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승희…”낮은 목소리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여준우는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명승희를 자신의 품으로 껴안았다.“남은서 씨, 우리 이제 그만 쉬고 싶은데, 거기 서서 계속 구경이라도 할거예요?”명승희는 일부러 그의 품에 꼭 안기며 말했다.“자기, 난 구경꾼이 있는 거 싫어.”여준우는 그녀의 맑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화장기가 없는 깨끗한 얼굴을 하곤 명승희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키스라도 하려는 걸까?’남은서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에 바로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그때, 명승희도 그의 가슴을 밀치고 소파에 놓은 자신의 가방을 쥐고 말했다.“오늘의 연기는 이제 끝이야. 나 먼저 갈…”“남은서가 문 앞에 있을 거라는 생각 안해봤어요?”여준우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명승희는 자리에 멈춰 서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그럼 여기서 새벽까지 기다려?”“나 요즘 매일 촬영이라 하루에 4시간밖에 못 자.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것도 기적이야.”그녀는 지금 당장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싶었다.여준우는 다시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와인잔을 들고 말했다.“객실에서 자요.”그리고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걱정되면 문이라도 걸어 잠그세요.”결국 그녀는 오늘 객실에서 자기로 마음먹었다.다음 날 아침, 연속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리는 최민아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언니! 지각이에요! 오늘 하루 종일 촬영 있는 날인 거 잊었어요?”명승희는 바로 침대에서 내려와 시간을 확인했다.10시가 넘는 시간이었다.“나 지금 내려갈게!”전화를 끊은 그녀는 간단히 세수만 하고 방 문을 열었다. 여준우는 식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으며 그의 곁에는 종업원이 룸서비스를 마련해 주고 있었다.그녀가 방에서 나오자 여준우는 신문을 덮고 말했다.“일단 아침부터 먹어요.”명승희는 머리를 정돈하며 손을 내저었다.“아니, 나 늦었어.”여준우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말했다.“감
그때, 사고가 발생했다.장난감 칼은 명승희의 오른쪽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은 너무 놀라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어떻게…”명승희도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조금씩 고통이 밀려오고 있었다. 진짜 검이야!감독과 다른 배우들은 이상한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컷을 외치지 않았다.남자 주인공이 검을 빼내고 감독을 쳐다보려고 할 때, 명승희는 검을 손에 꽉 쥐고 이를 악물며 대사를 했다.“이은결, 어떻게 노유정 때문에 나를 죽일 수 있어!”검을 쥔 남자 주인공의 손이 덜덜 떨렸다. 이런 상황에서 대사를 할 수 없었지만 명승희가 대사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대사를 이어야 했다.“그래, 네가… 네가…”“컷!”감독은 남자 주인공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컷을 외쳤다.“심훈, 너 왜 그래?”명승희가 뒤로 물러서자 최민아가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의 옷에 가짜 피 주머니를 넣으려고 할 때, 명승희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발견했다.“감독님! 이거 진짜 검이에요! 승희 씨 다쳤어요!”“뭐?”감독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감독과 스태프들이 달려와 명승희의 가슴에 박힌 검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누가 도구를 바꿨어! 당장 안 튀어나와? 이거 누가 책임질 거야!”최민아는 명승희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하며 울음을 터뜨렸다.“빨리 구급차 불러주세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요!”명승희는 많은 출혈로 인해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최민아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나 너무 피곤해… 조… 조금만 잘게. 병원에 도착하면 깨워.”“언니! 눈 떠요!”잠시 후, 구급차가 도착하고 모든 촬영은 중단되었다. 한편에 있던 배우와 스태프들은 명승희를 감탄했다.“명승희 씨 진짜 대단해. 칼에 찔렸는데 대사를 계속할 수 있다니.”“그러니까, 나였으면 진짜 놀라 까무러쳤어.”다른 배우들도 구급차에 실려가는 명승희를 보며 수군거렸다.일일 알바뿐만 아니라, 단기 조연들도 그녀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김나리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명승희의 칭찬에
명승희는 천장을 바라봤다.“그런 셈이지.”“그런 셈이라고요?”최민아는 다소 의아했다.“그건 무슨 뜻이에요?”“말 그대로야.”명승희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무언가 떠올린 그녀는 최민아를 바라봤다.“참, 제작진에서 조사한다던 건 어떻게 됐어?”최민아가 대답했다.“제작진은 지금 소품 일로 조사하고 있어요. 소품팀은 일반적으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거든요.”말하면서 최민아는 의아해했다.“만약 소품이 정말 장식용이었다면 언니랑 심훈 씨 촬영 때 소품팀 스태프가 소품을 잘못 가져왔을 리가 없는데요.”제작진의 가짜 소품은 보통 진짜로 보이는 가짜였다.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다른 소품들과 같이 놓여져 있었다면 잘못 가져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촬영에서 심훈이 쓴 소품 검은 따로 준비되어 있던 거라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설마...최민아는 경악했다.“정말 누군가 소품을 진짜로 바꾼 걸까요?”명승희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최민아는 턱을 매만졌다.“누군가 언니를 노린 게 틀림없어요. 설마 같이 촬영하는 그 여자들일까요?”명승희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가슴이 아파서 손을 살짝 들었다.“민아야, 침대 좀 올려줘.”명승희는 자리에 앉은 뒤 최민아를 보며 말했다.“그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아.”최민아는 의아했다.“왜요?”“날 이렇게 만들어서 그 사람들한테 좋을 건 없어. 그 사람들은 기껏해야 입방아만 찧을 뿐이야. 이런 짓을 벌였다가 조사해서 들키면 그 사람들이 계속 촬영할 수 있겠어?”최민아는 뜸을 들였다. 명승희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그 사람들이 아니라면 누구죠?”“지금 나랑 가장 원한이 깊고 소품에도 익숙한 사람이 누구겠어?”명승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었다.“그렇다면 제작진 중 한 명일 텐데요.”최민아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명승희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실검.”최민아는 깨달았다.“남시후요?”명승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돌린 명지용은 의아한 표정이었다.“이분은...”명승희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이 사람은... 우리 투자자예요. 병문안하러 온 거예요.”명지용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여준우는 명지용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처음뵙겠습니다, 명 회장님.”명지용은 자연스레 웃으며 그를 훑어보았다.“현지인은 아니죠? 우리 업계에서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네요.”여준우는 미소를 지었다.“네. 현지인은 아닙니다.”명승희는 여준우가 들킬까 봐 걱정되어 다급히 말했다.“아빠, 볼일 있다면서요? 전 신경 쓰지 마세요. 민아가 제 옆에 있어 줄 거예요. 먼저 돌아가셔서 엄마한테 저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며칠 푹 쉬고 퇴원할거니까.”명지용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의 딸은 그를 내쫓으려고 안달이었다. 그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딸이 무사한 걸 확인했으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그래, 그래. 가볼게. 넌 푹 쉬어. 며칠 뒤에 엄마랑 같이 보러올게.”명지용은 말을 마치고는 여준우와 인사를 나눈 뒤 병실을 나섰다.명지용이 떠난 뒤 명승희는 침대맡에 몸을 기대었다.“여준우, 다음번에 올 때는 먼저 연락해서 나한테 알려줘.”여준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왜죠? 아버지가 우리 사이를 알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당연하지. 우리 아빠가 오해하면 어떡해?”여준우는 팔짱을 두른 채로 벽에 기대어 서 있으며 그녀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봤다.명승희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왜 그렇게 쳐다봐?”여준우는 웃었다.“나랑 엮이기 싫어하는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에요.”명승희는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가볍게 웃었다.“너 인기 많다고 얘기하고 싶은 거야? 참나, 하지만 난 관심 없어.”여준우는 걸음을 옮겨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허리를 숙이더니 그녀의 몸 옆으로 손을 짚었다. 명승희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뭐 하는 거야?”“난...”여준우가 뭐라고 말하려 하는데 육예찬과 송아영이 하필 그때 도착했다.송아영은 깜짝 놀랐다.“
여준우는 팔짱을 두른 채로 육예찬을 물끄러미 바라봤다.“육예찬 씨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봐요.”육예찬은 몸을 돌려 그를 보았다.“여준우 씨 곁에 여자들이 엄청 많다고 하던데, 만약 명승희랑은 그냥 가볍게 만나볼 생각이라면 다른 사람 찾길 바랄게요.”여준우는 웃음을 터뜨렸다.“육예찬 씨는 결혼하지 않으셨나요? 왜 전 여자친구 일에 이렇게 신경 쓰는 거죠?”육예찬은 눈살을 찌푸리며 정중하게 말했다.“명승희는 내 친구예요. 친구 일인데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죠. 명승희는 당신 주변에 있는 여자들이랑 달라요.”여준우는 육예찬의 곁을 지나쳐 베란다에 섰다. 짙은 색의 정장이 햇빛을 받자 파란색 무늬가 은은하게 보였다. 그는 아래층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이건 나랑 명승희 씨 일이에요. 명승희 씨도 나한테 관심이 있고요.”육예찬은 여준우를 바라봤다.“그건 여준우 씨가 속인 거잖아요.”“전 속인 적 없어요.”여준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담백한 듯 그윽한 눈동자가 빛났다.“오히려 저는 명승희 씨에게 솔직해요.”솔직함과 기만은 성질이 달랐다.여준우는 여자를 속일 필요가 없긴 했다. 그리고 그의 스타일도 그랬다. 그래서 육예찬은 기만이라고 따져 물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명승희도 그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다.두 남자는 병실로 돌아갔고 송아영과 명승희는 무슨 얘기를 나눈 건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여준우는 육예찬의 곁으로 다가가 짓궂게 말했다.“육예찬 씨 전 여자친구랑 아내분 사이가 좋아 보이네요.”“...”여자들의 관계는 미묘했다. 처음에는 물과 불같은 사이였는데 지금은 아주 가까워 보였다.명승희는 두 사람이 문 앞에 서 있자 미소를 거두었다. 고개를 돌린 송아영은 그들을 보았다.“벌써 왔어?”육예찬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다가가서 송아영의 어깨를 끌어당겼다.“우리는 이만 돌아가자.”명승희는 눈을 흘겼다.“나 점심에 밥 먹고 싶거든. 두 사람 내 앞에서 애정행각 벌이지마.”송아영은 육예찬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키득거렸다.“명승희
명승희가 이렇게 가차 없이 나올 줄이야!초인종이 울렸다.그는 몸을 일으켜 문 앞으로 걸어간 뒤 경계하며 물었다.“누구세요?”“관리원입니다.”상대의 대답을 들은 남시후는 문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복 입은 경찰이 뛰어 들어와 그를 바닥에 제압했다.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경찰이 경찰증을 꺼냈다.“남시후 씨 맞죠? 당신은 제작사에 침입하여 다른 사람을 다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랑 같이 서로 가서 조사받으시죠.”남시후는 당황했고 곧이어 경찰들에게 끌려 나갔다.아파트에서 나오자 기자 여럿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카메라로 그의 모습을 촬영했고 남시후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남시후 씨, 남시후 씨가 소품에 손을 써서 명승희 씨가 촬영 중에 다치게 되었다고 누군가 고발했다던데 사실 맞습니까?”“명승희 씨의 부상이 정말 당신과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 주시죠.”남시후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경찰차에 탈 때까지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망했어. 다 망했어...멀지 않은 곳에 멈춰 있던 차 안, 창밖을 바라보던 여진우는 시선을 거두고 경호원에게 말했다.“가자.”#연예인 남시후 체포#최민아는 명승희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며 기사를 보여줬다. 명승희는 그것을 본 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최민아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말했다.“정말 남시후 씨가 한 짓일 줄은 몰랐어요. 정말 스스로 제 무덤을 팠네요. 유성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남시후 씨랑 계약 해지했대요. 예전에 남시후 씨가 광고하던 브랜드들도 계약 해지했고 출연했던 드라마들도 남시후 씨 이름을 전부 지워버렸대요. 완전히 끝난 거죠.”명승희는 눈살을 찌푸렸다.“어쩌다가 들킨 걸까?”최민아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핸드폰을 했다.“언니 남자친구겠죠.”남자친구...설마 여준우?S국. 연씨 일가.강성연은 반지훈과 방에서 바둑을 몇 판 두었는데 연거푸 져서 바둑알을 던져버렸다. 반지훈은 눈꺼풀을 들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안 할 거야?”“안 해요. 이긴 적이 없잖아요.”강성연
강성연은 반지훈을 뒤에서 끌어안았다.“여준우 씨가 Z국에 있다고요?”반지훈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그 녀석 동임 회사랑 한재욱의 프로젝트를 욕심내고 있어. 그래서 그걸 이어받으러 갔어.”강성연이 뭔가를 고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반지훈은 갑자기 그녀를 밀어 넘어뜨렸고 강성연은 흠칫 놀라면서 그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반지훈 씨, 대낮부터 엉큼한 생각만 하고 일은 점점 뒷전인 것 같네요.”반지훈은 그녀의 손가락을 감싸 쥐며 말했다.“네가 있다면 난 기꺼이 어리석어질래.”강성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그의 허리에 손을 올렸다.“반지훈 씨, 허리 건강 생각해야죠.”반지훈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단추를 풀었다.“ 20년 뒤, 네가 보약만 지어주면 난 계속할 수 있을 거야.”같은 시각, 반지훈이 전화를 끊은 뒤 여준우는 홀로 넓은 거실에 앉아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그는 잔을 들어 살살 흔들어 보았다. 그의 시선이 테이블 위 계약서에 닿았다. 그는 이 계약을 진행해야 할지 말지 주저하고 있었다.육예찬의 말이 맞았다. 명승희는 그의 주변에 있는 여자랑은 달랐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만족하면 되고 신분이 어떻든 야망과 탐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명승희도 돈을 위해서라지만 그녀에게서는 그가 혐오하는 그런 탐욕이 느껴지지 않았다.여준우는 몸을 뒤로 젖히며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는 다양한 스타일의 여자를 유혹하는데 능했다. 하지만 명승희 같은 여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도저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만약 진짜 무고하고 착한 여자를 상처 준다면 평생 양심에 걸릴 것 같았다.휴대폰에서 진동소리가 울렸다.휴대폰을 든 여준우는 경호원이 보낸 사진을 보았다. 남은서가 병원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술잔을 내려놓으려던 여준우의 손이 멈칫했다.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계약 관계일 뿐이고 그녀라면 남은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테니 간섭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병원.병실 밖에는 상황을 모르는 환자 몇 명이 구경하
명승희는 명연기에 감동을 받아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무슨 일이든 한다고? 그러면 그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남은서의 표정이 굳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명승희는 테이블에 놓여 있던 과일칼을 들고 병상에서 내려왔고, 주위 구경꾼들은 깜짝 놀랐다.남은서는 곧바로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미쳤어요?”명승희는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그 남자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면서. 그런데 왜 피해?”남은서는 명승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밖에 있는 사람들도 명승희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사람이 죽을까 봐 얼른 의사를 부르러 갔다.명승희는 신경 쓰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여긴 병원이잖아. 딱 한 번만 찌를게. 죽지 않을 거야. 자, 네가 남자를 위해 진짜 피도 볼 수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고.”명승희가 칼을 들자 남은서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명승희를 밀어내고 문가로 도망쳤다.“오지 말아요. 명승희 씨, 당신 미쳤어요!”가슴 쪽 상처가 낫지 않은 명승희는 그녀에게 밀려나자 상처가 아파왔다. 하지만 명승희는 이를 악물고 웃으며 말했다.“조금 전까지는 그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면서 , 네 남편을 위해 칼 맞기는 싫은 거야?”명승희는 혀를 차더니 시선을 들어 창백하게 질린 남은서를 바라봤다.“내 앞에서 무슨 연기야? 네가 정말 그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그 사람한테 전화해서 확인 받으면 되는거 아냐?”“지금 당장 기회 줄게. 가서 여준우 불러와. 그리고 두 사람 혼인신고서도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무릎 꿇고 나한테 사과해야 할 거야.”남은서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명승희에게 이 수작이 통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만약 정말 여준우를 불러온다면...의사가 다가와 명승희의 손에 들린 칼을 보고 손을 들었다.“환자분, 우선 칼을 내려놓시고 말로 하세요.”“그래요.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을 텐데 왜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칼 내려놔요.”명승희가 말을 하기도 전에 사람들 뒤에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