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우가 그녀를 훑어보았다. 어젯밤의 그녀는 머리를 말리지 않아 부스스했고 생얼에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때문에 도무지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자세히 보니 눈앞의 여자가 꾸민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몸매도 그가 외국에서 만나던 여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여자의 행동으로 보아…아마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여준우가 눈을 내리뜨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 상황이 우스웠다.“죄송합니다. 전 정말로 당신이 누군지 몰라서요.”명승희의 입꼬리가 가볍게 떨렸다. 하지만 곧바로 자연스럽게 펜을 도로 넣었다. 그녀가 부끄럽지 않는 한 부끄러워지는 건 상대방이 될 것이다.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밖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한 커플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매니저가 눈앞의 남자를 확인하고 굳어버렸다.“남시후?”순간 남시후가 행동을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곁에 있던 여자를 힘껏 밀치며 말했다.“승희야. 내 말 좀 들어봐.”남시후가 막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명승희가 순식간에 발로 그를 차버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엘리베이터에 남아있던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잠시 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시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명승희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리고 비행모드로 설정했다.그때 여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남자친구는 아니죠?”명승희가 웃으며 답했다.“남자친구는 무슨. 그냥 내 어항에 있다가 튕겨나간 물고기 중 하나일 뿐이야. 없어도 상관없어.”매니저는 할 말을 잃었다.명승희는 귀국 후 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더니 점점 막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금 전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여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명승희는 매니저와 함께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여준우가 침착
명승희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유일하게 열정적으로 진심을 다 했던 남자는 육예찬뿐이었다.그와 완전히 끝이 난 후 그녀는 아무리 다른 남자를 만나도 그때와 같은 벅참과 열정을 쏟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원래 남시후한테도 기회를 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스스로 기회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 그녀한테도 필요 없었다.그녀는 연락처를 뒤적이다 남시후의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넣었다.명승희는 촬영장에 도착한 후 촬영에 들어갔다. 중간 휴식 시간에 남시후는 뒷짐을 지고 승합차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승희와 매니저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그가 빠르게 그녀들 앞으로 다가갔다. 갑자기 그가 한쪽 무릎을 꿇더니 장미 한 다발을 내밀었다.“승희야 내가 잘못했어.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될까?”매니저가 냉소를 지었다.“남시후 씨, 방금 전까지 다른 여자와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돌아서서 승희 언니한테 기회를 달라니. 도대체 우리 승희 언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남시후가 명승희를 쳐다보며 서둘러 변명했다.“난… 그건 그 여자가 나를 덮친 거야. 내가 순간 너무 놀라 굳어버려서 밀쳐내는 걸 잊어버렸어. 승희야 난 정말로 너를 좋아해.”촬영장에 있던 제작진들이 하나 둘 그들 쪽을 힐끔거렸다. 그들 모두 남시후가 명승희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한쪽 무릎까지 꿇은 남시후의 모습을 보고 제작진들은 그가 프러포즈를 한다고 생각했다.명승희가 그가 내민 꽃을 받더니 장미 꽃잎을 만지작거렸다.“금방 딴 장미네. 꽤나 신경 썼나 봐.”남시후는 그녀가 자신을 용서해 준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승희야 나 믿어 주는 거야?”“믿지.”그녀가 꽃잎을 한 장 톡 뽑아내더니 눈을 치켜뜨고 그를 바라보았다.“네가 내 남편도 아닌데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남시후의 표정이 굳어졌다.명승희가 꽃잎 향을 맡으며 실눈을 떴다.“여자 향수 냄새네. 그것도 재스민 향?”남시후가
아무리 그녀가 연예계에서 콧대 높은 공주님이면 뭐 하랴. 똑같이 남자의 손에 놀아나는 계집일 뿐이다. 두고 보라지.남시후가 굳은 얼굴로 촬영장을 벗어났다.그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링컨 리무진이 주차되어 있었다. 보디가드가 차에서 내려 여준우에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여준우가 긴 다리를 뽐내며 차에서 내리더니 외투 단추를 잠갔다.그와 함께 내린 남자는 이번 드라마의 투자자였다. 그가 여준우의 귓가에 뭐라 말하더니 그를 데리고 촬영장에 들어섰다.촬영장에 있던 감독과 조감독이 전화를 받고 서둘러 나와 인사했다. 투자자가 여준우한테 깎듯이 대하는 모습을 확인한 감독이 웃으며 물었다.“이분은?”투자자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여기 이분은 여 사장님이라고 우리의 새로운 투자자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찍고 있는 드라마 《청운의 꿈》을 여 사장님이 좋게 보고 계십니다. 지금 예상으로는 160억 정도 투자하실 생각이랍니다.”160억의 투자금이라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이는 촬영팀의 대 자본주와 어깨를 나란히 겨눌 수준이었다. 그 말을 들은 감독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스태프한테 차를 내오라고 지시했다.여준우는 옛 거리에 앉아 휴식을 하고 있는 연기자들을 둘러보았다. 감독이 남녀 주인공들을 불러 소개해 주었다.“이 두 사람이 저희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을 맡은 분들입니다. 연예계에 이제 막 떠오르는 신예 스타들이죠.”감독이 이어서 말했다.“여기 이분은 여 사장님이세요. 우리 촬영에 큰 투자를 해주실 분이죠. 여러분들은 최선을 다해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세요.”남녀 주인공이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여준우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왜 명승희 씨가 안 보이는 거죠?”“승희요?”감독이 순간 놀라더니 웃으며 답했다.“지금 쉬고 있을 겁니다. 다음에 바로 승희의 신이 있거든요. 그녀는 우리 드라마에서 서브 여자 주인공 역을 맡고 있어요.”여준우는 문득 깨닫는 바가 있었다.감독이 웃으며 물었다.“여 사장님께서는
신은 승완 부 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초희’는 정원에서 귀비 신분에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행동거지와 자태가 오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캐릭터 설정과 꼭 어울렸다.그때 누군가의 모습을 확인한 명승희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감독이 곧바로 컷하고 외치며 그녀에게 말했다.“승희야, 이미 촬영 시작했어. 표정 신경 써줘.”“아, 죄송합니다.”명승희가 웃으며 답하고는 감독 옆에 팔짱을 낀 채 서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저 남자가 왜 저기에 있지?여준우가 미간을 찌푸렸다.오늘따라 그녀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건지, 아니면 갑자기 현장에 추가된 사람 때문인지, 그녀는 연속 몇 번이나 NG를 냈다.감독도 조금 지친듯해 보였다.“승희야, 오늘 어제보다 컨디션 안 좋은 것 같은데. 왜 그래? 슬픈 일을 떠올려봐. 너희 가족 모두가 참수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면서 촬영에 집중해. 그래도 안 되면 눈약 가져다줄게.”명승희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매니저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승희 언니,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 때문에 영향받지 말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언니를 기다리고 있잖아요.”곁에 있던 여준우가 피식 웃었다.“명승희 씨가 실연의 아픔 때문에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은데 시간 좀 주는 게 좋겠네요.”실연?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다. 남시후는 그녀를 쫓아다니던 거 아니었나? 갑자기 실연이라니?그의 말에 명승희는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났다. 그녀가 감독한테 말했다.“다시 한번 하시죠.”감독이 촬영을 재개했다.명승희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빠르게 역할에 집중했다. 시녀 역을 맡은 여자가 밖에서 걸어들어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울먹였다.“마마, 초 씨 가문이… 초 씨 가문 전체가 참수를 당했습니다!”카메라가 줌인하며 ‘초희’의 표정을 세세하게 담아냈다.무표정한 ‘초희’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찻잔을 들고 있던 손도 그대로 멈춰버렸다.감독은 카메라 앞에 앉아 명승희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많은 젊은 배우들이 감정 연기를 잘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감정 연기를 시작하면 표정관리가 잘되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 인식 속의 슬픔은 곧 우는 모습이고 기쁨은 곧 웃는 모습이기 때문이다.하지만 명승희는 눈물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었다. 흘리고 싶을 때 흘리고, 흘리지 말아야 하는 곳에서는 흘리지 않았다. 억지로 히스테리를 부리거나 고함을 내지르며 슬픔을 표현하지도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연기였다.감독도 연기파 배우가 한 말에 동의했다.촬영을 끝마친 후 대기실에서 화장을 지운 명승희는 거울을 통해 문에 기대어 서있는 여준우를 확인했다. 그는 웃고 있었다.“명승희 씨의 연기를 보고 나니 다시 보게 되네요.”명승희는 화장솜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립스틱을 꺼냈다.“혹시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야?”그녀가 립스틱을 바르자 메이크업을 지운 뒤 창백해 보이던 안색이 그제야 제법 환해졌다. 그녀가 거울로 다시 한번 얼굴을 확인했다.“아침에만 해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더니. 이제는 아예 촬영장에까지 찾아오고 말이야.”여준우가 피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 화장대 위에 걸터앉아 시계를 확인했다.“오늘 명승희 씨 촬영은 다 끝난 것 같은데 함께 밥이라도 먹지 않을래요?”명승희가 그를 돌아보았다.여준우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명승희와 여준우가 함께 분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본 엑스트라들이 하나 둘 놀라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저 남자는 드라마 투자자잖아. 설마 명승희를 위해 투자하는 건가?”한 여자 엑스트라가 그들을 보며 말했다.“내가 봤을 때 남시후랑 저 여자는 진짜 안 어울렸어. 명승희는 좀 사람을 압박하는 느낌을 주잖아. 만약 남시후가 저 여자랑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 쪽이 너무 기가 세서 분명 얼마 가지 못할 거야.”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말에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명승희는 확실히 쉽게 다가가지 못할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그녀는 모델이었고 키도 173 정도로 커서
여준우의 눈에 언뜻 감탄이 스쳤다.“똑똑하네요 승희 씨.”역시 그는 사람을 잘못 보지 않았다.명승희가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왜 내가 너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는데.”“일전에 이미 제게 도움을 줬었잖아요.”여준우가 나이프를 들고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썰었다.“이번에도 도움을 주시면 절대 명승희 씨가 손해 보지 않게 해드릴게요.”그러더니 먹기 좋게 썰어놓은 스테이크를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그녀의 스테이크와 바꿨다.“3개월 동안은 제가 명승희 씨 만을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 명승희 씨의 남자친구 역을 맡아서 승희 씨 대신 그 남자를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명승희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고기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그 남자라면 굳이 네 손을 빌릴 필요가 있을까?”여준우가 웃었다.“내가 알아본 바로 그 남자 연예인은 당신을 쫓아다니던 지난 한 달간 한 여자만 만난 게 아니더라고요. 심지어 자기 팬과도 만나던데요.”명승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눈가에 놀라움이 스쳤다. 물론 그녀는 그가 전해준 소식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여준우가 와인잔을 들더니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마셨다.“안 믿으려나?”그녀가 피식 웃었다.“그건 그 남자의 사적인 일이지.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당연히 상관있죠.”여준우가 와인잔을 내려놓았다.“유성 엔터에서는 더 이상 그 남자한테 서포트를 해주지 않을 겁니다. 이제 그는 당장이라도 신인 남자 배우한테 자기 자리를 빼앗기게 될 거고, 모든 지원이 끊긴 채, 탑 급 스타에서 엑스트라로 곤두박질치게 되겠죠.”“명승희 씨는 영황 엔터테인먼트 사장의 딸입니다. 탑 급 연예인 정도의 서포트를 받고 있죠. 명승희 씨를 사로잡는 건 그에게 벼락출세를 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가 과연 승희 씨를 포기할까요?”명승희가 그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었다.“그건 당신의 추측일 뿐이에요.”여준우가 입꼬리를 씩 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저랑 내기하실래요?”명승희가
강성연은 피식 웃었다.사실 외할아버지는 일찍부터 반 씨 가문 사람에 대한 적의를 내려놓았다.반지훈은 휠체어를 밀고 강성연은 연혁 곁에서 걸었다. 세 사람은 녹음이 우거진 오솔길로 걸었다.“외할아버지, 왜 연씨 저택에 돌아가지 않으셔요?”“나이를 먹으니 조용한 게 좋아. 이곳은 경치가 좋아서 노년 생활을 보내기 적절해.”“하지만 전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강성연은 그를 바라보았다.연혁은 미소를 지었다.“뭐가 마음에 놓이지 않아? 보살피는 사람이 있잖아.”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었다.“저 자식이 널 보살피고 있는 것도 난 마음이 놓이는데 말이야.”휠체어를 밀고 있던 반지훈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시내에 계시면 저희도 돌보기가 더 편하잖아요.”연혁은 콧방귀를 뀌었다.“반 씨 가문 동정 따위는 필요 없어. 특별히 너희 할아버지 말이야.”반진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돌아가시면 저희 할아버지랑 다툼이라도 하실 수 있잖아요. 저희 할아버지 성격 좀 꺾어주세요.”강성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어떻게 자신의 할아버지를 저렇게 말하지? 하지만 외할아버지와 큰어르신은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연혁은 크게 웃었다.“반서준이 원한다 해도 난 싫어.”반지훈은 그를 바라보았다.“시언이는 S국에 있어요. 매일 시언이를 보고 싶지 않으세요?”연혁은 고민하는지 머뭇거렸다.강성연은 웃으며 말했다.“시언이랑 자주 만나면 좋을 거예요. 그러니 돌아가셔요.”연혁은 부부의 권고를 거절할 수 없어 승낙했다.그들는 요양원 사람들과 말한 후 연혁을 시내에 있는 연 씨 저택에 데려다주었다. 연 씨 저택은 일찍부터 완전히 달라졌고 도우미들도 바뀌었다. 하지만 집사는 여전했다.“어르신.”집사는 연혁을 보는 순간 눈시울이 빨개졌다.연혁은 그를 바라보았다.“넌 남아 있었구나.”집사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저까지 떠나면 이 저택에는 아무도 없어요.”연혁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고생했어.”“아닙니다. 어르신이 돌아오신 것만으로 만족해요.
강성연은 웃으며 말했다.“시언이는 해신이보다 빨리 크는것 같아요. 유이도 해신이랑 키가 비슷한걸요.”반지훈과 반 씨 어르신이 별장에 들어오자 연혁은 휠체어를 돌렸다.“너희 부자가 모두 이곳에 오면 그 늙은 자식도 곧 오는 거 아니야?”반 씨 어르신은 미소를 지었다.“지훈이 할아버지는 입원하셔서 아마 오지 못할 거예요.”“반서준이 입원을 했다고?”연혁은 의아해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건강해 보이던 반서준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꼭 비웃으러 가야겠어.”연혁은 재빨리 반서준이 입원한 병원을 묻더니 집사에게 내일 같이 가자고 했다. 그는 반서준을 놀려줄 생각이었다.반 씨 어르신은 놀라지 않았고 부자 모두 저지하지 않았다. 큰 어르신은 항상 건강을 대수롭지 생각하지 않아 이런 자극이 필요했다.며칠 후 연혁은 하루가 멀다 하게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여 노부인이 없을 때만 찾아가서 큰 어르신이 입원하기 싫어할 정도였다.두 노인은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매일 말다툼을 했다. 큰 어르신은 말다툼을 할 상대가 생기니 더 이상 아들과 손자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며칠 더 입원해야 되기 때문에 심심했던 큰 어르신은 연혁이 매일 오길 바랐다. 강성연은 반지훈한테 병원에서의 재미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웃었다.“외할아버지와 당신 할아버지가 매일 싸우다가 정 드는 거 아니에요?”반지훈은 침대 머리에 기대 잡지를 펼치더니 웃었다.“누가 알겠어? 그럴 수도 있지. 나이가 드니 과거의 원한도 잊으시는 것 같아.”강성연은 그가 들고 있는 잡지를 빼내고 그의 몸 위에 앉더니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돌아오자마자 잡지를 보다니, 나 예쁘지 않아요?”반지훈은 눈에 웃음기가 번졌다.“예뻐.”반지훈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그녀를 품에 안았다.“우리 성연이가 예쁘지 않을 수 없지.”“그런데 왜 잡지를 봐요?”강성연은 손가락으로 그의 옷을 톡톡 건드렸다.반지훈은 그녀의 턱을 잡은 후 키스를 했다.“당신이 주동적으로 스킨십하기 기다리고 있었지.”반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