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예찬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송아영의 손을 잡았다.“외할아버지 뵈러 S국에 갔다 와야겠네.”송아영은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당신 외할아버지 무서운 분이셔?”육예찬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다가 다시 정색하며 말했다.“말을 안 들으면 무서운 성격 나오실지도 모르지.”연희정이 옆에서 혀를 차며 말했다.“아영이 긴장하게 왜 그래?”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송아영을 위로했다.“걱정하지 마. 좋은 분이셔. 절대 너한테 무섭게 대하지 않을 거야. 물론 저 녀석은 잔소리 좀 들어야겠지만.”송아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밤중이 되어서야 명승희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머릿속에 여준우와 키스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정말 강렬해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키스였다.‘역시 선수였어.’그녀는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시선이 진열장에 놓인 바이올린 모형에 닿았다. 그건 그녀가 과거 육예찬을 위해 만든 모형이었다. 버리기 아까워서 줄곧 그 자리에 뒀었다.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던 명승희는 일어서서 모형을 집어 들어 서랍에 넣었다.며칠 뒤, 촬영장에 도착한 그녀는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명승희는 모자를 꾹 눌러쓰고 고개를 숙였고 최민아는 카메라를 막아섰다.“명승희 씨, Y국 황태자 여준우 씨와 각별한 사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촬영장에서 두 분이 대놓고 애정행각을 벌였다던데 사실인가요?”온갖 질문들이 명승희에게 쏟아졌다. 앞을 가로막고 선 기자들 때문에 전진이 어려워진 그녀는 선글라스를 벗고 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런 일 없습니다. 저와 여준우 씨는 그냥 친구 사이이고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 다들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 추측성 기사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하지만 두 분이 같이 탈의실에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다. 단둘이 탈의실에서 뭐 했는지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기자들이 아주 사
여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요. 그럼 저녁에 한잔하시죠.”명승희는 오늘 야간 촬영을 진행하고 밤 열한 시가 되어서야 촬영장을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연기자도 체력노동이라는 것을 체감했다.최민아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최민아가 떠난 뒤, 명승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명승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발신자를 확인했다.“여준우?”서로 연락하지 말자던 여준우였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저쪽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게 들리자 명승희는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였다.“여보세요!”“명승희 씨죠?”이어서 그의 경호원이 전화를 받았다.“밤 늦게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 어디세요? 우리 도련님께서 술이 좀 취했는데 여기서 나가려고 하지를 않네요. 가게 문 닫을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연락드렸습니다.”명승희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그 사람이 술 취했는데 왜 나한테 연락하죠?”경호원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도련님께서 꼭 명승희 씨한테 전화해야 한다고 우기셔서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명승희는 잠시 주저하다가 혀를 차며 물었다.“지금 어딘데요?”경호원이 대답했다.“화평구 서든 클럽입니다.”명승희는 차를 운전해 화평구로 갔다. 술집에 도착해 보니 손님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뒤였다.그녀는 핸드백을 챙기고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여준우는 창가 쪽에 앉아 이마를 짚고 있었다.그의 경호원과 술집 매니저까지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명승희는 가방을 의자에 던졌고 여준우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다가가서 귓가에 대고 말했다.“드디어 오셨네요. 제발 우리 도련님 좀 말려주세요.”“내가 어떻게 말려요? 안 가고 버티면 억지로 끌고 나가야죠. 그것도 힘들면 그냥 길가에 버리든가. 지나가던 여자가 저 얼굴이 마음에 든다고 데려갈지 누가 알아요?”다행히 명승희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기에 술집 종업원
그는 몸을 일으키고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허리를 뒷좌석에 기댔다.호텔에 도착하자 명승희는 여준우를 부축해서 침실까지 들어갔다. 침대에 눕히려는데 남자가 갑자기 무게중심을 그녀에게 쏟더니 두 사람은 같이 침대에 쓰러졌다.여자의 입술이 그의 코끝에 스쳤다. 놀란 명승희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여준우는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얼굴에 뱉었다. 명승희는 눈을 감고 있는 남자를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녀가 몸을 일으키려는데 남자의 손이 그녀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명승희는 화들짝 놀라며 그를 노려보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여준우가 천천히 눈을 뜨더니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 취했어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명승희가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는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껴안고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취한 것 같은데 정신은 말짱한 것 같고….’그가 입을 열었다.“명승희 씨, 난 가끔 당신이 너무 짜증나요.”“뭐라고요?”명승희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짜증나?’여준우는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네. 정말 짜증 나요. 어딜 가든 당신이 있잖아요. 전생에 내가 당신한테 큰 빚을 졌나 봐요. 이런 기분 정말 싫거든요.”“많이 취했네. 여준우 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나 알아요?”명승희는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취해서 지껄이는 이상한 말에 어쩐지 가슴이 뛰었다.“꿈에 당신을 만났어요.”여준우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으며 계속해서 말했다.“당신이 글쎄 꿈에 나왔더라고요.”당황한 명승희가 그의 시선을 피하며 바둥거렸다.“그래서요?”여준우는 그녀의 입술을 빤히 쳐다보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버렸다. 명승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알싸한 알코올냄새가 그녀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밀쳐내려 했지만 남자가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짓눌렀다.명승희는 아찔한 키스에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여준우가 몸을 뒤집더니 몸 위로 올라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명승희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지 않고 있었다.“나 곧 서른이야. 지극히 정상적인 일 아닌가?”말을 마친 그녀는 벤에 올라탔다.최민아가 따뜻한 물을 가져왔고 명승희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약을 삼켰다.“저기… 승희 언니. 앞으로 원나잇은 좀 자제해 주세요. 그러다가 기자들한테 찍히기라도 하면 이미지는 바로 추락할 거예요.”명승희는 물병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원나잇 상대가 일류 재력가라서 괜찮아. 내가 손해 본 것도 아니고.”최민아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다.일주일 내내 명승희와 여준우는 서로 연락 한번 주고받지 않았다.오늘은 그녀가 맡은 촬영이 끝나는 날이었다. 촬영을 무사히 마친 명승희는 촬영장 스텝들과 작별인사를 했다.그녀는 스텝들이 선물한 꽃다발을 들고 자신의 벤으로 다가갔다. 최민아가 문을 열어주었고 차 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명승희는 꽃으로 얼굴을 가리고 최민아에게 물었다.“저 사람이 왜… 악!”짧은 비명과 함께 남자가 명승희를 끌고 차에 태웠다. 명승희는 순식간에 남자에게 안겨 버렸고 여준우는 최민아에게 문을 닫으라고 눈짓했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던 최민아는 저도 모르게 그의 말대로 문을 닫아버렸다.명승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꽃에만 시선을 집중한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나한테 볼일이 남았어요?”여준우는 억지로 그녀의 턱을 치켜올려 시선을 마주하고 말했다.“내 연락처를 차단했던데요.”명승희는 시선을 피하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전에 여준우 씨가 나를 차단했을 때 난 이유를 따진 적 없었던 것 같은데요.”“그날은….”“취한 여준우 씨를 내가 덮친 거죠.”그의 품에 안긴 명승희가 손을 그의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설마 나한테 수고비를 요구할 생각은 아니죠? 나 돈 없어요.”여준우는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당당하고 대범한 말투에 저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명승희는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하마터면 표정관리를 못할 뻔했다. 그녀는
송아영은 그들과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육예찬에게 다가갔다.“나 기다렸어?”육예찬이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당신을 안 기다리면 누굴 기다리겠어.”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웃음이 떠나지 않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촬영이 잘 진행됐나 보네.”송아영은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턱을 치켜들었다.“그럼. 내가 누군데. 나 없이는 제대로 진행이 안 됐을 거야.”육예찬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저녁에 뭐 먹을래?”송아영은 다가가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치킨, 제육볶음, 갈비찜도 있었으면 좋겠고….”“왜 다 고기야?”“고기가 먹고 싶으니까!”그녀는 일부러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육예찬은 그녀의 아랫배를 힐끗 쳐다보더니 물었다.“설마 생긴 거야?”그녀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생기긴 뭐가 생겨?”육예찬은 손으로 그녀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싱긋 웃었다.“뭐겠어.”송아영은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며 소리질렀다.“그런 거 아니거든!”그는 웃으며 송아영을 품에 안았다.“형수님도 임신했는데 우리도 뒤쳐지면 안 되잖아.”말문이 막힌 송아영이 억울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나 혼자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육예찬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러니까 당신 말은 내 노력이 부족했다는 거지?”송아영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새침하게 그를 밀치며 말했다.“집에 갈래!”육예찬은 쑥스러워서 도망치듯 앞에서 뛰는 그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던 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텅 빈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발소리가 잦아든 뒤에야 계단 입구에 몸을 숨겼던 여자가 마스크를 고쳐 쓰며 다급히 현장을 빠져나갔다.낡은 월셋방, 남은서는 푹 꺼진 소파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었다. TV에 나온 명승희의 화려한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서 리모컨을 집어 던졌다. 입맛이 사라졌다.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일어서서 문을 열었다. 밖
최민아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문 앞에 서 있었다.명승희는 요가복 차림에 금방 운동을 하고 나온 듯,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고 긴 머리도 깔끔하게 뒤로 묶은 모습이었다.“무슨 일인데?”명승희는 의아한 눈빛으로 최민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때, 최민아를 밀치고 나타난 남자 때문에 그녀는 화들짝 놀라며 문을 닫으려 했다.하지만 남자가 재빨리 문을 잡았고 최민아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죄송해요, 언니. 음…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최민아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명승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여준우가 그녀를 살짝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서더니 문을 잠갔다.“여준우 씨, 여기 우리 집이거든요? 지금 이러는 거 주거침입이에요!”명승희가 그를 밀치며 말했고 여준우는 여유롭게 두 걸음 물러서더니 팔을 뻗어 그녀를 자신과 문 사이에 가두어 버렸다.“그럼 신고해요.”그의 손끝이 그녀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그럼 나도 명승희 씨 신고할 테니까.”명승희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내가 뭐요?”여준우는 그녀에게 얼굴을 가까이 밀착시키며 말했다.“명승희 씨가 내 순결을 빼앗고 돈도 안 줬잖아요.”말을 마친 그는 손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올렸다.“같이 경찰서에 가면 과연 누가 더 창피할까요?”명승희는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그녀가 그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며 물었다.“당신 정말 뻔뻔한 거 알아요?”여준우는 얄미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명승희는 한참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이번에는 여준우 씨가 제 발로 쳐들어왔는데 이 정도면 덮쳐달라고 유혹하는 거 아닌가요?”여준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노려보며 입을 다물었다.그녀의 손길이 그의 목젖에 닿았다.“한 번 있으면 두 번도 있는 거죠. 안 그래요?”여준우가 그녀의 팔목을 가로채며 으르렁거렸다.“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요?”그녀가 웃었다.“건장한 남녀가 같은 공간에서 뭘 할 것 같아요?”여준우는 그녀를 안아 신
그녀는 몸을 살짝 뒤로 기대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당신 여자가 되라고요? 그 수십 명 중의 하나가 되라는 건가요? 귀찮게 다른 여자들이랑 기 싸움도 해야겠네요. 여준우 씨, 당신이 황제예요? 무수히 많은 후궁을 거느리게요? 체력은 따라갈 수 있어요?”여준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당신은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군요.”명승희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뒤로 넘기며 말했다.“나는 혼자가 좋아요.”그가 다시 물었다.“그래서 할래요?”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싫어요.”여준우의 눈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몸을 일으키며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확실해요?”명승희는 코웃음 치며 자신 있게 대꾸했다.“싫다면 싫은 거죠. 몇 번을 물어봐도 답은 같아요.”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나를 찾아오게 될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문을 잠근 뒤, 명승희는 벽에 기댄 채, 거칠게 호흡했다. 조금 전까지 도도하게 굴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내가 그 정도야? 후궁 후보가 되라고? 웃기지도 않아.’한편, 백화점에 들어선 송아영은 로비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누군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예지야.”안예지가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오래 기다렸어?”“그렇게 오래 기다린 건 아니야.”송아영이 그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오랜 만에 휴가인데 쇼핑이나 좀 하자.”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매장을 한 바퀴 둘러 본 뒤, 둘은 미식 코너로 가서 간식을 먹었다. 오랜 만에 나들이라 안예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대학교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송아영도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그렇지?”안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불러줘서 고마워.”말을 마친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아빠가 통금시간을 정해 놓으셔서 회사랑 집만 오고 가서 힘들었거든. 새로 사귄 친구도 없고 심심해 죽겠어.”송아영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마워요.”여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안예지는 여자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뒤돌아선 순간, 여자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송아영은 30분을 줄을 서서 드디어 밀크티 두 잔을 샀다. 하지만 음료수를 들고 자리에 돌아왔을 때, 안예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음료수를 내려놓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안예지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몇 번이나 통화를 시도해도 안예지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송아영은 꺼진 핸드폰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갑자기 전화는 왜 꺼놨지?’안예지는 말도 없이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그녀는 다급히 화장실 쪽으로 뛰어갔다.송아영은 2층 화장실과 3층 화장실을 다 뒤졌지만 안예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통화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될 리 없었다.송아영은 점점 조바심이 났다. 숨을 헐떡이며 백화점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안예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울먹이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예찬 씨….”서류를 검토하던 육예찬은 울먹이는 송아영의 목소리에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왜 그래?”“예지가… 예지가 사라졌어. 내가… 같이 놀자고 불렀는데….”그녀가 흐느끼며 말했다.육예찬은 미간을 확 찌푸리며 대답했다.“송아영, 일단 침착해. 무슨 상황인지 말해봐.”그는 송아영과 통화하며 서류를 내려놓고 차키를 챙겼다.“백화점에서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내가 지금 갈게.”송아영은 조급한 마음으로 매장 앞 벤치에 앉아 육예찬을 기다렸다. 남자가 나타나자 그녀는 울며 다가가서 그에게 안겼다.육예찬은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하듯 말했다.“그만 울어. 내가 왔잖아. 나랑 같이 CCTV 확인하러 가자.”그녀는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육예찬은 백화점 매니저와 협상한 끝에 관리실로 가서 CCTV 영상을 돌렸다. 잠시 후, 마스크를 쓴 여자가 안예지에게 접근하는 화면이 포착되었고 안예지가 그 여자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육예찬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