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프로젝트의 발전 가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여준우는 다리를 꼬고 편한 자세로 앉았다. “페르시아만 프로젝트는 막대한 투자, 긴 공사 기간, 그리고 많은 유동 자금을 필요로 합니다. 재정적 위험 가능성도 제거해야 하죠. 한 선생님은 지금 신경 쓰실 겨를이 없겠지만, 이 프로젝트에 어떠한 문제도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세요.”“회장님의 회사도 이 프로젝트에 많은 달러를 투자하셨고, 예정대로 완공하지 못하면 엄청난 손실입니다. 페르시아 섬이 황폐해지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겨가는 걸 기다리기보다는, 차라리 제가 이어서 하는 편이 더 낫죠.”안지성의 머뭇거림을 보고 여준우는 찻잔을 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 “안 선생님, 제가보장해 드리죠. 페르시아만 프로젝트는 어떠한 문제도 없을 겁니다.” 안지성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여 선생님의 조건은 뭐죠?” 여준우는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는 손끝으로 찻잔을 매만졌다.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앞으로 있을 동임 그룹 해외 프로젝트에 저를 우선 순위로 고려해 주세요.” 안지성은 당황했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 선생님, 선생님 정도의 위치라면 TG 그룹을 먼저 생각해 보실텐데요.” 여준우는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런거 상관없이 저는 그저 제 눈에 든 사람과 협업합니다.” 반지훈 그 “악덕 상인”과 협업을 하라니, 반지훈이 뒤통수를 치도록 가만둘 리가… 협업은 절대 안 될 일이다, 평생. 그는 안지성에 대해 조사했다. 안지성 역시 보기 드문 똑똑한 사람이다. 성격이 둥글지는 않아도 꼼수를 부리지 않고 당당하며, 금융 시장에 대한 안목이 뛰어났다. 게다가 젊었을 때 영황 엔터테이먼트에서 알아주던 브로커로 활동해 연예계에도 인맥이 많았다. 이런 사람과 사업을 하면 그는 상대방이 어떤 꼼수를 쓰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전혀 재지 않는다. 그게 그가 동임 그룹을 선택한 이유다.여준우는 경호원에게 서류를 가져오라고 손을 흔들었고, 경호원은 서류를 안지성 앞에 두었다. “안 선생님
해신이 고개를 들었다.“아빠 저희가 말썽을 일으켰는데 화 안 내세요?”반지훈이 피식 웃었다.“내가 왜 화를 내겠어.”그가 커피를 내려놓았다.“너희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 가장 좋겠지만, 해결하지 못해도 이 아빠가 있는걸.”강유이가 그의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더니 팔을 붙잡고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아빠가 화를 내시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오늘 오빠가 저를 도와줬어요. 그 나쁜 여자가 가짜 다이아로 저를 모함하지 뭐예요. 누군 다이아가 없는 줄 아나.”반지훈이 눈살을 찌푸렸다. 왜 이 계집애가 은근히 자신한테 뭔가 다른 걸 어필하는 듯한 기분이 들지?두 아이가 위층으로 올라간 후 희승이 황급히 밖에서 걸어 들어와 반지훈 앞에 멈춰 섰다.“대표님 방금 희호 형한테서 전화 왔는데 큰 어르신이 쓰러지셨답니다.”반지훈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버지는 알고 계셔?”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계십니다. 어르신께서는 이미 아침에 S 국으로 출발하셨습니다.”반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서 내일 S 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티켓 두 장 예매해.”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저녁 무렵 노을에 의해 새빨갛게 물든 구름들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블루 오션에 돌아온 강성연은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 신으며 반지훈이 이미 돌아왔음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문을 열고 안방에 들어서다 반지훈이 옷을 정리하며 가방에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디 가려고요?”“S 국에.”반지훈이 옷을 개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어.”그녀가 얼어붙었다.“네?”그러다 곧바로 옷장으로 걸어가더니 장문을 열며 말했다.“나도 함께 가요.”반지훈이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당신 옷도 이미 정리해 넣었어.”“이렇게 빨리요?”그녀는 다시 한번 놀라 얼어붙었다. 고개를 돌리니 자그마한 트렁크가 그의 검은색 트렁크 옆에 가지런히 세워져있었다.“빨리?”반지훈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품에 안았다.“빨리 뭐?”강성연은 반
“그렇죠?”이율도 함께 기뻐했다.“강 대표님은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세요. 정교함도 중요하지만 창의성도 있어야 하고, 작품 자체에 영혼이 담겨야 한다고 하셨어요.”“영혼이요?”안예지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율이 설명했다.“비록 저도 작품의 영혼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지만 soul 브랜드의 최초의 정의가 바로 ‘영혼’을 주입하는 브랜드였어요. 강 대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보석은 다 죽어있는 물건이지만 디자인을 거치고 나면 그 존재의 의미가 생겨난다고 하셨어요.”안예지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이율이 그녀를 돌아보았다.“강 대표님께서는 안예지 씨를 높게 보고 계세요.”그녀가 놀라 물었다.“저를요?”이율이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녀는 진열장에 있는 주얼리에 시선을 돌렸다.“강 대표님께서는 당신도 미래에 성공한 주얼리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안예지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전화를 받던 이율이 안예지에게 말했다.“먼저 둘러보고 계세요. 저는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이율이 자리를 떠난 후 안예지는 여전히 전시장에 남아서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주얼리를 구경했다. 현대적인 다크 계열과 채색 계열 외에도 고딕 양식의 복고풍인 앤티크 주얼리도 있었다.그녀는 감탄했다. 한 명의 주얼리 디자이너가 이렇게 다양한 계열의 주얼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매 작품 하나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존재인 것처럼 그녀의 가슴에 새겨졌다.‘영혼’이 없는 작품은 그저 아름다운 죽은 것일 뿐이다. ‘영혼’을 주입해 넣은 작품이야말로 아름다움을 넘어 사람들에게 공명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그녀는 생각을 멈췄다. 휴대폰을 꺼내보니 그녀의 아버지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녀는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귓가에 가져갔다.“아빠?”“예지야, 아빠 오늘 저녁에 회식 있어서 늦게 들어갈 것 같아. 기다리지 말고 먼저 저녁 먹어.”아버지의
반지훈과 강성연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멈춰 섰다.“너희들은 왜 왔어.”“할아버지 뵈로 왔어요.”반지훈이 병실을 힐끗 바라보았다.“할아버지는 좀 어떠세요?”반지훈의 아버지가 콧방귀를 뀌었다.“어떻겠어. 이만큼 나이를 드시고도 고집은 어찌 황소 같으신지. 일찍부터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병원에 오지 않고 말이야.”말을 마치자마자 병실에서 큰 어르신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썩을 놈아. 그냥 고혈압일 뿐이잖아. 내 몸 아직 건강하다고.”반지훈의 아버지는 반지훈을 향해 “거봐.”라고 하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의사가 큰 어르신은 고혈압에 연세도 많으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혈압이 오르는 건 노인한테 엄청 좋지 않다고 말했다.반지훈의 아버지 역시 의사의 말에 동의했다. 의사가 자리를 떠난 후 아버지가 반지훈한테 말했다.“네가 들어가서 저 늙은이를 좀 달래줘.”반지훈은 옷을 여민 후 병실로 들어갔다.큰 어르신은 침대에 기대앉아 수액을 맞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눈을 뜬 후 반지훈과 강성연이 들어오는 모습을 확인했다.“이렇게 빨리 죽을 일 없으니까 걱정들 하지 말거라.”반지훈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반평생 들볶는 걸로 모자라셨어요?”큰 어르신이 눈을 부릅뜨고 성을 냈다.“이 썩을 놈이. 너 지금 그게 이 할아비한테 할 말이냐?”“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죠.”그가 정장 외투를 벗더니 간병인 의자 등받이에 걸쳐놓았다.“할아버지 같은 옹고집을 할머니께서는 어떻게 받아주신대요.”큰 어르신이 혀를 차며 얼굴을 휙 돌렸다.“제 아비 닮아서 잔소리만 많아서는.”반지훈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저랑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를 케어 못하겠어요.”그가 휴대폰 버튼을 누르자 큰 어르신이 놀라 굳어버렸다.“너 이 자식 지금 뭐 하는 거야.”그가 큰 어르신을 힐끔 바라보더니 휴대폰을 귓가에 댔다.“할머니 여기 성질 고약하고 고집불통인 늙은이가 고혈압이 도졌는데요. 저랑 할머니 아들을 엄청 욕하고 있어요.”“
그들은 감히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상대는 Y 국의 재벌이었고 재산이 어마어마했다. 귀족들과도 친밀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일반 부잣집 아가씨가 눈에 찰 리가 없었다.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황실 공주와 결혼을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여준우가 그들한테 인사를 건넨 후 술잔을 들고 안지성한테 다가갔다. 그가 술을 권하자 뜻밖의 호의에 놀란 안지성이 웃으며 말했다.“여 선생님, 원래는 제가 먼저 권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여준우가 정중하게 말했다.“이제 저희는 협력 관계지 않습니까. 당연히 아랫사람인 제가 먼저 권하는 게 맞습니다.”안지성은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았다. 상대방이 불필요한 인사를 원하지 않으니 그도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로 했다. 안지성이 그의 술을 받았다.안지성의 곁에 있던 회장이 웃으며 물었다.“안 회장님 따님분은 왜 같이 안 오셨습니까?안지성이 답했다.“제 딸은 이런 장소가 익숙지 않습니다.”다른 한 고위 임원이 그에게 아첨하며 말했다.“듣기로 안 회장님의 따님분께서는 사고로 11년간 누워있었다지요. 따님분이 이제라도 눈을 뜨신 건 다 안 회장님께서 수년간 꾸준히 선행을 해오셨기 때문일겁니다. 그 따뜻한 마음에 하느님도 감동받지 않았겠습니까.”안지성은 그저 미소 지으며 답을 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똑똑히 알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이 자신의 딸을 이런 장소에 데리고 오는 건 결국 딸을 이용해 더 높은 권력에 기생하려고 하기 위함이다.그가 자신의 딸을 이런 장소에 데려오지 않는 건 자신의 딸을 거래 도구로 취급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연회가 끝난 후 얼큰하게 취한 안지성은 걸음도 바로 걷지 못하고 있었다.여준우는 보디가드한테 그를 집에까지 데려다주도록 명령하고 먼저 돌아섰다. 잠시 후 두 보디가드가 안지성을 부축하며 호텔을 나섰다.홀로 호텔로 돌아온 여준우는 복도에서 자신한테 귀신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남은서와 마주쳤다.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남은서는 오랜 기다림
“당신 어쩜 이렇게 여자를 제멋대로 갖고 놀 수 있어요. 전 진심으로 생각했다고요.”남은서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하지만 불쌍한척하는 건 그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넌 진심이라 나랑 밀당하려는 그런 수작을 부린 건가?”당황한 그녀가 열심히 핑곗거리를 생각했다.“그… 그때는 제가 확신이 없어서… 밀당 같은 게 아니었어요.”여준우가 피식 웃었다.“그럼 지금은 확신이 있다는 거야?”“네.”남은서가 대담하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심장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전 진심이에요. 당신만 원한다면 오늘 밤 전 당신의 것이에요.”하필 바로 그때, 옆방 문이 활짝 열렸다. 금방 샤워를 마친 명승희가 생얼에 젖은 머리로 샤워 가운을 걸친 채 배달 전화를 받으며 나오다 마침 그 장면과 맞닥뜨린 것이다.세 사람의 시선이 부딪혔다.명승희의 시선이 남은서가 자신의 심장 부근에 갖다 대고 있는 손에 이르렀다. 그녀가 쯧 하고 혀를 찼다.“어머 남은서 너는 이런 복도에서도 그렇게 애가 타나 봐?”하필 명승희에게 이런 난감한 모습을 들킨 남은서는 얼굴이 다 파래졌다.여준우가 남은서를 뿌리치더니 미소를 지으며 명승희한테 다가갔다.“자기야, 미안 오래 기다렸지.”그가 명승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명승희가 미처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여준우가 그녀를 방안으로 끌고 가더니 그대로 문을 닫아버렸다.문밖에 홀로 남은 남은서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오늘 밤 여준우와 선약이 있다던 여자가 명승희라고?방안, 여준우는 명승희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게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는 도어 스코프로 남은서가 돌아서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여준우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에서 나쁜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죄송합니다 아가씨. 아까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명승희가 팔짱을 끼고 그를 쓱 훑어보았다.“나 참, 당신 같은 남자들은
그들이 서있는 곳은 바닷가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커다란 베란다였다. 베란다에 서있으니 마치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쏟아내릴 것 같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 마치 은하수를 가로질러 하늘을 반으로 가른 것 같았다.반지훈이 그녀를 끌어안았다.“마음에 들어?”“들어요!”그녀가 손을 뻗었다. 당장이라도 별이 손에 닿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반지훈이 손을 뻗더니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감쌌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맞물리자 맞닿아있는 두 개의 반지가 유달리 눈이 부셨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까치발을 하더니 그의 아래턱에 쪽하고 입을 맞추었다. 반지훈이 살짝 놀라더니 곧바로 눈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이걸로 끝이야?”그녀가 반지훈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정말 욕심이 끝도 없어요 반지훈 씨.”반지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그는 그녀가 숨을 바로 쉬지 못할 때까지 몰아붙이고 나서야 놓아주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다. 강성연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곧바로 그의 목을 감싸 안으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지훈 씨,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반지훈이 눈썹을 씰룩거렸다.“경험해 보고 싶어?”강성연이 그의 넥타이를 풀어 통유리로 된 창문 앞에 내려놓았다. 뜨거운 정염의 불꽃이 한데 엉겨 붙어 타오르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마치 바닷물이 해안에 부딪혀 피어오른 물보라 같았고, 바다에 빠졌을 때 간신히 뻗은 손에 잡힌 부목을 안고 뱉어쉬는 숨처럼 격하고 간절했다. 그렇게 그들은 인간의 본연의 욕망을 마음껏 표출해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강성연은 반지훈의 품에 기대어 손끝으로 그의 가슴을 간지럽히고 있었다.“우리만 이렇게 몰래 나와도 괜찮을까요?”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가볍게 입을 맞췄다.“안 괜찮을게 뭐가 있겠어. 할머니만 계시면 우리는 필요도 없을 거야.”그녀가 픽하고 웃었다.“지훈 씨,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그가 응하고 답하
여준우가 그녀를 훑어보았다. 어젯밤의 그녀는 머리를 말리지 않아 부스스했고 생얼에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때문에 도무지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자세히 보니 눈앞의 여자가 꾸민 모습은 꽤나 매력적이었다. 몸매도 그가 외국에서 만나던 여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여자의 행동으로 보아…아마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여준우가 눈을 내리뜨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 상황이 우스웠다.“죄송합니다. 전 정말로 당신이 누군지 몰라서요.”명승희의 입꼬리가 가볍게 떨렸다. 하지만 곧바로 자연스럽게 펜을 도로 넣었다. 그녀가 부끄럽지 않는 한 부끄러워지는 건 상대방이 될 것이다.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밖에서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한 커플이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매니저가 눈앞의 남자를 확인하고 굳어버렸다.“남시후?”순간 남시후가 행동을 멈췄다. 엘리베이터 안을 확인한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곁에 있던 여자를 힘껏 밀치며 말했다.“승희야. 내 말 좀 들어봐.”남시후가 막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명승희가 순식간에 발로 그를 차버리고 곧바로 엘리베이터 문을 닫았다.엘리베이터에 남아있던 몇몇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잠시 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남시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명승희는 전화를 받지 않고 끊어버리고 비행모드로 설정했다.그때 여준우가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남자친구는 아니죠?”명승희가 웃으며 답했다.“남자친구는 무슨. 그냥 내 어항에 있다가 튕겨나간 물고기 중 하나일 뿐이야. 없어도 상관없어.”매니저는 할 말을 잃었다.명승희는 귀국 후 전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더니 점점 막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금 전과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하곤 했다.여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1층 로비에 도착했다. 명승희는 매니저와 함께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 뒤로 여준우가 침착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