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의혹의 눈길로 물었다.“며칠을 함께 있는데요?”여준우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명승희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다른 사람들은 안 만나도 돼요?”그가 그녀의 턱을 잡고 말했다.“내가 누구랑 만나야 되는데요?”그녀가 그의 손을 쳐내더니 이불로 몸을 감싼 채 몸을 일으켰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그녀는 손을 뻗어 옆에 놓인 목욕 타월로 몸을 감싸고 침대 가장 자리에 앉아 그를 등진 채 머리를 묶었다.“다른 여자들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저는 이만 빠질게요.”그녀가 막 몸을 일으키려고 한순간 그가 그녀를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가뒀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질투하는 거예요?”당황한 명승희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한낱 정인일 뿐인데 질투를 할게 뭐 있겠어요?”여준우가 피식 웃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정말로 자기 처지를 똑똑히 구분할 줄 아는 여자라니까.”명승희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욕실로 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마침 여준우가 룸서비스를 시키고 있었다. 8시가 되자 직원이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방으로 들어왔다.명승희는 간단한 국수와 샐러드만 먹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확인해 보니 최민아가 웬 링크를 보내왔었다.들어가 보니 어젯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이슈였다.#나태 미녀 명승희##명승희 잠옷을 입고 출석하다#【최민아】: 정말 생각지도 못했어요. 언니가 잠옷을 입고 출석한 게 엄청난 이슈가 되었어요. 지금 그 잠옷 완전 품절 대란이라니깐요. 언니! 진짜 대단해요!명승희는 곧바로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어젯밤 그녀는 단지 편안함 때문에 그 옷을 입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옷은 잠옷이 아니었다! 그저 잠옷처럼 디자인된 홈 웨어일 뿐이었다!여준우가 눈을 살짝 치켜뜨며 피식 웃었다.“어젯밤에 입은 그 잠옷 예쁘던데요.”그녀가 여준우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녀의 칭찬을 하다니? 하지만 다음 순간, 여준우가 진지하게 뒷말을 이었다.“벗기기
책임자는 그가 이런 곳에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며 말했다.“여 사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 주위로는 공사장밖에 없어서 호텔이 따로 없습니다.”“괜찮습니다. 평소 안 회장님께서 어디에 머무르셨으면 저도 그곳에서 지내면 됩니다.”여준우는 비서가 건네주는 차를 받았다.책임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다행입니다. 그럼 제가 지금 가서 머무르실 곳을 준비해 두겠습니다.”책임자가 나간 후 여준우는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팔짱을 낀 채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명승희를 돌아보았다.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왜요? 명승희 씨를 이런 공사장에서 지내게 만들어서 서러워요?”명승희가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당신이 억지로 저를 끌고 왔잖아요.”그녀는 그제야 그의 목적을 알아차리고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당신 이런 땡볕에 다른 정인이 아닌 굳이 나를 데리고 온 의도가 뭔데요? 내가 새까맣게 타는 모습이 보고 싶은 거죠?”명승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선크림부터 덧발랐다. 하지만 아마 소용없을 것이다. 예전보다 피부가 새까맣게 탈게 분명했다!여준우가 소리 내어 웃더니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쩍하면 다른 여자를 거론하는데, 이게 질투가 아니고 뭐죠?”명승희는 더 이상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그가 Y 국 국민인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언젠가는 돌아갈게 분명하니까. 그녀는 여준우가 평생 Z 국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책임자가 다시 방으로 들어오더니 먼저 그들을 숙소로 안내했다. 안지성도 이곳에 오면 임시로 만들어진 공인 숙소에서 지내곤 했다. 일반 공인 숙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방에는 단독 샤워실과 주방, 그리고 에어컨이 있다는 것이었다.“여 사장님, 사모님, 그럼 저는 방해하지 않고 이만 가보겠습니다.”책임자가 웃으며 돌아갔다.‘사모님’이라는 말을 들은 명승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여준우를 돌아보았다. 여준우는 손끝으로 테이블 끝을 슥 스쳤다. 그는 방금 그 말을 못 들은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에 먼지가 가득 묻었
“싫은데요.”명승희가 슬금슬금 그에게 다가가는척하더니 순식간에 덮쳐들었다. 여준우는 얼른 옆으로 피한 후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그녀를 침대 위에 눕히면서 제압했다.“꺄악. 아파요!”여준우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아픈 걸 아는 사람이 감히 날 놀리려 들어요?”“당신이 먼저 나를 놀렸잖아요. 일부러 이런 곳에 데리고 와서 일이나 시키고. 우리 아빠도 나한테 집안일을 안 시키는데. 빨리 이거 놓지 못해요!”명승희가 발버둥 치자 여준우가 그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더 가했다. 그녀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팔뚝 전체가 저릴 정도로 아파졌다.“여준우 씨!”여준우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손 깨끗하게 안 씻으면 오늘 밤 침대에서 잘 생각도 하지 마요.”그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명승희가 몸을 일으킨 후 자신의 팔뚝을 주무르며 욕했다.“나는 뭐 당신이랑ㅣ 자는 게 좋은 줄 알아?”다 큰 남자가 바퀴벌레를 무서워하다니. 그것도 그렇게 작은 바퀴벌레를.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밖으로 나간 여준우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책임자와 함께 현장을 둘러보러 갔나 보다. 명승희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았으나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그녀가 가디건을 걸친 후 집 밖을 나서며 어디서 먹을 걸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문뜩 그녀의 눈에 한 아주머니가 아이를 안고 밥을 짓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저녁 7시, 책임자와 현장을 둘러본 여준우가 그제야 돌아왔다. 그는 그녀가 오래 기다렸을까 봐 서둘러 도시락을 챙겨들고 숙소로 향했다.그런데 방안 그 어느 곳에서도 명승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가방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그가 도시락을 내려놓은 후 미간을 찌푸리고 욕실이 있는 쪽을 향해 소리쳤다.“명승희 씨!”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휴대폰을 꺼내서 그녀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명승희가 수박 반 통을 품에 안고 숟가락으로 파먹고 있었다.
옆집에는 애가 둘이었는데 나이가 많지 않았다. 큰 애의 이름은 영희, 이제 7살이었고 작은 애는 동희, 이제 4살이었다. 엄청 순하고 말썽도 부리지 않는 착한 아이들이었다.“승희 언니 이건 뭐예요?”드론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희가 호기심에 물었다.“이건 드론이라고 하는데 이걸로 여기 전체를 찍을 수 있어. 여기 가만히 서서 아주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있지.”명승희가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아이한테 드론 조종법을 가르쳐 줬다.“이리 와. 언니가 이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줄게.”영희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명승희가 드론을 조종하는 걸 열심히 지켜봤다.명승희는 영희한테 조종법을 가르쳐 준 후 조종기를 영희한테 건넸다.“자 한번 해봐.”영희가 그녀를 한번 본 후 조심스럽게 조종기를 받아들었다. 아이가 자신이 가르쳐 준 대로 열심히 조종하는 모습에 명승희의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걸렸다.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버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녀는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아빠?”“너 지금 어디야?”명지용이 책문하듯이 물었다.명승희는 대충 핑계를 댔다.“저… 저 지금 출장 중인데요.”“출장? 좋아. 아빠가 하나만 물을게. 너 여준우랑 사귀는 사이냐?”“아니요…”“지금 누굴 속이려고. 파파라치가 너희 두 사람이 어젯밤 함께 있는 모습을 찍어 올렸어. 지금 SNS에 온통 너랑 여준우에 대한 스캔들뿐이라고. 잡지, 신문 어느 하나 너희들 기사가 없는 데가 없어. 기자가 나한테까지 찾아왔더라.”명승희가 돌처럼 굳어졌다. 어젯밤 그녀와 여준우가 함께 있던 모습이 찍혔다고?그녀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숨을 들이켰다.“아빠 그러니까 저랑 그 사람은…”“딸아, 혹시 그 남자한테 협박당했니?”명지용의 한 마디에 명승희가 얼어붙었다. 그녀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그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요?”“내가 그럴 줄 알았어!”명지용은 화가 나는 한편 안타까웠다.“그 망할 놈이 감히… 감히 내 귀한 딸을 협박해!”“아빠 저도 그러
명승희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다.“당신 나를 매장시키겠다고 한 거, 그거 그냥 나 겁주려고 한 말이었죠?”여준우가 실눈을 뜨고 말했다.“걸려든 건 당신이죠.”역시 아버지의 말이 맞았다!그녀가 이를 악물고 웃었다.“날 갖고 논 거예요?”여준우는 그녀가 움직이지 못하게 품에 가둔 채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가져갔다. 그가 웃을락 말락 하며 말했다.“전 명승희 씨가 똑똑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멍청할 줄 몰랐어요.”명승희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날 갖고 노는 거 재밌었어요?”여준우는 그저 그녀를 빤히 쳐다볼 뿐 답을 하지 않았다.“멍청하게 당신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꼴이 얼마나 우스웠겠어요. 여준우 씨, 당신이 하도 이런 같잖은 연극을 좋아해서 저도 함께 어울려줄 만큼 어울려 줬어요. 대체 왜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두고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건데요!”이성을 상실한 명승희가 악다구니를 치더니 순간 눈물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크게 숨을 들이켜며 씩씩거렸다.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애써 울음을 참으며 침착하게 말했다.“전 이제 그만 이 연극에서 빠질래요. 더는 못 하겠어요.”그녀가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자 여준우가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가뒀다. 그가 그녀의 턱을 잡아올렸다.“못 하겠다고? 못 할 거면 왜 자꾸 나를 자극하는 건데!”그녀가 씩씩거리며 따졌다.“누가 자극했다고 그래요. 분명 당신이 먼저 나를 건드렸잖아요!”“맞아.”여준우가 피식 웃었다. 그가 억지로 그녀의 얼굴을 고정하고 말했다.“내가 먼저 건드렸죠. 하지만 계약을 끝내자고 했을 때 누가 나한테 찾아왔죠?”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너무 놀라 호흡하는 법도 잊은 것 같았다.여준우의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멈췄다.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졌다.“계약을 끝냈을 때 그쪽이 제 발로 나랑 이야기를 하겠다고 찾아왔어요. 명승희 씨
갑자기 여준우가 음료수를 그녀의 앞에 놓여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깜짝 놀란 그녀가 힐끔 곁눈질로 그를 확인했다. 하지만 절대 눈에 띄게 움직이지는 못했다.그때 그가 갑자기 그녀의 선글라스를 휙 하고 낚아챘다. 놀란 그녀가 곧바로 선글라스를 빼앗아 다시 착용했다. 그러고는 팔짱을 낀 채 그에게 등을 돌렸다.여준우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명승희가 그의 손을 쳐낸 후 이를 악물고 그에게 말했다.“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댔다 봐요. 당장 성추행으로 고소할 테니까!”여준우가 한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그녀를 쳐다보더니 싱긋 미소 지었다.“지금 비즈니스 석에 우리 둘 빼고 누가 남아있나 한번 봐봐요.”놀란 명승희가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즈니스 석이 텅텅 비어있었다. 당황한 그녀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여준희가 그녀의 머리로 장난을 치면서 몸을 그녀의 가까이에 기댔다.“이 항공사가 마침 저희 그룹 산하에 있는 항공사더라고요. 우연이죠?”그녀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또다시 그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그때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녀가 탑승한 K7741 항공편이 곧 Y 국 공항에 정착하게 되니 일본으로 가실 탑승객들은 2층에서 경유 탑승 수속을 하라는 말이었다.명승희가 탑승한 항공편이 일본으로 가는 직행이 아니라 Y 국에 들러 경유하는 항공편이었다고? Y 국에 도착하면 그야말로 그의 구역이 아닌가?그녀가 넋을 놓고 있는 순간 갑자기 그의 입술이 쪽하고 그녀의 입술에 내려앉았다. 놀란 그녀가 다급히 그를 밀치려고 한순간 그가 먼저 입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여준우 씨 당신 혹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에요?”명승희가 화가 나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들어 그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하지만 여준우는 이미 방어를 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의 양 팔목을 붙잡고 자신의 품에 그녀를 가두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여자가
여준우는 그녀가 자신의 가까이로 다가오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모습에 억지로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 차도 출발한 상태고,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그들은 여 씨 그룹 산하의 고급 호텔에 도착했다. 명승희는 자신의 짐과 함께 호텔 룸에 처박혔다. 문 앞에는 보디가드가 지키고 서있었다.“무슨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아가씨,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보디가드가 적극적으로 그녀를 대신해 문까지 닫아주었다.그녀는 방안에 홀로 남아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니까 여준우 이 남자는 단지 그녀를 호텔까지 데려다준 것뿐이다?여 씨 가문의 샌디에이고 저택.“도련님, 사모님께서는 서재에서 도련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집사가 계단 앞에 서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여준우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여준우는 외투를 벗어 집사한테 건네더니 손목시계를 느슨하게 조절한 후 위층으로 향했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중년 여인은 쉰 여섯, 일곱 즈음 되었지만 관리를 잘해왔기에 겉모습만 봤을 때에는 삼, 사십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어머니.”여준우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잡지가 놓여있었는데 Z 국에서 그와 명승희가 파파라치한테 찍힌 스캔들 기사가 적혀있었다. 이 잡지가 해외에까지 퍼지게 되었다니.유나가 잡지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네가 밖에서 어떻게 놀든지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신중하지 못했던 것 같구나. 넌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스캔들 기사를 남겼던 적이 없잖니.”여준우가 잡지를 들고 느긋하게 페이지를 넘겼다.“이런 가십거리는 많고도 많아요.”“달라.”유나가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말했다.“지금 네가 이 여자한테 보이는 태도가 달라. 진심인 거냐?”여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나가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넌 내 아들이고, 장차 여 씨 가문을 책임져야 할 후계자야. 잊지 말거라. 너와 맨디는 이미 결혼 약속이 오간 사이라는 것을!”여준우가 소리 내어 웃었다.“어머니, 저랑 맨
욕실에서 침실까지, 어둠 속에서 여준우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폭주할 것만 같은 자신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아무도 그런 자신의 사투를 알지 못하게 노력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려다가도 곧바로 그녀의 따듯함에 이성을 잃고 깊은 심연에 빠지게 되었다. 그의 손길 아래 다시 태어나는 듯한 그녀의 새로운 모습은 그에게 병증을 더욱 악화시킬 모순이자 억압이 되어버렸다.그렇게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밤도 결국 어느 순간 평화를 맞이하게 되었다.이튿날 아침, 명승희는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잠에서 깼다.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순간 온몸의 뼈마디 마디가 아파나는 것을 느꼈다.그 순간 그녀의 귓가에 웬 여자가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여준우 씨, 내가 당신의 약혼녀예요. 당신이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는 걸 방해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우리의 혼약을 중시해 줬으면 좋겠어요!”명승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약혼녀?그녀가 겨우 아픈 몸을 끌고 침대에서 내려 가만히 문가에 기대서서 밖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여준우가 피식 웃었다.“전 그런 혼약을 한 적이 없는데요.”“당신 설마 가문끼리 한 혼약을 어기겠다는 거예요?”그녀는 마치 엄청난 수모를 당한 것처럼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그게 뭐 어때서요?”여준우가 팔을 펴고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아주 거만한 자세였다.“내 어머니가 멋대로 정한 혼사입니다. 아니면 맨디 아가씨, 차라리 제 어머니한테 시집을 가는 걸 고려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당신……”“술에 약을 타는 수법을 써서 날 억지로 이 혼사에 참여시키려 들기나 하고.”여준우가 와인잔의 스템을 잡고 가볍게 잔을 돌리자 안에 담겨있던 술이 찰랑였다.“아쉽겠지만, 지금 제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꼭 여 씨 가문에서 물려받은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난 여 씨 가문에 구속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어떤 여자를 갖고 싶은지는 내가 정할 겁니다.”그가 느긋하게 술을 들이켰다.맨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