?”맨디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았다. 맨디의 눈동자에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준우 씨가 당신이랑 가볍게 만날 생각이었다면 그냥 못 본 척했을 거예요. 그의 주위에는 여자들이 널렸고 준우 씨가 진심이 아니라면 상관없으니까요.”맨디는 명승희에게 다가가더니 그녀의 턱을 쥐었다.“그런데 당신을 대하는 준우 씨의 태도가 다르더라고요.”맨디의 손을 쳐낸 명승희는 상처가 아파와 이를 악물었다.“맨디 씨, 여준우 씨가 나한테 자기 연인 노릇 하라고 강요한 거예요. 그리고 난 그저 그의 수많은 연인 중 한 명일 뿐이고요. 심지어 그는 날 Y국에 가둬두려고 했어요. 그게 남다른 건가요?”맨디는 당황했다. 그녀는 갑자기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명승희는 거즈가 젖은 게 느껴졌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맨디 씨, 난 당신에게서 여준우 씨를 빼앗을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